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신화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구우 지음, 정용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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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비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바다의 용왕이 보낸 사자(使者)둘이 찾아왔다. 간곡히 동행을 원하자 길을 나선다. 그들을 따라 함께 남문 밖에 나가 보니, 붉게 칠한 큰 배 한 척이 물가에 대어 있었다. 배에 오르자 두 마리 황룡(黃龍)이 양편에서 옹위하며 달리는데, 질풍같이 달려 순식간 즉, 눈을 한번 깜빡이고 숨을 한 번 쉬는 동안에 용궁에 도달했다.”

 

용왕은 선비에게 예(禮)를 다해 융숭한 대접을 해줍니다. 용왕이 하는 말 좀 들어보소. “과인의 거처가 누추해, 교룡(蛟龍)이나 악어(鰐魚)와 이웃하고, 물고기나 게들과 같이 살다보니, 왕으로서의 위신과 권위를 보이거나 왕명을 떨칠 수 없어, 이제 따로 한 궁전을 지어 영덕전(靈德殿)이라 부를 생각이외다. 이미 집지을 목수와 재목들은 다 갖추어 놓았으되, 상량문(上樑文, 궁전을 건립하며 대들보를 올릴 때 지은 집을 칭송하는 뜻으로 지은 글. 당나라 말엽부터 비롯되었다고 함.)만 갖추지 못했소이다. 들리는 소문에 선생은 세상에 다시없는 드문 재주를 지니고 이 세상을 구제할 경륜을 쌓았다지요. 특별히 맞이해 이곳까지 모셔 온 것이니, 과인을 위해 상량문을 지어 주심이 어떠하오니까?”

 

용궁까지 가서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진 선비는 근사하게 장문의 상량문을 써줍니다. 미녀 스무 명이 춤을 춰주는 잔칫상까지 받고, 시문(詩文)을 주고받으며 즐기다가 드디어 떠날 시간이 되었지요. 용왕이 빈손으로 보낼 리가 있겠습니까. 야광주(夜光珠)열 알과 통천서각(通天犀角, 뿔 소에는 일맥의 기운이 있다. 상하로 곧바로 뚫린 것을 통천서라고 한다, 이것을 닭에게 비추면 닭이 두려워서 물러난다고 했다). 선비가 집에 도착해 가지고 온 보석들을 팔아 억만금 부자가 되었다지요. 훗날에도 그 선비(선문)는 공명에 뜻을 두지 않고 집을 나와 도를 닦으며 명산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21편 실려 있습니다. 아직 전등신화를 읽지 못하신 분들은 응, 이런 이야기? 우리 아이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긴데? 전등신화인줄 알았더니 전등동화네..하실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요약해서 옮기다 보니까 동화같이 되어버렸네요. 그러나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시문(詩文)들은 그 자체가 귀한 문학의 유산입니다. 고전(古典)이 고전으로 남은 것은 고전다움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의 글들에는 무려 150여 편의 서책(사서삼경을 비롯해서)과 60여 인의 시문이 담겨 있습니다. 원래는 40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이었으나 현재 총 21편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 목판본 《剪燈新話句解》(1559)를 원전으로 삼아 고전문학 전공자인 정용수교수가 아주 꼼꼼히 주석을 붙이며 옮긴 것입니다. 현전하는 최고본으로, 현재 규장각(奎章閣)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요약이 아닌 완역본입니다.

 

저자 구우(瞿佑)(1347~1433)에 대해 :

원말 명초의 학자입니다. 중국 절강성 전당(지금의 항주)출신으로 학식도 풍부하고 문필에도 능해 14세 때에 이미 문명(文名)을 사방에 떨쳐 당시 대 문장가였던 양유정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청, 장년기 때엔 훈도 생활을 하다가 노년기엔 우장사라는 직위까지 올라갔으나 61세 때 견책을 당해 귀양을 갑니다. 18년 동안 귀양 생활을 하던 중 복직이 됩니다. 86세(1433)에 생을 마감합니다.

저작으로는 《전등신화》 외에도 《귀전시화》, 《존재시집》, 《악부유언》 《춘추귀주》. 《여청곡》 등이 있었다고 중교 서문에 전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가 최근 그중에서 《악부유언》이 중국 남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음이 확인됨으로써 그의 많은 작품들이 후대에 들어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시가 《열조시집》, 《명시기사》 등에 실려 있습니다.

