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비상용 소화 양동이처럼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다. 그 모습에 그 여자에 대한 내 관심이 싹 사라져 버렸다. 웃음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입을 벌리자 얼굴에 난 구멍만 봐도 충분했다. (p.147)


전 허가받은 사립탐정이고 그 일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외로운 늑대인 셈이죠. 미혼에 중년이고 부자도 아니지요. 감옥에 한 번 이상 갔다 와봤고 이혼 사건은 맡지 않습니다. 술과 여자와 체스, 그리고 그 밖에 몇 가지 것들을 좋아하죠. 경찰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친하게 지내는 경찰도 두엇 있습니다. 본토박이로 샌타로사에서 태어났고 양친은 돌아가셨으며 형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얻어맞고 쓰러진다고 해도 인생 끝난 듯이 충격받을 사람들은 없죠. 그런 일이야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고 요새는 어떤 일을 하든지 또는 아무 일도 안 해도 많은 이들이 당할 수 있는 일이니. (p.155)


그렇게 하여 사립탐정의 하루가 지나갔다. 정확히 전형적인 날은 아니었지만 아주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한 남자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이유를 아무도 알 수 없다. 부자가 될 수도 없고, 대부분 재미도 별로 없다. 때로는 얻어터지거나 총을 맞거나 감옥에 던져지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죽을 수도 있다. 두 달마다 한 번씩, 이 일을 그만두고 아직 머리가 흔들리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을 때 번듯한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면 문에서 버저가 울리고 대기실로 향하는 안쪽 문을 열면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여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슬픔, 약간의 돈을 안고 들어온다.
"들어오세요, 아무개 씨. 뭘 도와드릴까요?"
틀림없이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다.
(p.265)


나는 챈들러보다 로스 맥도널드의 소설을, 말로 보다는 루 아처를 더 좋아한다. (더쉴 해밋은 '논외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애드거 앨런 포가 '논외의 작가'이듯이)
그것은 내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추리소설의 기본적인 미덕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라는 장르에 대한 나의 다소 편협한 기본 시각에 따른 것이다.

챈들러의 소설을 읽다보면 늘쌍 내가 지금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전체적인 구조나 사건의 틀 보다는 미시적인 부분, 문장 하나 하나에 집중하게 하는 작풍과 매력적인 그의 문체 탓이다. 때로는 이런 점이 사건을 따라가는 독자를 힘겹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하우스에서 그의 사실상의 장편 전집(<플레이 백>이 제외되긴 했지만, 이 작품은 '외전' 취급을 받는다) 발간이라는 뜻 깊은 기획을 했을 때 무척 기뻐했다. 그래서 <안녕 내사랑>과 <기나긴 이별>을 각각 다른 판본으로 갖고 있었지만 시리즈 전체를 구입하게 되었다.

워낙 과작이었기 때문에 챈들러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6편의 장편 각각에서 필립 말로는 살아 숨쉬는 듯 하다. 지난 봄, 말로 시리즈 중 가장 힘겨웠던 <리틀 시스터>를 읽고 나서(근 한 달 가까이 붙들고 있었다) 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챈들러, 그리고 필립 말로와의 '기나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주 <기나긴 이별>을 읽었다. 이제는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새로운 장편 소설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챈들러와 필립 말로가 예전 보다 조금 더(어쩌면 아주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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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11-2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바쁘신가요? ^^

oldhand 2005-11-23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새는 아.주. 널널하답니다. 너무 널널해서 글 쓰는 부지런함을 떨기 힘든가봐요. -_-a 서재질은 왠지 적당히 바쁘고 타이트 할 때 열심히 하게 되는것 같아요. -_-a 언제나 문제는 이 놈의 게으름입지요.

