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체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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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사회학과 철학의 변방에 머물면서 어느 한 곳의 집단에 포함되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현대사상의 경향과 유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자리를 확보한 사상가이자, 끊임없는 도전과 도발을 시도한 급진적인 이론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보드리야르의 글쓰기와 사유는 헤겔,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 등의 독일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르크스 자본주의 비판을 소비 사회의 상품, 패션, 미디어, 광고, 성 등과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사회 조건과 상황에 비추어 마르크스 이론을 재구성합니다. 기존의 이론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론가이자 현대성에 뛰어난 해석자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분야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분리 시킬 수 없는 유, 무형적 테마들입니다. 인테리어 디자인, 분위기, 자동차, (골동품) 수집, 애완동물, 손목시계, 로봇, 소비, 신용, 광고 등등입니다.

 

저자는 독자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일상의 사물은 증식하고, 욕구는 증대하고, 생산은 욕구의 탄생과 죽음을 가속화하며, 사물에게 붙일 어휘는 부족해졌다. 우리는 급격히 변화하며 묘사적 체계에 이르는 사물의 체계를 분류할 수 있을까?"

 

또한 사물이 어떻게 존속하게 되는지, 사물이 기능적인 욕구 이외에 어떤 다른 욕구에 따르게 되는지, 어떤 정신적 구조가 기능적 구조와 뒤얽히고 어긋나는지, 사물의 일상성이 어떤 문화적(하위문화적 또는 초문화적)체계 위에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거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거울의 사회심리학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농민층은 거울을 무시하는데, 아마 거울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울은 약간 마법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실제 일련의 가구로 꾸며지는 부르주아의 실내에는 벽, 옷장, 식기대, 찬장에 거울이 달려 있습니다. 요즘은 냉장고에도 조그만 거울이 달려서 나오지 않던가요. 광원처럼, 거울은 방에서 특별한 장소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부분들이 거울은 부유한 가정의 어디에서나 잉여, 여분 , 반사라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맡는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특권을 행사할 기회, 즉 자신의 이미지를 증대시키고 자신의 부를 즐기는 기회를 제공하는 풍요로운 사물이라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의 삶에 비해 현대인의 삶은 영혼의 움직임과 사물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분위기'의 세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염려합니다. 즉, 현대적 '실내'의 외면화된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는 내면화된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것이지요. 광고는 도처에서 장식의 새로운 유행을 강조하고, 조장합니다. '당신의 아파트 베란다를 더 넓게 사용하세요!"

 

소유에 집착하는 사례 중에 '수집'이 있습니다. '수집' 취향을 나쁘다고만 볼 수 없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해선 수긍이 갑니다. 저자는 모든 사물은 두 가지 기능을 갖는다고 합니다. 하나는 흔히 쓰이는 것(실용적)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되는 것입니다. 전자는 주체에 의한 세계의 실제 총계의 영역에 속하고, 후자는 세계를 벗어나 자기 자신에 의한 주체의 추상적 총계의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기능은 서로 반비례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 실용적인 사물은 엄밀히 사회적 지위를 갖습니다. 예를 들면 '기계'가 있습니다. 반대로 기능이 없거나 그 사용이 모호한 순수한 사물은 엄밀히 주관적 지위를 갖습니다. 바로 그것이 수집의 대상이 됩니다. 모리스 렝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수집의 취미는 일종의 정욕적인 유희다." 

 

'소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소비를 하려면 수중에 돈이 있어야겠지요. 소비는 대부분 물질 곧 사물입니다. 소비를 통해서 그 사물이 나의 '소유'가 됩니다. 저자는 사물은 '행해진 일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집을 포함해서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 몸에 걸치는 것, 탈 것, 당장 필요는 없으나 사 두는 것 등등 모든 것이 그 대상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장차 획득할 것을 꿈꾸면서 일을 합니다. 즉 삶은 노력과  보상이라는 엄격한 방식으로 체험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획득된 사물은 과거에 대한 보상과 미래에 대한 보장을 나타냅니다. 요컨대 사물이 자본이 되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소비의 행태는 결국 기호를 소비한다는 담론을 제시합니다. 사람들은 TV나 인터넷의 광고가 전해주는 기호를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비의 사물이 기호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지요. 여기엔 사물의 기능을 기호로 보고 소비를 사회의 언어활동으로 보는 기호학적 사유가 깔려 있습니다.  이 책의 메인 테마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일련의 작업은 물질문화의 기호학과 일상생활의 상품화 사이의 관계, 즉 일상생활의 변화에 대한 감수성에서 촉발된 일상성에 대한 분석과 소비 상품과 기호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장 보드리야르의 비망록에 담겨 있었음직한 글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무리 합니다. 

 

나는

20세에는 파타피지시엥,

30세에는  상황주의자,

40세에는 유토피아를 꿈꾸는자.

50세에는 횡단하는 자,

60세에는 바이러스성을 지니고

계속 정신을 억압하는 자였다.

 

 

P.S  :  '파타피지시엥'... '파타피지크'(pataphysique)는 [Encyclopaedia Britannica]에 의하면 '복잡하고 기발한 넌센스 논의'라고 되어 있군요. 저자는 프랑스 태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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