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니 그랑데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조명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평생을 재산 축적에만 올인 해온 수전노 그랑데 영감의 무남독녀 외동딸 외제니 그랑데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플롯은 소설이나 희곡의 단골 메뉴인 부(富)와 재산(財産), 명예(名譽), 권력 그리고 사랑, 배반 등이다. 이 책을 통해 발자크는 낭만주의 시대에서 사실주의 작가의 대열로 등재되는 계기가 된 동시에 작가로서의 성공을 확실시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 다시 왕의 통치 체제로 돌아선 복고 왕정 시대가 그 배경이다. 소뮈르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낡고 음침한 저택을 무대로 펼쳐지는 10년 동안의 이야기는 대혁명이후 프랑스 사회의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자리 잡게 되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탄생 과정에 대한 실증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늘 억압되어 있던 두 여인은 고통의 영역에서 한순간 자신들의 천성을 자유롭게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주인공의 지독한 구두쇠 아버지 그랑데 영감은 늙은 통장수이며 포도재배자이다. 그는 자신의 수확량에 따라 통을 천 개 만들어야 할지 아니면 오백 개 만들어야 할지 거의 천문학자처럼 정확하게 추산했다. 나름대로 재산 축적을 하는 데는 공을 들이고 노력하는 부분이 보인다. 문제는 얼마 되지도 않는 식구인 아내와 딸에게까지도 지나치게 인색함을 보이는 것이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하녀에게 창고 문을 열고 그 날의 양식을 겨우 요기할 정도만 내주는 격이니 이건 참 지나치다 못해 이해할 수 없는 소치이다.

 

그랑데 영감은 재정적인 면에서 호랑이와 보아 뱀의 특성을 두루 지니고 있었다. 그는 몸을 낮춰 도사린 채 먹잇감을 노려보고 있다가 한순간에 덮치는 법을 안다. 그리곤 지갑의 주둥이를 열어 한 줌의 돈을 삼키고 나서 태연한 얼굴로 냉정하고 꼼꼼하게 소화시키는 뱀처럼 조용히 드러눕는 것이다.

 

영감의 지독한 인색함과 질식할 것 같은 집안 분위기 덕분에 모녀는 아무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 지내는 생활이 이어지던 중 이 책의 주요 플롯이기도 한 영감의 딸 외제니의 사촌이 파리에서 이 집으로 오게 됨으로 긴박감이 더해진다. 사촌간이지만(예전 유럽 쪽에선 사촌간의 결혼이 공공연하게 의도적으로 행해졌다)서로 사랑의 마음을 품게 된다. 좀 더 선명한 설명은 외제니가 사촌 샤룰에게 연정을 갖게 된다. 샤를은 파리지엥이다. 온갖 사치와 환락의 세계에서 잠시 그의 큰아버지인 그랑데 영감에게 그의 아버지의 편지를 전해주러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샤를의 아버지는 아들을 그의 형에게 보냄과 동시에 재정적인 이유로 권총 자살을 하게 된다. 그는 그가 죽고 난 후 아들의 장래를 염려하며 그의 형인 그랑데 영감에게 맡긴 것이다.

 

서로 사랑을 느끼면서 “영원히 그대에게!” 라는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샤를이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떠나면서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7년 만에 부자가 되어 돌아온 그는 더 이상 외제니와 굳은 맹세를 나누던 때의 샤를이 아니었다. 그 동안 외제니에게 단 한 장의 편지도 보내지 않던 그는 인도에서 귀국을 앞두고 외제니와 결합 할 수 없다는 나름의 이유와 변명을 하며 부(富)의 유지와 신분 상승을 위해 다른 여인과 전략적인 결혼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낸다.

 

발자크는 이러한 샤를의 모습을 그리면서 순진하고 유약한 한 청년이 사리에 밝은 냉혈한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 메커니즘과 당시 만연해 있던 부르주아적 결혼관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오노레 드 발자크는 쉰한 살이란 길지 않은 생애동안 100여 편의 장편소설과 여러 편의 단편 소설, 여섯 편의 희곡과 수많은 콩트를 써낸 정력적인 작가이다.

 

글을 읽는 이에 따라 각기 다른 느낌과 평가가 다르겠지만, 이 소설의 끝은 해피 엔딩으로 보고 싶다. 외제니와 샤를이 서로 결합되는 것은 아니다. 돈과 명예만을 쫒는 자의 삶의 결말은 일차적으로 그랑데 영감을 통해서 보게된다. 남겨 놓고 가는 돈이 너무 아까워서 제대로 죽지도 못한다.

가는 마당에 딸에게 오직 이 말을 남긴다.

 

“모든 것(재산)을 잘 간수해야 한다. 저승에 와서 내게 보고해야 돼”.

 

 

문득 떠오르는 유머가 있다. 그랑데 영감은 발치에도 못 미치는 더 지독한 탐욕가가 있었다. 딸린 자식과 식솔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임종 직전에 유언을 남긴다. “모든 재산을 현금화해서 내 관에 함께 넣어 줄 것!” 장례식날 입관 때 고인의 장남은 봉투 하나를 던져 넣었다. 그 안에는 [약속어음]이 들어 있었다. 저승에서 뵙게 되면 드리겠다는 추신과 함께..

 

아무리 돈에 미쳐서 날 뛰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도 주인공 외제니는 꿋꿋하다. 물려받은 유산을 지혜롭게 잘 관리하며 나눔을 실천한다.  ‘뭐 그렇게까지’할 정도로 사랑의 배신자이자 사촌인 샤를에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표현한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성품은 대체적으로 물질지향, 권력지향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에 비해 여인들은 사려 깊고 지혜롭다. 이는 아마도 발자크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난 후 그 궁핍의 시기에 수 없이 많은 여인들(주로 부인들)에게서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