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데이비드 흄 지음, 김혜숙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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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알아들었다는 뜻인가?

그 앞뒤 사정까지도 생각이 보태진다는 뜻인가?

 

흄에 의하면 인간 이성이 다루는 모든 탐구 대상들은 근본적으로 두 부류, 즉 관념들의 관계(Relations of Ideas)를 다루는 것들이거나 사태(Matters of Facts)를 다루는 것들이다. 관념들의 관계에 해당하는 것들로는 기하학, 대수학, 그리고 산수와 같은 학문이 있다. 즉, 직관적으로나 논증적으로 긍정되는 것들에 대한 모든 주장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사태는 어떤가? 관념과 같은 방법으로 확인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갖는 그 진리에 대한 확실성 또한 그것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관념들의 관계에 대한 탐구가 갖는 확실성만큼 크지 않다. 따라서 사태에 관한 모든 추론은 인과 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듯 하다고 한다.

 

“인과관계에 대한 지식은 추론에 의해서 선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특정한 대상들이 서로 지속적으로 결합된다는 것을 발견할 때 얻어지는 경험으로부터 생긴다. (......) 어떤 대상이든 감각에 나타나는 성질들만 가지고서는 대상을 산출해 낸 원인을 밝혀낼 수 없으며, 그 대상으로부터 나올 결과도 밝힐 수 없다. 경험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성은 사실적 존재나 사태에 어떤 추론도 해낼 수 없다.”

 

여러 관념들은 세 가지의 관념 연합의 법칙에 의해 섞이고 복잡해지며 확장된다. 연상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이 세 가지 법칙은 유사성의 법칙, 근접성의 법칙, 그리고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다. 연상 법칙이란 객관적 실재 세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느낌에 의존한 법칙이다. 흄은 인간의 앎 전부를 인상들과 관념들, 그리고 연상 법칙에 의한 관념들의 연합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의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진리는 주관적인 것, 심리적인 것이 된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1711년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계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을 일찍 여윈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교육받았다. 법률가 가정 출신이고 교육열이 높았던 그의 어머니는 흄이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으나, 그는 문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늘 그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어 했다. 이런 바람으로 흄은 늘 글쓰기에 게으르지 않도록 자신을 채찍질했고, 그 결과 많지 않은 나이인 25세에 대작 《인간 본성론》을 완성하게 되었다.

 

흄이 역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역사 공부의 당위성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시대나 장소를 초월하여 거의 모두 같고 역사는 어떤 특정 시대나 장소에서도 특별나고 새로운 사건이 벌어진 바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본성을 발견하는 데에는 역사가 주로 많이 이용된다. 역사는 온갖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여러 정황에서 묘사해주고, 우리 자신을 잘 돌아보고 인간의 행동과 행위의 규칙적인 발생 원천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자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흄은 인간의 본성은 그 원리들이나 작용들에 있어서 늘 여전히 동일하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같은 동기는 항상 같은 행위를 낳는다. 동일한 사건들이 같은 원인들에서 생긴다. 이는 여러 가지로 얽혀 있으며,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야망, 탐욕, 이기심, 허영심, 우정, 관용, 공공 정신 등과 같은 정념은 태초부터 계속해서 인류에게서 관찰되는 모든 행위와 모험심의 원천이다.

구조주의 문예 이론가이자 사상가인 츠베탕 토도로프는 그의 저서 『민주주의 내부의 적』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의 범죄, 특히 강제수용소의 실상이 밝혀졌을 때, 서구 여론은 자신들을 나치즘의 괴물과 구분 지으려고 애썼다. 오늘날까지도 역사가, 소설가, 영화감독이 나치 주모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동기로 그러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할 때마다 항의가 빗발친다. 그래서 누군가 과거사건을 이해하려고 하거나 심지어는 단순히 당시의 맥락을 고려하기만 해도 그가 사건을 변호한다고 선언해버린다. 히틀러가 우리와 같은 특징을 가진 인간이었다는 생각에 우리는 분노한다. 히틀러가 저지른 악은 끔찍하다. 사람들은 그를 우리의 본성과 역사의 외부에 있는 비정상적인 괴물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듣고 싶지 않더라도 소수자의 목소리가 정반대의 실상을 명백하게 증언한다. 세계대전 때 자유프랑스 전선에서 싸운 로맹 가리는 첫 소설에서부터 적들이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인간성을 지녔다는 사실과 인간들의 잔인함을 고발했다. 그의 소설 『튤립』에서 할렘의 흑인 낫(Nat) 삼촌은 “독일에서 범죄자는 바로 인간이야.” 라고 말하며 소설 『절반』에서는 알제리인 라통이 친구 뤽에게 “너 이 세상에 독일 놈들이 몇 명이지 알아? 30억이 넘어.”라고 말한다.

 

흄은 이 책에서 철학의 여러 종류에 관해, 관념의 기원과 연합에 관해, 이해력의 작용에 대한 회의적 의심에 관해,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회의적 해결에 관해, 개연성 그리고 필연적 연관성이라는 관념에 관해, 자유와 필연성에 관해, 아카데미 철학 혹은 회의적 철학에 관한 깊은 내용들을 비교적 쉬운 설명과 문체로 우리의 사고(思考)를 인도해주고 있다. 역자 김혜숙 교수는 이 《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는 칸트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칸트 자신이 술회한 바처럼 그를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은 영어로 된 철학 저술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을 만큼 중요한 저서이므로 누구나 반드시 읽어 봐야할 필독서라고 추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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