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8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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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1809∼1849)

 

포는 아주 오래 전에 활동했던 작가였지만, 그의 작품을 읽으면 옛날 사람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런 느낌을 주는 작가는 아주 드물다. 그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천재였다.

 

그의 생몰연대를 살펴 보면 놀라운 사실이 두 가지나 한꺼번에 발견된다. 하나는 그가 태어난 때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20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아주 젋어서 삶을 마감했다는 점이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대략이나마 살펴 보면 그가 얼마만큼 과거의 인물이었는지 더욱 뚜렷해진다. 그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이제 막 독립하여 새로운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져나가던 시절을 살았다. 포와 동시대에 활약한 미국의 작가라고 해봐야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 너새니얼 호손(1804∼1864), 롱펠로우(1807∼1882) 정도다. 포는 바로 그런 때에 활동했고, 평생을 불운에 시달린 끝에 일찍 죽었고, 늘상 비주류 작가로 활동했다.

 

그에게는 추리소설의 창시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도 따라 붙는데, 그보다 세 살 아래인(!) 찰스 디킨스(1812∼1870)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화는 특히 흥미롭다. 그 영국 소설가가 연재 중이던 작품의 결말을 포가 너무나 정확하게 예측해서 디킨스를 경탄에 빠트렸던 것이다. 디킨스 또한 추리 소설에 대해서라면 대가다운 솜씨를 지닌 작가였는데, 포가 디킨스의 구상을 훤히 꿰뚫어 보았던 셈이다.(디킨스의 미완성 유작인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는 아직도 추리소설 세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기 때문이다. 디킨스의 몇몇 작품에서도 추리 소설적 요소가 강하게 풍긴다. 『위대한 유산』에서는 기괴하게 늙어가는 노파인 미스 헤비셤을 둘러싼 온갖 비밀들이 '죄수의 탈옥 사건'과 함께 복잡하게 맞물리며, 『황폐한 집』에서는 체스니 월드의 대저택에 사는 데들록 부인의 갑작스런 실종 사건이 '여주인공 에스더의 출생의 비밀'과 맞물려 숨가쁘게 진행된다.)

 

포의 부모는 유량극단의 배우였다. 그런데 포가 두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부모를 병으로 잃고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다. 자식이 없던 사업가인 앨런 부부의 가정에 입양되어 좋은 교육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포가 버지니아 대학교에 다닐 때 큰 빚을 졌고, 돈 문제로 양아버지와의 갈등을 겪은 끝에 의절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전형적인 남부 명문가의 아들로 자라온 그에게는 엄청난 시련이었다. 포는 대학 1학년을 중퇴하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입대하여 2년 만에 특무상사까지 진급한다. 이왕이면 장교로 근무하는 게 낫겠다싶어 전역한 후 이듬해에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지만 반 년 만에 근무 태만으로 처벌을 받고 퇴학당한다. 

 

오갈데 없던 포는 고향인 볼티모어로 찾아가 고모인 마리아 클렘의 집에서 지내면서 어린 여사촌 버지니아의 공부를 돌봐주는 한편 문필활동에 전념한다. 이 때 볼티모어의 잡지에 50달러 상금 단편 공모에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가 당선되면서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는 여러 문학 잡지의 편집자이자, 시인, 소설가, 평론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문인으로서의 명성을 떨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작품을 발표해도 기성 문단의 문인들과 관계가 편치 못했고(특히 기성문단의 대표 격인 롱펠로를 심하게 공격했다.), 잡지의 사주들과도 끊임없는 충돌을 빚었다.

 

1836년에 포는 고종 사촌 버지니아와 결혼한다. 그런데 결혼 당시 버지니아의 나이가 겨우 열세 살밖에 안 된 탓에 홋날 여러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버지니아와 사촌간인 것을 두고 근친상간이 아니냐는 혐의도 있었고, 아동성애자가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도 뒤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사촌간의 결혼은 흔한 일이었고, 사춘기 소녀들의 결혼도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비난은 지나치게 악의적이었던 듯하다. 애석하게도 포와 버지니아의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내가 오랜 투병 끝에 1847년 결핵으로 요절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마저 잃은 포는 가눌 수 없는 절망감과 심한 우울증과 알콜 중독 증세에 시달린 끝에 2년 후 열병으로 사망한다. 그의 인생은 가난, 절망, 비참, 알콜 등으로 점철되다가 갑자기 끝난 셈이었다.

