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이야기 현대지성 클래식 15
제프리 초서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지성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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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Homer), 초서(Chaucer), 그리고 세익스피어(Shakespeare)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전달 매체가 무엇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 마이크 아이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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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프리 초서(출처 : 위키백과)

 

『캔터베리 이야기』는 중세 영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이 작품을 쓴 제프리 초서(1342∼1400)는 일부 문학비평가들로부터 영문학 사상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을 정도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겐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왜 그럴까?

 

이 유명한 작품은 중세를 대표하는 걸작들인 단테(1265∼1321)의 『신곡』이나 나관중(1330?~1400)의 『삼국지연의』 보다는 조금 뒤늦게 나왔지만,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야기인『천일야화』(1500년경)나 근대 소설의 효시라 불리는 라블레(1483∼1553)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보다는 훨씬 앞서 나왔다. 말 그대로 까마득한 옛날에 쓰여진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역사에 다시 한번 슬쩍 비춰보면 이 작품은 일반적인 통념보다 훨씬 더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대략 1387년부터 집필되기 시작해서 작가가 죽은 해인 1400년까지도 막바지 작업이 이뤄졌던 작품이니, 조선이 건국되기도 전에 쓰여지고, 한글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세상에 널리 퍼져 읽혔던 작품인 셈이다.

 

이 오래된 중세의 이야기가 서양 문학사에서 우뚝 솟아오른 이유는 여럿이지만,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이유 하나는 아주 명백하다. 그때까지 존재했던 위대한 이야기들이 주로 '신들의 이야기'였다면, 초서의 이야기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이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가장 대비되는 작품은 물론 단테의 『신곡』이었다. 그 위대한 서사시가 '신성한 코미디'였다면, 초서의 서사시는 '인간의 코미디'였다. 단테가 신을 사랑했다면, 초서는 불완전하고 죄 많은 인간을 사랑했다. 단테는 <지옥편>에서 <천국편>에 이르는 여행을 통해 파멸, 정화(淨化), 지복에 이르는 길들을 묘사했지만, 초서는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이르는 순례 여행을 통해 인간 삶의 복잡다단한 이야기에 집중했다.

 

단테의 여행이 상상 속의 상징적인 세계로의 여행이었다면, 초서의 여행은 14세기에 30여 명의 순례객들이 영국의 질퍽한 도로 위로 말을 타고 떠나며 나눴던 실제 세계에서의 여행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했다. 초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화자들은 런던 교외에 실재했을 법한 타바드라는 여관에서 순례 여행을 시작하며, 최종 목적지인 캔터베리 대성당이라는 실재하는 장소에서 끝난다.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던 제프리 초서와 결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인물은 셰익스피어였다. 영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히는 셰익스피어(1564∼1616)는 초서보다는 훨씬 나중에 태어났지만 그로부터 아주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독자들은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물론이고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들까지도 산문으로 변역된 상태로 읽는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태생적으로 시인이었고, 그들이 남긴 작품들은 대부분 운문시로 쓰였다. 영어로 쓰인 최초의 걸작이자 더군다나 운문으로 쓰인 탁월한 이야기들을 셰익스피어가 그냥 지나칠 리는 만무했다. 셰익스피어는 『캔터베리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참고하여 그보다 훨씬 세련되고도 독창적인 이야기들을 무수히 새로 지어냈다.

 

