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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7월
평점 :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 다윈,「비글호 항해기」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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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전형적인 68세대이다. 2002년에 그가 오랜 지병으로 숨졌을때 뉴욕타임스는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20세기의 과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또한 그는 과학의 대중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며 많은 과학 저서를 발간한 대중적인 저술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1981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저자의 대표적인 역작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면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전반을 통해서 그는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갖가지 '오해'의 역사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생물학적 결정론의 갖가지 오류들을 찾아내고, 이를 논증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차례대로 그 허구를 무너뜨린다.
'인간'을 잘못된 척도로 삼은 역사는 놀랄만큼 그 뿌리가 깊다. 그래서 프로타고라스의 유명한 아포리즘(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에 대한 패러디에서 따온 이 책의 원제(원제는 The Mismeasure of Man이다. 즉 '인간이라는 잘못된 척도'이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의 의미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오해의 오랜 역사까지 느껴질만큼 다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최초로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는 그에 대한 벌로서 밤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끔직한 형벌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간은 낮이면 또다시 자라난다. 고대 신화는 오늘날에 와서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20세기 이후 인류는 DNA의 발견과 게놈 지도 및 줄기세포 연구 등을 통해 생물학 및 생명과학 분야의 놀라운 발견들을 더욱 빠른 속도로 진척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여러 '과학적 발견' 또한 불의 발견처럼 늘 인간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면서 동시에 커다란 위험을 보여주는 데 예외일 수는 없다.
이 책에서 '불의 발견'에 대응되는 키워드는 소위 IQ라는 용어로 물화(物化)되어온 인간의 '지능'에 관한 발견이다. 그리고 '지능'으로 대표되는 편리한 도구의 발견은 IQ테스트라는 일순간적 측정에 의해 막대한 권능을 부여받는다. IQ로 측정된 인간의 '지능'이 인간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분류 라벨 혹은 일종의 바코드처럼 물화함에 따라 인류사회에 가해진 죄과들은 무수히 많다. 인종별 IQ 수치에 대한 서열화와 분류는 미국에서의 이민제한법을 낳게 되고,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식별하기 위한 IQ테스트는 교육 불능이라는 낙인을 찍는 데 오용되어 왔으며, 인종차별적 폭력과 편협한 국수주의들이 난무한 원인의 일단을 제공하는 일에도 나름대로 기여해왔다.
사실 지능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유전적) 차이에 대한 갖가지 오해들에 대한 역사는 매우 뿌리깊은 데다가 음험하기까지도 하다. 이 책에서 굴드의 날카로운 비판 앞에 속수무책으로 오류를 드러내는 유명한 과학적(?) 연구들만 대략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뇌의 크기가 지능과 연관된다는 신화를 만들어낸 폴 브로카의 연구, 네오테니(neoteny)라고 불리는 지체발생 현상과 귀선유전(atavistic)의 특징을 통해서 인간의 미개성과 '원숭이성'을 찾아내려 애쓴 연구, 해부학적이고 생리학적인 특징들로 사회적 낙인의 도구로 삼으려한 롬브로소의 범죄인류학, 인간에 대한 서열화와 딱지붙이기의 도구로 전락한 IQ라는 발명품에 대한 연구 등......
인간의 '지능'이 인종과 계층과 성별에 따라 다르다고 해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차별 마저 정당화하는 시도들은 역사적으로 인류가 무수히 겪어온 반복적 오류들의 전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이 생물학의 명령임을 인정하기 위한 근거들을 마련하기 위해 시도된 온갖 과학적 연구와 주장들의 오류들을 파헤치기 위해 열정적인 학문적 연구와 노력을 쏟아붓는다. 이 책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을 자랑하고 있다고는 하나, 굴드 자신이 찾아낸 수백년 혹은 수십년 전에 씌여진 먼지가 수북이 덮힌 서류뭉치 더미 속의 '인간에 대한 오해의 흔적들'의 엄청난 분량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 책에서 굴드가 찾아내고자 애쓴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의 선입관과 편견과 피암시성-무의식적 편향에 의한 집착 또는 '객관적인' 정량적 자료가 선입관에 이끌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경향성-들에 관한 저자의 눈부신 성찰은 이 책의 가치를 드높이는 또 하나의 색다른 매력이다.
이 대목은 소위 볼테르의 신에 대한 유명한 경구(만약 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를 창조할 필요가 있었겠는가)를 생각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객관성이라는 가면을 쓴 공유된 도그마에 대해 무언가 끊임없이 교훈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론은 사실로부터 얻어지는 냉엄한 귀납이 아니다. 가장 창조적인 이론은 사실에 상상적 관점이 가해진 것이며, 그 상상력의 근원 역시 대단히 문화적인 것이다....... 결정론자들은 흔히 과학이 사회와 정치의 오염에서 자유로운 객관적 지식이라는 전통적 권위에 호소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펴왔다. 이들은 스스로를 엄격한 진리의 징발관으로 묘사하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감상주의자, 공상가, 그리고 몽상적 사상가로 표현했다."
