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 단정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으로 들릴 수 있지만 개인적인 의견이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기 검열에 대한 부분은 사실 저의 이야기 입니다.

오늘날 지식인 사회의 정치권에 대한 발언의 가장 일반적인 논조는 "양비론"이다. 우리 나라의 정치 권력이 부패하고 무능한 탓도 크겠지만 언제나 정치 권력만 그렇게 무참하게 두들겨 맞는 것은 결코 공평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 비판 받을 영역이 어디 정치권 뿐인가? 지식 권력, 자본 권력, 언론 권력들의 전횡과 횡포는 정치 권력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있었던 사건 하나가 그 비근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집권 말기 내각을 총괄할 총리지명자로 결정 되었으나 국회에서 인준안이 부결되고 말았던 국내 최초의 여성 총리 서리 장상 씨가 있었다. 물론 장상 씨의 총리 인준 부결은 여성에 대한 정치권의 편견과 폄하가 더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인사 청문회에서 드러난 장상 씨의 도덕성 문제는 서민들의 일반 감정을 거스르기에도 충분했다. 학계, 지식계에서 많은 업적과 존경을 받아 오던 인물이었으나 정치권의 도덕성 검증에서 낙제한 셈이다. 그 뒤를 이어 총리 지명되었던 장대환 씨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언론인이자 기업인이었던 장대환 씨도 역시 도덕적 검증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사건은 우리 나라 상류층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나라당의 딴지걸기도 큰 몫을 차지했지만, 이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고위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학계나, 언론계, 경제계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기준과 정보가 유권자들에게도 인지되어 선거에서도 크게 반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기고하는 지식인들은 왜 그다지도 정치권에 대해서 비판 일색이어야 할까? 아마도 그것은 섣부른 칭찬과 지지가 불러 올 수 있는 "당파성"이라는 딱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적으로는 분명히 조금이라도 더 선호하고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히 이를 은폐하며 자신만이 고결한 사람인양 모든 정치 세력들에게 호통을 친다.(당파성을 숨긴채 공평한 척 하면서 자신의 지지 세력에 이로운 주장을 하기도 한다.) 칭찬은 본전 찾기도 힘들어 보이지만 비판은 동의와 호응을 얻기에도 한결 쉬워 보인다.

비단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것 같다. 나 자신을 필두로 하여 정치성을 띈 네티즌들이나 블로거들도 이러한 자기 검열의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섣불리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의사 표시와 지지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숨겨진 마음을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더욱 가혹한 비판으로 갈음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라 할지라도 비판할 건덕지가 발견되었을 때 가차없이 비판의 도마위에 올린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서 자신의 공정성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 대해서도 비판의 각을 느슨하게 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공평 무사한 태도인가!" 라고 자신에게 반문하고 있지는 않은지.

완전 무결한 정치 권력은 없다. 내가 어떤 정치 세력이나 정당을 지지한다라고 밝혔을 때 무수히 쏟아지는 해당 정치 세력이나 정당에 대한 비난이 두려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사 표명은 "빠돌이"라는 딱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자신의 당파성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편견과 혐오는 정당한 지지 논리와 이성적인 근거를 뒤덮는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와 칭찬이 부끄럽지 않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지지 세력을 공표할 수 있을 때 이 땅의 정치 문화는 더욱 발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시민과 정치권 모두의 공통된 과제이다.

유권자의 모호한 정치색과 지지세력보다 몇배나 많은 부동층은 정치권을 더욱 혼탁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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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19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견과 혐오는 정당한 지지 논리와 이성적인 근거를 뒤덮는다....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고 여겨요. 자신이 확신하고 있다는 일이 다른이에게는 편견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거든요..무수히 많은 벽 앞에서 벽의 정체를 밝히기도 전에 무너지고 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지난 몇 일 간 나름대로 비극적이었답니다. 사는게 그렇더군요...그건 그렇고 오늘 님의 글은 그 어느때보다 핵심이 잘 보이는 멋진 글입니다.


