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 시선 - 초판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신석정 지음, 권선영 엮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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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날 노랗게 물드린 은행잎이 / 바람에 흔들려 휘말리듯이 / 그렇게 가오리다 / 임께서 부르시면... //  湖水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 그렇게 가오리다 /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 구비구비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 그렇게 가오리다 / 임께서 부르시면...// 파 - 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해볕처럼 / 그렇게 가오리다 / 임께서 부르시면...      ['임께서 부르시면' 전문]


2. 다소 현 시점의 철자법에 안 맞는 단어가 눈에 띄시지요. 시집의 원전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옮긴 탓입니다. 저절로 마음이 스산해지는 계절에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詩입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임은 오래 전 또는 현재, 미래의 그 임(님)일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이 詩를 대하면서 내 삶의 여정의 가을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표현 한 것이 어찌 그리도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3. 가을이 오면 내려놓는 것이 많아집니다. 정작 내려놓는 연습을 충실히 해야 할 내 인생의 여름(청년기)엔 그 욕심과 야망의 두께가 줄어들 생각을 안하지요. 그 기세가 하늘을 가리고도 남지요. 그래서 여름 날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햇살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지요.


4.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다 벗어놓게 됩니다. 겨울엔 눈이라도 덮어주지만, 가을은 앙상한 몸을 다 노출시키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겸손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깨의 힘을 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5. 그렇게 가을은 사람들의 마음을 겸허하게 해주지요. 그렇다면, 그 임이 계신 곳은 어딜까요? 아니, 그 님은 무어라 표현할까요. 나는 그 '님'이 결국엔 내가 돌아갈 그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심코 썼던 돌아간다는 말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 돌아가는 곳은 어디인가? 본향(本鄕)이라고 생각듭니다.  내가 이 땅에 왔으니 내가 기억을 못해도 분명 온 길이 있겠지요. 그 길로 다시 가는 것은 어쩌면 이 땅에서의 일상의 과정과는 다른 또 다른 無記憶속 행진일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그 님은 각자가 믿는 신(神)일 수도 있겠군요. 나를 이 땅에 보내 주신 분이니, 임께서 나를 다시 부르시면 가야지요. 그 분 앞에 서면 '애썼다' 하시면서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미소를 지어주시겠지요. 그리곤 포근히 안아주시겠지요.


6. 시집을 리뷰하면서 詩 하나 붙잡고 이렇게 길게 써 보는 것도 처음인 듯 합니다. 그러나, 막상 써놓고 보니 그런대로 괜찮네요. 여러 편의 시를 정신 없이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좋네요. 읽으시기엔 어떠신지 궁금해집니다.


7. 시인 신석정(辛夕汀)은 1907년 7월 7일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인이자 한학자였던 조부와 부친 슬하에서 당시(唐詩)와 한학을 공부하며 엄격한 가풍 속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첫 작품 [기우는 해]를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1924년 11월 24일자 조선일보에 발표합니다.  1930년에 상경해서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불교전문강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불전(佛典)공부를 합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시문학' 제 3호에 [선물]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 데뷔,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김기림 등과 함께 순수시를 전개합니다. 


8. 시인이면서 동시에 존경받는 교육자였다고 합니다. 1974년 7월 6일 영면합니다. 시인의 시 세계를 김기림은 "유토피아를 흠모하는 목가 시인"이라고, 서정주는 "도교적 자연주의" 또는 "전원시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해방을 전후한 무렵부터는 이른바  지사 정신을 바탕으로 현실 참여적 성격이 강한 시편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합니다. 


9. 신석정 시 세계의 특징은 어렵고 난해한 용어 대신에 일상어, 우리말로만 시화(詩化)하는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 가슴 속에는 / 바람에 사운대는 꽃이파리가 있다. / 꽃이파리가 마련하는 머언 세월이 있다. // 내 가슴 속에는 / 五層塔을 넘어 石鍾을 스쳐 간 하늘이 있다. / 별들을 간직한 하늘의 착한 마음이 있다. // 내 가슴속에는 / 벚꽃 흐드러진 속에 젖먹일 업고 山菜ㄹ 캐는 '정상두'아낙네가 있다. / 그 아주머니의 싸늘한 젖꼭질 물고, 땅을 허비던 어린 것의 뭉캐진 손톱이 있다. //  내 가슴 속에는 / 바다같이 울던 金山寺 매미 소리와 귀촉도가 있다. 항상 異邦이라서 설리 우는 귀촉도의 더운 피가 있다."               - '내 가슴속에는' 第二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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