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살라미스 해전만큼 정신의 힘이 물질의 양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낸 적은 없었다.”
 -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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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해전> (빌헬름 폰 카울바흐, 1868년)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지휘했던 몽고메리 장군은 알라메인 전투(1942년)에서 '사막의 여우' 롬멜을 이집트에서 몰아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하기도 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여러 번 쌓은 인물이지만 전쟁의 이론과 역사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집필했다.

그가 쓴 1,038쪽에 이르는 몹시도 두툼한 책인『전쟁의 역사』를 펼쳐보면 인류의 조상들이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러왔는지 보다 더 생생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그가 찾아낸 '초기 시대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들어 보자.

인간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역사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우리는 인간 사회가 전쟁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기원전 7000년경으로 돌아가 예리코를 둘러보면, 1만여 평 지역이 높이 6미터가 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아주 튼튼한 요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해자(垓字)는 단단한 바위에 약 4.5미터의 폭과 2.7미터의 깊이로 패어 있다. 아마 2,500명쯤의 주민 가운데 500∼600명은 전사였을 것이다. 이들 주민들은 공학이나 요새 건축에 능하고 경험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돌로 만든 화살촉 유물로 보아 활과 화살까지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지역을 잘 알고 있고, 1931년에는 사해의 골짜기에 있는 고대 도시들의 성벽과 동굴을 탐사하며 여러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처럼 대규모의 군사적 대비를 한 것으로 보아 그들에게는 무섭고 강력한 적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79쪽)


1908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한 그가 평생 동안 수많은 전쟁을 두루 겪는 와중에도 꾸준히 '전쟁의 역사'를 고찰하고 '역사의 현장'을 직접 두루 살펴본 덕분에 그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현장감'이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살라미스 해전>을 둘러싼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도 잠시나마 우리와 함께 살았던(그의 생몰연대는 1887∼1976년이다)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서양 역사뿐 아니라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뒤바꿀 뻔했던 '마라톤 전투'와 '테르모퓔라이 협곡'에서 벌어졌던 그 유명한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 제법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다.

나는 오래 전에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고 나서 한동안 '레오니다스 왕'이 이끈 300인의 전투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에 관한 이야기를 두루 찾아본 일이 있었는데, 심지어는 마침 그때 그리스의 아테네 무역관에서 몇 년째 근무중이던 고교 동창 녀석과도 '테르모퓔라이 협곡'과 '레오니다스 왕'에 대한 이야기를 꼬치꼬치 물어볼 정도였었다.(그 친구는 테르모퓔라이 협곡을 '당연히' 가봤다고 했다.) 그런데 마침 내가 그 책을 다 읽은 직후에 바로 그 유명한 전투를 다룬 영화『300』이 개봉되는 바람에 나에겐 그 영화가 무슨 '특별한 선물'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내가 책으로만 접했던 그 유명한 협곡에서의 전투 이야기가 그 '영화'를 통해 과연 얼마만큼 생생하게 재현되었을까를 남달리 유심히 살펴보는 일도 몹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몽고메리가 쓴 『전쟁의 역사』를 읽어보면 그가 '테르모퓔라이 협곡'에서 느꼈던 감상이 너무나 무미건조한 듯해서 나로서는 적잖이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그의 글을 여기서 약간 인용해 둘 필요가 있다.
 

······ 그때 그리스군에게 테르모필라이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7,000명의 장갑 보병 - 그 중 스파르타인은 300명뿐이었다 - 을 이끌고 사흘 동안 페르시아의 전 병력을 저지했다. 그러나 페르시아군에게 산길을 돌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 반역자가 있어 스파르타 왕의 군대는 모두 죽음을 당했다. 페르시아는 그곳에서 승리를 거두고 아테네를 향해 남진했다. ······

나는 1933년에 테르모필라이를 방문하여 그 산길을 방어하다 죽은 스파르타군을 애도하는 기념비를 보았다. 비문을 번역하면 이렇다.

      이곳을 지나는 자, 가서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말하라,
      우리는 스파르타의 군법에 복종해, 여기 누워 있노라고. (134쪽)


그런데 몽고메리가 들려주는 '테르모퓔라이 전투'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내가 꼭 되짚고 넘어갔으면 싶은 게 한 가지 있다. 그 유명한 전투에서 300인의 전사가 결정적으로 패배한 원인은 '협곡에 이르는 또다른 샛길' 때문임이 명백하지만, 정작 그 샛길을 가르쳐 준 사람은 몽고메리가 말한 '그리스군 진영의 반역자'가 아니라, 테르모퓔라이 협곡에서 양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이미 페르시아 군대의 수중으로 떨어진 '현지 사정에 밝은' 멜리스 토박이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멜리스인의 고자질 때문에 난공불락의 협곡에서 스파르타의 전사들이 무려 엿새 동안이나 끈질기게 버텨내며 페르시아를 곤경에 빠뜨린 일도 결국 허사가 되고 말았고, 그 멜리스인을 앞세우고 오솔길을 통해 느닷없이 나타난 페르시아군들 때문에 결국 스파르타의 용맹무쌍한 300인의 전사들은 장렬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멜리스인들은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페르시아에 부역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왕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을 때, 에우뤼데모스의 아들 에피알테스라는 멜리스인이 그와 면담하러 왔다. 왕이 크게 포상하리라고 기대하고 그는 테르모퓔라이에 이르는 산속 오솔길을 알려주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곳 고갯길을 지키고 있던 헬라스인들을 죽였다. 나중에 그는 라케다이몬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텟살리아로 도망쳤는데, 그가 그곳에 있는 동안 인보동맹 회원국 대표들이 퓔라이에서 모임을 갖고 그의 머리에 현상금을 걸었다. 그 뒤 그는 안티퀴라로 돌아갔다가 아테나데스라는 트라키스인에 의해 살해되었다.(744쪽)
  - 헤로도토스, 『역사』



레오니다스의 영웅적 면모에 대해서는 내가 여기서 다시금 새삼스럽게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고 남겼던 리뷰 가운데 한 대목만은 여기서도 다시금 인용하고 싶다.



아래의 그림은 1814년에 다비드가 완성한 <테르모필라이에서의 레오니다스>라는 작품이다. 당시 나폴레옹은 레오니다스가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는 전쟁에서 패한 자라며 전쟁에 지는 장면을 그리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다비드에게 충고했다고 한다. 역사를 움직인 수많은 인물 가운데 예수 다음으로 많은 전기가 씌어졌다는 나폴레옹 조차 이 그림이 전시되던 바로 그 해에 엘바 섬으로 유배되고 만다. '제비꽃이 피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유배를 떠난 나폴레옹은 과연 영웅다웠다. 그는 이듬해 2월에 엘바섬을 탈출했으며,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명언에 걸맞게 결국 위대한 황제 폐하로 파리에 입성하게 된다.


Leonidas at Thermopylae(1814, Musée du Louvre, Paris)

여행자여, 가서 스파르타인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들의 명을 수행하고 여기에 누워 있다고.
(스파르타 전사자를 위해 세운 시모니데스의 비문) 

 - 헤로토토스의 『역사』에 대한 리뷰, 인류 최초의 동서간 대전쟁을 다룬 역사의 원전 中에서



레오니다스 왕에 얽힌 인상적인 이야기는 아마도 2,000년이 넘도록 수많은 책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에 틀림없겠지만, 내가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으면서 발견한 몇몇 대목을 여기에서 인용하고 싶은 욕심도 억누르기 어렵다.
 

가장 용감한 자

가장 용감한 자는 때로는 가장 불행한 자이다. 그러므로 개선 못지않은 패배도 있는 것이다. 태양이 그의 눈으로 보아 온 중에 가장 아름다운 승리인 살라미스·플라타에아·미칼라·시칠리아 등 4대 승리의 영광 전부를 뭉쳐 보아도, 테르모필레 협곡에서의 레오니다스와 그의 부하들이 전멸당한 영광에 감히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234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레오니다스의 딸

나는 스파르타 왕의 아내이며 딸인 켈로니스의 아름다운 마음을 얼마나 존경하고 싶은지. 그의 남편 클레옴브로토스가 혼란의 틈에 부친 레오니다스에게 대항해서 우세하던 동안, 그녀는 착한 딸 노릇을 하며 추방당한 부친의 어려움 속에 그의 편을 들며 승리자에게 반대했다. 그런데 운이 뒤집힌 다음 이 여자는 행운의 편을 들려고 하지 않고 용감하게 자기 남편의 편을 들며 그가 패하여 달아나는 뒤를 따라간다. 그녀는 자기 도움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며 자기가 가련하게 보아 주는 편으로 투신하는 것밖에 선택의 길이 없는 것같이 보였다. 나는 세도가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약한 자들에게는 거만하게 굴던 피로스보다는 당연히 플라미니우스의 본을 더 좇고 싶다. 그는 자기에게 좋은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보다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빌려 주었다. (1230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그런데 키케로가 『법률론』에서 '역사의 아버지'라고 추켜세운 헤로도토스는 왜 그토록 드넓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역사』라는 방대한 책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을까? (그는 '여행 사정이 극도로 열악하던 그 시기에' 흑해 연안을 거쳐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지역과 에우프라테스 강과 바뷜론은 물론, 페르시아 전쟁과 관계가 있는 그리스 본토의 모든 지방과 소아시아, 남이탈리아, 시칠리아를 비롯한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그가 쓴 책의 서언은 다음과 같다.

 

"이 글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 보고서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스인들과 비(非) 헬라스인들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


그래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그리스인들과 비그리스인들 사이에 있었던 오래된 갈등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소개되는데, 그때마다 각각의 민족들에 대한 지리학적·인종학적·민속학적·역사적 자료들이 수없이 덧붙여져 소개되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방대하게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994쪽에 달하는 이 두터운 책의 백미에 해당하는 부분은 결국 마라톤 전투, 테르모퓔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 플라타이아이 전투이며, 이 책의 중심 인물들 또한 페르시아의 다레이오스와 크세르크세스 두 대왕으로 모아지며, 그들의 탐욕과 교만이 결국 전쟁의 원인이었음을 헤로도토스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나 또한 이 글을 통해 헤로도토스의『역사』에 나타난 3차레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의 '발발 원인 그 전개 과정'들을 얼마간 자세히 살피고 싶은 욕심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올해 초에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아이스퀼로스가 쓴 『페르시아인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작품을 읽어보고 나서 <살라미스 해전>을 둘러싼 풍경들이 새삼 눈앞에 생생히 떠올라 그 전쟁의 영웅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를 만나기 위해 플루타르코스가 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물론,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한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새롭게 펼치게 되었는데, 특히『역사』에 기록된 여러 인상적인 대목들은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생생하고 놀라운 장면들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이런 책들을 읽고 있을 무렵엔 마침 <살라미스 해전>을 다룬『300, 제국의 부활』이라는 영화가 조만간 개봉될 예정이라는 희소식까지 들려왔다. 그러니 나로서는 영화 『300』에서 맺었던 (책을 읽고 나자 곧바로 영화가 개봉되는) 묘한 인연을 다시금 반복해서 얻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조만간 개봉될 그 영화를 좀 더 흥미롭게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살라미스 해전'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되살펴볼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제목의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절로 생겼던 것이다.(보름쯤 전에 이 글을 쓰다가 잠시 게으름을 피운 사이에 이미 영화가 개봉되고 말았다. 아직 그 영화를 못 봤지만 아마 며칠 이내로 영화관으로 달려가지 싶다.)

