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제가 참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어제 발행한 주보에 올리신 목사님의 칼럼중 일부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라고 옮겨보았습니다.

 

" 오래 전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을 읽었었는데 이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단다. 영화의 상영을 앞두고 교계의 관심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보수적인 연합단체인 한기총에서 법원에 상영금지를 요청했지만 기각 당했다. 기각사유는, "영화가 가설을 기초로 작가가 상상력을 보태서 창작한 소설에 기초해 있고, 따라서 영화와 소설 모두 허구임이 명백하므로 관람자로 하여금 영화에 등장하는 내용이 사실이라고 오인시킬 개연성이 있다고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한기총에서는 이에 불복하고 대대적인 상영금지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하니 '영화와 소설 모두 허구임이 명백'하다고 믿는 법관의 믿음이 더 좋아 보인다. 성도들의 수준이 소설적 허구와 진실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낮다고 생각지 않는다. 한 작가의 허구적인 상상력에 의해 2천년 기독교의 신앙과 교회의 정체성이 무너질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기독교가 앞장서서 오히려 영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얼마 전 상영되었던 [달마야 놀자] [달마야 서울가자] 영화촬영을 불교계가 직,간접적으로 적극 지원했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다. 그 영화를 본 사람은 알 수 있지만 그 영화 내용엔 스님이 술마시는 장면 같은, 불교계가 금기시 하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불교계에선 이 영화를 위해 한 사찰을 개조해서 촬영장으로  제공하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불교가 현대인들에게 좀 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갔음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원불교, 가톨릭, 불교 세 종교의 여성직자들의 모임인 [삼소회]가 성지순례를 같이 갔다 온 것이 TV에 소개된 모양이다. TV를 보진 못했지만 신문에 긍정적 기사로 크게 실린 것을 읽었다. 부활절엔 불교계 대표가 정진석 추기경에게 축하 메시지를, 석탄일엔 불교계에 축하 메시지를 서로 교환한 것이 신문에 긍정적으로 보도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유독 이 모든 일에 기독교만 소외되고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비춰지고 있는 기독교는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이익집단으로 오해되고 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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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5-22 19:01   좋아요 0 | URL
목사님의 시각이 온당하고 열려 있군요.
한기총에서 하는 일이 부끄러울 때가 너무 많습니다.
마침 로그인했더니 니르바나님의 페이퍼가!
반갑습니다.^^

혜덕화 2006-05-22 19:12   좋아요 0 | URL
기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젊은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열린 마음을 가지신 분들의 이야기도 간간히 실리더군요. <김아무개 목사님의 금강경 읽기>도 그런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젠가는 진리란 이름앞에 모든 종교인의 마음이 열리기 바랍니다._()_

瑚璉 2006-05-22 19:15   좋아요 0 | URL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비춰지고 있는 기독교는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이익집단으로 오해되고 있다." -> 오해라고 하기에는 좀...(-.-;)

달팽이 2006-05-22 22:12   좋아요 0 | URL
산다고 하는 것이 때로는 이미지와 환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옳다는 생각 그르다는 생각, 이것은 안된다는 생각, 이래야만 된다는 생각
결국은 그 생각대로 이미지대로 드러난 세상을 각자가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waits 2006-05-23 00:35   좋아요 0 | URL
아, 교회 가고 싶게 만드는 목사님이네요. 늘 언젠가는 하고 마음 속으로 미뤄두고 있는데... 이런 글 읽으면 그래도 다행이란 기분이 들어요.