부리 2004-11-19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라 할지라도 비판할 건덕지가 발견되었을 때 가차없이 비판의 도마위에 올린다"라는 대목은 제게도 정확히 들어맞네요. 저도 공정한 척 하려고 자주 그러거든요.

oldhand 2004-11-19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여우님 말씀대로 편견은 정말 인류의 무서운 적이지요. 여우님이 벽 앞에서 무너지신다니요. 그럼 저같은 초절정 의지박약 인간은 어쩌라고요. T-T 그리고 지나친 칭찬을 해 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사와요.
부리님/공정한 척 하려고 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에서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을 늦춰서는 안되겠지요. 부리님은 잘 하시면서. ^^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부리님보다 여우님이 한발 빠르셨네요. 항상 부리님 밑에서 정신없어 하시더니. 하핫.

로드무비 2004-11-19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알라딘 서재에서 어느 분이 알라딘의 폭력성 운운하면서 노무현이나 열린우리당, 민노당 지지자가 많은 알라딘 서재의 분위기에 유감을 표하는 걸 봤거든요.

이거 참 민감한 문제구나 했습니다.

무서웠어요. 그분......'폭력'이라고까지 표현하시니!


oldhand 2004-11-1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참 사이좋게 지내다가 갑자기 상대방의 정치색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순간 왠지 시선이 달라지는 경험을 제 자신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적대적인 정치 상황과 망국병 중 하나인 지역감정 등이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것이 겠지요. 상식이 통하는 선에서 얼마든지 건전하게 토론할 수 있을 텐데, 서로 흥분부터 하는 경향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하얀마녀 2004-11-1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어려운 주제를 이렇게 잘 쓰시다니. 저로선 당분간은 꿈도 못 꿀 일입니다. 당분간이란 기간도 얼마나 될 지... 흐흐흐.

oldhand 2004-11-19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 교수의 평소 주장과 중첩되는 내용이 많은걸요 뭐. 마녀님의 글이야 말로 제가 모범으로 삼는 멋진 글입니다.
 
드래건 살인사건 - 파일로 반스 미스터리 3
S.S. 반 다인 지음, 이정임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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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반 다인은 추리소설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다인은 적어도 우리 나라에선 별로 인기가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오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것은 반 다인의 시종일관 변함 없는 극명한 작품 스타일 탓일 가능성이 크다.

반 다인은 포와 도일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이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동일하다고 말해도 무방할 만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탐정과 그 일당들(지방 검사, 형사 부장 등)의 성격은 놀랄만큼 정형적이고 평면적이다. 그리고 모든 신경을 사건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 그리고 해결에 쏟아 붓는다. 정통파 중의 정통파라고 할만 하다. 심지어는 매 사건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불가해하고 사악한...' 어쩌고 하는 작품 속 화자인 반 다인의 클리셰 마저도 도일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웃기려고 매 번 그러는것 같지도 않으니, 어찌보면 반 다인은 되게 귀여운 면이 있는것 같기도 하다.

본 작품인 <드래건 살인사건>은 <벤슨 살인사건> 이래 반 다인의 7번째 작품이자 전기 6작품과 후기 6작품으로 나뉘는 반 다인의 작품 목록 중 후기 첫 작품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지금은 구하기가 힘들어져 버린 <케닐>을 제외하고 <가든>을 먼저 읽은 나의 7번째 반 다인과의 만남이다.

반 다인 본인이 주장한 추리 소설 작가는 6편 정도의 장편이 창작의 한계라는 말을 뒷받침 하듯 평단과 독자의 평가도 후기 6작품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후기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는 <가든 살인사건> 마저도 전반기 6작품의 평균 수준 정도에 지나지 않는 점을 볼 때 일반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반 다인의 창작 한계는 6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드래건 살인사건>은 마치 딕슨 카의 소설을 보는 듯 기괴하고 음습한 분위기와 오컬트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소설의 작가는 다름아닌 반 다인. 소설의 분위기는 "메이드 인 딕슨 카"와는 전혀 다르다. 시종일관 냉철하고 흔들리지 않는 반스가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이상 <화형 법정>같은 딕슨 카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는 결코 나올래야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드라이한 분위기가 반 다인의 특징이자 매력 아닐까.
<가든 살인사건>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살인의 동기가 너무나 빈약한 것이 불만이고, 등장 인물들의 비중이 너무 편중되어 있어서 소설의 균형이 미묘하게 깨진것 같아 조금 아쉽다. 반스의 끝없는 장광설이 사건과는 조금 겉도는 느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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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지만, 마크햄(인지 매컴인지)의 지칠줄 모르는 반스에 대한 불평과 항의는 이 정도에 이르면 독자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요소로 쓰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찌 그렇게 매번 똑같은 대사를 읊을 수 있을까! 마크햄의 불평을 보면서 나는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_-;