물만두 2005-11-23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나긴 이별의 말로는 정말 좋아요. 저도 루 아처를 더 좋아합니다^^

oldhand 2005-11-23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나긴 이별에서의 말로가 어쩌면 가장 빈틈도 많고 인간적이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

하이드 2005-11-2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아, 올드핸드님 리뷰 읽기 전에 예습으로 챈들러 '기나긴 이별' 어여 읽어야겠어요. 저는 .. 팔코가 좋아요. ㅋㅋ

oldhand 2005-11-2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챈들러의 책에 리뷰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왠지 챈들러의 리뷰는 저에게 버거웠나 봐요. 기나긴 이별은 작심하고 한 번 써보려고 하고 있습니다만은.. 과연? ^-^

panda78 2005-11-2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루 아처를 훨씬 더 좋아했었는데, 북하우스판으로 다시 읽다보니 말로가 또 엄청 좋아진 거 있죠. ^^;;
지난 주에 리틀 시스터 읽었으니, 이제 남은 두 권 정도는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겠군요. ^^

oldhand 2005-11-2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은 원래 저랑 함께 아처 클럽 회원이셨잖아요. ^^ 근데 사실 아처는 소설 속에서 그다지 자아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 말로 보다는 훨씬 튀지 않는 캐릭터죠.
아니, 그런데 리틀 시스터를 읽었는데 두 권이 남으셨나요? 순서대로 안 읽으셨나 봐요. 호수의 여인이 남았나요?

파란여우 2005-11-23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널널하시면 자주 글 좀 올려 주세요. 어째 요새는 님의 스포가 좀 약해 지신 듯
콩주 사진도 안 올리고.

oldhand 2005-11-2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파란여우 님 죄송합니다 흑흑. 요새 제가 좀 약해지긴 했죠? 제 성향과 성격을 미루어 서재 폐인이 되기엔 애당초 글렀지만,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포스팅 하는것을 목표로 좀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데도 그게 잘 안되네요. 시간은 많은데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어제 국회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맘도 우울하고 착잡하고 그런데 여우님께서 너무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잘 봤습니다.
 
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0여 년 전 청소년들의 선망의 직업 1위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나 SF 소설 등에서 접하는 프로그래머의 모습과 개인용 컴퓨터(PC)의 본격적인 보급 등이 맞물려 일어났던 '기현상'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허울좋아 보이는 이름을 가진 직업의 실상이 어느정도 드러난 지금. 이제 우리는 '3D 업종 종사자' 취급을 받는다.

공돌이들(나 자신을 포함해서)은 흔히 '단순 무식 과격'의 모습으로 연상된다. 대학시절에도 과중한 과제와 시험에 치여살기 일쑤여서 '교양서적'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죽했으면 공대생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세가지가 "야 그 문제 풀었어?", "오~ 저 여자 죽인다", "에이 밥이나 먹으러 가자"라는 우스개 소리가 퍼졌을까.

그러나, 적어도 전자 계산, 혹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거나, IT 바닥에서 개발자(한때는 선망의 직업 1위였던!!)로 일하며 오늘도 날밤을 새고 있을 동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미스터리 소설을 발견했다. '이과계 작가'라는 별칭을 듣는 모리 히로시-국립대학의 건축학과 교수라 한다-의 <모든것은 F가 된다>가 바로 그것. 아주 전문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단 반가운 단어들이 소설속에 출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평소 책이라면 두툼한 User Manual이나 Programming Bible 등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가련한 우리 동업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신본격 미스터리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사회파 미스터리가 일본의 추리 소설계를 장악하고 있는 중에 "미스터리의 본류로 돌아가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신본격 미스터리는 이제는 전설적인 작품으로까지 평가받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시리즈>,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등 많은 걸작들을 배출했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도 넓게는 신본격의 범주에 포함된다.) 신본격의 기치를 내건 작품인 만큼 외딴 섬, 밀실 살인, 연속 살인, 천재적인 탐정 등 본격물의 흥취를 흠뻑 내포하고 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간결한 묘사 등으로 쉬이 잘 읽히는 소설이다. 밀실의 봉인이 풀리며 시체가 발견 되는 순간은 서스펜스를 생명으로 하는 미스터리 소설중에서도 보기 드문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다. 신본격의 소설들이 다소 그렇듯 평면적인 캐릭터나 단조로운 문체는 문학성을 중시하는 독자들에게 다소 불만일 수 있겠지만 불가능 범죄와 트릭, 그리고 명쾌한 해명에 집중한다면 좋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직업상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후반부의 소스 검색 장면도 아주 흥미로웠다. 탐정역을 맡은 사이카와 교수가 도무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 소녀 모에(소프트웨어에는 무지하다)보다 먼저 의미를 깨달아 가는 재미는 쏠쏠했다.

