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천국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 지음, 최진경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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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미로는 마치 이 세상과 모든 세상사가 오류와 혼동, 불안정과 곤경, 거짓과 속임, 걱정과 비참함,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혐오스러움과 절망만이 지배하고 있거나 이와 비슷한 것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천국은 마치 자기 마음속의 집에 거하며 그 안에 오직 하나님만을 모시는 자가 영혼의 참되고 충만한 평화와 기쁨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이 세상에서 잘못된 길로 인도하며 돌아다니는 두 명의 동행자가 등장합니다. 모든 것을 샅샅이 뒤지며 주제넘게 참견하는 '호기심'('온갖 곳을 다 돌아다니는 자'라고도 부름)이라는 동행자와 이 세상의 속임수를 진리인 양 말하는 '선입견'('현혹자'라고도 부름)이라는 동행자입니다.

 

저자의 분신이기도 한 주인공(순례자)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이성적 분별력을 지니기 시작할 무렵, 깊이 생각한 끝에 가능한 한 아주 안락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직업]생활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때 누군가가 그의 앞에 나타납니다. '호기심'이라는 자입니다. 저자 코메니우스가 이 '호기심'이라는 동행자를 호기심으로 가득 찬 당시(근세 초기 계몽주의)의 시대정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만물박사'는 순례자에게 세상은 미로와 같기 때문에 혼자서 [세상 속으로]들어가지 말라고 꼬드깁니다. 한술 더떠 자기를 믿고 따라오면 혼자서는 결코 갈 수 없는 많은 비밀 장소로 안내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또 누군가가 한 사람 나타나서 참견을 하는군요. 바로 '현혹'이라 불리우는 자입니다. 그는 '호기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이곳저곳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것이 자네의 임무라면, 그들이 봐야 할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은 내 임무라는 것을 모르는가?" 졸지에 순례자는 두 사람의 동행자와 함께 길을 떠나게 됩니다.

 

만물박사는 순례자에게 안경을 씌워주는군요. 그 안경은 '선입견'이라는 유리알과 '습관'이라는 테두리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두 동행자와 함께 길을 떠납니다. 도시를 바라봅니다. 멀리서 볼 때 도시는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안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는 세상속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미로입니다. 여섯 개의 분주한 거리가 있습니다. 이 여섯개의 거리는 17세기 당시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 삶의 주요 영역(결혼 제도와 생활, 상인 계층, 학자 계층, 정치가 계층, 종교인 계층, 군인 계층)을 의미합니다. 순례자의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은 '호기심'과 '선입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요. 그러나 순례자는 '선입견'이라는 유리알과 '습관'이라는 테두리로 만들어진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세상 속 군상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부분들입니다. 언젠가는 변화가 되어 본 모습을 보게 되길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많은 부분중에서 특히 시선이 '도서관'을 묘사한 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스위스의 시골마을 장크트 갈렌에는 수도원 도서관이 있는데, 이 도서관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도서관 현관에는 그리스어 팻말이 붙어 있는데 ‘영혼의 요양소'(또는‘영혼을 위한 약방)’이라고 되어 있다합니다. 책을 통해 영혼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름답습니다.

 

이 책의 순례자도 도서관으로 안내됩니다. 그 방(도서관)은 상당히 넓어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긴 벽에는 나무 상자와 선반으로 된 수많은 서가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습니다. 책들은 수십만 개의 수레로도 다 실어 나르지 못할 정도로 많습니다. 서가마다 제목과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곳이 뭐하는 곳이죠? 약국인가요?" 순례자가 묻습니다. 동행자가 답합니다.
"영혼의 질병을 고치는 약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약국이라 할 수 있지, 즉, 이곳은 도서관이라네. 보게나, 무한한 지혜의 보물이 여기에 잔뜩 쌓여 있다네!". 학자들이 들어와서 책을 뽑아 질겅질겅 씹기 시작하는군요. 놀라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순례자가 책을 씹어 먹고 있는 학자에게 묻습니다. "맛있습니까?"  "씹고 있는 동안은 쓰고 신맛이 나지만, 조금 있으면 단맛으로 변한답니다." "(이렇게 씹어 먹는) 이유가 뭐죠?" "더 확실하고 더 쉽게 저장하기 위해서입니다. 효력이 내 몸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순례자는 그를 좀 더 자세히 쳐다봅니다. 정말 그는 튼튼하고 적당하게 살이 쪘으며, 건강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고, 눈은 촛불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말씨는 신중했고, 생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 모습이 전부입니다. 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렇게 자기 만족으로 그쳐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외에 순례자가 본 세상의 모습은 대부분이 너무 답답하다 못해 벗어나고 싶은 생각 뿐입니다. 광야로 가서 은둔의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세상을 등지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동행자들이 놓아주질 않는군요. "저는 불의, 속임, 유혹, 거짓, 잔인한 일들을 경험하며, 그렇게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수천번이라도 죽는게 낫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살기보다는 죽고 싶어요, 이제 저는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운명을 살펴볼 거예요."

 

2부는 크리스쳔들이 믿음을 재점검해보는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저 역시 같은 마음을 느낍니다. 죽어가는 사람들과 죽은 자들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순례자에게 한 음성이 들립니다. "네가 나온 본향으로 돌아가라, 네 마음의 골방 속으로 들어가 네 뒤로 문을 닫아라!" 말씀대로 따르자 갑자기 한 줄기 밝은 빛이 위로부터 내려옵니다. 그 빛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순례자는 예수님의 품 안에서 참 된 평안을 느낍니다.  황폐해진 마음이 회복되어 결국 마음의 천국을 발견하고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 작품은 기독교의 고전으로서, '우화적이고 상징적인' 표현 기법으로 서술된 점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도 종종 비교됩니다. 지은이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1592~1670) 는 현대 교육학의 체계를 놓은 교육학의 대가이자 '현대 교육학의 아버지'로 서양 교육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17세기 당시 교육학자로서뿐만 아니라, 개신교 목사요, 신학자요, 언어학자요, 평화 운동가 및 정치 사상가로서 인간성 회복과 세상을 개선하는 일을 위해 활동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17세기는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봉건 질서제도의 붕괴, 교회와 신앙의 권위 약화, 이성 중심의 학문방법론 및 과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인간 삶의 많은 영역에서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비극적인 30년 종교전쟁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개인적으로 결코 순탄치 못했던 그의 삶의 여정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약 200여편의 글들을 남겼습니다. 1670년 11월 15일 소천해서 암스테르담 근교 나르던(Naarden)에 묻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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