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직무는 강제가 가장 적은 직무이다. 예지가 자기 힘에 맞춰서 욕망을 조절해 주는 자들에게는 그 예지가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일까! 그보다 더 유용한 지식은 없다. 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늘 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우리 욕망을 가장 쉽고 가까운 것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멈추게 해야 한다.
-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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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다. 그때 썼던 글을 다시 찾아봤다. 그때와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당신과 알라딘에 관한 16가지 기록>
https://www.aladin.co.kr/events/eventbook.aspx?pn=150701_16th_records&custno=642151
알라딘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독서 활동에 대한 칼 같은 통계'를 자주 보여준다는 점이다. 잊을 만하면 요술램프에서 기어 나와 '결코 잊지는 말라'고 애써 우리에게 알려준다. 램프를 문지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게 상술임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기꺼이 그 '순위표'를 들여다보며 즐거워하거나 혹은 실망한다. 설마 거기에 분노하는 사람들까지야 없으리라 믿고 하는 얘기다.
'책읽기'를 둘러싼 제반 활동에 대한 '종합 명세서'는 아무래도 연말이 가장 알찬(?) 듯하다. 엠블럼도 따라 붙고. 그렇다고 알라딘의 생일날에 슬며시 내미는 한여름 중간 명세서가 그리 허접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이 되기도 전에 뜬금없이 펼쳐보게 된 '중간 정산 내역'이 무려 13개 항목에 이른다. 그 가운데 내게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항목 몇 가지만 '나'를 기준으로 간략히 살펴보고 싶다.
① 891권, 초등학교 교실 25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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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권의 책으로 어떻게 초등학교 교실 250개를 채울 수 있다는 건지 솔직히 이해가 좀 안 된다. 책의 낱장을 모두 펼쳐서 교실 바닥을 빈틈없이 이어 붙여서 채운다는 가정일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책을 낱장으로 분해한다는 가정부터가 너무 비현실적이다. 아무튼, 4년 전에는 책의 권수와 함께 합산 페이지 숫자까지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번엔 그런 중요한 정보가 빠져서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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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003년에 알라딘에 둥지를 튼 셈 치고는 그리 많은 책을 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사들인 책을 모조리 다 읽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름대로는 책을 사는 데 꽤나 신중한 편이어서 '읽지도 않을 책'을 마구잡이로 사들인 경우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4년 전에는 구매한 책들의 평균 쪽수가 412쪽라는 점이 유난히 눈에 띄었었다.)
② 12,325,340원, 15,393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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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는 이랬다. 4년 동안 400만 원 가까이 추가로 지출했는데, 전체 순위는 대폭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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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들인 금액이 '많다'는 생각은 여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늘 적으면 적었지 많다는 쪽으로는 좀처럼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 책에 대해 지출하는 비용이라 여긴다. 그러니 저 금액이 내게 무슨 특별한 느낌을 줄 리도 없다. 그런데 15,393번째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묘한 감정이 생겨난다. 누군가는 1번째(전국 수석?)일 테고, 또 분명 어느 누군가는 50,000번째 혹은 100,000번째일 텐데, 각자 자신의 '순위'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궁금하다. 나는? 글쎄? 이제는 순위에 무덤덤해진 나이가 된 걸까? 아무런 감흥이 없다.
③ 북플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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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는 이랬다. 4년 전에 비해 서양고전문학에서 조금 더 올라섰고, 서양철학에서 여러 단계 올라선 점이 눈에 들어온다. 서양고전사상, 교양 인문학, 영미소설에서 마니아 지수가 많이 향상된 점도 나에겐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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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80세까지 54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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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는 이랬다. 80세까지 1,590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던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지니'가 인심이 매우 박해졌나 보다. 아니면 나의 독서 활동이 4년 동안에 현저하게 둔화되었거나. 어쩄든 감소폭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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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략 앞으로 (남은 여생 동안) 500권의 책도 읽기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굳이 자세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보다도 '독서 의욕'이 차츰 떨어질 테고, 언젠가는 눈도 침침해 질 게 뻔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계속 책을 읽는다면 아직도(!) 540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니! 여전히 희망적이다. 아직도 너무 늦지는 않았구나, 앞으로 죽기 전까지 '이름만 들었던' 숱한 명저들을 좀 더 섭렵해 보자, 이런 생각부터 앞선다. 알라딘이 아니라면 쉽게 내밀 수 없는 '잔존 독서량 예측'이 아닐 수 없다. 결론은 매번 뻔한 데도 이렇게 불쑥 내미는 명세서가 매번 궁금하니 나 원 참...
"책을 잡고 글을 읽으세"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은 『고백록』의 어느 중요한 단락에서 두 가지 방식의 독서법-소리를 내는 방법과 소리를 내지 않는 방법-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에 화가 난 나머지, 또 자신의 과거 죄에 분노를 느끼면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그때까지 자신의 여름 정원에서 (큰 소리로) 함께 책을 읽고 있던 친구 알리피우스 곁을 빠져 나와 무화과 나무 밑으로 몸을 던져 흐느껴 울었다. 바로 그때 근처의 어느 집에서 어린이(소년인지 소녀인지, 그는 밝히지 않았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노래의 후렴이 "책을 잡고 글을 읽으세"였다. 그 노랫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 믿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리피우스가 아직도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곳으로 다시 달려가 미처 다 읽지 못했던 바울의 『사도행전』한 권을 집어들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그 책을 집어 펼친 뒤 시선이 가장 먼저 닿은 첫 부분을 소리내지 않고 읽었다"고 말한다. 그가 소리내지 않고 읽은 단락은 로마서 13장으로, "육신을 위해 양식을 준비하지 말고 그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갑옷처럼' 걸쳐라"라는 훈계였다. 혼비백산한 그는 문장의 끝에 이른다. '믿음의 빛'이 그의 가슴에 충만하고 '회의의 어둠'은 말끔히 걷힌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