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평점 :
김규항의 글은 은근히 인기가 많다.
나온지 4년이 넘은 그의 첫번째 칼럼집 <B급 좌파>는 소리소문 없이 18쇄인가를 넘어섰으며, 아직도 꾸준히 팔리는 듯 하다. 이 책은 출판사의 사정인지 어떤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 쇄"가 다 팔리고 나도 곧장 찍어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종종 품절 상태로 방치된다. 할인율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판매량은 사회과학이 외면 받는 우리나라 독서 시장에서 주목할 만 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은근한 인기는 순전히 그의 문장력과 그의 글이 보여주는 진솔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낸 그의 책 <나는 왜 불온한가>는 <B급 좌파>에서 보여주었던 다소 야들야들한 부분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그 자리를 온전하게 '날카로움'과 '거침없음'으로 대신하고 있다. (책의 디자인 마저도 온통 뾰족 뾰족하고 거칠고 날카로운 문양으로 그득하다.)
조선일보 반대운동 등에 투신하며 개혁파와 손을 잡기도 했던 그가 이제는 광야에 홀로 서서 중산층의 보신주의와 안온한 삶에 대한 애착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개혁주의자들과 시민운동 진영은 결코 "진보"와 동거할 수 없다는 그의 입장은 개혁주의자들의 집권 8년째를 지켜보면서 내린 나름의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가장 크게 느꼈을 감정은 아마도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B급 좌파>에서도 어느 정도 느꼈을 이러한 불편함은 이 책에서 한 층 업그레이드 되어 있다. 남이 보기에 그래도 제법 번듯한 직장과 넉넉하진 않지만 안정된 수입, 넓지는 않지만 제 한 몸 누일 수 있는 집,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는 마음을 가진 이 땅의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책의 독자들 중 다수를 차지할 개혁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중산층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대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에는 이미 늦어 버린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그들이 내 글을 제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두 가지 결심을 했었다. 하나는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 만큼 급진적인 글을 쓰는 것. 다른 하나는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남은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만드는 것.
그렇다. 당장 나 자신도 결국 알량한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도구로 이책을 샀던 것이 아닌가. 자본주의 체제가 극복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깨닫고 있지만, 어느새 나이가 들면서, 이 땅에서, 이 체제에서 제법 갖출 것 갖추고 살게 된 지금 "체제의 변혁", "혁명" 등의 단어는 젊은 시절의 이상을 나타내는 한 갖 레테르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저축하여 아파트 평수를 넓히기 희망하고, 자식에게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을 갖춰주기를 원하는 소박한 마음마저도 그의 글이 쏟아내는 이상과 비전들과는 엄청난 괴리감을 갖는다.
이쯤되면 독자들은 당연히 불편해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이 책은 개혁이 진보인 양 그저 절차적 민주주의와 일정 수준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만족하고 사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날리는 통렬한 비판이다. 그의 날선(위악적이기까지 한) 비판에 반성할지, 아니면 반발할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사족) 김규항의 글은 사실 해묵은 개혁과 진보 진영의 갈등을 헤집고 있다.
개혁 진영이 진보의 밥그릇을 부당하게 빼앗고 있다는 것이 그 갈등의 요지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대통령이 되기 전 시점에서 과거 20여년간 한국 정치의 딜레마였던 DJ라는 독특한 정치인과 군사 독재라는 특수한 정치 환경이 결합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비판적 지지 입장에 섰던 사람들과 DJ가 진보의 앞길을 도리어 방해하고 있다는 입장에 섰던 사람들. 비판적 지지를 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개혁 보수 진영에 편입하게 되었고, DJ를 비판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훗날 군사 독재의 본류에 해당하는 당에 입당하는 헤프닝도 있었기에, 그리고 그러한 군사 독재 세력들이 아직도 상당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있기에(강정구 교수 사건을 두고 이 정권을 "빨갱이"라 규정하는 세력이 아직도 엄연하다) 이 첨예한 논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