 

 

전등신화(剪燈新話)의 문학적 가치 :

《전등신화》는 중국 명대의 소설이지만, 조선조 초에 이미 유입되어 왕조가 끝날 때까지 줄곧 읽혔습니다. 창작되고 채 50년이 못 되어 조선으로 유입된 《전등신화》를 읽고 우리 이야기를 만든 매월당 김시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전등신화》는 전기소설(傳奇小說)입니다. 전기소설이라 함은 말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기이한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엔 현실적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탐관오리를 고발하고, 서민들의 마음을 보듬어 힘을 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아울러 당시(唐詩)의 난숙함과 고문(古文)의 사실적인 정신이 깊이 배어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전기소설의 전통을 계승해 당시에 유행하던 기괴한 내용들을 소재로 창작된 대표적인 명대 문언소설이 《전등신화》입니다.

 

 

내용은 비록 지괴(志怪)적인 소재를 채용했지만 현실과 사상의 표현 수법 면에서는 적극적인 환상 수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구우선생에게 결례가 안 된다면 동양권 최초의 ‘판타지 문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현대적 판타지 문학과는 그 느낌이 다르긴 합니다만 독자를 이야기 속에 빠지게 만듭니다. 일단 재밌습니다. 러시아의 망명 문학가이자 학자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미국 코넬대학의 첫 번째 문학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수업을 수강하는 이유를 적어서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나보코프는 한 학생이 적은 답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제일 맘에 들었던 모양이지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용왕이야기가 좀 썰렁 하시다구요?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요?

‘취취전(翠翠傳)’이라는 이야깁니다. 취취는 성이 유씨로, 회안 지방 어느 평민의 딸입니다. 날 때부터 총명해서 능히 시서(詩書)에 달통하자 부모도 그녀의 뜻을 물리칠 수 없어 서당에 다니도록 했습니다. 같은 서당에 다니는 김씨집 아들이 있었지요. 이름을 정이라고 하는데 그와 동갑인 데다가 또한 총명하고 잘 생겨서 서당에 다니는 다른 아이들은 그들을 놀려댔지요.

“동갑네는 부부가 된다더라.”

두 사람도 마음속으로 그리 되려니 생각하고 있었지요. 서로 시문(詩文)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웁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할 적령기가 되자 양가집의 빈부가 걸림돌이 됩니다. 중매쟁이가 끼어들어 지혜롭게 잘 처리하는군요.

드디어 결혼입니다. 첫날밤에 시(詩)를 주고받습니다. 베갯머리 시입니다.

먼저 신부가 신랑에게

 

일찍이 서재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옛 친구 오늘은 신랑이 되었네.

신방에 밝힌 불빛 완전히 봄이건만,

땀은 분가루를 적시고,

몸은 사향 먼지를 일으키네,

 

체우우운(殢雨尤雲, 남녀 간의 사랑하는 마음,

‘심한 구름과 오래 머무는 비’라는 뜻도 있다합니다.)은 전부 익숙지 못한 거라서,

잠자리에서 눈썹먹을 찡그리며 부끄러워하네.

가련하고 애처롭다 자주 싫다 마소서.

원하노니 낭군이요! 이제부터 시작합시다.

날마다 가까이하고 날마다 서로 사랑하기를.

 

이에 신랑이 화답합니다.

 

서재에서 함께 공부하던 기억뿐인데,

신부가 다른 사람이 아니었구나.

쪽배로 찾아든 무릉은 봄이니,

신선 사는 곳에 이웃한 자부는

속세의 홍진과는 떨어져있으리.

 

바다에 서약하고 산에 맹세하며 마음으로 이미 허락했거니,

가벼운 웃음과 살짝 찡그린 얼굴이 몇 번이건,

날 보고 오히려 혼잣말이 잦아도,

마음에 품은 생각 딴 뜻이 없다면,

사랑한 다음에 뉘 있어 사랑하겠소.

 

참..대단합니다. 신혼 첫날밤에 이렇게 詩를 주고받으신 분 있습니까? 나도 못해봤습니다만.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 전쟁이 일어나서 신부가 점령군 장군에게 붙잡혀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랑이 신부를 찾아 나섭니다. 천신만고 끝에 신부가 있는 장군의 집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내 아내 내놓으시오.” 하고 덤벼봤자. 두 사람에게 좋을 일이 없는지라. 신랑은 신부가 피붙이라고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누이라 속이고 한 번 만납니다. 그리고 신랑은 장군의 눈에 들어 비서격인 서기로 임명됩니다. 그러나 신랑, 신부의 목적은 단 하나 서로 함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세월만 갑니다. 한 지붕에 있으면 뭐하나요. 얼굴도 못 보는데. 마음의 병이 깊어진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군의 집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장군이 남매라 여기고 있던 두 사람의 무덤을 나란히 해서 묻어줍니다.