덧글 : 간혹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천재적인 프로그래머의 모습은 사실 지나친 과장이 많다. 그들은 노트북과 커피 혹은 담배만 있으면 전지전능해진다. 이 소설속의 마가타 시키 여사도 역시 그러한 범주아래에 있다. 물론 하늘이 내린 천재라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거대한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고 구현하는 일은 그리 만만한게 아니다. 개인의 능력이 그정도라면 마이크로소프트같은 회사는 잘 나가기는 커녕 남아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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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02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과장이죠^^

oldhand 2005-11-02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장이 좀 심해 혹자는 이소설을 SF 소설이다! 라고도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물만두 2005-11-0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첫 장면은 좀 그런면이 있었어요^^;;;

oldhand 2005-11-0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Kelly 님은 공돌이가 아니시잖아요. 걱정 걱정. -_-a

oldhand 2005-11-0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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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글은 은근히 인기가 많다.
나온지 4년이 넘은 그의 첫번째 칼럼집 <B급 좌파>는 소리소문 없이 18쇄인가를 넘어섰으며, 아직도 꾸준히 팔리는 듯 하다. 이 책은 출판사의 사정인지 어떤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 쇄"가 다 팔리고 나도 곧장 찍어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종종 품절 상태로 방치된다. 할인율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판매량은 사회과학이 외면 받는 우리나라 독서 시장에서 주목할 만 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은근한 인기는 순전히 그의 문장력과 그의 글이 보여주는 진솔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낸 그의 책 <나는 왜 불온한가>는 <B급 좌파>에서 보여주었던 다소 야들야들한 부분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그 자리를 온전하게 '날카로움'과 '거침없음'으로 대신하고 있다. (책의 디자인 마저도 온통 뾰족 뾰족하고 거칠고 날카로운 문양으로 그득하다.)

조선일보 반대운동 등에 투신하며 개혁파와 손을 잡기도 했던 그가 이제는 광야에 홀로 서서 중산층의 보신주의와 안온한 삶에 대한 애착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개혁주의자들과 시민운동 진영은 결코 "진보"와 동거할 수 없다는 그의 입장은 개혁주의자들의 집권 8년째를 지켜보면서 내린 나름의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가장 크게 느꼈을 감정은 아마도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B급 좌파>에서도 어느 정도 느꼈을 이러한 불편함은 이 책에서 한 층 업그레이드 되어 있다. 남이 보기에 그래도 제법 번듯한 직장과 넉넉하진 않지만 안정된 수입, 넓지는 않지만 제 한 몸 누일 수 있는 집,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는 마음을 가진 이 땅의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책의 독자들 중 다수를 차지할 개혁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중산층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대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에는 이미 늦어 버린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그들이 내 글을 제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두 가지 결심을 했었다. 하나는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 만큼 급진적인 글을 쓰는 것. 다른 하나는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남은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만드는 것.

그렇다. 당장 나 자신도 결국 알량한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도구로 이책을 샀던 것이 아닌가. 자본주의 체제가 극복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깨닫고 있지만, 어느새 나이가 들면서, 이 땅에서, 이 체제에서 제법 갖출 것 갖추고 살게 된 지금 "체제의 변혁", "혁명" 등의 단어는 젊은 시절의 이상을 나타내는 한 갖 레테르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저축하여 아파트 평수를 넓히기 희망하고, 자식에게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을 갖춰주기를 원하는 소박한 마음마저도 그의 글이 쏟아내는 이상과 비전들과는 엄청난 괴리감을 갖는다.

