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4부(62∼97)
6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파우스트
그는 평생 동안 성장, 변화, 분투 노력, 활동, 세상에 대한 이해와 정복을 강조했다. 괴테는 파우스트적 인간이었고 현대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삶의 느낌들을 전형화하는 인물이었다.
제1부는 파우스트 개인의 영혼을 다룬다. 그의 지적인 환멸과 야망, 모든 것을 부정하는 메피스토펠레스에 의해 파우스트 앞에 놓인 유혹, 파우스트의 마르가레테 유혹, 사랑을 통한 구원의 약속 등이 다루어진다. 2부는 개인 파우스트가 아니라 서구의 인간들이라는 "더 큰 세계"를 다룬다. 전설적 인물 헬렌이 등장하는 역사적 환상극이다. 우리가 호메로스[2,3]의 작품에서 만났던 헬렌은 여기서 서양 고전 세계를 상징하고, 파우스트는 르네상스 이후의 근대 서양 세계를 상징한다. 『신곡』[30]의 무대였던 천국, 지옥, 지상이 그대로 『파우스트』의 무대가 된다.
몰리에르[46]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괴테를 영역하면 만족할 만한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번역 효과가 좀 미흡한들 어떠랴. 토마스 만[107] 등 위대한 현대 작가들을 포함하여 무수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이 유럽의 거인을 어떻게든 만나야 한다.
66. 제인 오스틴, 1775∼1817, 오만과 편견, 엠마
"개인 생활의 행복이 걸려 있는 아주 사소한 일들." 그녀는 자신이 묘사하는 특별한 작은 세계의 회전축이 고상한 사상, 강렬한 야망, 비극적 절망 등이 아니라 금전, 결혼(사랑 때문에 복잡하게 꼬이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적 계급의 유지 등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녀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활동을 하나의 코미디로 관찰하고 있다. 마치 대가족의 동정을 잘 살펴보는 똑똑하고, 눈 밝고, 의견 표명 잘하는 나이든 고모처럼 말이다.
71. 알렉시스 드 토크빌, 1805∼1859, 미국의 민주주의
토크빌은 자유주의적인 귀족주의자, 높은 지성을 갖춘 라파예트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두 가지 목적을 겨냥한다. 하나는 미국의 민주적(그는 이것을 평등주의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제도를 기술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관찰과 분석을 유럽(특히 프랑스) 정치의 사상과 실천에 있어서 하나의 길잡이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이 책이 미국을 분석한 가장 심오하고 현명하고 예견적인 저서라고 평가한다.
그의 예견이 모두 성사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의 동정심, 이해력, 균형감각, 선견지명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책은 뛰어난 구조와 우아한 문제의식을 갖춘 걸작이다. 토크빌 당시에 미국의 근대적 자본주의 구조는 아직 초창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후대의 마르크스[82]보다 훨씬 더 예리하게 그 구조의 장래, 장점, 단점, 가능성을 꿰뚫어 보았다. 이미 150년 전에 토크빌은 "과반수 독재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대중의 시대를 내다보았다.
72. 존 스튜어트 밀, 1806∼1873, 자유론, 여성의 종속
감정이 완전 배제된 영국적 방식으로 집필된『자유론』은 명석한 설득력과 인도주의적 주장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국가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그처럼 열렬하게 호소한 저서는 따로 없을 것이다.
"인간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다른 인간의 행동과 자유에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자기 보존뿐이다. 그 이외에는 일체 다른 인간의 행동과 자유에 간섭해서는 안된다."
73. 찰스 다윈, 1809∼1882, 비글호의 항해, 종의 기원
이 책은 읽기 쉬운 책은 아니나 어려움을 무릅쓰고 끝까지 읽는다면 충분한 보람을 안겨준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사용한 전략은 객관적 증거를 다량으로 제시하여 반대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또 결정적 증거가 부족할 때에는 유추와 개연성 있는 추측을 들이밀기도 했다. 그의 전략은 정밀한 논리보다 대담한 추론에 더 기대는 것이었다. 다윈은 남들이 전에 다 보았으되 관찰하지 못한 것을 끄집어내는 놀라운 통찰력을 발위했다. 그리하여 『종의 기원』은 지적인 흥분으로 가득하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래, 다윈의 진화 이론에 대한 반발은 어떻게 보면 시대착오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한 동안은 그런 반발이 통할지 모르나 결국에는 다윈의 이론이 이겼다. 『종의 기원』을 읽는 것은 진행중인 과학 혁명을 관찰하는 것이며, 훌륭한 과학자 한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이다.