 

그의 단편소설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시가 한 편 있다. 『애너벨 리』라는 시다.

 

아주 여러 해 전

바닷가 어느 왕국에

당신이 아는지도 모를 한 소녀가 살았지.

그녀의 이름은 애너벨 리ㅡ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일밖엔

소녀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았네.

 

바닷가 그 왕국에선

그녀도 어렸고 나도 어렸지만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지.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

 

그것이 이유였지. 오래전,

바닷가 이 왕국에선

구름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했네.

그래서 명문가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 갔지.

바닷가 왕국

무덤 속에 가두기 위해.

 

천상에서도 반쯤밖에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그녀와 날 시기했던 탓.

그렇지! 그것이 이유였지(바닷가 그 왕국 모든 사람들이 알 듯).

한밤중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그녀를 싸늘하게 하고

나의 애너벨 리를 숨지게 한 것은.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훨씬 강한 것

우리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도ㅡ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ㅡ

그래서 천상의 천사들도

바다 밑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내지는 못했네.

 

달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지 않으면 비치지 않네.

별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네.

그래서 나는 밤이 지새도록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곁에 누워만 있네.

바닷가 그곳 그녀의 무덤에서ㅡ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서.

 

 - 정규웅 번역, 애너벨 리

 

이 시는 포가 20대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어린 아내 버지니아 클렘을 추모하여 쓴 애도시이다. 죽은 아내는 15세나 연상인 자신과 결혼하여 내내 가난과 폐결핵으로 고생만 하다가 그의 곁을 떠났다. 더군다나 혹한 속에 담요도 없이 짚을 깐 침대에서 쓸쓸히. 그러니 그녀를 잃은 포의 심정이 얼마나 애절했겠는가. 바닷가 왕국, 천사들의 시기, 애너벨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없으면 달도 별도 뜨지 않는 캄캄한 세계 등으로 그려지는 '환상의 바닷가 세계'라도 떠올리지 않으면 그 시인은 단 하루도 더 살기 어려울 것 같은 절절함이 느껴지는 시다.

 

『애너벨 리』를 읽고 영감을 얻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자신의 대표작인 『롤리타』에서 애너벨을 부활시킨다. 롤리타를 만나기 전에 험버트가 '바닷가 공국'에서 만난 열세 살 소녀의 이름이 바로 애너벨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인생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 아득한 여름의 빛 속에서였을까. 아니면 그 아이를 향한 과도한 욕망은 나의 선천적 이상을 입증하는 최초의 사례에 지나지 않았을까? …… 그러나 마법 때문이든 운명 때문이든 간에 롤리타는 애너벨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애너벨의 죽음이 안겨준 충격 때문에 그 악몽 같은 여름날의 좌절감이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것이 연애를 가로막는 영구적인 장애물로 작용하는 바람에 청춘을 쓸쓸히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안다. …… 애너벨이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깃든 그녀의 마음을 느꼈다. 우리는 만나기 오래전부터 똑같은 꿈을 꾸었다. 서로의 기억을 비교해보니 신기하리만큼 유사점이 많았다. …… 아, 롤리타, 너도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었더라면!(24∼25쪽)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포의 단편소설들은 초자연적이면서도 동시에 기괴하거나 어쨌든 몹시 극단적이다. 절망감에 시달리고, 모순적이며, 자기분열적인 작가의 성격이 깊게 베어 있다. 작가 스스로 '도착적인 것(the perverse)'이라고 부른 비현실적이고 예외적인 소재를 추구했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 또한 크게 엇갈렸다. 아주 현대적이거나 심지어 탈현대적인 모든 것의 선구자라는 견해와, T. S. 엘리엇이 말한 대로 '재능이 탁월한 사춘기 이전 젊은이의 지성'을 가진 작가, 즉 미성숙한 작가로 보는 견해가 그것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작품들로는 이 책의 맨 앞에 수록된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나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이 특히 인상적이다. 북대서양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추락했다가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어부의 체험을 다룬 이야기는 셰익스피어가 폭풍우를 소재로 삼아 쓴 「템페스트」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산더미같은 폭풍우와 맞서 싸우는 영화 「퍼펙트 스톰」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거대한 소용돌이에 대한 너무 생생한 묘사 때문에 발끝이 저릴 정도다.