다시 페르시아 전쟁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기원전 490년에 마라톤 전투에서 패한 페르시아의 다레이오스 왕은 분에 못이겨 더욱 큰 전쟁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선대 왕이었던 퀴로스의 바빌로니아 정복과 캄뷔세스의 아이귑토스(현재의 이집트) 정복으로 크게 영토를 확장한 페르시아 제국이 도시국가 수준이었던 아테나이에게 어이없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페르시아 왕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출처:두산대백과)

그리하여 다레이오스는 '대규모 원정'을 떠나기에 앞서 관습대로 자신의 후계부터 지명해야 했는데, 왕권의 향방을 두고 배다른 형제들인 그의 아들들 사이에 큰 분쟁이 벌어지는 등 혼란스러웠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왕위에 오른 뒤 새로 얻은 부인인 '아톳사'가 낳아준 네 명의 아들 가운데 맏이였던 크세르크세스를 페르시아의 왕으로 지명했다. 크세르크세스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 데는 퀴로스의 딸이었던 아톳사의 영향도 컸다고 한다.

다레이오스는 한동안 열심히 원정 준비에 열중했으나, 아이귑토스와 아테나이를 응징하기도 전에 재위 36년 만에 사망(기원전 486년)하고 만다. 뒤이어 왕위를 계승한 크세르크세스는 정작 헬라스 원정에는 애당초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자신의 고종사촌이자 다레이오스의 생질인 마르도니오스와 같은 인물들의 끈질긴 부추김 때문에 결국 대규모 전쟁을 일으킬 결심을 굳힌다.

페르시아인들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마르도니오스는 제1차 페르시아 전쟁때 대군을 이끌고 유럽 원정에 나선 총사령관이었는데, 그가 육군과 함께 마케도니아에 진을 치고 있던 중 페르시아의 함대가 아토스 곶을 우회하려다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맹렬한 북풍이 덮쳐 수많은 함선들을 아토스에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300척의 함선이 파괴되고 2만 명 이상의 사람이 죽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자, 원정에 완전히 실패하고 아시아로 군대를 철수한 경험이 있었다. 그가 훗날 살라미스 해전에서 또다시 대패하자 '전쟁을 부추긴 주범'으로 몰려 처형될까 두려워 크세르크세스에게 '정예병 30만 명을 뽑아주면 헬라스를 빼앗아 왕께 바치겠다'고 선수를 친 뒤, 전쟁터에 남아 크세르크세스의 탈주를 돕는 것과 동시에 이듬해 재차 아테나이를 함락하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결국 플라타이아이 대전투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번에 3차 헬라스 원정에 나서기에 앞서 그가 크세르크세스를 전쟁에 나서도록 부추긴 여러 말들 가운데 한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전하, 페르시아인들에게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아테나이인들을 응징하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 못하옵니다. 지금 당장은 전하께서 시작하신 일을 계속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아이귑토스의 콧대를 꺽어놓으신 다음에는 아테나이로 진격하소서. 전하께서 후세에 길이 남을 명성을 얻으시고, 앞으로는 어느 누구도 전하의 나라로 침공할 엄두를 못 내도록 말이옵니다." (633쪽)


이밖에도 크세르크세스에게 전쟁을 부추긴 인물들은 여러 사람이 더 있었지만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기는 힘들다. 그대신 크세르크세스가 선왕이 죽은 이듬해 아이귑토스를 정복한 뒤 아테나이 원정에 착수하기 직전에 페르시아의 요인들을 회의에 소집한 후 자신의 의도를 직접 밝힌 대목도 한번쯤 들어볼 만하다.
 

"페르시아인들이여, 나는 여기서 새로운 관행을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옛 관행을 따르고자 할 뿐이오. 옛 사람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퀴로스께서 아스튀아게스를 권좌에서 축출하시고 왕권이 메디아인들에게서 우리에게 넘어온 뒤로 우리는 한시도 무위도식하지 않았다고 하오. ······ 그래서 나는 왕위에 오르자, 어떻게 하면 내가 선왕들에게 뒤지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페르시아인들의 권력을 그분들 못지않게 늘려줄 수 있을지 고민했소.  ······

나는 헬레스폰토스에 다리를 놓고 에우로페를 지나 헬라스로 진격하여, 아테나이인들이 페르시아인들과 내 선친께 저지른 모든 악행의 대가를 치르게 할 참이오." (635∼636쪽)


그의 말에 이어 마르도니오스가 왕의 제안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다음과 같은 말을 덧보탰다. "전하, 전하께서는 지금까지 태어났던 페르시아인들뿐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페르시아인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분이시옵니다.  ······  듣자 하니 헬라스인들은 무식하고 무능하여 아주 어리석게 교전하는 버릇이 있다 하옵니다. ······  하거늘 전하, 전하께서 막강한 육군과 전 함대를 이끄시고 아시아에서 진격하신다면 누가 전하에 맞서 싸우려 하겠사옵니까?"

이런 말들을 듣고 아무도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할 용기가 없어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자신이 크세르크세스의 숙부라는 것을 믿고 아르타바노스가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그러실 필요도 없으신데 그런 위험을 자초하시지 마시고 제 진언을 받아들이오서. 지금은 이 회의를 파하소서. 그리고 혼자 심사숙고해보시고 적기라고 여겨질 때 전하께서 상책이라고 생각하시는 바를 저희들에게 통고해주소서. 심사숙고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좋은 계획을 세운 자는 설사 어떤 방해를 받는다 해도 계획이 휼륭했다는 사실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고, 계획은 우연에 의해 좌절된 것이옵니다. 하오나 나쁜 계획을 세운 자는 설사 행운의 도움으로 횡재를 한다 해도 계획이 나빴다는 사실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사옵니다."

거기에 덧붙여 그는 마르도니오스에게도 경고를 잊지 않았다.

"자네는 헬라스인들을 비방하기를 삼가시게. 그런 비방은 그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네. 자네는 헬라스인들을 폄하함으로써 그자들을 징벌하시도록 전하를 부추기고 있으며, 자네의 모든 열성이 노리는 것도 분명 그것이네. 제발 그러지 마시게. 모함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네. 모함은 두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고, 한 사람을 그 피해자로 만들기 때문이네. 모함하는 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그 자리에 없는 자를 고발하기 때문이며, 그의 말을 믿는 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아보기 전에 판단하기 때문이네. 그 자리에 없는 자가 두 사람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것은, 한 사람은 그를 모함하고, 다른 사람은 그를 나쁘게 여기기 때문이네."

이밖에도 여러 우여곡절이 더 있었지만 크세르크세스는 아이귑토스를 정복한 뒤 만 4년 동안(기원전 484∼481년) 모병을 하고, 아토스 곶을 우회할 필요가 없도록 3년에 걸쳐 대규모 운하를 파는 등 원정에 필요한 준비를 갖춘 후 5년째 되던 해, 대군을 이끌고 마침내 원정길에 올랐다. 헤로도토스의 표현대로 '그것은 우리가 아는 한 가장 규모가 큰 군대'였다.
 

크세르크세스가 아시아에서 헬라스로 이끌고 가지 않은 부족이 있었던가? 큰 강들을 제외하고 그들이 마셔버려 고갈되지 않은 물이 있었던가? (648쪽)


페르시아의 대군이 진군하는 길목에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이 있었는데, 페르시아 왕은 그 해협에 포이니케인들과 아이귑토스인들을 동원하여 다리를 놓도록 했다. 그런데 해협에 다리들이 놓였을 때 세찬 강풍이 일더니 다리를 덮쳐 산산이 부숴버리고 말자, 크세르크세스는 노발대발하며 헬레스폰토스에게 매 300대를 치고 바닷물에 족쇄 한 쌍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이 일이야말로 크세르크세스가 얼마나 오만한 인물이었던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가 헬레스폰토스에 낙인을 찍도록 낙인 찍는 자들도 보냈다고 들었다. 아무튼 그가 헬레스폰토스에 매를 치며 다음과 같은 야만스런 말을 하게 한 것은 확실하다. "이 쓴 물아, 네게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않으신 우리 주인께 네가 해코지를 한 죄로 우리 주인께서 네게 이런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크세르크세스 대왕께서는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너를 건너가실 것이다. 너처럼 탁하고 짠 강물에 아무런 제물을 바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크세르크세스는 바다를 그렇게 응징하게 하고 나서 헬레스폰토스에 다리를 놓는 일을 감독하던 자들의 목을 베게 했다. (655쪽)


군대가 아뷔도스에 도착하자 크세르크세스는 전군을 관병(觀兵)하고 싶어 언덕에 특별히 마련된 흰 대리석 단에 앉아 해안을 내려다보며 육군과 함대를 관병했는데, 그때 헬레스폰토스가 온통 함선으로 덮이고 아뷔도스의 해안들과 들판들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자 그는 처음엔 자신을 행복하다고 기리다가 나중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헬라스 원정을 만류했던 그의 숙부 아르타바노스가 그의 행동을 보고 놀라서 물었는데, 그들이 나눈 대화가 자못 인상적이다.
 

크세르크세스가 대답했다. "인생이란 얼마나 짧은 것인가 생각하다가 비감에 잠겼다오. 여기 있는 저토록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앞으로 100년 이상 살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오." 아르타바노스가 대답했다. "살다 보면 그보다 더 슬픈 일도 많사옵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저들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 중에 더 오래 사느니 차라리 죽었으면 싶은 생각이 한 번이 아니라 가끔씩 들지 않을 만큼 행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사옵니다. 그리하여 죽음이 인간에게는 괴로운 인생으로부터의 가장 바람직한 도피처가 되는 것이옵니다. 그것을 보면 신께서 시기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사옵니다. 신께서는 인생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맛만 보여주시기 때문이옵니다."
(660쪽)


페르시아의 대군이 어느 부족에서 얼마나 참가했고, 함대는 어느 부족에서 얼마나 제공했는지, 각 부대의 지휘관들은 누가 맡았는지를 헤로도토스가 꼼꼼하게 기록한 건 제쳐두더라도 여자의 몸으로 헬라스 원정에 참가한 '여전사 아르테미시아'에 대해서는 나도 여기서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밖에 다른 지휘관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으나, 아르테미시아만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여자의 몸으로 그녀가 헬라스 원정에 참가한 것은 감탄을 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사후(死後) 정권을 장악했고, 다 자란 아들이 있고 전혀 강요받지 않았음에도 자진하여 용맹심에서 원정에 참가했으니 말이다. 이름이 아르테미시아인 그녀는 뤽다미스의 딸로 친가 쪽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이고, 외가 쪽은 크레타 출신이었다. ······ 그녀의 함선들은 시돈인들의 함선들 다음으로 전 함대에서 가장 훌륭했다. 크세르크세스의 동맹군 중에 그에게 그녀보다 더 훌륭한 조언을 해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681∼682쪽)


페르시아의 대군들이 육지와 바다 양쪽 방향으로 거침없이 진격해 오자 전 헬라스가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음은 말할 필요가 없는데, 아테나이에서 델포이로 파견된 사절단이 '신탁'을 통해 예언녀로부터 들은 대답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련한 자들이여, 왜 여기 앉아 있는가? 그대들은 집과,
그대들의 도시로 둘러싸인 높은 언덕들을 떠나 대지의 끝으로
도망쳐라. 머리도 몸도 굳건하게 버티지 못할 것이며,
아래쪽의 두 발과 두 손과 그사이에 있는 어떤 것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불과 쉬리아의 전차를 타고 질주하는
날카로운 아레스가 모든 것을 끌어내리리라.
그는 그대들의 성채뿐 아니라 다른 성채도 수없이
파괴하리라. 그는 수많은 신전을 파괴적인 불에 넘겨줄 것인즉,
신전들은 지금 벌써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서서
두려움에 떨고, 지붕에서 검은 피를 쏟고 있으니,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을 예견했기 때문이니라.
자, 그대들은 이 신전에서 나가 마음속으로 실컷 슬퍼하라!
(701∼702쪽)


그런 신탁을 듣자 아테나이인들은 크게 낙담했고, 델포이에서 명망 있는 사람의 조언을 듣고 재차 신탁에 물어본 끝에 '조금 더 나은' 두 번째 예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신탁은 먼젓번 신탁보다 더 온건했기에 사절단은 그걸 적어서 아테나이로 돌아갔다.
 

