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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길(도서출판) / 2011년 10월
평점 :
인간적인 성취들 중에서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들만큼 안정성을 갖는 것은 없기 때문
그가 진정 행복한 때에 그가 행복하다는 것이-살아 있는 사람은 그 우여곡절 탓에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또 행복을 어떤 지속적인 것으로, 결코 쉽게 변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반면, 운수는 동일한 사람 주변을 여러 차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파악한다는 이유로-그에 대해 참되게 서술되지 않는다면, 이 어찌 이상하지 않단 말인가?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면 분명하다. 만약 우리가 그때 그때 변하는 운을 따라가 본다고 한다면, 동일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다가 다시 비참한 사람으로 부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할 것이며, 그로써 행복한 사람을 일종의 '카멜레온으로, 취약한 기반을 가진 사람'으로 드러낼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의 운을 좇아 자신의 행복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 아닐까? 잘 되고 못됨은 이런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인간적 삶은 다만 이런 것들을 추가적으로 필요로 할 뿐이며, 행복에 결정적인 것은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이고, 그 반대의 활동은 불행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도 행복에 대한 우리의 논의가 옳았다는 증거를 제공한다. 인간적인 성취들 중에서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들만큼 안정성을 갖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들은 학문적 인식보다도 더 지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러한 활동들 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활동들이 더 지속적인데, 그것은 지극히 복된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이러한 활동들 속에서, 그리고 가장 연속적으로 그들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들과 관련해서 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39∼40쪽)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제1권 제10장 「행복과 운명」 중에서
실천적 지혜에는 망각이 없다는 사실이 그 징표
이성을 가지고 있는 영혼에는 두 부분이 있는데, 실천적 지혜는 [학문적 인식이 관련하는 부분과는] 다른 부분의 탁월성, 즉 의견을 형성하는 부분의 탁월성이다. 의견도 실천적 지혜도 모두 다르게 있을 수 있는 것들에 관련하니까. 다른 한편, 실천적 지혜가 단순히 이성을 동반한 품성상태인 것만은 아니다. 단순히 이성을 동반한 품성상태에는 망각이 있지만, 실천적 지혜에는 망각이 없다는 사실이 그 징표이다.(212쪽)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제6권 제5장 「실천적 지혜」 중에서
탁월성은 지속적인 것
가장 완전한 친애는 좋은 사람들, 또 탁월성에 있어서 유사한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친애이다. 이들은 서로가 잘 되기를 똑같이 바라는데, 그들이 좋은 사람인 한 그렇게 바라며, 또 그들은 그 자체로서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를 위해 그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최고의 친구이다. 이들이 이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은 우연한 것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이유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의 친애는 그들이 좋은 사람인 한 유지된다. 그런데 탁월성은 지속적인 것이다. 각자는 또 단적으로도 좋은 사람이고 친구에 대해서도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은 단적으로도 좋으며 서로에 대해서도 도움을 준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들은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적으로도 즐거우며 서로에게도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들은, 또 그와 같은 종류의 행위들은 좋은 사람들 각각에게 즐거운 것이며, 좋은 사람들의 행위들은 [이런 점에서] 같거나 유사하다. (283∼284쪽)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제8권 제3장 「친애의 세 종류」 중에서
사랑하는 것이 가치에 따라 생겨날 때 그런 사람들이 오래 지속되는 친구
친애는 사랑하는 데에서 더 [잘] 성립하며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칭찬받기에, 사랑하는 것은 친구들에게 속하는 탁월성 같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이 가치에 따라 생겨날 때 그런 사람들이 오래 지속되는 친구이며, 이들의 친애 역시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서로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이러한 방식으로 대단한 친구가 될 것이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동등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애[친구 사이]란 동등성과 유사성이며, 무엇보다도 탁월성에 따른 유사성이다. 그들은 그 자신에 있어서든 서로에 대해서든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서, 저열한 것들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그것들의 하인이 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세간에서 말하듯 그것들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잘못하지 않을 뿐 아니라 친구들에게 그러라고 하지도 않는 것이 바로 좋은 사람들의 특징이니까. 못된 사람들은 그 항구적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에게조차 동질적인 사람으로 지속되지 못하니까. 그들은 상대편의 못됨을 기뻐하면서 짧은 시간 동안만 친구가 된다. (295∼296쪽)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제8권 제8장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 중에서
품성에 근거한 친애는 자체적인 것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지속적이다
'사랑을 구하는 사람'은 즐거움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유익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이런 일[불평]들은 자신들이 사랑하게 된 이유가 된 것들을 갖지 못할 때 생겨난다. 이런 것들을 근거로 성립하는 친애는, 그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이 얻어지지 않으면 해체된다. 그들이 서로 사랑한 것은 상대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것이었는데, 그 소유물은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런 종류의 친애들 역시 지속적이지 않다. 반면 이야기한 바와 같이 품성에 근거한 친애는 자체적인 것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지속적이다. (315∼316쪽)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제9권 제1장 「친애에 있어서 교환의 원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