초서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화자로 등장하는 순례자들의 다양한 신분 만큼이나 각양각색이지만 그렇다고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초서는 주로 고대 로마의 역사가인 티투스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 플루타르코스가 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혹은 키케로나 세네카의 여러 작품들에서 인물이나 이야기를 끌어온 경우가 적지 않은데, 초서가 두루 섭렵했던 이들 작가와 작품들이야말로 셰익스피어도 똑같이 사랑했던 작가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으로 알려진 <퓌라무스와 티스베 이야기>가 오비디우스의 작품에서뿐 아니라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도 거듭 등장하며, 티투스 리비우스와 플루타르코스가 비중있게 다룬 고대 로마 시대의 '루크레티아 성폭행 사건'이 『캔터베리 이야기』 에 다시 등장하고, 셰익스피어에 의해 설화시(說話詩)인 「루크리스의 능욕」으로 재탄생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캔터베리 이야기』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은 그보다 앞선 작가들인 페트라르카와 복카치오와 단테의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초서 이후에 등장한 작가들 중엔 셰익스피어뿐만 아니라 몽테뉴(1533∼1592)와 세르반테스(1547∼1616)에게 끼친 영향들도 적잖게 발견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초서의 이야기 가운데 아내의 정조를 극단적으로 시험하는 이야기인 <옥스퍼드 서생의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나중에 쓰인 『돈키호테』에 담긴 액자 소설 가운데 하나인 <당치 않은 호기심을 가진 자에 대한 이야기>와 몹시 닮았다. 그런데 아내의 정조를 시험하는 이 두 이야기의 진정한 모태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담긴 <케팔루스와 프로크리스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초서와 세르반테스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기 보다는 도리어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로부터 직접적으로 영양분을 빨아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초서는 생애의 대부분을 왕실 사업의 감독관이나 왕의 경제 사절 등 고위 공무원으로 지냈는데, 그의 삶의 일부분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자못 흥미롭다. 초서는 젊어서 한 때 영국왕 리처드 2세와 프랑스 공주 마리의 결혼을 위해 수 차례에 걸쳐 프랑스를 다녀온 적도 있으며, 초서의 아내는 랭커스터 공작(존 오브 곤트)의 부인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랭커스터 가(家)의 에드워드 3세(1377년 사망)의 셋째 아들이 바로 랭커스터 공작이었고, 그의 맏형(에드워드, 검은 갑주의 왕자)의 아들이 당시 국왕이었던 리처드 2세(1377∼1399년 재위, 1400년 살해)였다.

 

랭커스터 공작의 아들은 영국사에서도 빛나는 인물인 헨리 볼링브로크였다.(그는 셰익스피어가 창조해 낸 가장 흥미로운 인물인 '폴스타프'와 절친일 정도로 청년 시절에 온갖 기행을 일삼았지만 즉위 이후에는 국왕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명군이었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국왕 리처드 2세는 나약하고 무능했다. 국왕인 어린 조카보다 더 막강한 힘을 지닌 랭커스터 공작은 언제나 늠름했던 그의 아들 헨리 왕자와 함께 언제나 요주의 인물이었다. 늘 왕위에 불안을 느낀 리처드 2세는 결국 헨리를 프랑스로 추방시키지만, 훗날 때맞춰 씩씩하게 영국으로 귀환한 헨리는 무능한 리처드 2세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다. 셰익스피어가 쓴 역사극 열 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 바로 '헨리 볼링브로크의 영웅적인 일대기'를 극화한 《헨리 4세》이고, 그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끝에 감옥에서 비참하게 살해된 '리처드 2세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리처드 2세》또한 그에 못잖게 인기있는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셰익스피어와 초서 사이에 놓인 유별난 인연을 새삼 헤아려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쯤에서 잠깐 리처드 2세 때문에 영국에서 추방당하는 헨리 볼링브로크와,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등지게 된 아들에게 따스하고도 지혜 넘치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부친 랭커스터 공작(존 오브 곤트) 사이에 있었던 대화 장면을 셰익스피어의 명대사로 잠깐 감상하고 넘어가자.

 

존 오브 곤트

 

태양이 내려 쪼이는 장소는 모두가 다

현자에겐 항구요 아늑한 정박지니라.

곤경에 처해서는 이렇게 생각해라 ㅡ

곤경처럼 도움이 되는 것 또 없다고.

전하께서 너를 추방했다 생각지 말고, 네가 전하를

멀리한다고 생각해라. 괴로움을 심약하게 받아들이면,

괴로움은 한층 더 무겁게 짓누르는 법.

가거라. 영예를 쟁취하라고 내 너를 보내는 것 ㅡ

전하께서 너를 추방하심이 아니다. 아니면,

생명을 삼키는 역병이 대기 중에 맴돌아,

네가 신선한 풍토를 찾아 도피한다 생각하거라.

네가 무엇을 값진 것으로 여기든, 네가 가는 곳에

그것이 있는 것이지, 그것을 뒤에 남긴다 생각 마라.

지저귀는 새들을 악사들로 여기고,

네가 밟는 초원을 골풀 깔린 접견실로,

꽃들은 아리따운 여인들로, 그리고 네 발걸음은

흥겨운 무도의 율동이나 춤으로 여기거라.

이빨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슬픔도 그걸 조소하고

가볍게 여기는 자를 몰 힘이 약해지나니.