79. 샬럿 브론테, 1816∼1855, 제인 에어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날개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제인 에어』는 세계 문학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러브 스토리의 하나이다." 이 문장은 일반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을 잘 말해 준다. 이 책은 열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 열정은 너무나 팽팽하고 뜨거워서 그 뻣뻣하면서 무거운 문장을 뚫고 나올 정도이다.
나는 최근에 다음과 같은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을 발견했다. "여성들은 불완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여성들로부터 기대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은 천재의 작품뿐이다."
80.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1862, 월든, 시민 불복종
소로는 살아생전에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무수히 많은 독백을 했다. 그러나 사후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말하고 있다. 어쩌면 수억 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호소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위험한 인물이다. 그는 혁명가는 아니지만 아주 파괴적인 사람이다. 예수 못지않게 과격한 인물이다. 그는 마르크스처럼 사회를 전복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생명을 거부하는 마르크스의 국가는 다른 생명 거부의 국가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대의 일반적 흐름에 온몸을 던져 반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한 절망의 삶을 영위한다."(이 말은 오늘날 널리 인용되는 명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소로는 철저히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 나가기로 결심했다. 적응하고, 동화하고, 합류하고, 개혁하고, 완성하는 대신에 삶 그 자체를 살아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소로처럼 자연을 즐기고 해석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의 생활 방식은 별 호소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그의 태도는 소로의 개인적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83. 허먼 멜빌, 1819∼1891, 모비딕, 필경사 바틀리
상아 의족을 찬 복수심 가득한 노인이 자신의 적인 하얀 고래를 추적하다가 결국 노인도 고래도 둘 다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적 경험이 풍부한 성인들은 이 소설을 아주 광포한 예술 작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비극적 인식이 녹아 들어가 있어서, 어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도스토옙스키의 걸작들, 나아가 셰익스피어와 동급으로 평가한다. 영어의 리듬에 민감한 독자들은 이 소설의 웅장한 문체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어조는 마치 오르간의 마개를 모두 열어놓고 연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87.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1821∼1881,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의 생애와 작품은 서로 조응한다. 고통, 폭력, 정서적 위기, 과도한 행동이 생애와 작품에서 똑 같이 등장한다. 그의 장편소설들에서 발견되는 저 강력한 성실성은 저자의 생애를 평생 어둡게 만들었던 불안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독자는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는 것은 곧 지옥으로 내려가는 일이다.
그 소설들은 니체[97]와 프로이트[98]의 사상을 예고했다. 토마스 만[107], 카뮈[127], 포크너[118] 같은 러시아 이외 지역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레닌, 스탈린, 히틀러 등을 연상케 하는 테러 이론과 실천을 극화했다. 도스토옙스키는 20세기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 것인지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하다. 바로 이런 비극적 인식이 그의 소설에서 매혹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 기이한 인물을 정확히 묘사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의 중심 주제는 신이었다. 신에 대한 탐구,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가 그의 스토리의 핵심 요소이다.
8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1910, 전쟁과 평화
여러 해 전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글을 썼을 때 나는 세 가지 특징을 칭찬했다. 첫째, 포괄성이고 둘째, 자연스러움이며 셋째, 무시간성이다. 15년이 지나 이 소설을 두 번째로 다시 읽고서 또 다른 특징을 발견했다. 톨스토이는 자기 자신을 독자에게 드러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최근에 세 번째로 다시 읽고는 진부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미덕 하나를 또 발견했다. 톨스토이는 진실을 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는 말했다. "인생이나 예술이나, 단 한 가지 필수적인 사항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의 캔버스가 아주 좁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령 헤밍웨이는 투우에 대하여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진실을 말한다는 것, 그것이 『전쟁과 평화』의 주제이다.
91. 루이스 캐럴, 1832∼189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을 통하여
루이스 캐럴은 두 권의 앨리스 책이 발간된 1860년대와 70년대보다 오늘날 오히려 더 생생하게 빛을 발한다. 그는 모든 나라의 보통 사람들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최고의 지식인들도 매혹시켰다. 가령 에드먼드 윌슨, W.H.오든[126], 버지니아 울프[111], 엘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버트런드 러셀, 아서 스탠리 에딩턴 같은 논리학자와 과학자들, 그 외에 무수한 철학자, 언어학자, 정신분석학자들이 앨리스를 사랑했다.