 

붉은 죽음이라는 무서운 역병을 피해 왕과 귀족들이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성에서 사는 동안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괴하고도 환상적인 이야기를 그린 「붉은 죽음의 가면극」은 공포 영화 「Goast Ship」을 떠올릴 정도로 소름이 돋고 무섭다.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포의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가장 심오하게 그린 작품은 「리지아」가 아닐까 싶다. 보기 드문 학식과 환상적인 미모와 음악적인 언어 등등 세상의 모든 남자가 바랄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춘 리지아를 아내로 둔 남자의 이야기다. 그토록 완벽한 아내와 더없이 행복하게 살던 그는 하루 아침에 그녀를 병으로 잃는다. 고귀한 가문 출신의 리지아는 아주 막대한 양의 재산을 남기고, 그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황량하고 외딴곳에 있는 사원을 구입한 뒤 거기서 칩거한다. 그는 음습하고 황량한 사원의 외관은 그대로 두지만 실내만큼은 왕궁을 능가할 만큼 호화롭게 꾸미고 나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숙녀를 '리지아의 후계자'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주인공은 리지아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 새로 맞은 아내를 혐오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끝내 병들어 죽는다. 수의를 입힌 로웨나 곁에 머무는 동안 남자는 리지아에 관한 수천의 기억에 빠져들고, 마침내 죽은 로웨나가 리지아로 환생하는 모습을 본다.

 

이제 그녀의 이마와 뺨과 목도 조금씩 빛나기 시작했다. 온기가 그녀의 몸 전체에 스며드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심장도 약하게 뛰었다. 아내가 살아났다. 나는 더욱 열정적으로 그녀를 소생시키는 일에 덤벼들었다. …… 그러다 갑자기 혈색이 가시고 맥박이 멈췄으며 입술은 죽은 자의 표정으로 되돌아 갔다. 곧 그녀의 몸 전체가 얼음장처럼 차디차게 식은 채 납빛을 띠었고, 경직 상태에 접어들어 팽팽한 윤곽을 잃어버리고 마치 여러 날 동안 무덤에 묻혔던 시체 같아 보였다.

 

 

인간의 자아에 대한 이중성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은 「어셔가의 몰락」과 「윌리엄 윌슨」을 꼽을 수 있다. 「어셔가의 몰락」은 익숙한 공포 소설의 원형에 가깝다. 컴컴하고 우중충하고 적막하던 어느 날 '나'는 어셔 저택을 찾아간다. 저택의 주인은 소년 시절 단짝 친구 중 하나였다. 황량하고 음침한 모습의 어셔 저택 안에는 오랜 병환에 시달리는 여동생 메들라인과 오빠인 로더릭 어셔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갑작스레 죽은 여동생을 지하 납골당에 매장하는 일을 도와 주는데, 며칠 후 폭풍이 휘몰아치는 한밤중에 둔중한 문이 열리고, 그 문밖에 수의를 입은 매들라인 어셔 양이 우뚝 서 있다. 그녀는 몸을 덜덜 떨면서 흔들거리다가 오빠 쪽으로 꽈당 넘어졌고, 그를 시체로 만들어버린다. 혼비백산한 '나'는 그 저택을 피해 도망쳐 나오는데, 그때까지 여전히 무섭게 몰아치는 폭풍우와 함께 어셔 가의 저택 건물도 지붕에서부터 지그재그를 그리며 쪼개지더니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윌리엄 윌슨」은 주인공의 이름인데, 그가 잉글랜드 지방의 고색창연한 마을에 자리잡은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똑같은 이름을 지닌 친구를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 학교에서 5년 동안이나 생활하는 동안 윌슨은 끊임없이 '나'를 쫓아다니며, '나'를 흉내내고, 대들고, 조소한다. 마침내 나는 그 아이를 견딜 수 없이 증오하게 되고, 그 학교를 떠난다. '나'는 이튼으로, 옥스퍼드로 학교를 옮겨 다니지만, 그는 어김없이 거기까지 찾아온다.