······
그래서 나는 재차 그대에게 강철처럼 단단한 말을 하리라.
케크롭스 언덕과 신성한 키타이론 산 골짜기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리라.
하지만 트리토게네이아여, 멀리 보시는 제우스께서는 그대에게
나무 성벽을 주실 것인즉, 이 나무 성벽만이 파괴되지 않고
그대와 그대의 자식들을 도와주게 되리라
. 그대는 대륙에서
기병과 보병의 대군이 다가오기를 가만히 기다리지 말고
등을 돌려 도망쳐라. 언젠가는 적군과 맞설 날이 다가오리라.
신성한 살라미스 섬이여, 데메테르가 씨를 뿌리거나
수확할 때, 너는 여인들의 자식들을 죽이게 되리라.
(702∼703쪽)


이 신탁의 해석을 둘러싸고 온갖 해석이 난무했지만, 그 무렵 아테나이에서 요인들 중의 한 명으로 부상하던 테미스토클레스는 '나무 성벽'이 함선들을 가리키는 만큼 '해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에도 테미스토클레스의 판단은 중요한 순간에 최상의 판단으로 인정된 적이 있었다. 라우레이온 은광에서 국고로 큰 수입이 들어오자 그 돈을 분배하는 대신 전쟁에 대비해 함선 200척을 건조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헬라스인들이 '어디서 어떻게' 전쟁을 할 것인지를 의논한 뒤 육군은 '테르모퓔라이 고갯길'을 지키고, 해군은 아르테미시온에 배치하기로 했는데, 육군과 해군이 가까이 있으면서 서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페르시아의 대군이 여러 지역들을 두루 거쳐 세피아스와 테르모퓔라이에 도착하기까지는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았는데, 이때 그들의 병력 규모를 자세히 언급해 놓은 대목을 보면 페르시아 대군의 규모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던가 새삼 놀라게 된다.

추산컨대, 이때 그들의 병력 수는 여전히 다음과 같았다. 아시아에서 온 함선들은 1,207척인데, 함선당 200명으로 계산하면, 원래 각 부족들로부터 차출한 선원은 241,400명이다. 이들 함선들마다 토착민 선원들 외에 페르시아인들과 메디아인들과 사카이족 선원이 30명씩 타고 있었는데, 이들 추가 인원을 합하면 36,210명이 된다. 이 수치에 나는 오십노선의 선원을 추가할 텐데, 1척당 약 80명으로 산정하면, 앞서 말했듯이 오십노선은 3,000척이 집결했으므로 이 함선들의 선원 수는 240,000명쯤 될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온 해군의 수는 총 517,610명에 이른다. 보병은 1,700,000명이고, 기병은 80,000명이었다. 여기에 나는 아라비아의 낙타 기수들과 리뷔에의 전차병을 추가할 텐데, 그들의 수는 20,000명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해군과 육군을 둘 다 합하면 2,317,610명에 이른다. 이는 크세르크세스가 아시아에서 데려온 전투원들만 언급한 것이고, 종군한 하인들과 군량 수송선 선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에 에우로페에서 징용되어 온 군사들도 가산되어야 하는데, 그 수는 어림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트라케와 트라케 앞바다의 헬라스인들이 120척의 함선을 제공했으니, 이 함선들의 승선 인원은 24,000명이다. 트라케인들, 파이오니아인들, 에오르디아인들, 봇티아이아인들, 칼키디케인들, 브뤼고이족, 피에리아인들, 마케도니아인들, 페르라이비아인들, 에니에네스족, 돌로피아인들, 마그네시아인들, 아카이아인들, 그리고 트라케의 해안 지대에 사는 자들이 제공한 보병들이 짐작컨대 300,000명에 이를 것이다. 이들을 아시아에서 온 자들에 보태면 전투원은 총 2,641,610명이 된다.

전투원의 규모가 이 정도라면, 종군한 하인들과 군량 수송용 소형 선박들의 선원들과 그 밖에 군대와 동행한 다른 선박들의 선원들도 전투원들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전투원들과 동수였던 것으로 잡더라도 그 수는 전투원들과 마찬가지로 수백 수십 만이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다레이오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세피아스 곶과 테르모퓔라이까지 인솔해 온 인원수는 5,283,220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729∼730쪽)


이상이 크세르크세스 원정대 전체의 '남자들' 숫자고, 여자 요리사, 첩, 내시의 수는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헤로도토스는 말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어마어마한 병력을 이끌고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에 다가서는 도중에 페르시아로서는 첫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어이없는 큰 손실을 입었는데, 페르시아 함대의 규모가 너무나 컸던 탓에 안전하게 정박할 항구조차 없었던 탓으로 보인다.

그들의 함대가 '카스타나이아 시와 세피아스 곶 사이의 마그네시아 해안'에 도착했을 때, 구름 한 점 없던 날씨가 갑자가 돌변하더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들끓기 시작하여 페르시아의 함대들이 도저히 손쓸 겨를도 없이 세피아스 곶과 카스타나이아 해안에 내동댕이쳐졌던 것이다. 이때의 조난으로 최소 400척의 함선이 침몰하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명 피해가 나고 막대한 재산이 없어졌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크세르크세스와 육군은 멜리스에 도착했고, 뒤이어 테르모퓔라이 협곡에서 진을 치고 있던 헬라스인들과 충돌했다. 헤로도토스는 그 유명한 전투에 참가한 '300명 전원의 이름'까지 낱낱이 알고 있었던 만큼 그 전투에 얽힌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20쪽 가까이 자세히 밝혀 놓았지만 나로서는 앞에서 미리 꺼내놓은 이야기도 적지 않은 만큼, 레오니다스가 일부 동맹군들을 떠나보내기 전에 '전사한 이들을 위해' 직접 세운 기념비에 새겨진 명문 하나만 더 소개하고 다음 전투 장면으로 넘어가고 싶다.
 

이곳에서 전에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4,000명이
3백만의 적군과 맞섰노라.

(751쪽)


테르모퓔라이에서 헬라스인들이 그렇게 싸우는 동안, 페르시아군에 맞서 아르테미시온에 포진한 그리스군의 함선은 스파르테인 에우뤼비아데스가 최고 사령관직을 맡고 있었는데 그 수는 총 271척이었다. 두 진영의 해군은 처음에 아르테미시온 앞바다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페르시아인들은 200척의 함선을 따로 파견하여 적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본 함대는 정면공격을 함으로써 그리스군을 함정에 빠뜨릴 참이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에우보이아 섬을 우회하도록 파견된 페르시아 함선들은 적들 몰래 움직이려다 난바다에서 밤을 맞게 되었고, 항해하던 중 폭풍과 폭우를 만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밀려 다니다가 대부분 바위들에 좌초했기 때문이었다. 

첫 교전 이후 3일째 되던 날에도 해전이 벌어졌는데 그리스 함대는 에우리포스 해협을 지키려 애썼고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인들을 섬멸하려고 선제공격에 나섰는데, 함선과 인명 피해는 페르시아 측이 훨씬 더 컸으나 그리스도 많은 함선들이 파괴되는 등 피해가 컸다. 그리스군 진영에서 좀 더 헬라스 안쪽으로 후퇴하는 방안을 고민하던 사이에, 테르모퓔라이에 있던 정찰병이 도착하여 레오니다스와 그의 부대가 당한 일을 알려주었고, 이 소식을 듣자 그리스 함대들은 서둘러 철수를 시작하였다.

그때 아르테미시온에서 페르시아인들의 함대와 싸운 전투는 전쟁 전체의 결과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으나, 헬라스인들은 이 전투에서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경험을 얻게 되었다고 플루타르코스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몸소 싸워봄으로써 그들은 육박전을 벌이며 용감하게 싸울 줄 아는 전사들에게는 수많은 함선도, 찬란한 선수(船首) 장식도, 요란한 호언장담도, 야만적인 전투가도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핀다로스는 아르테미시온 해전에 관해 다음의 시를 지었을 때,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아테나이인들의 아들들은 자유의 찬란한 초석을 놓았도다.

승리는 역시 용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테미스토클레스 전> 中에서


크세르크세스와 육군은 테르모퓔라이에서 전사한 약 2만 명의 전사들을 구덩이에 파고 묻은 뒤 포키스를 비롯한 그리스 북부의 여러 지역을 지나가며 닥치는 대로 태우고 베었고, 도시와 신전들에 불을 지르며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들 중 일부는 델포이의 성역을 향했는데, 그곳에 봉헌된 보물들을 약탈하여 크세르크세스 왕에게 바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델포이의 전 주민이 도시를 떠나고 60명의 남자와 신탁 사제 한 명만 남아 신전을 지키고 있을 때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다고 헤로도토스는 전하고 있다.
 

페르시아인들이 아테나 프로나이아의 신전으로 서둘러 다가왔을 때 이미 일어난 것보다 더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다. 무기들이 저절로 신전 앞에 놓여 있었다는 것도 실로 놀라운 일이지만,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지금까지 일어난 놀라운 일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페르시아인들이 아테나 프로나이아의 신전에 접근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고, 파르낫소스 산에서 바위 봉우리 두 개가 떨어져 나와 굉음을 내며 그들에게 돌진해 그들을 상당수 죽이는가 하면, 프로나이아의 신전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쟁의 함성이 들려왔던 것이다. (778쪽)


헤로도토스의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으나 그가 일부러 지어낸 얘기 같지는 않다는 점 때문에 우리는 곤혹스럽다. 그의 말을 마저 들어보면 '파르낫소스 산에서 굴러떨어진 바윗덩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아테나 프로나이아의 성역에 보존되어 있는데, 페르시아인들 사이를 휩쓸며 그곳으로 굴러 내려왔던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의 함대는 아르테미시온을 떠난 뒤 살라미스로 뱃머리를 돌렸는데, 아테나이 본토에 있는 아이들과 부녀자들과 노인들을 피난시킬 필요도 있었고, 상황이 뒤바뀐 만큼 새로운 작전 계획을 세울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초의 예상대로였다면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총동원되어 보이오티아에서 페르시아인들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지만, 그 대신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이스트모스를 가로질러 방벽을 쌓고 있으며 그들은 펠로폰네소스만 지키려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이무렵 테미스토클레스는 여러가지 꾀를 내어 아테나이 시민들이 자신들의 도시를 포기하고 피난을 떠나도록 설득했는데, 그가 앞서 얘기했던 그 유명한 '델포이의 신탁'을 다시 들먹이며, 그 신탁에서 말하는 '나무 성벽'이란 자신들의 함대를 두고 하는 말이며, 아폴론 신이 이 신탁에서 살라미스를 '무섭다'거나 '잔인하다'고 하지 않고 '신성하다'고 한 것은 이 섬이 언젠가는 헬라스인들에게 큰 행운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단 자신의 의견이 우세해지자 그는 '장정들은 삼단노선에 오르게 하자는 법안'을 제출했고, 이 법안이 통과되자 아테나이인들은 서둘러 피난길에 올랐다.
 

