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역사 1 -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상상력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헤이든 화이트 지음, 천형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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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여행을 마치고 온 한 사진작가의 글을 읽었습니다. 미국 여러 곳의 풍광(風光)을 사진에 담아 오는 작업 중 가장 감사했던 일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 지인이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함께 하며 View Point를 잡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선 어느 point에서 찍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외에 카메라의 어떤 조건을 적용시키느냐가 남습니다. 포인트와 조건이 잘 맞아 떨어지면 기가 막히게 좋은 사진, 두 번 다시 찍을 수 없는 명품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곳을 찍어도 이미 시간은 흘러갑니다. 빛의 밝기가 달라집니다. 바람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을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일면 역사가를 읽는다고 여겨집니다. 연대기적 서술은 달리 할 수 없지만, 역사를 기술하는 저술자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지배자의 입장에서 쓰느냐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쓰느냐에 따라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어쩌면 독자에게 본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까지도 생기겠지요. 객관적인 역사의 기록과 연대기는 그대로 풍광처럼 미동하지 않지만, 어느 포인트에서 어느 조건으로 글을 쓰느냐에 따라 독자들이 그 역사를 받아들임이 달라집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서를 읽는 관점과 생각을 점검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방대한 분량인지라 1,2권으로 나뉘어 출간 되었군요. 역사와 철학 전공자인 헤이든 화이트는 이 책 외에 주요 저서로 《역사의 선용(The Uses of History)》 《비코(Vico)》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시련(The Ordeal of Liberal Humanism)》 《담론의 비유법(Tropics of Discourse)》 등이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저술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사학 사상의 고전들을 읽어가는 동안에, 나는 그러한 고전들을 역사적 성찰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형식이론(formal theory)을 역사 연구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저자는 역사가 일반적으로 시적(詩的)이며 본질적으로는 언어적일 뿐 아니라, 마땅히 있어야 하는 독특한 ‘역사적’ 설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패러다임으로서 기여하는 심층구조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패러다임이 바로 모든 역사 연구에서 ‘메타 역사적(meta historical)'인 요소로 작용하며, 이 요소는 연구 논문이나 기록문서보다도 훨씬 포괄적이라고 합니다.

 

역사가들이 역사서를 써내려갈 때 이용하는 전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논증에 의한 설명, 플롯 구성에 의한 설명, 이데올로기적 의미에 의한 설명 등입니다. 이 상이한 각 전략들 속에 저자는 네 개의 또 다른 상이한 표현 형식들을 찾아냈다는군요. 논증에는 형식주의, 유기체론, 기계론, 맥락론 등의 형식이 있으며, 플롯 구성에는 로맨스, 희극, 비극, 풍자의 원형들이, 이데올로기적 의미에는 무정부주의, 보수주의, 급진주의, 자유주의 전략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형식의 결합은, 저자가 특정한 역사가나 역사철학자의 역사 서술상의 ‘문체’라고 부르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론되는 역사가 또는 역사철학자들이 1, 2권에 나뉘어 초대됩니다. 미슐레, 랑케, 토크빌, 부르크하르트와 같은 19세기 유럽의 역사가들과 헤겔, 마르크스, 니체, 크로체와 같은 역사철학자들입니다. 역사가란 본질적으로 시적(詩的)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이며, 그러한 시적 활동을 통해서 역사가는 역사의 장을 예시하고, 역사의 장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가 이용하는 독특한 이론들을 적용하는 장으로 역사를 구성한다고 합니다.

또한 이 예시(pre-figuration)의 행위는, 언어 형식으로 규정 할 수 있는 수많은 형식과 유형들을 받아들이고 있다합니다. 저자는 이 예시의 형태를 시적 언어의 네 가지 수사법으로 구분합니다. (나누는 것도 많군요). 은유(metaphor), 환유(metonymy), 제유(synecdoche), 아이러니(irony) 등입니다.

 

 

역사는 흔히 과학과 예술의 혼합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러나 최근 분석철학자들은 역사가 어디까지 일종의 과학으로 간주 될 수 있는가를 해명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역사의 예술적 구성요소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19세기의 위대한 역사가의 저작들에 나타난 이 ‘메타 역사적’인 요소가 ‘역사철학(philosophy of history)'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 역사철학이 그들의 저작들을 떠받치고 있는 지주이며, 역사철학 없이는 그들이 이룩한 어떤 형태의 업적도 결코 나타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헤겔의 사학사상은 아이러니에서 출발했군요. 그는 역사를(역설로서의)의식과 (모순으로서의) 인간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사실로 전제하고, 환유적, 제유적 이해 형식이 세계를 그렇게 보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철학강의》서론에서 헤겔은 형식주의 방법을 이용한 추론의 한 형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재질, 능력, 미덕, 감정, 신앙심이 모든 영역과

모든 정치적 제도와 상황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다는

타당한 주장에 대해서 하나의 (....)추론 과정이 적용 될 수 있다.

그러한 현상을 드러내주는 사례는 풍부하게 존재한다.

《역사철학강의》p.65

 

또한 헤겔은 ‘근본적’ 역사와 ‘반성적’ 역사를 반복해서 구분했는데, 본질적으로 근본적 역사는 시적 성격을 띠게 되고 반성적 역사는 차츰 산문적인 경향으로 기우는 면이 있으며, 반성적 역사는 보편적, 실용적, 비판적 형태의 역사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헤겔의 뒤를 잇는 역사학의 거장들은 낭만주의 역사학을 주도한 천재 미슐레, 역사학파의 창시자이며 탁월한 역사가일 뿐 아니라 아카데미 사학의 전형이기도 한 랑케, 뒤르켐, 베버와 함께 근대 사회사학의 원조이자 사회사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토크빌, 그리고 전형적인 문화사가이며 심미적 사학의 개척자일 뿐 아니라 역사적 표현에서 인상주의적 형식의 대표자인 부르크하르트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와 ‘역사철학’의 차이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19세기의 위대한 네 사람의 역사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상이한 해답을 제시했으나, 그들 모두가 진정한 역사선입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과거의 사실 자체에만 의거해서, 그리고 사실을 형식의 체계로 몰아넣으려는 어떤 선험적인 편견도 지니지 않고 서술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거장들이 서술한 역사의 가장 놀랄 만한 특징은, 형식적 결합과 역사의 장에 대한 개념의 우위였습니다. 이 네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크하르트는 사실 그 자체로 하여금 말하게 하거나, 이야기의 관념적인 원리들을 가장 완벽하게 그의 저서들의 구성 속에 감추었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심어 준 인물이었습니다.

19세기의 위대한 이 네 사람의 역사가들은 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해답을 제시하고, 역사를 구성하기 위해서 로맨스, 희극, 비극, 풍자라는 형식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의 장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 자세 - 무정부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복고주의적 자세 - 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급진주의자는 아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역사의 장을 예시한 언어학적 규약이 바로 은유, 제유, 환유 , 아이러니의 규약이었습니다.

 

 

2권에서는 역사철학자들을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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