굴드의 표현대로 '기대가 행위의 강력한 지침이 된 사례들'은 이 책에서 무수히 등장한다. 그래서 날조가 필연이 된 여러가지 허구적인 주장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굴드의 손 끝을 떠나 이 책 속에 고스란히 정체를 드러내고 만다. 실증적 연구에 의해 하나의 객관적 이론으로 정립된 시대적 노력들이 사기극과 조작을 거쳤음이 분명해짐에 따라 낡은 사고의 오류와 악취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끊임없이 등장을 반복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주제는 그의 영웅인 찰스 다윈이 노예제도에 대해『비글호 항해기』에서 탁월하고도 통렬하게 비판한 대목인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생물학적 선언에 의해 희망이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의 고통을 더 이상 만들어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생물학자들은 인종 사이의 전체적인 유전적 차이는 놀랄 만큼 작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즉 어떤 인종에게는 존재하지만 나머지 인종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종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엄청난 대량학살이 일어나서 뉴기니의 깊은 삼림 속에 사는 작은 부족이 유일한 생존자로 남았다 해도 오늘날 50억 인구의 무수한 집단들 속에 표현되어 있는 모든 유전적 변이는 보존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굴드의 주장이다.
인간의 다양성을 지리적 고려에서 계층적 서열화로 이행시킨 것은 서양 과학사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변화를 잘 나타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철도나 핵폭탄에는 못미쳐도, 그 변화는 우리들의 집단적 삶과 민족성에 엄청난 실질적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가장 큰 지적 모험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것은 낡은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적 구조를 구축할 필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지적 추구에서 철저히 새로운 이해를 얻었을 때 느끼는 흥분만큼 달콤하고 훌륭한 보상은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진정한 학자들을 감동시키고, 우리 이외의 사람들에게 호된 충격을 주는 마음속으로의 여행이라고 말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지질학과 동물학 교수로 재직했던 굴드는 과학 자체를 사회로부터 분리된 객관적이고 균일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과학을 가장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평생에 걸쳐서 모색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숱한 과학적인 연구와 주장들에 대해서도 그 '오해'의 발단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문제인가를 그만의 예리하고 독특한 성찰을 통해 분석해 낸다.
오늘날 우리는 단지 과학 지식을 늘리기 위해서 과학 서적을 읽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사나 과학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서적을 읽는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철학자인 모티머 J. 애들러는 과학이 발전한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사실, 명제, 논증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방법을 추적하는 것은 가장 성공적인 인간 이성 활동에 참여해 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그는 과학적 객관성이란 '편견의 부재'가 아니며, 오히려 이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객관성을 낳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학 서적에 있는 귀납적 논증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바탕으로 보고하는 증거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과학 서적이 지니는 유용성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오히려 굴드는 이 책에서 편견에 바탕을 둔 증거들의 허구성과 논증의 오류들을 밝혀내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애들러의 주장을 역설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모티머 J. 애들러의 말을 빌려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몇 가지 해결할 수 없는 인간적인 문제가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세상 사이는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관계다. 자연과 그 법칙, 그리고 존재와 생성에 대한 최종적인 이해를 아직 아무도 얻지 못한 과학이나 철학 분야에만 해당되는 소리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인간과 하나님처럼 일상적인 관계도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위대한 책들은 이에 관해 좀더 잘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생각하는 사람들이 썼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논적인 사회생물학의 주창자 에드워드 윌슨이 쓴 인간 본성에 대하여라는 책이나,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도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에드워드 윌슨과 리처드 도킨스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과학적 성찰에 대한 태도 또한 그의 사회주의적 성향 내지는 "정치적 도그마"와 무관하지 않음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있기도 하다.
조금 덧붙이자면, 진작에 사두고 여태껏 읽어 보지 못한 두 권의 책이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나를 압박해 옴을 느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한 권은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를 단 매트 리들리의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이라는 책이다. 또 한 권은 스티븐 제이 굴드를 환경결정론주의자라고 비판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이라는 책이다. 특히 스티븐 핑커의 책은 901쪽이라는 엄청난 분량과 4만원이라는 책값이 주는 압박감이 만만치 않지만, '인간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아울러 나 자신 속에 숨어있는 여러 종류의 편견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즐겁게 읽어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100% 유전적 근시도 20달러짜리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는데......" (본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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