니르바나 2006-05-24 09:25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저는 이런데 무심해서 한기총이란 데가 어떤 성격의 단체인지 잘 몰랐습니다. 派로 나눌 때는 다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고 있지만 그 갈래가 심하게 많다보니 이런 것에 더 무관심했던 모양입니다. 어느 정도라면 발전을 위한 갈래로 볼 텐데요.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겠다 작정하다보면 이런 일도 생기겠죠. 아마^^

니르바나 2006-05-24 09:28   좋아요 0 | URL
혜덕화님, 목사님들 개개인의 생각을 까보인다면 말씀하신대로 열린생각을 지니신 분들이 많으실겝니다. 그러나 단체라는 혹에 걸리다보면 우스워질 수 있는게 이런 일들이겠지요.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언제나 맞는 말은 아니지요.^^

니르바나 2006-05-24 10:30   좋아요 0 | URL
虎叱 님의 말씀대로 오해를 떠나서 일신개일신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속에 있다보면 찾잔속의 태풍 모습이 자꾸 떠오르니까요.

니르바나 2006-05-24 09:33   좋아요 0 | URL
달팽이님,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생각과 이미지에 대한 소견을 어제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적어 보려합니다. ^^

니르바나 2006-05-24 09:41   좋아요 0 | URL
나어릴때님, 훌륭하신 목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워낙 기독교회가 많이 있다보니까 한심스런 가짜 목사들이 방송에 소개되지만요.
마음속에 미뤄두신 생각을 실천에 옮기실 적에는
부디 좋은 인도자와 인연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2006-05-25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25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05-25 11:48   좋아요 0 | URL
그저 이쁘게 봐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과님^^
 

              

                     師    說 

 

오호라!

師道가 전해지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으니 사람들이 의혹을 풀고자 하는 일도 어려워졌구나!

옛날의 聖人은 보통 사람들보다도 월등히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쫓아서 묻고 배웠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성인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함에도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이러한 까닭에 성인은 더욱 성인다워지고 어리석은 자는 더욱 어리석어질 뿐이다.

성인이 성인다운 것,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는 것이다.

 

              

 

자신의 자식을 사랑하여 스승을 모셔 가르치게 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하니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더욱이 저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스승이란 자는 책을 주고는 구두점이나 가르쳐 주는 자니,

내가 말하는 도를 전하고 의혹을 깨쳐 주는 그러한 스승은 아니다.

구두점을 잘 모르는 것은 스승에게 배우면서 의혹이 생기는 것은 스승에게 배우지 아니하니

이는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은 놓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과연 현명한 지 알지 못하겠다.  ( 韓    愈)

 

         

 

책을 읽는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는 경우가 있다.

왜 오는가라고 했는가 하면 그야말로 잠시 머물다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신이 강림해서 쪽집게 도사로 대접받다가  쉬 부채도사가 되버린 꼴이다.

오는 깨달음을 붙잡기 위해 메모로 그 내용을 남겨보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면 감흥은 어느 순간의 그것이 아니다.

이게 어인 일일까 싶어 가끔은 역사의 신에게 묻기도 한다.

 

         

 

숭산스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슬픔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으로

관념속에서가 아니라 실천속에서 슬픔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평안히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땅에 큰스승 부처님 오시는 날.

스승에게 큰 절을 드리는 실천으로 세상의 슬픔속에서 평화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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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5-05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아진 세상에서 펼쳐진 세상으로 우리들이 가져온 것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우리 죽음을 맞이할 때 저 세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또한 무엇일까?
인생이라는 꿈 속에서 밖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무언지 생각합니다.

2006-05-06 0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4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밥상 앞에서 이렇게 다정하다니 그대들 이름을 사랑과 평화로 부르기로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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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5-01 14:59   좋아요 0 | URL
니르바나님 내외분 모습이 아닐지...문득 그런 생각이.=3=3=3

2006-05-01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하 2006-05-02 08:47   좋아요 0 | URL
혹시 두 친구 배불러서 이런 건 아니에요? ㅎㅎ

비로그인 2006-05-02 15:05   좋아요 0 | URL
어머나 뽑뽀~ ^^

니르바나 2006-05-04 09:16   좋아요 0 | URL


체셔님께는 이런 사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ㅎㅎ

니르바나 2006-05-04 09:20   좋아요 0 | URL
푸하님, 맞아요.
사랑과 평화도 배곯아서는 곤란하지요.^^
자기 밥그릇 다 비우고 와서는 생의 기쁨을 저렇게 나누는지 어찌 알겠어요.

