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벽
요로 다케시 지음, 김순호 옮김 / 고려문화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어젯밤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눈이 떠졌습니다. 곁에서 자던 아내가 가위에 눌렸는지 비명을 지릅니다. 이럴 땐 일단 깨워야 합니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깨워 살려내고 볼 일입니다. 흔들어 깨우니까, 꿈과 현실의 문턱에서 아내는 한 번 더 놀랩니다. 일어나 물을 한 컵 마시게 한 후에 아내는 다행히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만, 이젠 내가 잠이 안 옵니다. 무슨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기에 그랬나? 내가 책을 보는 사이에 아내는 수사물 미드를 보다 잠이 들어서 그랬나? 생각하다 나도 어느새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잠을 자고 있어도 뇌가 완전히 기능을 멈추는 것은 아니지요. 호흡을 하고 있으니까 연수도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꿈을 꿀 때 뇌파를 측정해보면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뇌피질에서 활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불이 켜져 있습니다. 단지 그 밝기만 줄어 들 뿐입니다.

 

이 책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젊은 사람들을 위해 평이하게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젊은 사람을 설명하는 것이 재밌습니다. 저자는 결코 나이로 젊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를 모르는 현대인 모두가 우둔하지만 정겨운 젊은이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도 젊은 편에 속합니다. 아니 어리다고까지 봐야하나요?

 

책의 전편을 통해 흐르는 것은 뇌(腦)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뇌를 관찰해 봐도 마음은 모르겠다.” 신경세포 분야 생리학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존 C.에클스(호주, 1903~1997)와 캐나다 출신의 뇌신경외과 의사로 대뇌피질의 기능적인 지도를 그린 와일더 펜필드 등이 공통적으로 한 말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합니다. 남의 마음뿐이 아니지요. 내 마음도 모르긴 마찬가집니다. 가령 동전을 던져서 앞면인지 뒷면인지를 알아맞히는 게임에서 왜 그 쪽을 선택했느냐고 물으면 그냥 ‘직관’이라고 대답할 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대부분 ‘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것도 뇌입니다. 자기의 뇌가 자기를 잘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뇌가 뇌를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뇌가 뇌를 아는지, 또 알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쉽게 이야기해도 뇌 이야긴 복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할 수는 없지요. 이 책에선 뇌 이야기라기보다는 마음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자는 본인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마음’과는 친숙하지만 뇌와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뇌는 곧 마음’이라는 등식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뇌와 마음의 관계는 확인하려고 해도 뇌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확인할 수 가 없다. 뇌가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아는 것도 당신의 마음이지 뇌는 아니다. 우리는 뇌가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다.”

 

언어의 유희 같지요? 키워드는 뇌와 마음입니다. 결국 저자는 그대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상대방의 마음을 콕 찔러볼 때 내 언짢은 마음도 전할 겸 통상적으로 하는 말이 있지요.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생각해봐!” 가슴엔 뭐가 있지요?

심장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난 내 할 일 하기도 바빠. 내가 템포를 늦추거나 빠르게 하면 당신도 힘들어져. 멈추면 끝이고. 그러니까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둬.”

심장의 말을 존중한다면, 말을 바꿔야 할 듯싶네요.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생각해봐!”

이런..차라리 두 손 들고 벌서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낫겠네요. 마음이 내킨다면 말입니다.

결론은 ‘마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뇌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신지요?

 

“과학의 세계에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들 뇌의 전형적인 기능인 의식이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주관이라는 것은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적인 과학, 즉 19세기 과학에서는 의식을 자연과학에 포함시키지 않고 문학 부문에 넣어버렸다. 따라서 지금도 심리학은 인문과학에 속해 있다. (………) 그러나, 의식이 과학의 대상으로까지는 되어 있다. 그래서 고전적인 자연과학이나 심리학 같은 것 외에 인지(認知)과학이라는 분야가 생겨났다. 인지과학의 범주는 실제로 우리들의 뇌의 기능뿐만 아니라 계산기의 기능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것이다. 이런 분야가 계속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고전적 의미에서의 자연과학만으로는 뇌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21세기는 뇌의 세기’라고 합니다. 뇌 연구학자들의 공통된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단어가 ‘뇌’로 전환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뇌에 대해선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서적이 나올 것입니다. 마음의 연구 또한 함께 가겠지요.

 

참..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내에게 어젯밤에 무슨 꿈을 꿨기에? 하고 물으려다 그만 두었습니다. 얼굴 표정을 보니 기억에서 지워진 듯합니다. 공연히 꺼진 불씨 다시 살릴 필요는 없지요.

 

뇌 이야긴 아무리 쉽게 해도 딱딱하지요. 책에 인용된 이야기 한 꼭지 옮기면서 리뷰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문진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환자는 가슴을 펴고 대답한다.

“그래요, 나는 나폴레옹이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신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환자가 말을 받는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소!”

 

썰렁하십니까?

뇌 이야기 읽으시면서, 그대의 뇌에 켜졌던 불을 잠시나마 끄시라고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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