두번째 사족. 그래도 반 다인이 있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엘러리 퀸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그러기에 반 다인은 이래 저래 개인적으로 내게 소중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S.S. 반 다인과 J.J. 맥은 사실 조금 심한 모방 아닌가? 반 다인이 없었다면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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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11-18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다인의 작품은 하나 밖에 못 읽어봤습니다. 테리어종 강아지가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작품이었는데... 어릴 때 읽은 거라 생각이 안 나네요. 옛손님도 엘러리 퀸을 좋아하신다니 저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

oldhand 2004-11-18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도 퀸 팬이셨군요? 이야아.. 반갑습니다.
테리어 종 강아지가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작품이 바로 제가 아직 읽지 못한 <케닐 살인사건>이랍니다. 어디선가 다시 나와줄 때도 됐는데 말이죠. 흑흑.

비츠로 2005-02-1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아동용 팬더추리문고로 읽었는데 이번에 완역본이 나와서 저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네요... 올드핸드님의 리뷰를 쭉 읽고 있는데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oldhand 2005-02-21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비츠로님 ^^ 반다인의 소설은 선뜻 손이 가지는 않지만, 잡으면 그런대로 잘 읽히는 것 같아요. 비츠로님도 되게 바쁘신 것 같은데, 참 책을 앞에 두고 읽을 시간이 없다는것 만큼 안타까운 일도 별로 없는듯 합니다. 그리고 제 리뷰는 절대로.. 대단치 않습니다. 과찬이셔요. ^^

poirot 2005-11-0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컴의 클리셰는 웃기려고 쓴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_-

oldhand 2005-05-09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와로님 그렇죠? 역시... 웃기려고 쓴게 분명하다니까요. 그리고 그런 그의 의도는 훌륭하게도 적중하고 있지요. -_-;;
 

나의 할머니는 96년 3월 초에 돌아가셨다.
여든 다섯에 돌아가셨으니 천수를 다 누리고 돌아가신 거라고 생각한다.

형, 누나가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시기에 어머니가 집을 비우고 서울에 며칠 다니러 가실 때면 고등학생이던 나의 새벽 등교길에 점심, 저녁 도시락을 싸주는 일은 당시 여든을 바라보던 할머니의 몫이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정정하셨고 활달하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들은 할머니의 장수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진학을 위해 나도 고향집을 떠나고, 할머니를 뵙는 일은 명절이나 방학에 집에 내려 올 때 뿐이었다. 그나마 집에 잘 붙어 있지도 않는 막내 손자는 할머니의 말 동무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바쁘고 힘든 1년이 정신없이 지나고 96년 초 설을 맞이해 집에 내려왔을 때 할머니는 자리에 누워 계셨다. 지난 가을 추석때 까지도 정정하셨는데 치매 증상이 조금 보이기 시작하시더니 이내 걷기에도 힘든 몸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말씀도 잘 못하고, 나를, 우리 형제들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 아버지만이 할머니의 시선 안에 들어올 뿐이었다. 두 돌이 채 안된 조카를 데리고 누나가 집에 들렀다. 우리는 그저 쓸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할머니 곁에 앉아 있었다. 누나는 눈물짓고 있었지만 아직 철없는 조카는 무엇이 좋은 지 헤헤 거리며 할머니 주위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 때, 우리 형제들도 알아 보지 못하던 할머니가 누우신 채 누나의 아이를 바라보며 웃으셨다. 그리고 조카의 손을 잡고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세대의 교체로구나. 흐르는 강물처럼 할머니의 세상은 이제 조카의 세상으로 흘러 가는구나. 한 세대가 사그라지고 또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구나. 사람의 사는 이치와 그 흘러감이 명징하게 내 눈앞에 보여지는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순간을 맞이 할 날이 있으리라. 그것은 이별의 순간일까. 전달의 자리일까.

