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 서재를 떠나보내며 】     알베르토 망겔 / 더난



“독서를 단순히 여러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겸손한 표현이다. 내게 독서는 모든 즐거움의 원천이며, 모든 체험에 영향을 주면서 그걸 좀 더 견딜만하고 나아가 좀 더 합리적인 것으로 만드는 행위다. 영어에서 read(읽다)라는 동사는 reason(추론하다)이라는 동사와 어원이 같다.”



이 책의 저자 알베르토 망겔은 1948년 아르헨티나 태생이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이스라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십 대 후반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난다. 시력을 잃어가던 보르헤스에게 4년 동안 책(키플링, 헨리 제임스, 스티븐슨 등의 단편 소설들)을 읽어주는 동안, 그에게 직접 문학적 가르침을 받았고 향후 저자의 독서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받게 된다.



저자의 마지막 개인 도서관(서재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은 프랑스에 있었다. 3만 5천여 권의 장서가 있었다고 한다. “종종 나의 서재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고 또 나의 자아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아는 오랜 세월 꾸준히 변모해왔던 것이다.”



“나는 책을 충분히 많이 소유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_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저자는 거처(나라)를 자주 옮겨 다니다보니 책 싸기와 책 풀기가 반복되었다. 대단한 작업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책 싸기와 책 풀기는 똑같은 충동의 양면이고 둘 다 혼란의 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말을 남겼다.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한다. “책 수집가는 무질서와 질서 양극단 사이에서 변증법적으로 동일한 힘에 끌려간다.” 저자는 무질서와 질서 뒤에 ‘혹은 책 싸기와 책 풀기’라는 말을 썼어도 무방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저자는 책을 싸고, 풀고 하는 과정 중에 책에 담긴 에피소드와 느낌, 영혼의 진료실이라고 명명한 그의 서재 이야기, 작가와 작품, 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 그가 방문했던 각 나라 도시의 도서관, 사서, 사전 편찬자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나의 서재에 있는 책들은 내게 위안과 유익한 대화의 가능성을 약속한다.” 아울러 그 책들은 서가에서 꺼낼 때마다 소개, 의례적인 공손함, 허세나 속내 등이 필요 없는 우정의 기억을 제공한다고 한다. “나는 어느 날 저녁, 내가 이전까지 펼쳐본 적 없는 닥터 존슨이나 볼테르의 책을 꺼내 들고 그 책갈피 사이에서 수세기 동안 나를 기다려온 문장을 만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런 마인드로 책을 읽는다면 책 읽기가 훨씬 더 기대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보르헤스와의 인연이 워낙 깊었던지라, 그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보르헤스가 오십 대 중반에 들어서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안질로 실명했을 때,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에게 국립 도서관장 자리를 제안했다. 그는 수백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의 네 번째 눈먼 장관이 된다. (눈먼 장관을 국립 도서관장자리에 임명하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대단하다. 그것도 네 번씩이나..) 보르헤스는 그 일(국립 도서관장에 임명받는)을 기념하기 위해 「선물에 관한 시, Poem of the Gifts」라는 비가를 썼다. 그 시에서 하느님이 ‘책과 어둠’이라는 선물을 동시에 주었다고 노래했다. 자신이 천국을 도서관의 형상 아래에서 상상하는 사람이니, 그런 선물을 받을 만하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독서 인생의 마지막 장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서재는 해체되어 사라졌고 나의 작가 생활도 거의 끝났다. 이제 내게 남은 세월은 내 두 손의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끝이 아니었다. 2015년 11월, 아르헨티나의 새로 취임한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국립 도서관장 자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현재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장으로 재직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몇 가지 바람 중 하나는 다섯 번째 눈먼 도서관장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책이 체험의 기록이고 도서관이 기억의 저장소라면 사전은 망각을 물리치는 부적이다."

- P1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