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저울추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요제프 로트 지음, 주경식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 며칠 무거운 책을 머리에 이고 있었더니 좀 가볍게 가고 싶어 좀 핸디한 소설을 손에 잡았습니다. 제목이 재밌을 것 같지요?  “엉터리 저울추” 예..시작은 재밌었는데 다 읽고 나니까 이젠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아니 가슴이 짠해집니다.


“옛날 츨로토그로트 지방에 안젤름 아이벤쉬츠라는 도량형기 검정관이 살고 있었다.” 로 시작이 됩니다. 도량형기 검정관은 그냥 우리식으로 ‘단속반원’이라고 하지요. 주인공이기도 한 이 사나이의 이름은 ‘콧수염’으로 하겠습니다. 이 사나이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합니다. 콧수염의 업무는 그 지방의 모든 상인들이 사용하는 도량형기의 치수와 무게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일정 기간에 이 상점에서 저 상점으로 다니면서 자와 저울과 저울추를 검사하는 일이지요. 혼자는 아닙니다.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일을 함께 해주는 지방 경찰서 소속의 순경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2인 1조지요. 


대단히 장대한 체구의 남자인 콧수염은 원래 포병연대의 장기 목무 하사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의 성화에 옷을 벗고 민간인이 된지 얼마 안됩니다. 콧수염은 내내 불만스럽습니다. 마누라 등쌀에 제대를 했지만 군생활이 그립습니다. 민간인 생활이 너무 불편하고 힘듭니다. 단속반원 생활이요? 차라리 군 제대 후에 주어진 직업이 맘에 들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요. 밥먹고 할 짓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그려보세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광장시장이나 동대문시장 포목점에 가면 아직도 팔을 쫘~악 벌리면서 마를 끊어주는 경우요. 판매자나 소비자가 너무 익숙한 생활습관에 갑자기 정부 주도로 정확한 줄자를 써서 판매를 해야 한다는 엄한 규정이 적용된다면 어찌 생각하시겠습니까? 단속에 걸리면 고발 조치를 당해서 벌금을 내야합니다. 콧수염이 하는 일이 이 일이었으니 참으로 딱하지요. 그러나 콧수염은 12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며 몸에 배인 근면함, 명령에 복종 등으로 그럭저럭 버티며 나름대로 충실한 직무수행을 하던 중에 사건이 생깁니다. 사건이 안 생기면 소설의 진행이 안 되긴 하지요. 아, 글쎄 그렇잖아도 웬수덩어리인 그의 아내가 바람을 핀 것입니다. 그 상대도 하필이면 콧수염의 부하직원이군요.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아무튼 그러나 자제하며 잘 넘깁니다. 콧수염의 부하직원과 그의 아내 사이에 아이까지 만들자 더 이상 참지 못한 그는 집을 나섭니다. 


그가 집을 나와 간 곳은 처음엔 업무차, 그리곤 어찌하다보니 가게되고, 이젠 아예 의도적으로 가는 국경에 위치한 술집입니다. 콧수염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니는데 어떤 땐 말이 알아서 그곳으로 그의 주인을 모십니다. 누구였지요? 우리 선조들 중 알아서 술집을 모시고 갔던 말. 이제는 술집에 안 간다고 다짐을 한 후. 잠결에 말이 다시 그 술집 앞에 내려주자, 그 말이 무슨 죄가 있다고 목을 베었다던가? 당신도 당신 마음을 잘 모르면서 말이 어찌 당신 마음을 알리요.. 그 술집엔 왜 가냐구요?  물론 술을 마시고 싶어서 가긴 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망나니 그 술집 주인의 애인인 집시여자를 보고 싶어 가는 것이지요. 나도 남자지만, 그저 남자들이란 돈과 여자 그리고 술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튼.. 예상된 일이기도 하지만 콧수염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부서지고 흔들리고 붕괴 될 것 같은 집”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콧수염이 국경의 술집을 드나들 때 알아봤습니다. 스토리가 어찌 진행이 될지 말입니다. 


국경의 술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온갖 건달과 범법자들의 집합소이기도 합니다. 러시아군의 탈영병들의 단골 숙소이기도 하구요. 탈영병들이 네덜란드나 캐나다 혹은 남아메리카로 가려면 돈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지요. 그 술집의 주인인 망나니가 단속반장 콧수염에게 걸려들면서 감옥에 갑니다. 그 사이에 콧수염은 그 망나니의 애인을 가로챕니다. 공교롭게도 정부에서 그에게 그 국경주점의 관리를 맡기게 되는군요. 그 문서를 들여다보면서 콧수염이 이런 마음을 갖습니다. “내겐 지금 불행과 행운이 같이 왔다.” 그래도 본성은 착한 사람입니다. 비록 그의 아내가 바람을 피어 다른 씨앗을 키웠지만, 그래도 아내에 대한 연민의 마음, 그의 업무에 대한 책임감은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군요. 그러나 그러면 뭐합니까.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습니다. 그가 국경주점에 폭 빠져 있는 동안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그의 아내와 아내의 아이가 죽습니다. 그리고 콧수염은 탈옥한 망나니의 손에 죽습니다. 

콧수염. 그가 무너지는 과정이 안쓰럽습니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겠지요.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되기 힘든 구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요.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의 관심은 콧수염보다 이 소설의 작가인 ‘요제프 로트’에게 쏠렸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어로는 처음 번역 출간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요제프 로트(Joseph Roth)는 1894년 9월 2일 우크라이나 서부에 위치한 브로디에서 출생했고, 1939년 5월 27일 파리에서 사망했습니다. 


“나의 가장 강력한 체험은 전쟁과 내 조국의 멸망이다. 내가 가졌던 유일한 조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멸망하기 몇 주 전에 나온 이 고백을 읽어보면 그의 생애가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지원병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로트는 군인신문의 기자로 출발합니다. 기자 생활 틈틈이 칼럼, 시, 소설, 시사 해설 등 전 방위적인 글쓰기에 몰입합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로트는 누구보다도 먼저 독일을 떠납니다. 그는 파리로 망명을 떠났고 그 후 빈, 잘츠부르크, 암스테르담, 마르세유, 니스 그리고 폴란드 등지를 전전합니다. 

“이 땅의 손님” 스스로 그 자신을 묘사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디아스포라’ 였습니다. 


주인공 콧수염이 머물고자 했던 집은 무너졌습니다. 사라졌습니다. 그에겐 한 쪽 눈이 먼 퇴역 말과 잠시 그의 삶의 목적이기도 했던 바람 따라 떠도는 집시 여인뿐이었습니다. 그가 가고자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요? 우리의 상식으로 군대 탈영병은 매우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냥 입은 채로 나오는 탈영병은 그래도 착합니다. 군에 대한 불만, 사람에 대한 불만,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을 주치할 수 없어 뛰쳐나오며 그냥 안 나옵니다. 총이나 수류탄을 들고 나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탈영병들은 측은지심입니다. 

“새벽 3시경에 어떤 탈영병 하나가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한다. 그는 노래 〈야 루빌 티비아(I love you)〉를 불었다. 모두 울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제 막 포기한 고향을 그리워하며 울었다. 이 순간 그들은 자유보다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

아마 저자인 로트가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울추..엉터리 저울추..저자에겐 이 저울추가 나라마저도 없애고 모든 국민들을 디아스포라로 만들어버리는 어둠의 큰 손을 생각하며 만들어낸 소재일 수도 있겠지요. 그 손안에서 흩어져버리는 민초들의 삶을 생각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엉터리 저울추는 내 품안에도, 그대 품안에도 있지요.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을 잴 때 달리 적용되는 엉터리 저울추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