『앨리스』에서는 독자가 의식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네 개의 세계가 충돌한다. 유년, 꿈, 난센스, 논리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 세계들은 서로 합쳐지는가 하면 서로 벗어나기도 하고 서로 간에 어떤 변화를 겪기도 한다. 이 네 가지 세계의 기이한 상호 작용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복잡성을, 보다 중요하게는 그 혼란스러운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성인 독자는 그 기발한 유머를 즐겁게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이것이 아동서적 이상의 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인간 의식의 어두운 구석을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92. 마크 트웨인, 1835∼1910, 허클베리 핀
어린 시절에 『허클베리 핀』을 읽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을 아동용 서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뛰어난 아동용 서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이러한 생각을 뒤엎는다. "모든 미국 현대 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이라는 책 하나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이런 두 극단적 생각의 중간쯤에 진실이 놓여 있다고 본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생각에 좀 더 점수를 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마크 트웨인은 굉장히 고심하면서 『허클베리 핀』을 썼다. 그가 이 소설을 탈고했을 때 이 소설이 소로의 『월든』[80]과 함께 미국 19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2대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했을지는 의문이다. 트웨인은 자신의 무의식으로부터 이 소설을 써냈다. 그 무의식을 통하여 그의 초창기 상상력에 자양을 주었던 위대한 강이 흘러들었다. 이 소설 속에 그는 자신의 청춘을 묘사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미합중국의 청춘을 함께 엮어 넣었다는 것을 그는 의식하지 못했으리라.
95. 윌리엄 제임스, 1842∼1910, 심리학 원리, 프래그머티즘, 진실의 의미 중 논문 4편,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
제임스는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에서 종교적 상태는 다른 심리 상태와 마찬가지로 신경계에 의해 조건 지워진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종교적 상태의 중요성은 그 근원이 아니라 그 결과적 가치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종교는 '진리'라고 확정되었든 말았든, 개인과 인류에게 가치있는 것이다. 종교의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기능적인 것이다. 사상은 도구로서만 타당한 것이며 그 도구성에 의하여 가치가 판단되어야 한다. 요약해 보자면, "사상은 우리의 생활에 유익하다고 믿어지는 한 '진리'이다."
그는 사상사에서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활기 넘치고, 체험의 세계를 중시하고, 정신의 자유를 존중하고, 정서적으로 아주 신선하다. 게다가 그는 아주 명쾌하고 신선한 문체의 소유자이다. 확정된 종교 체계나 도덕 체계를 믿는 사람들은 아마도 실용주의적 검증에 대해서 반대할지 모르나, 그래도 그의 저서를 읽고 나면 독자는 전보다 더 생생한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가능성의 철학자이다. 실용주의적 검증이라는 개념만으로도 그는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의 저서를 읽으면 인생을 보는 안목이 달라진다.
97.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1844∼1900,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선악의 저편, 기타 작품들
1879년부터 1888년까지 그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전전하면서 싸구려 하숙집에서 외로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보낸 9년 동안 그는 자신의 대표작을 대부분 써냈다. 1888년 12월 그는 토리노의 거리에서 말(馬)의 목을 쓰다듬으며 울고 있는 광인狂人의 상태로 발견되었다. 정신이상에 빠진 것이었다. 그는 남은 생애 11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는데, 결정적 증거는 없지만 정신병은 매독성 전신마비의 결과라는 설도 있다.
그는 기독교를 "노예의 도덕"이라고 비난한다. 그는 전통적인 미덕인 동정심, 관용, 상호 수용 등을 거부하고 "권력에의 의지"를 더 선호했다. 그는 밀의 자유민주적 인도주의를 거부하면서 밀을 "저 돌대가리"라고 불렀다. 그는 인간 정신 속의 영웅적·디오니소스적·비합리적이면서 직관적인 요소들을 칭송했다. 그는 진보라는 일반적인 개념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대신에 순환적인 영원 회귀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제시하면서, 영웅적인 고통, 낙관적인 비관론, 비극적 체험의 긍정적 효과 등의 이율배반을 강조했다.
(제5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