이쯤되면 독자들은 당연히 불편해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이 책은 개혁이 진보인 양 그저 절차적 민주주의와 일정 수준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만족하고 사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날리는 통렬한 비판이다. 그의 날선(위악적이기까지 한) 비판에 반성할지, 아니면 반발할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사족) 김규항의 글은 사실 해묵은 개혁과 진보 진영의 갈등을 헤집고 있다.
개혁 진영이 진보의 밥그릇을 부당하게 빼앗고 있다는 것이 그 갈등의 요지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대통령이 되기 전 시점에서 과거 20여년간 한국 정치의 딜레마였던 DJ라는 독특한 정치인과 군사 독재라는 특수한 정치 환경이 결합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비판적 지지 입장에 섰던 사람들과 DJ가 진보의 앞길을 도리어 방해하고 있다는 입장에 섰던 사람들. 비판적 지지를 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개혁 보수 진영에 편입하게 되었고, DJ를 비판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훗날 군사 독재의 본류에 해당하는 당에 입당하는 헤프닝도 있었기에, 그리고 그러한 군사 독재 세력들이 아직도 상당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있기에(강정구 교수 사건을 두고 이 정권을 "빨갱이"라 규정하는 세력이 아직도 엄연하다) 이 첨예한 논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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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1-01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 리뷰를 자세히는 읽지 않으려 했는데 저절로 읽히는 글을 쓰셨군요^^
사실 저는 김규항이라는 사람,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는 지라 어리둥절합니다.
좀 더 읽어보면 방향을 잡을 수 있겠지요.
추천했어요^^

2005-11-01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5-11-0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습니다. 문장력은 여전하시군요. ^^

oldhand 2005-11-0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 님 / 저도 반가워요. 흑흑. 앞으론 자주 오도록 하겠습니다. ^_^
서연사랑 님 / 네, 저도 처음 인사드립니다. 마을 여기저기에서 뵌적은 많았는데 제가 먼저 찾고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추리소설도 좋아하시죠? ^_^ 김규항의 글은 사실 이 책보다는 B급 좌파를 먼저 접하는게 좋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뭐 어차피 같은 사람이 쓴 책이니 그의 생각과 사상을 이해하기엔 무리는 없을것 같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속삭이신 님 / 이 좋은 말씀을 왜 속삭이셨을까요. 님의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읽었었답니다. ^_^ 글을 쓰는 지식인의 숙명과 실천의 문제, 이것도 아주 오래된 문제이죠. 쉬이 결론이 날수도 없구요.
하얀마녀 님 /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마녀 님 생각을 했었답니다. 정말로!
 

옛날 이야기 하나.

평소엔 소심하기 "서울역에 그지없는" 나는 가끔 엉뚱하게 냉큼 질러대는 일이 있다. 그 결과물의 하나가 바로 나의 첫 차. 96년 봄, 가족들에게 일언 반구의 언질도 없이 지인의 지인을 통해 구입했던 91년 형 중고 자동차. 아버지는 내가 차를 샀다는 사실을 1년이 지나서야 아셨다. 물론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으니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신차였을 무렵 "최진실"이라는 당대 최고의 광고 모델까지 동원되었던 잘나가던 모델인 "파란색 스쿠프"의 오너가 된 oldhand. 휘발유 값이 리터당 600원대 이던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다. 혹자는 자신의 생애 첫번째 자가용이라면 한밤중에라도 벌떡 일어나 고이 잘 있는지 나가서 확인을 하기도 하고 그런다지만, 게으르기로 치자면 또 한가닥 하는 나는 "차는 타고 다닐라고 있는거지 모시는게 아니야"라는 생활 철학을 실천했으며 나의 "애마(?)"는 그렇게 슬슬 전형적인 고물차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튼 채 정차해 있으면 시동 꺼지기, 가끔 조수석 창문 잘 안올라가서 손으로 잡아당기며 올리기 등의 특기를 자랑하며, 용달차에 버금가는 승차감을 뽐내는 차였지만 나는 그 차에 "청룡"이라는 스펙타클한 애칭을 붙여주었다. 주위에서는 비록 "청노루"나 "청토끼"라고 비하했을지라도 말이다.