도시 전체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니, 참으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용감한 행위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가족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부모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눈물과 포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라미스 섬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노인들이 여행하기에는 너무 늙어서 뒤에 남고,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들이 배에 오르는 주인 옆을 뛰어다니며 애타게 짖어대는 광경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테미스토클레스 전> 中에서



헬라스인들의 함대가 살라미스에 도착하자 나머지 도시에서도 이 소식을 듣고 속속 살라미스에 함대를 보내 그곳에 집결했다. 그리하여 살라미스에는 아르테미시온 해전 때보다 더 많은 도시들에서 파견된 훨씬 더 많은 함선들이 집결했는데, '함선의 수는 오십노선들을 제외하고 모두 378척'이었다.

 

<그리스의 주력 함대였던 삼단노선> (출처 : 위키피디아)


앞서 말한 도시들에서 파견된 장군들이 살라미스에 모이자 일단 회의를 열었다. 에우뤼비아데스는 누구든 원하는 사람은 헬라스인들이 장악한 지역 중 어느 곳이 해전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지 기탄없이 의견을 말하라고 제안했다. 앗티케는 이미 포기한 상태라 제외되었다. 발언자 대부분은 이스트모스로 항해해 가서 펠로폰네소스 앞에서 해전을 벌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들의 논지는, 그들이 살라미스에 머물다가 패하면 섬에서 포위 공격당해 고립무원의 궁지에 빠지게 될 것이나, 이스트모스 근처에는 자신들의 해안으로 피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783쪽)


회의가 열리는 중에도 새로운 소식들이 속속 들어왔는데, 페르시아군이 이미 앗티케 전역에 불을 지르고 있고, 크세르크세스와 그의 군대는 여러 도시를 불지르고 나서 아테나이에 도착하여 닥치는 대로 유린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페르시아인들이 도성을 점령했을 때 도시는 비어 있었고 소수의 아테나이인들만이 신전 안에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들은 어렵사리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진입로를 발견함으로써 이들을 모두 도륙한 뒤 신전을 약탈하고 아크로폴리스 전체에 불을 질렀다.
 

아테나이의 아크로폴리스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살라미스에 있던 헬라스인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몇몇 장군은 작전 계획에 관한 최종 결정을 기다리지도 않고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신속히 철수하려고 돛을 올렸다. 한편 남아 있던 장군들은 이스트모스 앞에서 해전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밤이 되자 그들은 회의를 파하고 각자 자기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786쪽)


일이 그대로 진행되었더라면 아마도 그리스 군대는 지리멸렬하고 말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아찔한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드디어 영웅이 등장하고 놀라운 묘책이 나오게 되는데, 페르시아군 앞에서 꽁무니를 내뺄 궁리만 하던 그리스 해군을 그곳에 붙잡아 두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테미스토클레스'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살라미스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 최초의 인물은 정작 그가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회의를 파하고 자기 함선으로 돌아오자 므네시필로스라는 아테나이인이 '장군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냐'고 그에게 물었는데, 함대를 이스트모스 쪽으로 이끌고 가 펠로폰네소스 앞에서 해전을 벌이기로 결정되었다고 테미스토클레스가 말하자, 므네시필로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안 됩니다. 함대가 일단 살라미스를 떠나게 되면, 장군님께서 해전을 벌여 지켜야 할 조국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제각기 제 고향으로 흩어질 것이며, 에우뤼비아데스도 그 밖에 어느 누구도 함대가 분산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어리석은 작전 때문에 헬라스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장군님께서 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방책이 있다면, 어떻게든 에우뤼비아데스가 마음을 바꿔 이곳에 머물도록 설득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787쪽)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제안에 마음이 크게 움직여 곧바로 에우뤼비아데스의 배가 있는 곳으로 가서 사령관과 면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므네시필로스가 한 말을 마치 자기 의견인 양 되풀이하며 거기에 살을 붙였고, 에우뤼비아데스는 마침내 마음이 움직여 장군들의 회의를 소집했다. 거기서 테미스토클레스는 '사태가 다급한 만큼'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고, 그리스 연합군이 '살라미스'에서 싸워야 할 이유들을 조목조목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동맹군 함대의 일부라도 이탈한다면 아테나이 함대들도 '이탈리아의 시리스로 도망갈 것'이라는 협박까지도 곁들였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이 말을 듣고 에우뤼비아데스는 결국 생각을 바꿨다. 만약 그가 함대를 이스트모스로 이동시키면 아테나이인들이 그들 곁을 떠나지 않을까 우려되었기 때문이고, 아테나이인들이 떠난다면 나머지 헬라스인들만으로는 도저히 전투를 수행할 수 없었기 대문이었다. 여러 논쟁 끝에 살라미스에서 싸우기로 결정되자 그들은 전쟁 준비를 서둘렀다.

크세르크세스의 함대가 에우리포스 해협을 경유하여 팔레론에 입항했을 때, 크세르크세스는 여러 부족의 왕들과 함장들을 한데 모아놓고 마르도니오스를 보내 '자기가 해전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차례차례 묻게 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싸우라고 말했으나, 아르테미시아는 유독 의견이 달랐다.
 

"마르도니오스여, 에우보이아 앞바다의 해전에서 결코 비겁하지도 않았고 전공(戰功)이 가장 미약하지도 않았던 내가 이런 진언을 하더라고 전하께 전해주시오. '전하, 전하께 가장 이롭다고 생각되는 바를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이 제 의무이옵니다. 하여 드리는 말씀이온데, 함선을 아끼시고 해전을 피하소서. 바다에서는 마치 남자가 여자보다 더 강한 것만큼이나 이곳 백성들이 전하의 백성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옵니다. 전하께서 굳이 해전을 하셔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나이까? 이번 원정의 목표였던 아테나이는 전하의 수중에 있으며, 나머지 헬라스도 전하의 것이 아니옵니까? 전하의 길을 가로막을 자는 이제 아무도 없나이다. ······

하오나 전하께서 당장 해전을 벌이려 하신다면 함대의 패배가 육군의 파멸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렵나이다. 그리고 전하께서는 이 점을 명심하소서. 좋은 주인의 종은 나쁘고, 나쁜 주인의 종은 대개 좋은 법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주인이시지만, 전하의 동맹군으로 자처하는 자들은 나쁜 자들이옵니다. 이들 아이귑토스인들, 퀴프로스인들, 킬리키아인들, 팜퓔리아인들은 아무 짝에도 못 쓸 자들이옵니다."
(793∼794쪽)


크세르크세스는 이런 훌륭한 조언을 듣자 아르테미시아의 의견이 마음에 들어, '전에도 그녀를 현명하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그녀를 더욱 존중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전쟁을 주장하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라고 명령했다. 그러는 동안 페르시아 육군은 펠로폰네소스로 진격했고,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전사한 레오니다스의 동생인 클레옴브로토스가 총사령관이 되어 이스트모스를 가로지르는 방벽을 쌓는 일에 밤낮으로 매달렸다. 그들은 살라미스의 함대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이다.

살라미스의 펠로폰네소스인들 또한 방벽 공사에 대한 얘기를 들었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자 가족들이 남아 있는 후방이 염려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회의가 소집되어도 수많은 이견들이 노출되었는데, 그곳에 머물러 이미 적의 수중에 떨어진 아테나이를 위해 싸우느니 차라리 펠로폰네소스로 물러나서 거기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테미스토클레스는 몰래 회의장을 빠져나와 페르시아안들의 군영으로 자신의 하인이었던 시킨노스를 밀사로 보냈다.
 

시킨노스는 그때 작은 배를 타고 건너가 페르시아 장군들에게 말했다. "저는 아테나인들의 장군께서 다른 헬라스인들 몰래 보내신 밀사입니다. 그분께서는 저더러, 헬라스인들은 겁에 질려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으니, 그들이 도망치도록 수수방관하지만 않는다면 그대들이 가장 빛나는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그대들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서로 분열되어 있어 그대들에게 대항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797쪽)


페르시아인들은 이 전언이 사실인 줄 알고 '살라미스와 본토 사이에 있는 작은 섬 프쉿탈레이아'에 다수의 페르시아인들을 상륙시켰고, 한밤중이 되자 헬라스인들을 포위하기 위해 함대의 서쪽 날개를 살라미스로 진출시키는 한면, 케오스와 퀴노수라 가까이 포진하고 있던 함선들도 전진하여 무니키아에 이르기까지 해협 전체를 봉쇄하게 했다. 그들은 헬라스인들이 도주하는 것을 막고, 적군을 도륙하기 위해 밤새 한잠도 못 자고 이런 준비들을 했던 것이다.



『전쟁의 역사』135쪽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무수한 신탁들을 들려주는데,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사의 일들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지니고 있었다. "나는 신탁의 진실성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신탁의 말씀이 명명백백한데 내가 어찌 불신하고 싶겠는가! 다음의 시행들을 생각해보시라"고 말하며 다음의 신탁을 들려주는데, 그는 "이 말의 진실성을 나는 감히 부인하고 싶지 않거니와 남이 부인하는 것도 용납하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들이 자랑스러운 아테나이를 함락하고 나서 광기 어린
희망에 들떠 황금 칼을 차신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해안과
바다로 둘러싸인 퀴노수라 섬을 선교(船橋)로 연결한다면,
고귀하신 정의의 여신께서 교만의 아들을, 무엇이든
할수 있다고 믿고 광란하는 강력한 포만(飽滿)을 제압하시리라.
(798쪽)


살라미스의 그리스 함대가 밤 사이에 페르시아 함대에 포위된 줄도 모르고 여전히 격론을 벌이고 있을 무렵에, 민중에 의해 도편추방되었던 훌륭한 인물 아리스테이데스가 자신의 최대 정적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살라미스로 찾아왔는데, '헬라스 함대가 적에게 완전히 포위된 걸 자신이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그에 대비하라'고 조언해 주었던 것이다. 자신이 사주하고 바라던 대로 일이 진척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아리스테이데스더러 직접 그 상황을 회의장에 들어가 전하도록 했다. 

