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비상용 소화 양동이처럼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다. 그 모습에 그 여자에 대한 내 관심이 싹 사라져 버렸다. 웃음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입을 벌리자 얼굴에 난 구멍만 봐도 충분했다. (p.147)
전 허가받은 사립탐정이고 그 일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외로운 늑대인 셈이죠. 미혼에 중년이고 부자도 아니지요. 감옥에 한 번 이상 갔다 와봤고 이혼 사건은 맡지 않습니다. 술과 여자와 체스, 그리고 그 밖에 몇 가지 것들을 좋아하죠. 경찰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친하게 지내는 경찰도 두엇 있습니다. 본토박이로 샌타로사에서 태어났고 양친은 돌아가셨으며 형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얻어맞고 쓰러진다고 해도 인생 끝난 듯이 충격받을 사람들은 없죠. 그런 일이야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고 요새는 어떤 일을 하든지 또는 아무 일도 안 해도 많은 이들이 당할 수 있는 일이니. (p.155)
그렇게 하여 사립탐정의 하루가 지나갔다. 정확히 전형적인 날은 아니었지만 아주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한 남자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이유를 아무도 알 수 없다. 부자가 될 수도 없고, 대부분 재미도 별로 없다. 때로는 얻어터지거나 총을 맞거나 감옥에 던져지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죽을 수도 있다. 두 달마다 한 번씩, 이 일을 그만두고 아직 머리가 흔들리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을 때 번듯한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면 문에서 버저가 울리고 대기실로 향하는 안쪽 문을 열면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여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슬픔, 약간의 돈을 안고 들어온다.
"들어오세요, 아무개 씨. 뭘 도와드릴까요?"
틀림없이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다. (p.265)
나는 챈들러보다 로스 맥도널드의 소설을, 말로 보다는 루 아처를 더 좋아한다. (더쉴 해밋은 '논외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애드거 앨런 포가 '논외의 작가'이듯이)
그것은 내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추리소설의 기본적인 미덕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라는 장르에 대한 나의 다소 편협한 기본 시각에 따른 것이다.
챈들러의 소설을 읽다보면 늘쌍 내가 지금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전체적인 구조나 사건의 틀 보다는 미시적인 부분, 문장 하나 하나에 집중하게 하는 작풍과 매력적인 그의 문체 탓이다. 때로는 이런 점이 사건을 따라가는 독자를 힘겹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하우스에서 그의 사실상의 장편 전집(<플레이 백>이 제외되긴 했지만, 이 작품은 '외전' 취급을 받는다) 발간이라는 뜻 깊은 기획을 했을 때 무척 기뻐했다. 그래서 <안녕 내사랑>과 <기나긴 이별>을 각각 다른 판본으로 갖고 있었지만 시리즈 전체를 구입하게 되었다.
워낙 과작이었기 때문에 챈들러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6편의 장편 각각에서 필립 말로는 살아 숨쉬는 듯 하다. 지난 봄, 말로 시리즈 중 가장 힘겨웠던 <리틀 시스터>를 읽고 나서(근 한 달 가까이 붙들고 있었다) 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챈들러, 그리고 필립 말로와의 '기나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주 <기나긴 이별>을 읽었다. 이제는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새로운 장편 소설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챈들러와 필립 말로가 예전 보다 조금 더(어쩌면 아주 많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