 

로마의 카니발 기간 동안 어느 공작의 궁전에서 개최된 가면무도회에 참석했을 때, '나'는 젊고 명랑하며 아름다운 공작 부인을 초조하게 찾는다. 바로 그 순간 어깨에 가벼운 손길이 느껴지고, '결코 잊을 수 없는 낮고도 지긋지긋한 속삭임'으로 다가온 윌슨과 마주친다. 분노에 휩싸인 '나'는 그 녀석을 옆방으로 끌고가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마침내 결투 끝에 그를 칼로 찔러 죽이고 보니, 가면과 외투를 벗은 그의 모습은 '나' 자신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 사람은 윌슨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으니,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동안 나는 마치 나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네가 이겼고, 내가 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너 또한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넌 세상과 천국과 희망에 대해 죽은 존재니까! 넌 여태까지 내 안에서 존재해 왔으니까. 너의 모습과 똑같은 내 모습을 보면서, 나를 죽임으로써 네가 얼마나 철저하게 너 스스로를 살해한 것인지 똑바로 보라고."

 

 

「배반의 심장」과 「검은 고양이」는 살인범의 도착적인 심리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배반의 심장」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무 이유도 없이 함께 사는 노인을 죽이고, 「검은 고양이」에 등장하는 주인공 역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양이를 죽이고, 나중에는 뜻하지 않게 자신의 아내까지 살해하는데,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범행이 발각되지 않을 게 가장 확실해진 바로 그 순간에 스스로 '범행의 발각'을 자초한다는 점에서 똑 닮았다.

 

「구덩이와 추」는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끔찍한 공포를 그린 작품인데, 사방이 벽으로 갇힌 캄캄한 지하 감옥에 갇힌 채 시시각각 조여오는 죽음의 공포와 처절하게 씨름하는 모습은 '악몽' 그 자체다. 지하 감옥의 가운데는 썩은 곰팡이의 고약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깊은 구덩이가 파져 있고, 죄수의 몸은 나무 틀처럼 생긴 것 위에 단단히 묶여 있다. 감옥의 천장에서는 시계추처럼 생긴 강철 칼날이 쉿 소리를 내며 자꾸만 아래로 내려온다.

 

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여하튼 그 장치가 아주 조금만 밑으로 내려와도, 날카롭게 번뜩거리던 그 도끼가 내 가슴을 후려칠 거라는 기대에 신경 마디마디가 다 떨려 왔다. 내 신경을 떨게 한 요인, 내 몸을 움츠리게 한 요인은 희망이었다. 사형선고를 받아 종교재판소의 지하 감옥에 갇힌 자에게 속삭이던 것은 희망 ㅡ 고문대 위에서조차 개가를 올리는 바로 그 희망 ㅡ 이었다.

 

 

끈에 묶인 사형수가 최후에 시도하는 탈출 방법은 차마 눈뜨고 지켜보기 어렵다. 주위에 들끓는 쥐들로 하여금 자신을 묶은 끈을 갉아먹을 수 있도록, 자신이 먹다 남긴 양념이 묻은 음식 조각들을 끈 위에 열심히 문질러대기 때문이다. 죄수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향해 덤벼드는 거칠고 대담한 쥐들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손가락이 박히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상은 적중한다. 수백 마리의 쥐가 음식이 발라진 결박끈 주위를 바삐 돌아다니고, 그 짐승들이 목 위에서 몸을 비틀고, 그것들의 차가운 입술이 내 입술을 더듬지만, 초인적인 인내 끝에 결박은 느슨해지고 마침내 죄수는 결박에서 탈출한다.