헬라스의 장군들은 대부분 그의 보고를 의심하였지만 나중에 탈주해온 테노스인들의 '진상 보고'까지 듣고 나자 꼼짝없이 살라미스에서 결전을 벌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비로소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날이 새자 전 해군이 소집되었고, 테미스토클레스는 이때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는 시종일관 인간 본성과 기질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대비시키며 그들에게 좋은 면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나서 승선하라는 명령으로 연설을 끝냈다. ······ 그러자 헬라스인들의 전 함선이 발진했고, 그러자 페르시아인들이 즉시 그들을 공격했다. (801쪽)


그렇게 시작된 살라미스에서의 해전은 널리 알려진 대로 페르시아의 참패로 끝났는데, 헬라스인들은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유지하며 해전을 벌였지만, 페르시아인들은 무엇보다도 교만에 가득찬 상태에서 자신들의 함대 숫자만 믿고 대열이 무너진 채 어느새 작전 계획도 없이 싸웠으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해협이 좁아 페르시아 함선들은 모두가 한꺼번에 공격하지 못하고 서로가 방해가 된 까닭에, 나머지 헬라스인들은 대등한 싸움을 벌이며 저녁이 될 때까지 저항하던 적군을 물리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모니데스의 말처럼, 헬라스인들이든 비헬라스인들이든 해전 사상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더없이 찬란한 업적이라고 할 저 멋지고 유명한 승리를 쟁취했으니, 이는 해전에 참가한 전사들의 용기와 하나로 뭉친 열성 덕분이기도 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의 현명한 판단 덕분이기도 했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테미스토클레스 전> 中에서


이 해전에서 페르시아인들이나 헬라스인들 개개인이 어떻게 싸웠는지 확실히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쟁은 그만큼 혼전의 연속이었고 수많은 전사들이 제각기 자신의 조국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다가 결국 거기에서 죽고 또 더러는 살아남아 돌아왔을 것이다. 정작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었던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 맞은편 이른바 아이갈레오스 언덕의 기슭에 앉아' 편안하게 관전했지만 말이다. 헤로도토스가 해전의 결과를 두루 요약한 여러 대목 가운데 한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해전에서 헬라스인들 가운데 가장 이름을 날린 것은 아이기나인들이었고, 그 다음이 아테나이인들이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 가장 이름을 날린 것은 아이기나의 폴뤼크리토스와, 아나퀴로스 구역의 에우메네스와 팔레네 구역의 아메이니아스라는 아테나이인들이었는데, 아메이니아스는 아르테미시아를 추격했던 자다. 아메이니아스는 그 배에 아르테미시아가 타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그녀를 사로잡든지, 아니면 자신이 사로잡힐 때까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아테나이의 함장들에게는 그녀를 생포하라는 특명이 내려졌고, 그 밖에 그녀를 생포하는 자는 10,000드라크메의 상금을 받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나이인들은 한갓 여인이 자신들의 도시를 공격하는 것에 분개했던 것이다.(806∼807쪽)


해전이 끝난 뒤 자신의 실패에 여전히 분통을 터트리고 있던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로 건너갈 둑길을 만들게 했다. 해협을 막은 다음 살라미스로 육군을 이끌고 가 헬라스인들을 모조리 도륙할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사실 그는 헬라스인들이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거나 스스로 생각해내어 '헬레스폰토스'로 가서 다리들을 해체하지 않을까 겁을 먹은 나머지 자신의 안위가 너무나 걱정되어 몰래 퇴각할 계획을 세우는 한편 적군에게도 아군에게도 자신의 의도가 노출되지 않도록 다시 전쟁 준비를 갖추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도니오스만은 크세르크세스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알던 터라 거기에 속지 않았다. 크세르크세스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자들'을 시켜 '아테나이를 점령했다는 첫 번째 소식'을 페르시아에 전한 이후에 뒤이어 충격적인 두 번째 소식을 다시 전하자 페르시아인들은 모두들 입고 있던 옷을 찢고 하염없이 울며불며 마르도니오스에게 책임을 돌리기 바빴다. 마르도니오스는 크세르크세스가 해전의 결과에 몹시 상심해 있는 것을 보고 '헬라스를 원정하도록 자신이 왕을 설득한 만큼 처벌받지 않을까 염려되어, 이번 기회에 헬라스를 정복하든지, 아니면 큰일을 위해 명예롭게 생을 마감하는 모험을 시도하는 쪽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크세르크세스에게 "전하께서 이곳에 머물지 않기로 결심하셨다면, 군대의 대부분을 이끌고 귀국하시되, 제게 30만 정병을 뽑게 해주신다면 헬라스를 노예로 만들어 전하께 바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크세르크세스는 이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다른 사람들과 상의해보고' 결과를 알려주겠다면서 회의를 열었고, 도중에 아르테미시아도 회의에 소집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그녀를 불러들였다. 그가 마르도니오스의 제안을 그녀에게 들려주며 조언을 청하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하, 어느 것이 상책인지 전하께 말씀드리기가 어렵사옵니다. 하오나 현재 상황에서는 전하께서는 철군하시고, 마르도니오스에게는 그가 자원해 그렇게 하겠다면 그가 원하는 병력과 함께 이곳에 남게 하시는 것이 상책인 것 같사옵니다. 그가 정복하고 싶어 하는 것을 실제로 정복하고, 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전하, 그것은 전하의 업적이 될 것이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전하의 종들이기 때문이옵니다. ······ 마르도니오스에게 불상사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헬라스인들이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없앤 것은 전하의 종이므로, 승리한 것이 아니옵니다. 전하께서는 아테나이를 불태우시겠다는 원정의 목적을 이미 달성하셨으니 귀국하셔도 될 것이옵니다.(812쪽)


크세르크세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아르테미시아를 칭찬하고 나서 그녀로 하여금 '원정길에 동행한 자신의 서자 몇 명'을 데리고 에페소스로 돌아가게 했다. 이때 크세르크세스는 자기 아이들을 돌보도록 '헤르모티모스'라는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페사다 출신 내시를 딸려 보냈다. 그런데 이 내시가 자신에게 가해진 모욕(거세당한 일)에 대해 얼마나 무섭게 복수를 했는지는 한 번쯤 들어볼 만하다.

헤르모티모스가 내시가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그는 전쟁 포로가 되어 노예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가 억세게도 운이 나빠 '파니오니오스'라는 키오스인에게 팔렸는데, 그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내시들이 온전한 남자들보다 값이 더 나가는 점'을 이용해서 '거세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는데, 그에게 걸려든 많은 노예들 가운데 한 명이 헤르모티모스였던 것이다. 그는 파니오니오스에게 거세당한 후 내시로 팔렸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모든 내시들 중에 크세르크세스에게 가장 총애받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크세르크세스가 페르시아군을 아테나이로 출동시키기 위해 사르데이스에 머물고 있는 동안 헤르모티모스는 공무(公務)로 뮈시아 지방의 아타르네우스라는 지역에 갔다가 그곳에서 파니오니오스를 만났다. 헤르모티모스는 그를 알아보고는 정담(情談)을 길게 늘어놓으며 먼저 그의 덕분에 받게 된 여러 가지 혜택을 열거하더니 이어서 그가 가족들을 데리고 아타르네우스로 이사해 오면 그의 은혜에 빠짐없이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파니오니오스는 헤르모티모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자식들과 아내를 데려왔다. 헤르모티모스는 그와 그의 전 가족이 수중에 들어오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 너만큼 불경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나 내 가족 가운데 한 명이 너나 네 가족 가운데 한 명에게 대체 무슨 몹쓸 짓을 했기에 네가 남자였던 나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단 말이냐? 그 당시 네가 한 짓을 신들께서 모르실 줄 알았더냐? 하지만 불경한 짓을 한 너를 정의와 법을 따르시는 신들께서 내 손에 넘겨주셨으니, 내가 네게 복수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마라." 헤르모티모스는 이렇게 꾸짖고 나서 아이들을 방 안으로 데려오게 하더니 그에게 네 아들을 손수 거세하도록 강요하자,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헤르모티모스는 아들들을 강요하여 아버지를 거세하게 했다. 헤르모티모스는 파니오니오스에게 그렇게 복수했던 것이다. (813∼814쪽)


크세르크세스가 자기 아들들을 아르테미시아에게 맡긴 다음 마르도니오스를 불러 '원하는 만큼' 인원을 선발해 그곳에 남겨 놓고 난 후 크세르크세스와 측근들은 밤에 몰래 헬레스폰토스로 회항하기 시작했는데, 철군하는 왕이 건널 수 있도록 선교를 지키기 위해 각자 최대한 빨리 달렸다. 헬라스의 함대가 뒤늦게 안드로스 섬까지 추격했는데도 크세르크세스의 함대가 눈에 띄지 않자 테미스토클레스는 '곧장 헬레스폰토스 해협으로 가서 그곳에 놓여 있는 선교를 파괴하자'고 제의했다. 그때 테미스토클레스의 정적이자 도편추방되었다가 되돌아온 아리스테이데스는 그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생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야만인과 싸웠소.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많은 군세를 거느린 자를 헬라스에 가두고 두려움 때문에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든다면, 그는 더 이상 황금 일산(日傘) 아래 편안히 앉아 전쟁을 구경만 하지 않을 것이오. 오히려 무슨 짓이든 감행하고, 위험 때문에 만사를 친히 감독하고, 이전의 잘못을 바루고 , 매사에 더 나은 조언에 귀를 귀울일 것이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 테미스토클레스여, 우리는 그곳에 이미 놓여 있는 다리를 끊을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그 옆에 다리 하나를 더 놓아야 할 것이오. 그자를 되도록 빨리 헬라스 땅에서 내쫓으려면 말이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테미스토클레스 전> 中에서


테미스토클레스도 이 말에 곧바로 동의했는데 그들 두 사람이 똑같이 현명했다는 것은 나중에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입증되었다. 왜냐하면 펠라스인들은 플라타이아이에서 마르도니오스가 지휘하던 크세르크세스 군대의 일부와 싸웠을 뿐인데도 자칫 모든 것을 잃을 뻔했기 때문이다. 마르도니오스는 '30만 정예군'을 선발하고 나서 텟살리아에서 겨울을 보낸 이듬해 전쟁을 재개했다. 마르도니오스가 마케도니아인을 아테나이로 보내 '강화 조약'을 맺자고 제의했으나 아테나이인들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며 결사항전할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대는 페르시아와 강화조약을 맺도록 우리를 설득하려 애쓰지 마시오. 우리는 그대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오. 그대는 마르도니오스에게 아테나이인들의 전언을 전하시오. 태양이 현재의 궤도를 유지하는 한 우리는 결코 크세르크세스와 강화조약을 맺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그가 무엄하게도 그 신전과 신상들을 불태워버린 신들과 영웅들의 도움을 믿고 나가서 그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킬 것이오."(836∼837쪽)


이런 회답을 전해듣자 마르도니오스는 곧장 군대를 이끌고 텟살리아를 출발하여 신속히 아테나이로 진격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에게 자신이 재차 아테나이를 함락했음을 알리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번에도 아테나이인들은 대부분 살라미스로 가 있거나 함선 위에 있어서 마르도니오스는 빈 도성을 손쉽게 함락했는데, 크세르크세스가 아테나이를 함락한 지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때 마르도니오스는 살라미스로 재차 사절을 보내 강화조약을 맺자고 제안했는데, 그때 의회 의원들 중 한 명인 뤼키데스가 마르도니오스의 제안을 '민회에 회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아테나이인들은 이 말에 격분하여 뤼키데스를 애워싸더니 돌로 쳐 죽였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아테나이 여인들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떼 지어 뤼키데스의 집으로 몰려가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돌로 쳐 죽였다.

