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적 의식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조르주 풀레 지음, 조한경.이현진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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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스개소리로 넘길 이야기지만, 작가의 꿈을 접은 사람이 비평가 또는 평론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책이 있으면 작가가 있고, 독자가 있고, 비평 또는 평론가 그룹이 있다. 이 책의 키워드는 비평, 비평가이다. 이 책에선 일관되게 '비평가'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서 독자는 모두 비평가이기도 하다.

 

2. 서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진정한 비평적 사고의 귀착지라고 할 수 있는 독서 행위는 독자의 의식과 작가의 의식이라는 두 의식의 일치를 전제한다." 그러나 두 의식의 일치를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있다. 우선 텍스트를 이해해야 하고, 그에 앞서 열렬한 독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비평이 가능하다. 이제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고뇌하며, 행동하게 된다.

 

3. 저자 조르주 풀레는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프루스트를 들고 있다. 프루스트에겐 글을 쓰는 창작 행위에는 독서가 필요하며 독서를 통한 문학의 비평적 발견을 전제한다. [장 상퇴유], [희열의 나날들], 그리고 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기 전 그(프루스트)는 단순한 비평가이자, 단순한 독자였다. 그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가 무엇보다도 먼저 꿈꾼 것은 훌륭한 독자! 보기 드문 독자가 되는 것이었다. 나의 도전 의식이 꿈틀댄다. 목표로 할 만하다.

 

4. 프루스트는 작가이면서 비평가였다. 월터 스트로스는 비평적 활동이 그의 부차적인 활동이였다고 했지만, 샹탈은 반대로 프루스트가 비평의 첫걸음을 내디딘 다음에야 비로소 소설에 손댈 수 있었다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작가와 비평가의 행보를 같이 했다고 생각된다. 그의 작품 [장 상퇴유]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서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작품에 몰두한 독자다. 독자는 독서에 골몰하다가 작품 세계에 빠진다.

 

5. 프루스트는 이런 말을 했다. "독서를 하다가 발자크 또는 플로베르의 리듬에 순치된 우리는, 우리의 내밀한 목소리는, 독서를 마치고 나서도 그들의 소리를 내려고 한다." 이런 느낌이 나도록 책을 읽어야 하고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과 보조를 맞추는 일보다 독자와 작가를 가깝게 해 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독자와 작가를 하나 되게 한다. 독자에게 작가의 가장 내밀하고도 은밀한 사고방식, 감각방식, 삶의 방식을 경험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독서란 "자기 안에서의 재창조다."

 

6. 한 작가의 작품 하나만 읽어보고 그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다. 저자는 한 작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한 작품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비평에 관한 한 확인이 없는 인식이란 없다. 그래서 '전작주의'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섭렵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다양한 모든 작품에서 그들 전체에 대한 어떤 공통된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자체가 무리 일 수 있다. 그것은 한갖 꿈으로 그칠 수도 있다. 작가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보면 총체적 우주의 조각난 이미지에 불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런 면에선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독서는 필요하다. 그 조각들을 서로 결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럴 때 진정 훌륭한 독자, 보기 드문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7. 저자 조르주 풀레는 비평가이다. 스무 살 때부터 비평가의 소명을 절감했다고 한다. 시간, 공간이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의의에 대해 몰두했던 조르주 풀레는 비평의 업적으로 20세기 사상의 흐름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주로 교제한 비평가들로는 마르셀 르몽, 장 루세, 장 스타로뱅스키 등이 있는데,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스위스, 특히 주네브였기 때문에 그 일단의 비평가들을 주네브학파라고 부른다. 이 책은 비평의 비평서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보들레르, 프루스트, 가스통 바슐라르, 사르트르 처럼 작가와 비평가로 두 집 살림을 한 인물들과 순전히 비평가 그룹에서만 활동한 여러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8. 저자는 [비평적 의식의 현상학]이라는 챕터에서 책과 독자, 독서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텅 빈 방, 책상 위에서 책이 독자를 기다린다. 모든 문학작품들은 그런 상태에서 최초의 상황을 맞는다.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 책은 종이로 만들어진 무기력한 하나의 단순한 대상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책은 누군가가 자신을 그러한 무기력과 물질성에서 구해주기를 도서관 서가나 서점 진열장에서 기다린다.(...) 진열장에 꽂힌 책들은 내게 구매자가 나타나 선택해주기를 안타깝게 기다리는 시장의 동물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의심할 여지 없이 동물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안다.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동물은 사물 취급을 모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독자가 관심을 보이지 전까지 책은 모멸을 안은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 우리는 이따금 책들이 희망에 차 있음을 본다. '나를 읽어 주시오'라고 금방이라도 말하는 듯 하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저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 책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다." 공감한다. 특히 내 체온이 전해지면 더욱 그러하다. 이젠 책이 더 이상 그냥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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