 

 - 셰익스피어, 《리처드 2세》, <제1막 제3장> 중에서

 

초서와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치고 다시 『캔터베리 이야기』로 되돌아 오자. 이 방대한 중세의 이야기는 캔터베리 대성당에 안치된 성인(聖人) 토마스 베켓을 참배하러 영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신분의 순례객들이 차례로 화자로 등장하는 게 가장 큰 특색이다. 그런데 캔터베리는 어떻게 당대 최고의 순례지가 되었을까.

 

캔터베리 대성당의 대주교였던 토머스 베켓은 1170년에 헨리 2세의 측근이었던 '4인의 기사들'에 의해 살해된다. 국왕의 권력과 교회 권력 사이에 빚어진 극심한 갈등 때문에 결국 토머스 대주교가 국왕에 의해 살해된 것이었다. 그가 죽자, 많은 사람들이 제단 위로 승천하는 기적을 보았고, 교황은 그를 성인으로 시성한다. 훗날, 대주교가 헨리 2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로마는 국왕에게 캔터베리로 순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국왕은 회개자의 옷을 걸치고 맨발로 순례를 떠나 캔터베리 대성당에 모인 모든 주교들로부터 채찍의 형벌을 받으며 공개적으로 참회한다. 그후 모든 영국 군주들은 토머스의 무덤으로 순례를 하게 되고, 토머스 성인은 영국 최고의 성인이 된다.

 

초서가 살던 시대의 캔터베리는 로마나 예루살렘 혹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못지 않게 최고의 순례지였다. 그러니 런던에서 대략 56 마일 정도 떨어진 캔터베리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은 쉽게 구경할 수 있었고, 그들은 온통 구덩이가 패이고 수레바퀴 자국으로 가득한 질퍽한 길을 말이나 나귀를 타고, 혹은 걸어서 순례에 나섰다. 물론 그들은 도중에 수많은 거지와 사기꾼들과 싸워야 했고, 가짜 수도사들이나 창녀나 구경꾼들한테도 시달렸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레 무리를 지어 함께 순례에 나서기도 했다.

 

초서가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화자로 등장시켜 제각기 서로 다른 독특한 이야기를 펼치는 이유 또한 영국의 방방곡곡에서 모인 순례자들이 런던 근교 서더크의 타바드 여관에 모여 다함께 무리를 지어 순례를 떠난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인 순례자들은 모두 33명에 이르렀고, 이 속에는 작가인 초서와 타바드 여관 주인까지도 포함된다. 그들은 머나먼 순례길을 떠나기에 앞서 흥미로운 내기를 한다. 순례를 떠나 목적지인 캔터베리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동안 각자 두 가지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자는 것이다. 순례 여행이 따분하지 않고 훨씬 더 재미있도록. 물론 그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에게는 모두가 크게 한 턱 쏘기로 합의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순례자들의 '길 위의 이야기'가 바로 『캔터베리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작가인 초서의 이야기를 포함하더라도 모두 24편에 불과(?)하므로 당초의 웅대한 계획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미완성작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화자들은 순례를 가는 길에 두 가지, 오는 길에 두 가지씩, 모두 네 가지의 이야기를 하기로 약속했고, 실제로 당초의 계획대로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작가가 오래도록 살았더라면 이 이야기는 무려 128개에 이르는 실로 방대한 이야기가 될 뻔했다.(32명×4개씩=128개)

 

당초 계획의 1/5에 불과한 이야기만 담겼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초서가 등장시킨 화자들인 순례자들의 신분이나 옷차림만 하더라도 너무나 각양각색이고, 그들이 펼쳐내는 이야기 가운데는 지루한 설교조의 <본당신부의 이야기> 정도만 빼놓고는 모두 흥미롭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모인 이 순례자들은 영국의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사람들이다. 가령 배스의 여인은 서머싯셔, 학생은 옥스퍼드, 청지기는 노퍽, 요리사는 런던, 소환리는 링컨셔, 선장은 데번셔 출신이다. 이렇게 출신 지역이 다르다는 것 이외에도, 이 순례자들의 사회적 신분 역시 각각이다. 똥통을 수없이 나르는 농부의 초라한 행색은 기사의 위대한 업적과 대비된다. 또한 왕 앞에서조차 모자를 벗지 않는 최고 변호사는 신원이 의심스러운 요리사와 함께 간다. 세련되기 그지 없는 수녀원장은 거칠기 짝이 없는 방앗간 주인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모법적인 본당신부는 뻔뻔스런 면죄사와 대비된다. 서생의 지식은 무식하기 그지없는 사회자와 대조를 이룬다.(648∼649쪽)

 

 -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작품 해설> 중에서 

 

초서는 중세를 대표하는 천재 시인인 단테에서 발견되는 엄청난 깊이와 비통함과 강렬함, 방대한 학식과 복잡한 상상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또한 인정과 유머도 많았고, 인간의 약점을 재빨리 간파하면서도 동시에 관용하는 부드러운 시선을 가졌다. 또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재주가 탁월한 작가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중세에 캔터베리로 순례를 떠난 여행객들이 우리의 옷깃을 붙들고 바로 곁에서 들려주는 듯한 온갖 흥미진진한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접할 수 있었겠는가.