앗티케에 머물며 아테나이인들이 강화조약을 맺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던 마르도니오스는 결국 그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음을 깨달은 데다가, 스파르테인들이 파우사니아스를 지휘관으로 삼아 아테나이를 돕기 위해 스파르테에서 출동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서둘러 아테나이를 불태우고, 성벽이건 집이건 신전이건 똑바로 서 있는 것은 모조리 부수고 허문 다음 철수했다. 그들은 전투를 벌이기 유리한 플라타이아이의 아소포스 강을 따라 포진했다. 라케다이몬인들도 이스트모스에 도착하자 그곳에 진을 쳤고 나머지 펠로폰네소스인들도 그 소문을 듣고 합류했다. 그들은 진격을 계속한 끝에 엘레시우스에 도착했고 거기서 살라미스에서 건너온 아테나이인들과 동행했다. 그리고 페르시아군이 아소포스 강변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맞은편 키타이론 산기슭에 진을 쳤다. 페르시아 대군에 맞선 헬라스인들은 중무장보병들이 38,700명, 경무장보병들이 68,700명으로 도합 107,400명이었다.

플라타이아이 평원에서 벌어진 대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페르시아의 정예 보병들과 맞선 그리스 육군의 총지휘관은 스파르테의 파르사니아스였는데, 그는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퓔라이 전투에서 전사한 이후 스파르테를 이끈 클레옴브로토스의 아들이었고, 클레옴브로토스는 레오니다스의 아우였다. 그 전투에서 격전 끝에 마르도니오스가 전사하고 그를 에워싸고 있던 '불사 부대'로 불리던 1,000명의 최정예부대마저 궤멸하자 나머지들은 결국 등을 돌려 뿔뿔이 도주했는데, 숫적으로 월등히 우세했던 그들이 궤멸한 것은 결정적으로 중무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페르시아 전쟁의 대미를 마무리짓는 역할은 파우사니아스에게 주어졌고, 그 전투의 더없이 영광스러운 승리 덕분에 파우사니아스는 결국 큰아버지였던 레오니다스 왕의 원수를 몇 배로 되갚을 수 있었던 셈이다.
 

침략군의 승패는 전적으로 페르시아인들에게 달려 있었음이 분명하다. 동맹군들은 페르시아인들이 달아나는 것만 보고 적군과 맞붙어보지도 않고 달아났기에 하는 말이다. ······ 헬라스인들은 승승장구하며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크세르크세스의 군사들을 도륙했다. ······

······ 일단 방벽이 무너지자 침략군은 대열을 재정비하기는커녕 항전할 생각도 않고 좁은 공간에 수만 명이 갇힌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래서 헬라스인들이 마음껏 도륙할 수 있게 되자, 아르타바조스가 달아날 때 데려간 40,000명을 빼고 300,000명 중에서 3,000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881∼882쪽)


플라타이아이의 빛나는 승리 뒤에 람폰이라는 아이기나의 요인 가운데 한 명이 파우사니아스를 찾아와 실로 불경하기 짝이 없는 제안을 했다. "마르도니오스와 크세르크세스는 테르모퓔라이에서 전사하신 레오니다스의 목을 베어 장대에 꽂았나이다. 마르도니오스에게 똑같은 벌을 내리신다면 그대는 전 스파르테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헬라스인들에게 칭송받게 되실 것이옵니다." 이런 제안을 하면 파우사니아스가 좋아할 줄 알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이기나 친구여, 그대의 호의와 배려는 고마우나 그대는 잘못 판단했소. 그대는 처음에 나와 내 조국과 내 업적을 치켜세웠다가, 나더러 시신을 모욕하라고 권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명성이 드높아질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비하하고 말았으니 말이오. 그런 짓은 헬라스인들이 아니라 야만인들에게나 어울리며, 야만인들이 그런 짓을 저질러도 우리는 불쾌하오. 그런 짓까지 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아이기나인들과 그런 짓을 좋아하는 자들의 칭찬은 포기하겠소. 도리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한다고 스파르테인들이 나를 칭찬해주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오. 그리고 일러두건대, 그대가 나더러 원수를 갚아드리라고 하는 레오니다스 님의 원수는 충분히 갚았소. 그분과 테르모퓔라이에서 전사한 모든 분들은 여기 누워 있는 무수한 목숨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오." (887∼888쪽)


크세르크세스는 헬라스에서 도주할 때 자신의 집기들을 마르도니오스에게 남겼다고 한다. 파우사니아스는 마르도니오스의 빵 굽는 하인들과 요리사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마르도니오스에게 올리던 것과 똑같은 식사를 차리게 했다고 한다. 화려한 덮개로 덮은 금과 은으로 만든 긴 의자들과 금과 은으로 된 식탁들과 진수성찬을 보고 파우사니아스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장난 삼아 자신의 하인들에게 명하여 라코니케식 식사를 준비하게 했다고 한다. 식사가 준비되자 파우사니아스는 두 가지 식사가 판이한 것을 보고 웃으며 헬라스 장군들을 불러오게 하더니 그들이 모이자 두 가지 식사를 가리키며 말했다고 한다.
 

"헬라스인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이리로 불러 모은 것은 페르시아 왕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대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오. 그는 이런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의 이런 빈약한 식사를 빼앗으러 왔으니 말이오." (889쪽)


페르시아인들은 플라타이아이에서 패하던 바로 그날 이오니아의 뮈칼레에서도 패했다. 그 전투에서 도망친 페르시아인들은 사르데이스로 돌아갔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패배를 현장에서 목격했던 다레이오스의 아들 마시스테스도 있었다. 그런데 사르데이스에는 해전에서 패하여 아테나이에서 도망쳐 온 페르시아 왕이 줄곧 체류하고 있었는데 결국 나중에 커다란 화근이 되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사르데이스에 체류하는 동안 역시 그곳에 와 있던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도 그녀를 손에 넣을 수 없게 되자 결국 자기의 아들을 그녀의 딸과 결혼시켰다. 그렇게 하면 그는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더 쉽게 유혹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 두 사람을 약혼시킨 다음 왕궁이 있던 수사로 돌아가서 며느리를 집 안으로 맞아들이자 그는 마시스테스의 아내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마시스테스의 딸을 사랑하기 시작해 그녀를 손에 넣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르타윈테였다.

그러나 그 일은 얼마 뒤 결국 탄로가 났는데, 왕비인 아메스트리스가 다채롭고 멋진 옷을 한 벌 손수 짜서 크세르크세스에게 선물한 것이 문제였다. 그는 그 옷을 입고 아르타윈테를 찾아갔고, 그녀가 베푼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주겠다고 했을 때 아르타윈테는 겁도 없이 그 겉옷을 요구했던 것이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선물로 받은 그 옷을 그녀에게 내주고 말았다.

아메스트리스는 아르타윈테가 그 옷을 입고 뽐내며 다니는 걸 보고 모든 걸 눈치챘으나,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어머니인 마시스테스의 아내 탓이자 소행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녀의 목숨을 노렸다. 그녀는 매년 한 번씩 개최되는 왕의 생일에 열리는 '튁타'라고 하는 연회가 열리기만 기다렸는데, 왕은 그 연회에서 어떤 요구도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관습이 있었고, 아메스트리스는 그날 크세르크세스에게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선물로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왕은 결국 마지못해 승낙할 수밖에 없었고, 아우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시스테스야, 너는 다레이오스의 아들이자 내 아우일 뿐 아니라 신사야. 너는 지금의 아내와 헤어지도록 하라. 그 결혼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시스테스는 그 말을 듣고 제발 자신의 아내와 계속 살게 해달라고 애원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크세르크세스가 아우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아메스트리스는 크세르크세스의 호위병들을 불러와 그들의 도움으로 마시스테스의 아내를 절단했다. 아메스트리스는 그녀의 두 젖가슴을 잘라내어 개 떼에게 던져주고, 그녀의 코와 두 귀와 두 입술과 혀를 잘라낸 다음 절단된 그녀를 집으로 돌려 보냈다.

마시스테스는 아직 이 일에 관해 아무것도 듣지 못했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집으로 달려갔다. 아내가 망가진 것을 보자 그는 먼저 아들들과 의논한 다음 아들들과 몇몇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박트라로 출발했는데, 반기를 들도록 그곳 주민들을 선동해 왕에게 되도록 큰 피해를 안겨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제때에 박트리아인들과 사카이족에게 도착했더라면 아마도 그의 계획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를 좋아했고, 그는 박트리아의 태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가 그의 의도를 알고는 그가 그곳으로 가고 있을 때 군대를 보내 그와 그의 아들들과 추종자들을 죽이게 했다. 이것이 크세르크세스의 사랑과 마시스테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906∼907쪽)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는 도무지 끝이 없을 듯해도 결국 이쯤에서 끝난다. 사실 나는 헤로도토스의 <살라미스 해전>에 얽힌 이야기를 얼마만큼 짧게 압축해서 쓸 수 있을까에 대해 적잖이 고민해 봤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일을 시도할 능력도 부족할 뿐 아니라 이런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줄이다 보면 결국 숱한 사람들이 '살라미스 해전'을 두고 쓴 다른 글들과 별로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던 탓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 글을 마무리짓자니 적잖이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꾀많은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해서도 제법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전 헬라스인들로부터 엄청난 영광을 누렸으나 '너무나 잘난 체하는 버릇 때문에' 결국 정적들로부터 도편추방을 당했는데, 그때부터 펼쳐진 제2의 인생이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그가 추방을 당한 후 온갖 난관과 누명과 모함을 신출귀몰한 솜씨로 극복하고, 끝내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최후의 선택지로 자신을 철천지 원수로 여길 게 너무나도 뻔한 페르시아로 건너가는 모험은 실로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처세술과 말솜씨를 믿었던 게 틀림이 없었다. 페르시아 왕이 엄청난 현상금을 그의 목에 걸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곳으로 건너가 '차일을 치고 사방에 장막을 친 사륜거를 타고' 왕궁 앞까지 이동했다. 그의 수행원들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물어올 때마다 '자신들은 이오니아 출신의 헬라스 계집을 왕의 조신 가운데 한 명에게 데려가는 중'이라고 대답하게 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뱀같이 교활한 이 헬라스 놈아, 대왕의 수호신께서 너를 이리로 데려온 것이로구나!"라고 소리치며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덤벼드는 페르시아의 조정 대신들을 간신히 지나쳐 왕을 만나는 데 성공했다. 그때는 이미 크세르크세스가 죽은 뒤여서 테미스토클레스가 만난 것은 그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였다고 한다. 그는 전매특허인 '기막힌 말솜씨와 꾀'를 통해 결국 페르시아에 눌러 앉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왕이 사냥 나갈 때나 실내에서 소일할 때도 함께 시간을 보냈고, 모후(母后)도 알현하는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후의 페르시아 왕들은 자신들의 재위 기간 동안 페르시아와 헬라스의 관계가 더 긴밀해지자, 헬라스인 조언자를 구할 때마다 각자에게 궁정에서 테미스토클레스보다 더 유력한 지위를 보장해주겠다고 서면으로 약속했다고 한다. 테미스토클레스 자신도 이때 이미 거물이 되어 많은 사람이 그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한번은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얘들아, 우리가 전에 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에 따르면, 빵과 포도주와 고기를 대주도록 그에게 세 개의 도시, 즉 마그네이아와 람프사코스와 뮈우스가 주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퀴지코스 사람 네안테스와 파니아스는 두 개의 도시, 즉 페르코테와 팔라이스켑시스를 덧붙이며, 이 도시는 그에게 침구와 의복을 대주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 플루타르코스, 『플르타르코스 영웅전』<테미스토클레스 전> 中에서


내가 이 긴 글의 마지막에 덧붙일 이야기는 아이스퀼로스가 쓴 고대 그리스 비극 『페르시아인들』이다. 사실 그 작품이야말로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믿기지 않는 참패 직후에 있었던 '역사적으로 기억될 만한 최고조의 멘붕'에 빠진 페르시아 왕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있었던 '비탄에 빠진 왕궁 풍경'을 너무나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어서, 설사 페르시아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전쟁에 패배한 느낌'이 얼마만큼 비통한 것인지를 실감케 하는데,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트로이아 여인들』과도 일견 닮았다.

