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도 없는 무덤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피터 무누헤 카레이디 지음, 양철준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은 영국이 케냐를 식민 통치했던 시기에 케냐 원주민인 카쿠유족을 주축으로 그들이 전개한 무장투쟁 ‘마우마우(Mau Mau)’에 대해 피터 무누헤 카레이디가 사실에 기초해서 서사적으로 기술한 역사소설이다.

 

“비상사태 시기에 죽은 다른 많은 사람처럼 뭄비와 그녀의 아이가 묻힌 무덤에는 십자가도 이름도 없다. 그래서 누가 그곳에 묻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살다간 흔적이 이 세상에 남아 있기를 바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에 삶이 피폐해져서 그런 꿈마저 꿀 여념도 없이 눈을 감을 수 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삶을 누군가 기억해주길 바란다. 십자가조차도 없는 무덤. 그 사람의 종교를 떠나서 위의 인용 글처럼 십자가조차도, 아무런 표식조차도 없는 무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마우마우’라는 용어는 바라보는 주체에 따라 견해와 해석이 다르다. 마치 한 동안 우리의 5.18이 ‘광주민주 항쟁’, ‘광주 사태’등으로 불렸던 것과 비교된다.

 

19세기 중엽 탐험가들과 독일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동아프리카의 사정이 유럽에 비교적 상세히 알려지게 된다. 그 곳 원주민들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다.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영국은 1894년에 우간다를, 이듬해인 1895년에 케냐를 보호령으로 선포했다.

식민체제의 수립 이전에는 토지의 사적 소유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케냐의 전통사회에서 백인 정착민들이 경계를 치고 토지를 사유화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의 전주곡이었다. 백인들에게 토지를 불하하는 과정에서 강압적 토지수탈이 진행되었고 기존의 사회적 위계, 구조, 가치에도 커다란 변화가 초래되었다.

 

이러한 억압체제, 즉 식민지화 과정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이 형성된다. 식민정부의 관리들에게 지나치게 협조하는 토착민 세력이다. 이들을 소설에선 ‘검은 백인’ 이라 부른다. 또 한 부류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저항세력이다. 이 저항 세력이 이 당시 케냐에선 ‘마우마우’이다.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인권이 유린된 상태에서 희생만 당할 뿐이다. 십자가도 없는 무덤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어찌 이러한 사례가 아프리카에서만 일어났겠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 기간 동안에 겪었던 부끄러운 과거이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메자 블루와 뭄비 라는 두 청년이 있다. 메자 블루는 제2차 세계대전에 동원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백인들은 비옥한 땅과 좋은 직장이 제공되는 상황에서 단지 아프카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땅은커녕 직장조차도 구할 수가 없다. 뭄비라는 이름의 아가씨는 아버지가 역시 2차 대전에 참여해서 목숨을 잃었기에 홀어머니와 함께 산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의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각오하겠다는 그네들만의 맹세의식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메자 블루는 저항군에 합류하고, 뭄비는 이 일(맹세의식)로 고초를 겪게 된다. 급기야 식민정부의 충복으로 변모한 케냐 원주민 추장의 강간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던 중 아이와 함께 숨을 거둔다. 이 소설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이들과 같이 케냐인들의 많은 희생이 있은 후 1963년에 케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케냐의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는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마우마우의 활동에 대해 과거의 일로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평가와 예우를 소홀히 했다.

그 뒤를 이은 대통령 대니얼 모이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마우마우와 대립관계에 있던 수구파들이 독립국가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그들이 축적된 부와 권력을 든든히 해줬을 뿐이다.

 

망각된 역사,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역사는 불의한 구조가 새롭게 잉태될 수 있는 토양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식민 역사의 청산, 진실 규명, 역사 바로 세우기에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무거운 짐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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