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겪은 일 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흥분 상태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우리 일행 네 명이 난생 처음으로 베를린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겪은 온갖 이야기만큼은 몹시 특별했다고, 아직까지도 나는 믿고 있다.

 

우리 일행은 2014년 여름에 독일을 중심으로 해서 자동차로 완전히 한 바퀴를 뺑 도는 '17일 동안의 장기 투어'를 떠났는데, 첫 도착지인 뮌헨에서부터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만드는 상황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 구글 지도로 살펴본 '여행 예정 경로'
 

 

 

허츠에 미리 예약해 놨던 '짐칸이 넉넉한 4인승 자동차' 대신 벤츠에서 나온 신형 미니밴부터 부담스러웠다. 출고된지 6개월도 안 된 최신형 미니밴을 '추가 요금' 없이 이용하라는 권유마저도 달갑지 않았다. 장거리 이동에는 무척이나 좋겠지만, 도심지의 좁은 주차장을 들락거릴 때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용했던 벤츠 미니벤, Viano)

 

우리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아우토반을 시속 250km까지 뿡뿡 내달려도 소음과 진동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땐 마냥 좋았으나, 유럽에서도 오래된 여러 도시의 좁은 주차공간을 드나들 때마다 몹시 신경이 쓰였다.

 

첫 번째 '주차 사건'은 바로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에 벌어졌다. 호텔 종업원이 우리가 타고 온 차를 보더니, 호텔에 딸린 지하 주차 공간으로 내려가라면서, 호텔 건물을 끼고 한참이나 돌아 들어가는 '복잡한 동선'을 가르쳐줬다. 간신히 지하주차장 입구를 찾아 내려가면서도 조마조마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몹시 좁았기 때문이다.

 

커브길을 따라 지하로 2개층 정도를 내려가니 거기서 다시 커브로 꺾어 들어가는 출입구에 차량 제어바가 나타났다. 버튼을 누른 뒤 제어바가 올라가자 우리는 차를 조심조심 들이밀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가 탄 차가 예상보다 '덩치'가 너무 컸다. 차량의 우측 전방과 좌측 후미가 동시에 주차 제어 시설에 '꽉' 끼고 말았다. 주차 시설의 경광등이 삐뽀~ 삐뽀~ 울리고, 차는 꼼짝달싹도 못하고, 우리 뒷편으로 쭈욱~~ 주차를 위해 내려오는 차들은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기다리고... 정말로 난감했고, 진퇴양난이었다.

 

간신히, 간신히, 상황을 수습했다. 우리 뒤로 뒤따라 들어온 차량들을 일일이 뒤로 물린 끝에, 간신히 움직일 공간을 확보한 우리는 (차량 손상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용감히 후진을 해서 화물차가 이용하는 통로로 간신히 우회해서 빠져나왔다. 무턱대고 지하 주차장으로 안내해준 호텔 종업원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간신히 주차를 하고 나서는, 그날 저녁에 벌어지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구경하러 나섰다. 그날은 마침 독일과 프랑스의 8강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는 모든 시름을 잊고 축구 경기를 맘껏 즐겼다. 그리고 그 경기가 끝난 뒤 독일 축구팬들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마구 쏟아져 나와 즐겼던 '뒷풀이'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렇게 베를린에서의 첫날 밤이 지났고, 이튿날이 되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베를린 시내 투어에 나섰다. 그러나 둘째날은 첫째날보다 더 험악한 사건, 사고들이 줄을 이었다. 둘째날의 당혹스러움은 저녁 식사때까지 줄곧 이어졌다. 한낮의 대소동을 간신히 수습하고도 모자라, 안도의 저녁 식사를 즐기다가도 난데 없는 봉변을 겪었다. 베를린에서도 가장 오래된 맛집이고, 식도락가였던 나폴레옹뿐만 아니라 베토벤과 찰리 채플린까지 즐겨 찾았다는 그 유명한 식당을 간신히 찾아간 우리는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헤프닝'을 실제로 겪었다.

 

그 당시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뜻밖에도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을 읽을 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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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1-27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월드컵에 독일이 한국에 지고, 조별 꼴찌로 탈락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ㅎㅎㅎㅎ

oren 2020-01-27 20:0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토록 강해 보였던 게르만 전차군단이 4년 만에 녹슨 고철 덩어리처럼 허약한 모습을 보일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2014년 저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 축구팬들 가운데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데 깜짝 놀라게 되더군요. 심지어 초등학교 3학년, 4학년짜리도 손흥민을 잘 알고 있더라구요.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프레이야 2020-01-3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과 일주일 전 베를린에 다녀와서 귀 쫑긋하고 잘 듣고 보았습니다. 저 레스토랑을 미리 알았더라면 가보았을 걸 아쉽네요. 겨울이라 날씨가 별로여서 감기도 들어버리고 좀 그랬네요ㅠ 오렌님 구수한 말투로 유튜버로서 완전 자리 잡아가시는 거 같아요. 유머와 재미 그리고 책여행이 아주 잘 어울리고 영양가도 높아요. 구독자 중 한 사람입니다 ^^

oren 2020-01-30 23:22   좋아요 1 | URL
불과 일주일 전에 베를린을 다녀오셨다구요? 정말 정말 깜놀이네요. 베를린이 무슨 이웃동네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 식당을 제대로(!) 촬영한 동영상을 외국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봤는데, 어찌나 감회가 새롭던지, 눈물이 다 나올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아무리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도 포크 통을 내리치던 그 용감무쌍하고 겁없던 40대 여종업원은 찾지 못하겠더군요. 이번 영상은 최대한으로 재미있게 만들어 보고자 갖은 애를 쓴 덕분에, 그나마 재미있게 봤다는 반응을 얼마쯤 얻는 데 성공하긴 했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지속성 있고 영양가 있는 영상을 만들어 보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제 채널을 구독해 주시고 성원해 주셔서 정말 고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