『페르시아인들』은 <살라미스 해전>이 끝나고 8년이 지난 뒤인 기원전 472년에 공연된 작품으로, 아이스퀼로스는 이 작품이 포함된 4부작으로 경연에 참여하여 우승을 차지한다. 비록 전쟁을 일으킨 페르시아의 왕궁을 무대로 그린 작품이지만 그리스인들은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 그만큼 깊은 공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코로스의 의상과 훈련 비용을 담당하는 후원자를 일컫는 '코레고스'는 25세의 페리클레스였던 점도 흥미롭다.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中에서


신화가 아닌 당대의 역사에서 비극의 소재를 구하는 일은 아이스퀼로스 이전에도 있었는데, 프뤼니코스는 기원전 476년에 살라미스의 패전이 페르시아 궁정에 불러일으킨 충격을 주제로 한 『포이니케 여인들』이란 작품을 써 우승을 차지한 바 있었고, 그 작품의 코레고스는 다름 아닌 테미스토클레스였다.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 나타난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자세한 전황 보고'를 들으면 일견 헤로도토스의 『역사』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대목'들이 등장하는데, 그 부분은 아마도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책을 쓸 때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을 어느 정도 참고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두 작품 사이의 그런 '사실적 일치'보다 더욱 중요하면서도 명백한 공통점 하나는 결국 '페르시아의 파멸은 분수를 모르는 오만, 즉 히브리스(hybris)의 결과이며, 이러한 히브리스의 의미는 자연의 질서를 바꾸어 바다를 육지로 만들고 강력한 선교(船橋)의 사슬로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제압하려던 크세르크세스의 오만방자한 행동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아이스퀼로스는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졌던 기원전 480년에 45세의 나이로 그 해전에 직접 참가하여 조국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몸소 체험한 인물이고, 또 그보다 10년 전에는 마라톤 전투에서 감격적인 승리를 체험하기도 했다. 그가 직접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묘비명에는 '마라톤 전투 때 페르시아인들과 싸운 사실만' 언급되는데, 그가 시인으로 기억되기보다 '마라톤의 전사'로 기억되기를 원했다는 것은 조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이 위대한 전쟁에 참가한 것을 그가 평생 동안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겼는지를 짐작케 한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작품과 시인 아이스퀼로스의 세계관은 앞서 얘기했던 '히브리스'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많은 공통점이 느껴진다. 그것은 주로 '그리스의 승리를 힘에 대한 정의의 승리로, 굴종에 대한 자유의 승리로, 교만에 대한 자제의 승리로 보았다는 점' 등이다.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서도 '승리에 대한 도취'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의의 실현을 체험한 한 인간의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신과 인간 사이의 깊은 연관성, 국가와 개인 사이의 의미심장한 연대, 신과 인간이 공생 공영하는 세계 내에서의 신의 의미' 등은 비단 두 작가의 작품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들의 여러 다양한 작품 속에 폭넓게 나타난 공통점이기 때문에 '그리스 정신의 위대한 유산'이라고까지 부를 만하다.

이미 이 글을 시작할 때부터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정신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독일 철학자의 유명한 언급을 일찌감치 내세웠지만, 『전쟁의 역사』에서 발견한 영국 철학자의 얘기도 <살라미스 해전>에 더없이 어울린다 싶어 덧붙이며 긴 글을 마친다.

높이 둘러친 성벽, 그득한 병기고, 혈통 좋은 말, 전차, 코끼리, 대포와 포병 등 그 모든 것은 단지 사자의 탈을 쓴 양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품종과 기질이 호전적이고 용맹스럽지 않다면.

 - 프랜시스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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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이스퀼로스가 쓴 고대 그리스 비극『페르시아인들』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목들을 모은 것이다.)
 

        코로스

신의 뜻에 따라 운명은 먼 옛날부터
권세를 휘두르며, 페르시아인들에게는
성벽을 허무는 지상전과, 싸움터로
말을 내닫는 일과, 도시들을
함락하는 일에 전념하게 했노라.


- 《페르시아인들》103∼107행 


 


        코로스

침상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에 젖고,
저마다 용감한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야 했던
페르시아의 부인들은 남편이 그리워

부드럽게 흐느끼며 독수공방하고 있구나.

- 《페르시아인들》134∼137행 


 
 

           아톳사  누가 그들의 목자(牧者)로서 군대를 지휘하지요?
        코로스장  그들은 누구의 노예라고도, 누구의 신하라고도 불리지 않사옵니다.
           아톳사  그렇다면 적군이 쳐들어올 경우 그들은 어떻게 대항하죠?

        코로스장  다레이오스의 잘 훈련된 대군이 그들에게 패할 정도로요.

                           - 《페르시아인들》241-244행



 

 

              사자 

           코로스

쓰라리고 쓰라린 이 고통, 자꾸 도지는 파괴적인
이 고통. 페르시아인들이여,
이런 흉보를 들었으니 눈물을 흘려라!


            사자

그 모든 것이 철저히 파괴되었사옵니다. 나 자신도
살아서 돌아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사옵니다.

 - 《페르시아인들》249-261행

오오, 전 아시아 땅의 도시들이여!
오오, 페르시아 나라여, 부의 큰 항구여!
어떻게 단 일격에 너의 막대한 부가 무너져 내리고,
페르시아의 꽃이 져서 사라졌단 말인가!
아아, 맨 먼저 불행을 알려야 하는 이 괴로움!
그래도 우리가 당한 일을 모두 털어놓지 않을 수 없구나.
페르시아인들이여, 우리 편 군대가 전멸했사옵니다.

 

 


 

 

            코로스 

             사자

활은 아무 쓸모가 없었사옵니다. 군대가
함선들의 충각에 제압되어 전멸했사옵니다.


          코로스

오오, 가련한 페르시아인들을 위해
비통한 곡소리를 울려라.
그들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아아 슬프도다, 군대는 전멸했구나.


             사자

오오, 살라미스, 내게는 가장 듣기 싫은 이름이여.
오오, 아테나이여, 너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는구나.


 - 《페르시아인들》274-285행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소중한 이들의 시신이 바닷물에 잠겨
소용돌이치며 페르시아의 겉옷을 입은 채
이리저리 밀려 다닌단 말인가?
 

 


 

          사자

수만 따진다면 우리 함대가 틀림없이
이겼을 것이옵니다. 헬라스인들의 함선은
모두 합하여 열 척의 서른 배밖에 안 됐고,
그 외에 열 척의 별동대가 있었사옵니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 휘하에는, 제가 알기로, 일천 척의
함선이 있었고, 그 밖에 쾌속선이 이백하고도
일곱 척이었사옵니다.
셈을 하자면 그러하옵니다.
이 전투에서 우리가 열세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천만에. 어떤 신이 불공평한 무게로 우리의 저울접시를
기울어지게 함으로써 우리 군대를 망가뜨린 것이옵니다.


- 《페르시아인들》337∼346행 


 

 

          사자

마마, 이 모든 재앙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복수의 정령이나 악령에 의해 시작된 것이옵니다.
아테나이인들의 군대에서 찾아온 한 헬라스인이
마마의 아드님 크세르크세스께 말했사옵니다.
"칠흑 같은 밤의 어둠이 내리자마자
헬라스인들은 이곳에 머물지 않고
함선의 노 젓는 자리로 달려가서는 각자 은밀하게
뿔뿔이 달아나 제 목숨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 《페르시아인들》353∼360행 

 

 

          사자

그러나 낮이 백마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나타나
온 대지를 찬란히 빛나는 빛으로 채웠을 때,
맨 먼저 헬라스인들 쪽으로부터 노랫소리와도
같은 함성이 들려왔는데, 거기에 화답하여
섬의 바위들로부터도 메아리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왔사옵니다.
크게 실망한 우리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사옵니다. 헬라스인들은 도주하려고
신성한 전투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싸움터로 돌진하며 불렀기 때문이옵니다.
그리고 요란한 나팔 소리가 그들의 전 대열을
활활 타오르게 했사옵니다. 즉시 노들이 요란하게 물에
잠기며 그들은 박자에 맞춰 깊은 바닷물을 쳤사옵니다.
그리고 금세 그들 모두가 눈에 환히 보였사옵니다.
먼저 우익이 질서정연하게 앞장서서 이끌었고,
그 뒤로 전 함대가 공격하러 다가왔는데,
그와 동시에 요란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사옵니다.
"오오, 헬라스인들의 아들들이여, 진격하라!
우리의 조국을 해방하라! 우리의 자식들과, 아내들과,
조국의 신들의 처소들과, 조상들의 무덤을 해방하라!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물론 우리 쪽에서도 페르시아 말로 요란하게
응수했사옵니다. 이제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사옵니다.
곧장 전함들이 청동 부리들로 서로 들이받았사옵니다.


- 《페르시아인들》386∼408행 

 

 

 

          사자

원정에 참가했다가 살아남은 페르시아의 함선은
저마다 노를 저어 무질서하게 황급히 도망쳤사옵니다.
마치 다랑어나 그 밖에 다른 물고기를
잡을 때처럼 헬라스인들이 부러진 노와
난파선의 부서진 잔해로 줄곧 우리를 치고
찔러대니 온 바다에 신음 소리와 곡성이
가득했사옵니다. 밤의 어둠이 가려줄 때까지.
우리가 당한 재앙으로 말하자면 하도 많아
열흘 동안 이야기해도 못 다할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명심해두소서, 단 하루 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은 적은 없기 때문이옵니다.