할머니는 한 달 후에 돌아가셨고, 조카는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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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1-16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여 년 전 일이군요.

세대 교체의 장면을 보는 일은 묘한 느낌을 줍니다.

잘 읽었습니다.


하얀마녀 2004-11-1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할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죠. 그때 누워계시던 할머니가 생각나서 눈시울이 뜨거워질라 그러네요. 어찌 그렇게 잘 쓰셨나요. ^^

oldhand 2004-11-1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세월이 참 빨리 흘러가지요?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더 그럴 것 같아요
하얀마녀님/언제나 제게 과한 칭찬을 주시는 마녀님. 감사합니다.

파란여우 2004-11-16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오래전 돌아가신 늙은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는군요. 슬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가셨습니다.

oldhand 2004-11-17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부모님과의 이별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저는 사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답니다. 이제 그다지 많은 시간이 남은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새벽별님/이야.. 알라딘의 큰형님(흠칫)이신 새벽별님의 존함을 제 서재에서도 보게 되는군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금 부터 6-7년 전 풋풋(으음.. -_-;)했던 20대 시절, 퇴근 후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던 때였다. 지하철이 가장 한산한 시간 중 하나인 8시에서 9시 사이. 드문 드문 빈자리들이 있었고, 거의 대부분의 승객들이 앉아서 가고 있었던 듯 하다.

문득, 맞은 편 앞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졸고 있는 아저씨 한 명이 내 시야로 파고 들어왔다.

나이는 30대 중후반쯤? 풀어 헤쳐 느슨해진 넥타이, 구깃구깃한 와이셔츠와 상의, 주름이 거의 풀려버린 양복 바지, 약간 부스스한 머리.

퇴근길에 소주라도 한 잔 걸친 것일까? 아니면 그저 피곤해서 졸고 있는지도. 집에서는 아직 철없는 애들과 아내가 기다리고 있겠지.

사고치지 않고 평범하고 무탈하게 산다면, 나도 10년 후에 저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10년 후 미래의 내 모습이 바로 맞은편에서 나를 손짓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이 경쟁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고 잘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6-7년의 세월이 지나 어느덧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되어버린 지금.
그 사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만 4년여가 되어 간다. 근래에는 결혼이라는 중대한 인생사를 하나 치러내서 명명백백한 아저씨가 되었다.

지금 내 모습은 그 때 그 지하철에서 바라보았던 나의 미래처럼 예상했던 그 모습일까? 아니면 다소나마 빗겨나 있을까?

삶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동안, 나, 잘 살아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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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1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쏘우...오, 히사시브리 데스네...^^ 세종대왕님께 잠시 죄송...^^;;;

oldhand 2004-11-1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불문한 저는 "히사시브리데스"가 뭔지 지식 검색을 찾아 봤더랩니다. -_-a
아는 거라고는 "오겡끼데스"밖엔 없다니깐요. 무식, 무식. >_<

날개 2004-11-1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겡끼데스까도 모릅니다..-.-;; 울트라 초무식- 흑흑~

oldhand 2004-11-1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오겡끼데스까"는 이와이 슈운지의 영화 <러브레터>의 유명한 장면 때문에 알게 된것뿐이랍니다. 일본어 몰라도 먹고 사는데 큰 탈도 없잖아요? 그렇죠?

하얀마녀 2004-11-10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 <러브레터> 리뷰인 줄 알고 들어왔다죠. ^^

oldhand 2004-11-1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마녀님, 헷갈릴 법 합니다.

마태우스 2004-11-1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따시와 겡끼데스! 올드핸드님 멋진 분이세요!

oldhand 2004-11-11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처럼 멋진 사람이 되는게 제 목표랍니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7 - 완결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매이션 한 편 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것이다.
<미래소년 코난>을 끝으로 TV를 탈출한 하야오 감독의 작품 행적은 일본의 문화 콘텐츠들이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본국인 일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음성적인 경로를 통해 수많은 매니아들을 양산해왔다.