99년 여름, 친한 이들로 구성된 조직 하나에서 청평으로 놀러를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차량편에 "청룡"도 동원이 되었다. (애인도 없고 음주도 잦았던 그 즈음에는 거의 한 달에 두 세번 사용할까 말까하는 상태였다.)
MT가 끝나고 항상 하게 되는 일. 먹다 남은 반찬거리, 인스턴트 음식들 자취생에게 몰아주기. 나는 이것저것을 얻어 챙겼으며 그중에는 샀다가 개봉도 하지 않은 콩간장 한 통도 있었다............


청평 나들이 후 일주일이 지났다.
차를 쓸 일이 있어서 한 여름 일주일 동안 땡볕아래 서 있었던 청룡을 찾았다.
차 문을 연 순간 안에서 벌어진 참극에 나는 잠시 망연자실하였다.

대시보드 위에 올려 놓고 깜빡 잊었던 콩간장.(옛날 자동차들은 대시 보드 위가 평평했다.)
그렇다. 남들은 휴대폰을 깜빡 잊었다가 배터리가 차안에서 폭발한다지만,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나의 청룡 안에서는 간장이 폭발한 것이다. -_-;;;

운전석 앞 유리창의 윗 부분부터 조수석의 등받이 전체에까지 남아 있는 간장의 흔적과 형체를 알수 없게 터져버린 간장통은 폭발 당시의 장관을 짐작하게 했다. -_-;;;;;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것이 확실시 되는 "여름철 자동차 내 간장통 폭발 사건". 서너달이 지나도록 영문을 모르고 내 차에 타는 사람들로부터 "차에서 메주 뜨는 냄새"가 난다는 논평을 심심치 않게 들어야 했다.

2001년 초 친구에게 넘어간(물론 거저 주었다. -_-;) 청룡은 그 후 6개월만에 완전히 퍼져버려서 폐차의 길을 걸었다.
'그래도 내 품에 있었을 때는 엔진 소리 하나만은 묵직했던 쓸만한 놈이었는데.. 적토마 마냥 너도 주인을 가리는 구나'라는 나의 사뭇 관운장스러운 웅혼한 한탄이 주위 친구들에게 먹혔을리는 물론 없다.

폐차장의 고철로 스러져갔을 청룡아. 다음 세상에는 꼭 에쿠스로 태어나길 바란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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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26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야군줄^^;;;

oldhand 2005-10-26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저는 타이거즈 팬이랍니다. ^^;;;

파란여우 2005-10-2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그럼, 청개구리?^^

야클 2005-10-26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장 냄새나는 에쿠스를 만나면 전생에 청룡이 아니었는지 물어봐야겠습니다. ^^

oldhand 2005-10-2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개구리가 되었을지 에쿠스가 되었을지... 어디선가 게을렀던 옛 주인을 추억하고 있지 않을까요? ^-^
 
질주 동서 미스터리 북스 88
데스몬드 배글리 지음, 추영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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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은 여러 하위 장르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하위 장르는 무엇일까? 아마도 '본격 미스터리'이리라. 그 다음이 '하드보일드' 쯤 되지 않을까. 한 작품에 여러가지 세부 장르의 특성이 혼성되어 나타나는 현대 미스터리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세세한 구분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겠지만, 재미삼아 더 이야기 해 보자. 그렇다면 가장 인기없는 미스터리의 하위 장르는 무엇일까? 적어도 국내의 독자들에 한해서는 '스파이 모험 소설'이 아닐까.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나 <독수리는 내리다>처럼 미스터리 독자들 사이에서 두말할 것 없는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도 있으며 존 르카레나 에릭 앰블러 같은 해당 분야의 거장들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동안 내가 만나거나 의견을 들어온 많은(많은가?) 미스터리 독자들 중에 '스파이 소설'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미스터리 소설의 분야라고 말하는 이는 여태 없었던 것 같다.