- 《페르시아인들》422∼432행 

 

 

 

          사자

마지막에는 헬라스인들이 일제히 돌격하여
마구 치며 불쌍한 적군의 사지를 난도질했사옵니다.
모든 적군이 완전히 숨을 거둘 때까지.
재앙의 심연을 보시고 크세르크세스께서는
통탄하셨사옵니다.
전군을 볼 수 있게 바다 가까운
높은 언적에 옥좌를 갖다놓게 하셨으니까요.
그러고 나서 입고 계시던 옷을 찢고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시더니, 급히 보병부대에 명령을 내리시고는
황급히 도주하셨사옵니다.

- 《페르시아인들》462∼470행 

 


 

          아톳사

오오, 가증스런 악령이여. 어찌 페르시아인들을
그렇게 속인단 말인가. 이름난 아테나이를 치려다
내 아들이 쓰라린 복수를 당하는구나. 전에 마라톤이
죽인 페르시아인들로는 충분하지 않더란 말인가!
이들을 위해 내 아들은 배상을 요구하려다가
그토록 엄청난 화를 스스로 불러들였구나.

- 《페르시아인들》472∼477행 

 

 

 

          코로스

수많은 여인들이
슬픔을 함께하며
부드러운 손으로 면사포를 찢으니
흐르는 눈물이 가슴을 적시는구나.

갓 결혼한 신랑이 보고 싶어
부드럽게 흐느끼는 페르시아 여인들,
이불이 푹신한 침상과 잠자리를 잃고,
청춘의 환희와 환락을 잃고
괴로워 하염없이 울고 있구나.
나도 고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진심으로 만가를 부르노라.

이제는 전 아시아 땅이

텅 빈 채 탄식하는구나.
크세르크세스가 인솔해 가서, 아아,
크세르크세스가 도륙했고, 아아,
크세르크세스가 지각없이 모든 것을
함선들에 태워 보내 다 잃고 말았구나.

- 《페르시아인들》537∼553행 

 


 

          아톳사

그만큼 나는 재앙에 놀라 제정신이 아니오.
그래서 나는 아까처럼 성장도 하지 않고
마차도 없이,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길이오.
내 아들의 아버지에게 사자(死者)들의 마음을
달랠 만한 헌주의 선물을 바치려고 말이오.
흠 없는 암소의 마시기 좋은 흰 우유와,
꽃에서 일하는 벌의 분비물인 반짝이는 꿀과,
정결한 샘에서 길어 온 정화수와, 들판의
어머니에게서 나온 그대로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이 오래된 포도덩굴의 영액 말이오.

- 《페르시아인들》606∼615행 

 


 

                         (다레이오스의 혼백이 무덤에서 일어선다.)
     다레이오스 

오오, 심복 중에 심복들이여, 내 죽마고우들이여,
페르시아의 노인들이여, 도시에 무슨 어려움이 닥쳤기에
온 도시가 비탄하고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르고 있소?
나는 아내가 내 무덤 옆에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휩싸여 아내의 헌주를 자애롭게 받아들였소이다.
한데 그대들은 내 무덤 옆에 서서 비찬하고
사자를 깨우려고 큰 소리로 통곡하며
애처로이 나를 부르는구려. 하지만 이리로 올라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오. 그리고 지하의 신들은
놓아주기보다는 붙잡는 데 더 능한 편이라오.
하나 나는 저들 사이에서 힘이 있는지라 이렇게 왔소이다.
자, 서두시오. 내가 지체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무슨 새로운 재앙이 페르시아인들을 짓누르고 있지요?

- 《페르시아인들》681∼693행 

 


 

       다레이오스 

           아톳사

복을 타고난 당신은 모든 인간들 중에 월등히 행복하셨고,
햇빛을 보고 계시던 동안에는, 페르시아인들의 눈에
신이 누릴 복된 삶을 사셨으니 부러움을 사셨지요.
지금은 당신의 죽음이 부러워요. 고통의 심연을 보시기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모든 것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페르시아인들의 나라가 완전히 망했어요.

 - 《페르시아인들》703∼714행

마음속의 오래된 경외심이 그대를 제지한다고 하니,
(아톳사에게) 내 침상의 연노한 동반자여, 고귀한 부인이여,
당신이 비탄과 울음을 그치고 내게 분명히 말하시오.
인간이면 누구나 고통 받기 마련이오, 인간이니까.
필멸의 인간들은 너무 오래 살다보면 바다로부터도,
육지로부터도 숱한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지요.


 

          아톳사

담찬 크세르크세스는 못된 자들과 사귀다 그렇게 배우게
된 것이지요. 그자들의 말인즉, 당신은 창으로 큰 재산을
모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으나 그 애는 비겁하게도
집 안에서나 창을 휘두르며, 아버지의 유산을 전혀 늘리지
못했다는 거예요. 못된 자들의 입에서 그런 비난을 듣게 되자
그 애는 헬라스로 원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거예요.


- 《페르시아인들》753∼758행 

 


 

     다레이오스

플라타이아이 땅에서 도리에이스족의 창에 의해
그만큼 큰, 핏방울이 듣는 제물용 케이크가 마련될 것이오.
그리고 뼈 더미들은 죽게 마련인 인간들 눈에
다음 세 세대에 이르기까지 말없이 증언해줄 것이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분수를 지켜야 한다고.
일단 교만의 꽃이 만발하면 미망(迷妄)의 이삭이 패고,
그것이 익으면 눈물겨운 수확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그대들은 이런 과오들과 이에 대한 벌을 보고
아테나이와 헬라스를 기억하고, 차후에는 누구도
자신의 현재 분복(分福)을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탐하다가
자신의 큰 복마저 엎지르지 않게 하시오.
제우스께서는 지나치게 오만불손한 마음의
응징자이시자 준엄하신 판관이시기 때문이오.

- 《페르시아인들》816∼828행 




                         (크세르크세스, 소수의 호위병을 거느리고 등장)
  크세르크세스

아아!
나야말로 불운하구나. 생각도 못할 가증스런 운명이
내게 주어지다니!
한 악령이 얼마나 잔인하게
페르시아인들의 종족을 짓밟았는가!

- 《페르시아인들》908∼912행 


 

    크세르크세스  우리는 얻어맞았소. 그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만큼.

           코로스  우리는 얻어맞았나이다. 그것은 확연하옵니다.

           아톳사  생소하고도 생소한, 고통스러운 고통이지요.

                           - 《페르시아인들》1008∼1010행

 

 

           코로스  아아, 슬프도다.
   크세르크세스  그것은 '슬프도다'보다 더한 것이었소.
           코로스  그럼 두 배 세 배로 슬프도다.
   크세르크세스  우리에겐 슬픔이지만 적군에게는 기쁨이었소.

                           - 《페르시아인들》1031∼1034행



    크세르크세스  이제 내 외침에 화답하여 그대도 외치시오.

           코로스  아이고 아이고!
   크세르크세스  온 도성이 울리도록 '아이고 아이고' 외치시오.
           코로스 
'아이고 아이고' 외쳐야지요. 그렇고말고요.
   크세르크세스  우아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통곡하시오.
           코로스 
아아, 페르시아 땅을 밟기가 뭣하구나.
   크세르크세스  아아 아아, 삼단노선들과 함께
                           아아 아아, 그들은 전멸했구나.
           코로스 
이제 나는 음울한 곡소리로 전하를 호송하겠나이다.
                           (코로스와 크세르크세스 퇴장)

                           - 《페르시아인들》1067∼1077행(마지막행)

   크세르크세스  울면서 집으로 가시오.

           코로스  아이고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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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4-03-1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라미스 해전에 대해서는 베리 스트라우스의 책이 가장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과 전투에 관한 책은 스피디한 전개가 생명인데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너무 질질 끄는 듯한 느낌이...신탁이나 기타 부분이 다 들어가 있으니 말입니다. 살라미스 해전은 육군국 페르시아와 해군국 그리스의 전쟁이었고, 결국 수적으로는 열세이나 함선을 유기적으로 활용한 그리스가 승리하는 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르지요. 세계의 역사를 바꾼 4대 해전 가운데 하나로 꼽느니만큼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너무 많이 있지요.

oren 2014-03-10 23:22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베리 스트라우스의 『살라미스 해전』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 책에 대한 리뷰를 읽어보니 평가가 매우 좋더군요. 그래도 저는 헤로도토스의 '신탁'을 곁들인 얘기가 여전히 재미있더군요.

saint 님의 말씀처럼 절대적 우세에 있었던 육군의 전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게 페르시아의 치명적인 실수로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살라미스 해전>에서 여러모로 불리한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성급하게 그리스 함대에게 덤벼든 실수도 크지만요.

그런데, 크세르크세스가 아르테미시아의 훌륭한 조언('전하, 함선을 아끼시고 해전을 피하소서. 바다에서는 이곳 백성들이 전하의 백성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옵니다. 전하께서 굳이 해전을 하셔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나이까?')을 받아들였다면 과연 그리스가 '바다에 둥둥 뜬 상태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었을까 싶은 아찔한 생각도 들긴 합니다.

saint236 2014-03-20 20:16   좋아요 0 | URL
아마도 크세르크세스의 자존심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겠지요. 육지에서든 바다에서든 이길 수 있고,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만심이 아마도 패인이지 않을까요? 다리우스가 그리스를 침략하게 된 것은 그가 캄비세스의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레스의 바벨론 점령, 캄비세스의 이집트 점령에 비견할 수 있는 그리스 점령은 그에게 혈통이 아닌 실력이라는 정당성을 제공해 줄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oren 2014-03-24 16:08   좋아요 0 | URL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원정을 떠나기 전부터 마음 속에 '교만'이 가득 차 있었던 정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반면, 그리스 연합군들은 도시와 신전들을 모두 포기하면서도 끝까지 결사항전으로 버티며, '자유 아니면 죽음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식으로 맞서 싸운 게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아이스퀼로스가 《페르시아인들》에서 '다레이오스'의 입을 빌어 노래한 대목은 <살라미스 해전>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전쟁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익숙한 패턴이라고도 생각됩니다.
* * *
일단 교만의 꽃이 만발하면 미망(迷妄)의 이삭이 패고,
그것이 익으면 눈물겨운 수확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그대들은 이런 과오들과 이에 대한 벌을 보고
아테나이와 헬라스를 기억하고, 차후에는 누구도
자신의 현재 분복(分福)을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탐하다가
자신의 큰 복마저 엎지르지 않게 하시오.
제우스께서는 지나치게 오만불손한 마음의
응징자이시자 준엄하신 판관이시기 때문이오.

페크(pek0501) 2014-03-1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진을 보니 책이 참 잘 생겼어요. ㅋ

"가장 용감한 자는 때로는 가장 불행한 자이다." -『몽테뉴 수상록』
이 문장을 읽으니 에밀 시오랑의 말이 생각나네요. "지식이 적으면 즐겁다."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이 뒤집어 보면 말이 되는 것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역도 성립한다는 것이죠.^^


oren 2014-03-19 23:12   좋아요 0 | URL
pek 님 오랜만에 찾아와 주셨군요. 사진에 담은 책이 가끔씩은 실물보다 더 멋지게 보일 때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ㅎㅎ 저는 책의 겉모습뿐 아니라 결코 만만치 않은 '책의 두께'까지도 사진으로나마 얼마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답니다. 혹시라도 저런 사진을 보고 '책의 무게'까지도 어렴풋이 짐작하시는 분이 더러 계신다면 기대밖의 소득일 수도 있겠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