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 소설은 미스터리 소설의 많은 하위 장르에서도 상당히 독특하고, 특색 있는 장르이다. 그 특징들을 생각나는 대로 몇가지 살펴 보면 아래와 같다.
1. 일단 대부분 범인이 초반에 노출되는 일종의 도서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띈다.
* 소설의 주인공이 범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점(1, 3인칭)에 따라 소설의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2. 유괴라는 범죄 자체가 단독으로 수행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에 범인들은 2명 이상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 범인 집단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아주 많다.
3. 범죄의 심각성과는 달리 사건은 경쾌하거나 뒤죽박죽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 O.헨리의 <붉은 추장의 몸값>이나 존 러츠의 <썩은 감자> 같은 유괴를 다룬 단편 소설들의 경우도 결국은 코믹하고 엉뚱한 반전을 통해 범죄 자체가 갖는 심각함을 중화 시키고 있다.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4편의 유괴 소설들을 간략하게 분석, 리뷰해 보았다. (별점은 지극히 주관적)
<아기는 프로페셔널> 레니 에어드 ★★★☆
뒤죽 박죽 엉터리 악당들이 펼치는 본격 코미디 유괴 소설.
약삭빠르게 행동하고 싶지만 항상 덤탱이만 쓰는 어설픈 주인공과 번번히 그를 벗겨먹는 더더욱 어설픈 사기꾼, 그리고 프로페셔널 아기를 소유하고 있는 모자 악당과 유괴범들의 목표인 마피아 악당까지 뒤얽혀 사건은 전혀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떠들썩한 이탈리아의 좁다란 골목길과 그 주민들의 왁자지껄함이 생생하다. 위에서 언급한 유괴 소설의 세가지 특징에 가장 정확하게 부합하는 유머 미스터리. 1인칭 주인공 시점.
<파일 7> 윌리엄 P. 맥기번 ★★★★☆
치밀한 범행을 준비한 용의주도한 범인들과 그 뒤를 쫓는 연방 수사국(FBI)의 수사과정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유괴 미스터리의 백미.
유괴범과 유괴당한 아이의 가족들, 그리고 수사관들의 이야기가 긴박하게 바뀌는 장면 전환에 따라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아기는 프로페셔널>이 유괴 소설의 왼쪽 끝에 위치해 있다면(경쾌함과 유머의 측면에서 볼 때) 그 대척점의 자리를 차지할 만한 상반된 성격의 서스펜스 소설. 언급하고 있는 4개의 소설 중 유일하게 범인에 대한 적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만큼 범인 추적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무수히 많은 범죄 소설에 등장하는 악당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가진 '듀크'라는 인물이 작품의 무게를 더한다. 3인칭 시점.
<교황의 인질금> 존 클리어리 ★★★
바티칸의 보물들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얼떨결에 교황을 납치하게 된 일당들의 이야기. 미스터리 역사상 가장 센셰이셔널한 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이 아닐까. 2차 대전 중에 벌어졌던 나치 장교와 젊은 시절 교황의 오래된 사연으로 인하여 사건은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된다. 교황의 납치범들이 교황의 신변 보호까지 해야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니...
경쾌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내용. 교황청 내부에 침투해 들어가 있는 주인공의 좌충우돌 사건 수습이 조금 안쓰러워 보일만큼 주인공의 피로함과 혼란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나치게 헐리우드적인 결말이 다소 아쉽다. 3인칭 시점.
<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
피해자와 범인이 공모해서 벌이는 위장 유괴 사건.
독자는 철저하게 주인공의 시점으로만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피해자의 부모나 경찰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주인공의 불안함과 완전 범죄를 위한 치밀한 과정을 간결한 문체로 속도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과연 주인공은 게임을 성공적으로 클리어 할 수 있을것인지. 독자는 숨쉴틈 없이 주인공의 행적을 추적하다 또 한 번의 반전을 경험하게 된다. 지난 더운 여름날 밤 새벽까지 잠 못 자며 독파했을 만큼 페이지 넘어가는 재미는 최고. 1인칭 주인공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