이렇듯 애니매이션에서는 세계적으로도 크게 인정을 받을만큼 일가를 이룬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그린 유일한 출판만화가 본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TV 만화를 그만둔 후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1984년 처음으로 발표한 극장판 애니매이션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던걸로 미루어 "나우시카"는 작가에게 아주 각별한 의미를 갖는 존재이리라 짐작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애니와 만화, 두 작품은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작품이다.

애니매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목록에서 초기작에 해당하며, 그의 초기 작품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지만, 인물의 설정과 모든 시놉시스들이 동일한 만화 <나우시카>는 10년이 넘는 연재기간이 말해 주듯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행로가 오롯이 담겨 있는 연대기적 작품인 것이다.

애니매이션은 모두 7권으로 구성된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초반 20%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애니매이션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인쇄매체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오랜 기간 연재를 하면서(중단과 연재를 무수히 반복했다고 한다) 변해가는 작가의 자연관과 미래관 등이 선명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만화 <나우시카>는 극장판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보여주었던 순수한 낙관주의보다 <원령공주>의 체념적이고 다소 비관적인 운명론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만화영화에서 신인류의 희망이자 구원자로서의 영웅이었던 나우시카는 비극적 신화의 구원받지 못할 불우한 영웅으로 그려진다.

애니매이션에서 아름답고 정갈한 색채로 덧입혀져있던 바람계곡은 거칠고 뭉툭한 연필화에 의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만화 <나우시카>는 결코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의 절망과 좌절, 끝없는 전쟁의 참혹함과 덧없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자연의 위대한 능력에 대한 진지한 묵시록이다.

그럼 인간은?
도태와 소멸만이 구원이고, 죽음과 희생만이 미래일 뿐인, 결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p.s. 불의의 사고로 책을 분실하고 나서 절판 상태의 이 책을 두고 시름시름 앓다가 재판이 나온김에 눈 딱감고 다시 샀더니, 이런!! 책값이 권당 1000원이나 올랐다. 바뀐것도 없는데. 소중한 책은 잘 간수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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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4-11-0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코믹스판이 애니매이션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예전 어릴적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자연을 보호하자"라는 구호가 이제는 정말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실천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사실 읽고 나면 좀 마음이 우울해지는 만화이긴 합니다. 여우님의 제 글에 대한 평가가 저를 화끈거리게 하네요. 과찬이십니다.

날개 2004-11-09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유명한 이 작품을 아직도 못봤습니다..ㅡ.ㅜ 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넘넘 보고 싶어지는군요..

oldhand 2004-11-0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개인적으로 아주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애니매이션을 보는 듯한 구도의 장면들은 역시 이 작가가 미야자키 하야오 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만화지만 왠지 만화영화같은 장면들..) 날개님도 기회가 되시면 좋은 감상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개인차이는 있겠지만요.

야클 2004-11-09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역시 리뷰高手의 역량이 느껴지는 古手님의 글이군요. 전에 국내에 개봉되기 한참전에 비됴가게 아가씨가 복사해준 비디오로 봤었는데 <원령공주>보다 재미있었다는 기억밖에 안나네요.

oldhand 2004-11-09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헛. 高手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진짜 고수분들이 보시면 웃겠습니다. 대개 영상매체보다는 인쇄매체가 주는 감동에 약한 편이라 만화 <나우시카>가 더 재밌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네요. 애니든, 코믹스든 명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얀마녀 2004-11-0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강력한 뽐뿌질... ^^

oldhand 2004-11-09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마녀님. 질러버리세욧. >_<

미완성 2004-11-1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진작에 해뒀는데...헤. 전 애니메이션 보고도 좀 놀랐었어요. 하야오의 초기작이라고는 하는데 이후의 작품들과는 너무나 색채가 달라서, '헉'하면서 봤었는데.
아, 아르미안의 네딸들 다 모은 다음 이 책도 생각해봐야겠군요. *.*

oldhand 2004-11-1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좀 다르긴 하네요. 그러고 보면 <토토로>나 <마녀 배달부 키키>류의 이야기도 있고 <원령 공주>, <나우시카>류의 이야기도 있고, 그 중간쯤 되는 <라퓨타>도 있구요. 만화는 애니보다 훨씬 '하드고어'하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