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러스 마너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지 엘리엇 지음, 한애경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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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초반, 사일러스 마너라는 이름의 리넨 직조공이 지금은 버려진 채석장의 바위 웅덩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즉 래블로라는 마을 근처의 멋진 덤불 사이에 있는 오두막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소설의 무대인 래블로는 새 시대의 조류에 물들지 않고 아직도 구시대의 메아리가 많이 남아 있는 마을입니다. 그렇다고 이 마을이 문명 세계 밖에 있어서 말라빠진 양떼나 목동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런 쓸쓸한 교구는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이 마을은 '살기 좋은 영국(Merry England)'이라 불리는 비옥한 평원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영적인 면에서 보자면 내실 있는 십일조를 내는 농가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사일러스 마너가 래블로에 온 지도 15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그는 그저 툭 튀어나온 갈색 근시안의 창백한 젊은이였지요. 그의 외모는 평범한 교양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이주해 살게 된 마을 사람들에게는 직조공이라는 특이한 직업이나, 그가 미지의 '북쪽'지방 출신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뭔가 신비하고 특이한 느낌을 주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래블로에 오기전 사일러스 마너의 삶은 활발한 육체적 활동과 정신적 활동, 그리고 친밀한 우정으로 나름대로 풍성한 삶을 살고 있었지요. 그러나 다윗과 요나단 같은 친구 사이로 불리웠던 믿음의 형제 윌리엄 데인에게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윌리엄 데인은 그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고, 그의 약혼자까지도 가로챕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지요. 그가 래블로에 와서도 마을 사람들과 융화를 못하는 이유는 그의 마음 상처가 그 만큼 깊기 때문일것이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사일러스 마너가 마법의 힘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는 사건이 생깁니다. 어느날 신발 한 켤레를 고치러 나갔다가 불가에 앉아 있는 구두장이의 아내가 심한 심장병과 수종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측은지심으로 그 여인을 바라보던 그는 같은 증상을 갖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갑자기 떠오르게 됩니다. 그는 간단히 조제한 디기탈리스 풀을 먹고 그의 어머니가 효험을 봤던 기억이 난 것이지요. 결국 사일러스 마너의 '신비로운 약'을 먹고 여인의 병이 회복되는 사실이 온 마을에 퍼집니다. 


이 쯤에서 이 소설의 저자인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1819~1880)을 소개하겠습니다. 19세기 영문학 사상 중요한 작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히 [황무지]를 쓴 T. S 엘리옷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지 엘리엇은 19세기의 영국 소설가이고,  T. S 엘리옷은 20세기 미국의 시인이지요.  조지 엘리엇은 여류 작가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본명인 메리 앤 에번스(Mary Ann Evans)라는 이름 대신 조지 엘리엇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조지 엘리엇은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국내엔 이 책 외에도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미들 마치], [아담 비드] 등이 번역 출간 되어 있습니다. 


사일러스 마너와 그 주변에 많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마포 직조일로 벌어들인 금화를 혼자 밤마다 세어보며 불빛에 비춰보는 일이 그에겐 큰 낙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 금화를 도둑맞게 됩니다. 한 쪽 문이 닫히면, 어느 결에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대로, 은둔형 외톨이나 다름 없던 그에게 마을 사람들이 살갑게 대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잃어버린 금화를 잊지 못해 마치 금화가 제 발로 문을 열고 들어오길 바라는 그런 심정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장작을 다시 모으려고 몸을 구부린 순간, 희미한 그의 눈에 벽난로 앞 마룻바닥에 금화 같은 것이 보였다. 금화다!  내 금화가 돌아왔다! (....) 금화 더미는 혼란스러운 그의 시선아래 빛나면서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침내 앞으로 몸을 구부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에 익은 테두리의 딱딱한 금화 대신에, 부드럽고 따뜻한 곱슬머리가 그의 손가락에 닿았다.(...)그것은 잠이 든 아기였다. 온통 부드러운 금발 곱슬머리의 동그랗고 예쁜 아기였던 것이다."


누군가 혼자 사는 그의 집안에 아기를 두고 간 것입니다. 금화가 아닌 금발 머리 아기를 말입니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갈앉히며 상념에 젖습니다. 어쩌면 이 어린애가 그의 저 머나먼 과거 삶에서 그에게 보내진 메시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경외감과 신비감에 젖어듭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아이가 내 집에 들어왔나 살피던 중, 아이의 엄마가 그의 집 근처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가 제 발로 그의 집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어쨌든 사일러스는 아이(에피)를 키우면서 그의 상실된 마음도 치유되어 가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제는 돈 버는 일에 목표를 갖게 해 주던 돈더미 대신에 다른 무언가가 찾아와서, 그의 희망과 기쁨을 끝없이 돈 이상의 다른 것으로 이끌고 갔다."


그는 에피를 통해 이웃들, 즉 레블로 마을 공동체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 및 공통체와 관계를 회복하게 됩니다. 16년 전 마을에서 행방불명 되었던 던스턴이 채석장 옆 물웅덩이에서 발견되면서, 사일러스의 금화를 훔친 것으로 판명됩니다. 그 외에도 어린 아이 에피 주변의 사실이 밝혀지게 됩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개의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류층과 하류층, 19세기 초 발전하는 산업도시와 조용한 농촌사회 등의 대조 등입니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게 서술 했습니다만, 여러 인물들의 등장과 배경 속에서 나타나는 것, 특히 사일러스의 정신적 회복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가 갖는 치유력'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소 권선징악적인 도덕적 해석으로 귀결됩니다. 옮긴이인 한애경 교수는 엘리옷의 이러한 점이 워즈워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공감합니다.


낭만주의자인 워즈워스는 그의 시 [마이클(Michael)]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쇠락해가는 사람에게, /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선물보다 더 많은 것, 

 즉 희망과 미래 지향적인 생각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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