70~80년대의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공 교육을 받아온 우리 세대에게나 탈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해체를 경험하며 자라온 더 젊은 세대들에게나 서방과 공산권의 치열한 첩보전과 암투를 그린 스파이 모험 소설(더군다나 결국은 서방의 입장에서 쓰여진)은 식상할 수 밖에 없는 장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듯 그다지 호의적이지 만은 않은 시각으로 접하기 쉬운 스파이 물일지라도 일단 잡으면 손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함과 뛰어난 오락성을 제공한다면 장르 소설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훌륭하게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냉전 시기 철지난 동서방의 첩보전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데스몬드 배글리의 <질주>는 이러한 점에서 아주 좋은 본보기가 되는 소설이다. 1970년,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씌여진 <질주>는 유서 깊은 영국식 모험소설의 전통을 잇는 뛰어난 오락물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같은 우울함도 없고, <죽음의 문서>같은 느끼함도 없다. 이 소설은 '아이슬란드'라는 우리로서는 좀처럼 경험해 보거나 자세한 정보를 접하지 못한, 북유럽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바가 없는 북대서양의 외딴 섬나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한반도의 절반 정도의 크기, 남한 보다 약간 큰 섬나라인 아이슬란드의 인구는 불과 30만 명. 한 여름의 평균 기온도 10도에 지나지 않지만,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혹한의 추위는 아닌 나라. 국토의 일부가 빙하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 전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화산의 섬이기도 한 백야의 나라. 아이슬란드의 풍광과 그 험난한 자연을 배경으로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과 수수께끼와도 같은 복잡한 첩보전이 동시에 벌어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사실감 넘치는 묘사에 있다. 첩보원들에게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서바이벌'의 기본기와 실제, 권총 등 여타 무기류에 대한 묘사등이 아주 세세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 들어 있었다. (백과 사전 식으로 늘어 놓아져 있는 작가의 지식 자랑을 읽는 것 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이런 점에서 데스몬드 배글리의 능력은 뛰어난 듯 하다.) 시니컬한 듯 하면서도 현실감 넘치는 주인공 스튜어트의 대사와 독백은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그것처럼 맛깔나며,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시각도 아주 담백해서 이런 류의 소설이 자칫 빠지기 쉬운 '느끼함'도 잘 피해 나가고 있다.

'장르 소설 최고의 목적은 재미다'라는 명제에 동의하신다면 <질주>는 후회없는 선택이 되리라 믿는다.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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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0-21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왜이렇게 리뷰를 잘 쓰시는거야요! ( 제가 이런말 하는거 올드핸드님밖에 없는거 아시죠?!)

물만두 2005-10-2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oldhand 2005-10-2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두 분 다 왜 이러십니까. 민망하게시리.. *^^*

파란여우 2005-10-2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손님이 리뷰를 잘 쓰는 이유,
1)콩주의 기를 잘 받아서
2)럭셔리한 책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3)일주일 동안 교정을 반복하고 있다는
4)이주의 마이리뷰에 도전을 해야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5)남몰래 밤마다 비밀 약을 먹는다는
6)장차 부업으로 탐정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7)위의 사항은 모두 거짓이고, 이 정도는 lT분야 종사자의 기본이다. 홧팅!!

oldhand 2005-10-21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파란여우님의 예리하고 정성 넘치는 분석에 감동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우님의 리뷰는 저의 엉성한 글보다 900배는 훌륭하다는 것. 아시죠? ^-^

2005-10-24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