 

 

(여기서부터는 두 사람이 소위 귀신이 되어 나타납니다)

  신부의 친정집에 있던 하인 중에 장사를 업으로 하는 자가 우연히 두 사람이 누워있는 무덤 앞을 지나는데, 이 무덤이 장사치의 눈에는 붉은 대문이 달린 화려한 집으로 보입니다. 두 부부가 집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놀랜 이 옛 하인 편에 고향집 부모님께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를 받은 부모는 너무 기뻐 즉시 부부가 산다는 곳으로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옛 하인이 부부를 만나게 된 그 집을 찾았으나 집은 간 곳이 없고, 황량한 들판에 나란한 무덤 두 개만 있었지요.

 

마침 지나가는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그 스님이 장군 집에서 숨을 거둔 김생과 취랑부부의 무덤이라고 일러줍니다. 깜짝 놀라 그 편지를 꺼내 살펴보니 백지 한 장이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픈 이 아버지, 딸에게 이르기를 “나와 너는 살아생전에 부녀간인들 죽은들 무슨 상관이냐. 너에게 혼백이라도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한 번 나타나서 내 의심을 풀어 주려무나.” 나는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보통 귀신은 두려운 존재입니다. 생(生)은 생(生)이고, 사(死)는 사(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가족, 꿈에라도 나타났으면 하는 내 사랑이 설령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날지라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을 듯합니다. 문득, 내게도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나타나면 골치 아프겠지요? 어쨌든 그 날 밤 먼 길을 마다않고 온 아비는 무덤가에서 잠이 들고 부부가 나타납니다.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귀신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마음이 아픕니다. 보는 나도 마찬가지구요.

 

아비는 부부의 묘를 고향땅으로 이장했으면 하나 이렇게 답을 하는군요.

“다행히도 저는 살아서는 진짓상을 살펴 드릴 부모님을 얻지 못하지는 않았고 죽어서는 머리를 선영에 둘 인연이 없지는 않군요. 그러나 땅속이 아직 조용하고 마음도 편안하오니, 다시 뼈를 옮긴다면 도리어 번거롭기만 할 것이옵니다. 하물며 산천이 수려하고 초목이 우거져 이미 안정이 된 터라서 원하는 바가 아니옵니다.”

 

21편의 이야기 중에서 2편을 아주 간략하게 액기스만 뽑아서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글이 쓰인 시대적 상황은 인재들을 산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분위기였더군요. 권력을 쥐고 있는 관리들이라는 존재들이 무식하거나 탐욕스럽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았답니다. 이런, 그리고 보니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었군요. 목이 뻣뻣한 관리들의 존재 말입니다. 그런 입장에 처한 선비들이나 서민들에게 어찌 꿈이 없겠습니까. 이 《전등신화》엔 속이 타들어가는 민중들의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내용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몽환적이지만, 사랑, 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전등(剪燈)이란 뜻은 ‘등불의 심지를 자른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을 쓴 구우선생이 전등(剪燈)을 하시면서 글을 썼듯이 후세 사람들 역시 전등(剪燈)하면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어려서 시골 외갓집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 방학이었지요. 날은 춥고 밤은 일찍 찾아오는 겨울. 호야불이라고도 하는 호롱불을 켜놓고 책을 읽었습니다. 한참 켜놓으면 심지(心地)가 탑니다. 그대로 두면 그을림만 생기지요. 그래서 타버린 심지는 가위로 조심스럽게 잘라내고 다시 심지를 돋웁니다. 불의 밝기는 심지로 조절하지요. 심지를 잘라내고 다시 불을 켜면 아주 맑은 불이 켜지던 것이 기억납니다. 동양의 고전을 읽는 맛은 깊은 맛이 있습니다. 다 타버린 심지(心地)를 잘라내고 새 심지 (心志)를 심습니다. 독서를 통해 생과 사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 모든 것 지나고 나면 그만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참으로 남은 시간을 지혜롭게 잘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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