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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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듣는 소년

_루스 오제키 / 인플루엔셜

 

 

슬픈 사연들이 많아요. 이 가엾은 여인처럼.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아들이 정신적 외상을 입고 사물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정신적 외상을 입지 않고도 사물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사물들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내게 말을 건다고 가정하면 보통일은 아니다.

 

가엾은 여인의 아들, 소년의 이름은 베니. 베니의 엄마(애너벨)는 뉴스를 모니터링해서 배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재택근무중이다. 베니 엄마의 원래 꿈은 어린이책 전문사서였다. 실제로 한동안 문헌정보학과에 다니기도 했지만, 베니를 임신하고 중퇴해야했다. 그리고 남편 켄지가 교통사고로 죽던 날은 그녀가 남편한테 몹시 화가 나있었다. 아마도 워킹맘의 지쳐있고 채워지지 않는 몸과 마음의 갈망이 누적된 탓이리라 추측한다. 클라리넷 연주자인 켄지가 클럽에서 늦은 밤에서 새벽까지 있는 것(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도 참기 힘들었고, 켄지가 베니가 태어날 무렵부터 끊었던 마약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한 것도 그 화의 근원이었다. ‘곧 돌아올게하는 말을 남기고 문을 나서는 그의 등을 향해 식탁에 있던 아끼는 분홍색 찻주전자를 집어 던졌다. 주전자가 문에 부딪혀 박살이 났다. 그리고 켄지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근처 골목길에서 넘어졌다. 취했었다. 술과 코카인에. 그리고 쓰레기더미로 채워진 어두운 골목길에서 바로 못 일어나고 누워있을 때 짐을 실은 트럭이 그를 밟고 지나갔다.

 

베니의 나이 열두 살 때 일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겐 결코 들리지 않을 것이 확실한 소리를 듣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화장로를 향하던 관에서 베니를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다. 베니는 아빠의 관이 화장로로 향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베니는 애너벨과 다른 조문객들이 있는 두꺼운 유리창을 두드리며 안 돼! 안 돼!”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저 애도와 상실의 표현으로 봤을 것이다). 그 후로 베니는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범생의 눈으로 보면 베니는 심각한 불량이다. 그러나 인간의 다양한 내적성장을 염두에 둔다면 괜찮다. 그저 몸과 마음이 크게 다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베니에게 들리는 사물의 소리들은 때론 공격적이다. 한번은 칼이 그에게 선생님을 찌르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허벅지를 찌름으로 타인에게 상해를 끼칠 뻔한 위기를 넘긴 적도 있다. 결국 소아정신과병동에 입원한다.

 

 

이 책에는 책속의 책이 두 권 등장한다. ‘잡동사니를 치우고 삶을 혁신하는 고대 선불교의 기술이라는 부제가 붙은 정리의 마법이라는 책과 주인공 베니의 심리상태를 그려주고 이끌어주는 이다. 정리의 마법은 한동안 베니의 엄마 애너벨(호더, 저장강박증)에게 유용한 책이었지만, 소설 후반에는 베니 모자에게 어쨌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도서관 사서 코리에게 넘어간다. 선불교 여승이 쓴 정리의 마법에서 주장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어수선한 잡동사니는 개인의 게으름이나 꾸물거림, 정신적 문제, 성격적 결함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이고 철학적 문제라는 것이다. 개인의 자책감을 덜어주는 대목이다.

 

베니의 주변인물들은 사실 그리 밝은 캐릭터들은 아니다. 휄체어맨 노숙자이자 늙은 마르크스주의자인 시인 슬라보이, 베니가 흠모하는 알레프라는 소녀(거리에서 생활하는 예술가이자 떠돌이, 베니보다 연상), 약쟁이들 등등이다. 언더그라운드 집단이라는 표현을 써본다. 그들은 베니를 성장시켜주는 동력이기도 하다.

 

책 속의 책 정리의 마법에서 인용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다라는 챕터도 읽을 만한 내용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세부사항에 매몰되어, 우리의 삶이 서로 별개이고 우리 또한 서로 별개의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망상이다. 진실은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에 의존한다. 꽃은 태양과 흙과 비, 그리고 꽃가루받이를 해줄 벌에 의존한다. 꽃들은 이런 것들과 떨어져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이런 것들이 없으면 죽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다소 옴니버스 형식을 띄고 있지만, 그 스토리들은 유기적으로 소통된다.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베니의 주 활동공간이 도서관이라는 것, 생각하고 말하는 책(작가는 책을 말하는 사물이라고 표현했다)이 있다는 것 등을 통해 책과 인간의 관계 등을 생각해보는 시간도 된다. 소설 속 거리의 시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진짜란 무엇인가?” 지금 내가 눈으로 보는 것들이 의심할 나위 없는 진짜인가? 아울러 소설 속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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