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0여 년 전 청소년들의 선망의 직업 1위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나 SF 소설 등에서 접하는 프로그래머의 모습과 개인용 컴퓨터(PC)의 본격적인 보급 등이 맞물려 일어났던 '기현상'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허울좋아 보이는 이름을 가진 직업의 실상이 어느정도 드러난 지금. 이제 우리는 '3D 업종 종사자' 취급을 받는다.

공돌이들(나 자신을 포함해서)은 흔히 '단순 무식 과격'의 모습으로 연상된다. 대학시절에도 과중한 과제와 시험에 치여살기 일쑤여서 '교양서적'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죽했으면 공대생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세가지가 "야 그 문제 풀었어?", "오~ 저 여자 죽인다", "에이 밥이나 먹으러 가자"라는 우스개 소리가 퍼졌을까.

그러나, 적어도 전자 계산, 혹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거나, IT 바닥에서 개발자(한때는 선망의 직업 1위였던!!)로 일하며 오늘도 날밤을 새고 있을 동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미스터리 소설을 발견했다. '이과계 작가'라는 별칭을 듣는 모리 히로시-국립대학의 건축학과 교수라 한다-의 <모든것은 F가 된다>가 바로 그것. 아주 전문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단 반가운 단어들이 소설속에 출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평소 책이라면 두툼한 User Manual이나 Programming Bible 등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가련한 우리 동업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신본격 미스터리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사회파 미스터리가 일본의 추리 소설계를 장악하고 있는 중에 "미스터리의 본류로 돌아가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신본격 미스터리는 이제는 전설적인 작품으로까지 평가받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시리즈>,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등 많은 걸작들을 배출했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도 넓게는 신본격의 범주에 포함된다.) 신본격의 기치를 내건 작품인 만큼 외딴 섬, 밀실 살인, 연속 살인, 천재적인 탐정 등 본격물의 흥취를 흠뻑 내포하고 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간결한 묘사 등으로 쉬이 잘 읽히는 소설이다. 밀실의 봉인이 풀리며 시체가 발견 되는 순간은 서스펜스를 생명으로 하는 미스터리 소설중에서도 보기 드문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다. 신본격의 소설들이 다소 그렇듯 평면적인 캐릭터나 단조로운 문체는 문학성을 중시하는 독자들에게 다소 불만일 수 있겠지만 불가능 범죄와 트릭, 그리고 명쾌한 해명에 집중한다면 좋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직업상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후반부의 소스 검색 장면도 아주 흥미로웠다. 탐정역을 맡은 사이카와 교수가 도무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 소녀 모에(소프트웨어에는 무지하다)보다 먼저 의미를 깨달아 가는 재미는 쏠쏠했다.

덧글 : 간혹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천재적인 프로그래머의 모습은 사실 지나친 과장이 많다. 그들은 노트북과 커피 혹은 담배만 있으면 전지전능해진다. 이 소설속의 마가타 시키 여사도 역시 그러한 범주아래에 있다. 물론 하늘이 내린 천재라는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거대한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고 구현하는 일은 그리 만만한게 아니다. 개인의 능력이 그정도라면 마이크로소프트같은 회사는 잘 나가기는 커녕 남아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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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02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과장이죠^^

oldhand 2005-11-02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장이 좀 심해 혹자는 이소설을 SF 소설이다! 라고도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물만두 2005-11-0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첫 장면은 좀 그런면이 있었어요^^;;;

oldhand 2005-11-0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Kelly 님은 공돌이가 아니시잖아요. 걱정 걱정. -_-a

oldhand 2005-11-0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