 

몹시도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를 지금도 찾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나 우리나 결국 똑같은 인간임을 새삼 깨닫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사는 모습이 세월의 간극뿐 아니라 삶의 터전과 언어와 종교와 관습마저 완전히 다른 경우에도 그 본질은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즐겁다. 그런 이야기가 독특한 환경에 처한 독특한 신분의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건 더더욱 흥미롭다. 14세기의 영국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인간의 삶에 보편적으로 내재된 지극히 자연스런 욕망들, 가령 결혼생활에서의 부부간의 주도권 싸움이나 재산 다툼이나 성욕(性慾) 때문에 빚어지는 온갖 헤프닝들을 아주 천연덕스럽게 드러내 놓는다. 때로는 영국판 고금소총(古今笑叢)을 엿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음탕하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얘기들도 가득하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아쉬움 한 가지는 '운문 소설이 지녔던 묘미'를 맛볼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캔터베리 이야기』에 깔린 어조가 '언어의 아이러니'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까지 알고 나면 아쉬움이 더욱 커진다. 어쩌면, 영어라는 언어가 몹시도 원시적인 단계에 머물던 무렵에 천재 시인이 온갖 다양한 방식과 기교를 통해 구사했던 '언어의 아이러니'를 산문으로 번역된 한글 문장에서 맛보려는 욕심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딱딱한 산문으로 번역된 부분을 우연히 맞닥뜨린 '운문 번역'으로 다시 읽어 보니 그런 느낌이 더했다. 그 부분을 덧붙임으로써 '운율이 없는 번역'에 대한 아쉬움과 '언어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본다.

 

4월의 감미로운 빗줄기가
3월의 건조함을 속속들이 꿰뚫고,
모든 줄기가 그 생명력의 물기에 흥건히 적시어지고
그리하여 꽃들이 피어나고,
서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西風)은 그의 달콤한 입김으로
들녘과 작은 숲의 연한 가지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아직 이른 태양은 숫양궁(宮)의 반 여정을 지났을 뿐이며,
자연이 그들의 가슴에 춘심(春心)을 자극하여
뜬 눈으로 온 밤을 지새운 작은 새들은
애욕스런 노래소리를 쉴새없이 지저귄다.
이 때 사람들은 순례를 염원하게 된다.

 

 -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전체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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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14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서가 세익스피어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그 메시지만 기억하네요 초서 이야기하면 일화가 생각나는데, 미문학사였던가 암튼 그랬는데, 강의 첫날 어디서 많이 본 분이 들어오시는 겁니다 알고보니 고등학교때 지리를 가르친 선생님이신겁니다 그분이 수업시간에 박학다식하게 딴 이야길 많이하셔서 참 재미있었는데 그분이 교사를 그만두고 교수가 되신거예요 초서의 <캔터배리 이야기>가 나오면 그 교수님이 생각나네요 ㅎㅎ

oren 2018-11-14 10:19   좋아요 2 | URL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그런 기막힌 사연이 연결되는 일도 있군요. ㅎㅎ
저도 문학쪽은 아니지만, 엇비슷한 경험이 하나 있긴 합니다. 저도 대학에 다닐때 일이었죠. 군복무를 위해 3년간 휴학했다가 다시 복학 후 대학 4학년때 전공 과목 하나를 들으러 강의실 맨 앞자리 교탁 앞에 앉아 있다가 깜놀한 사건이죠. 강의가 시작될 무렵 고개를 들었더니 강의를 맡으신 분이 저랑 1학년 2학기때 같은 방을 함께 썼던 룸메이트 선배시더군요.(그 분은 경영학과에 다녔던 복학생 4학년 과선배였고, 졸업을 앞둔 무렵에 명문 대학원에 합격한 것까지만 알고 있었죠.) ˝아, 여러분, 잠깐만~˝ 하고는 둘이서 복도로 나가서 짧은 대화를 나누고 다시 들어와서 강의를 시작했더랬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