 

사형수가 겪는 극한의 공포 단계에서 난데없이 붉은 눈을 번뜩이는 '쥐'가 등장한다는 점은 몹시 흥미롭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이 작품이 조지 오웰의 『1984』에도 조금은(?)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반역 혐의로 체포된 주인공 윈스턴이 거듭되는 가혹한 고문에도 끝끝내 굴복하지 않다가 최후로 끌려간 곳은 악명 높은 '101호실'인데, 거기서 윈스턴이 마주친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바로 쥐였기 때문이다.

 

"자네의 꿈속에 자주 나타났던 공포의 순간을 기억하나? 자네 앞에는 시커먼 벽이 있었고, 짐승 우는 소리가 자네 귀에 들렸지. 벽 맞은편에 무시무시한 게 있었네. 그게 뭔지 자네는 알고 있었지만, 감히 그걸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 벽 맞은편에 뭐가 있었나? 바로 쥐들이 있었잖았나?"(397∼398쪽)

 

 - 조지 오웰, 『1984』 

 

 

극한의 공포와 절망감, 심연으로의 추락이나 가차없는 몰락, 음습함과 기괴함이 가득한 게 포의 작품들을 특징짓지만, 「도둑맞은 편지」에 이르면 그런 기분이 싹 가신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부터 뭔가 다르다. 더군다나 이 작품에서는 탐정의 원조인 뒤팽이 등장한다! 그가 바로 훗날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도둑맞은 편지」는 중편 길이의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과 함께 '추리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작품이다.

 

포의 문학적 특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 있는 여러 문학 장르에서 '개척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추리 소설이나 공포 소설뿐만 아니라 공상 과학 소설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쉽게 감지된다. 그의 작품에는 대체로 마음의 어두운 구석에 자리잡은 불가해한 심리들이 짙게 깔려 있다. 기괴하거나, 공포스럽거나, 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끝없는 추락에 내몰리거나, 혹은 괴기스럽게 복수하거나. 어찌 아니 그랬겠는가. 그의 인생 자체가 늘 불운의 연속이었으며, 그 누구보다 가난과 우울과 절망과 비참에 내몰렸으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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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8-09-22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점점 한 작품, 한 작가만 다루시는 게 아니라 그 깊이와 외연도 확장되어 가시네요.
어릴 때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 무서워 이불뒤집어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 못 이루던 여름밤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세상에 벽속에 시체라니요.ㄷㄷㄷ
이 끔찍한 상상은 <수사반장>의 벽장속의 귀뚜라미 시계로 이어지며 제 어린시절 불면을 만들어냈었죠.;;;;
수사반장의 그 에피소드는 대강 이렇습니다. 주택 공사장 인부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그 중 한명이 실종됩니다. 살해혐의는 충분한데 시체가 없죠. 시간은 흐르고 집은 완공되어 입주합니다. 얼마 뒤 신고가 들어옵니다. 벽쪽에서 자꾸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린다고요. ...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저 벽 너머의 공포를 항상 상상하게 해준 포였습니다.
쓰신 내용 나중에 다시 천천히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짬 내어 들어와 대략적으로 읽었네요.
추석 연휴 평안히 보내십시오~

oren 2018-09-23 15:31   좋아요 0 | URL
한동안 웅편거작들을 꽉 붙잡고 오랫동안 거기에 탐닉하는 재미를 붙여왔는데, 최근에 몇몇 작가들의 단편들을 읽어보니 나름대로 독특한 재미가 있더군요. 그런데, 포의 단편들은 너무나 최신의 작품들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주 현대적이면서도 기발한 상상들이 가득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 추리소설들과 괴기 소설들의 원형이 바로 포에게서 비롯되었구나 하는 느낌도 많이 들었고요.

