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 단정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으로 들릴 수 있지만 개인적인 의견이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기 검열에 대한 부분은 사실 저의 이야기 입니다.
오늘날 지식인 사회의 정치권에 대한 발언의 가장 일반적인 논조는 "양비론"이다. 우리 나라의 정치 권력이 부패하고 무능한 탓도 크겠지만 언제나 정치 권력만 그렇게 무참하게 두들겨 맞는 것은 결코 공평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 비판 받을 영역이 어디 정치권 뿐인가? 지식 권력, 자본 권력, 언론 권력들의 전횡과 횡포는 정치 권력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있었던 사건 하나가 그 비근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집권 말기 내각을 총괄할 총리지명자로 결정 되었으나 국회에서 인준안이 부결되고 말았던 국내 최초의 여성 총리 서리 장상 씨가 있었다. 물론 장상 씨의 총리 인준 부결은 여성에 대한 정치권의 편견과 폄하가 더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인사 청문회에서 드러난 장상 씨의 도덕성 문제는 서민들의 일반 감정을 거스르기에도 충분했다. 학계, 지식계에서 많은 업적과 존경을 받아 오던 인물이었으나 정치권의 도덕성 검증에서 낙제한 셈이다. 그 뒤를 이어 총리 지명되었던 장대환 씨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언론인이자 기업인이었던 장대환 씨도 역시 도덕적 검증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사건은 우리 나라 상류층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나라당의 딴지걸기도 큰 몫을 차지했지만, 이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고위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학계나, 언론계, 경제계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기준과 정보가 유권자들에게도 인지되어 선거에서도 크게 반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기고하는 지식인들은 왜 그다지도 정치권에 대해서 비판 일색이어야 할까? 아마도 그것은 섣부른 칭찬과 지지가 불러 올 수 있는 "당파성"이라는 딱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적으로는 분명히 조금이라도 더 선호하고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히 이를 은폐하며 자신만이 고결한 사람인양 모든 정치 세력들에게 호통을 친다.(당파성을 숨긴채 공평한 척 하면서 자신의 지지 세력에 이로운 주장을 하기도 한다.) 칭찬은 본전 찾기도 힘들어 보이지만 비판은 동의와 호응을 얻기에도 한결 쉬워 보인다.
비단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것 같다. 나 자신을 필두로 하여 정치성을 띈 네티즌들이나 블로거들도 이러한 자기 검열의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섣불리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의사 표시와 지지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숨겨진 마음을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더욱 가혹한 비판으로 갈음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라 할지라도 비판할 건덕지가 발견되었을 때 가차없이 비판의 도마위에 올린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서 자신의 공정성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 대해서도 비판의 각을 느슨하게 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공평 무사한 태도인가!" 라고 자신에게 반문하고 있지는 않은지.
완전 무결한 정치 권력은 없다. 내가 어떤 정치 세력이나 정당을 지지한다라고 밝혔을 때 무수히 쏟아지는 해당 정치 세력이나 정당에 대한 비난이 두려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사 표명은 "빠돌이"라는 딱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자신의 당파성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편견과 혐오는 정당한 지지 논리와 이성적인 근거를 뒤덮는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와 칭찬이 부끄럽지 않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지지 세력을 공표할 수 있을 때 이 땅의 정치 문화는 더욱 발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시민과 정치권 모두의 공통된 과제이다.
유권자의 모호한 정치색과 지지세력보다 몇배나 많은 부동층은 정치권을 더욱 혼탁하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