가장 놀랐던 건 물론 포가 쓴 「애너벨 리」였어요. 나보코프의 작품 『롤리타』에 등장하는 그 열세 살 소녀가 다름아닌 포의 애너벨이었다니... 포의 단편이라도 읽지 않았더라면 그 둘 사이의 연관을 새까맣게 모를 뻔했어요. 포와 애너벨, 포와 나보코프, 험버트와 롤리타와 애너벨의 연관 등에 얽힌 사연들을 찬찬히 음미하면서 『롤리타』를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치솟았지만, 꾹꾹 눌러 참고 있습니다.^^

생매장 이야기는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아몬티야도 술통」 등등에 거듭 등장해서 나중엔 별로 놀랍지도 않던데, 아주 어릴 적에 일찌감치 그런 작품들을 읽고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하기 어려운 남모를 공포에 떨었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어릴 때 들었던 귀신 이야기는 단 한 번만 들어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으니까요. 저는 어릴 적에 살았던 고향의 종갓집 연못 못둑에 근사하게 자리잡고 있는 수백 년 수령의 소나무 위를 배회했다는 ‘하얀 상복의 귀신 이야기‘를 듣고, 그 소나무 아래를 지나칠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지나다녔는지 모른답니다.(물론 그 소나무는 아직도 그대로 서 있지요.) 특히나 깜깜한 밤에 홀로 그 소나무 아래를 지나칠 때면 간이 콩알만 해져서 진땀이 빠작빠작 날 정도였지요. 뭐, 지금은 그 이야기가 언제 존재하기나 했었나 싶을 정도가 되었지만요.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새 30년도 훌쩍 지났으니까요.

페크(pek0501) 2018-09-30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깊고 넓음의 독서에 대하여 존경하지 않을 수 없네요. 님의 글을 보면 늘 자극을 받게 되고 많이 배우게 됩니다.

알라딘 메인에서 책을 살펴보다가 님의 페이퍼를 발견하여 꼼꼼히 읽고 책을 구입한 경험이 몇 번 있었습니다. 독서의 방향을 제시 받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기회가 되어 말씀드립니다. -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18-10-01 00:24   좋아요 2 | URL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아주 다양한 생각들이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하고, 구름처럼 빠르게 휙휙 스쳐가기도 하는 듯해요. 그런 생각들을 제때에 얼마쯤이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다시는 그 생각들을 영영 되살리기 힘들 때도 많은 것 같고요. 책을 읽고 나서 다시금 책 내용을 곰곰 되짚어 보고, 어느새 가물가물 사라지기 시작하는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붙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해봐야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기도 하고요. 리뷰나 페이퍼로 정리하지 않으면 그런 기회는 영영 사라질 때가 아주 많으니까요.그래서 때로는 숙제하는 듯한 무거운 기분이 들더라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글로 차분히 정리해 보려고 끙끙거린답니다. 그런 글들이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옆가지로 뻗어나가더라도 일부러 내버려 두기도 하고요.

어떤 책이든 그걸 다 읽고 난 직후의 아주 생생한 느낌이나 생각들은 너무나 증발하기 쉬운 얄미운 속성들을 지닌 듯해요. ‘나중에 적당한 시간이 나면 글로 한번 정리해 봐야지 …… ‘ 라는 생각 때문에 정작 독후감을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만 책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돌이켜 보면 속상할 때도 많고요. 그래서 이런 글이라도 남기고 나면 괜한 안도감이 들 때도 있답니다. 나중에라도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느낌들을 되살펴 볼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 제가 받았던 느낌을 전달해 드릴 수도 있고요. 아무튼 단 한 번의 작업으로 꽤나 먼 미래까지 무언가가 계속 연장되는 효과를 얻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인 듯해요.^^

늘해랑 2019-01-0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동감하네요. 저또한 항상 좋은 책을 읽고 나중에 잘 정리해야지 하면서 놓쳤던 일이 매무 많았거든요ㅠㅠ
근데 이 글을 보고 다시금 그때그때 후회하지않고 해야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의 고민이 혼자만 생각했던것이 아니라는게 느껴져서 위로받고 갑니다.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ㅋㅋ

oren 2019-01-04 16:34   좋아요 0 | URL
네.. 제 글에 공감해 주시고, 댓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