니르바나 2006-05-04 09:23   좋아요 0 | URL
노동절인사를 건네주신 님,
염려해주신 덕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니르바나 2006-05-04 09:30   좋아요 0 | URL
햇볕 아래 흙바닥 위에서 사랑과 평화를 나누는 두 친구들 포즈가 참 예쁘지요.
로드무비님, 정답입니다. 저의 부부도 이꽈랍니다.
저의 어머니도 이쁘게 봐주신답니다. ㅎㅎ

2006-05-04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5-05 19:54   좋아요 0 | URL
앞 집 소가 밥을 먹었는데 뒷 집 소가 배가 부름이라...
사랑입니다.

니르바나 2006-05-16 19:55   좋아요 0 | URL
앞집 소가 배가 부르니 뒷집 소가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정통 고전번역을 지향하는 한길사의 그레이트 북스 시리즈가 최근 중국 문명의 뿌리인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파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고전 '춘추좌전'을 번역해 내놨다.

공자가 펴낸 것으로 알려진 '춘추'(春秋)는 주(周)나라 천자가 거느린 여러 제후

국 가운데 하나인 노(魯)나라의 역사서로, BC 722-BC 468년 총 255년에 이르는 열국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춘추'를 본문으로 삼고 여기에 각종 철학적 해석을 가한 책들 중 하나가 바로 좌구명(左丘明)이 쓴 '춘추좌전'이다.

현재 전하는 춘추의 해석서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좌전' 혹은 '춘추좌전'),'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의 이른바 '춘추 3전'이다.

이 가운데 '춘추좌전'은 춘추학 가운데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좌전은 역사적ㆍ실증적 방법으로 '춘추대의'를 구명하고 있어 공양전이나 곡량전에 비해 역사학적 경향이 훨씬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종대왕을 비롯한 조선의 위정자들은 이 '춘추좌전'을 단골로 인용하고, 과거 시험에서는 '춘추좌전'에 나오는 국가의 흥망성쇠 원인을 묻는 논술이 자주 출제됐다.

조선조의 춘추학은 주로 '춘추대의'로 상징되는 명분론으로 나타난다. 이 논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키는 데 활용됐고, 구한말 의병장 이항로도 의병운동의 기본 논리로 인용한 바 있다.

21세기 들어 중국의 수뇌부가 낡은 마르크시즘을 내던지고, 전통 공자의 사상을 부활시켜 통치 이념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공자의 '논어'와 함께 단연 필독서로 읽히는 것이 바로 이 '춘추좌전'이다.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한 역자는 '춘추좌전'에 관한 역대의 주석들을 참고해 가장 타당한 주석을 선택했다고 한다. 여기에 역사지리학ㆍ문헌학적 고증을 덧붙여 21세기 '춘추학' 연구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선언한다. 한길사. 신동준 옮김. 전3권. 각권 2만5천ㆍ2만ㆍ3만원.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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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3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4-28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4-28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장일순의 방 한 쪽에 신문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전두환의 얼굴이 보이는 그 신문을 가르키며 장일순이 말했다.

"저이가 위험한 사람이야. 우리가 저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야 돼"

저이란 전두환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전두환뿐이 아니었어. 박정희도 김일성도 늘 같이 대했어.

늘 말씀하셨지. 그 사람들 잘 되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된다고."

 

누군가 방황을 할 때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다.

하나는 욕이나 비난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부디, 잘 되라고 비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이라도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빌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 얻어야 하는 것은 누굴 이기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삶이기 때문이다.

 

혼자 뉴스를 보는 경우 아직까지 혼잣말로 촌평을 하지 않고 묵묵히 쳐다보지만,

가끔 아내와 함께  정치인에 대한 보도를 볼 적마다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해 심한 말까지

서슴지 않고 내뱉곤 한다.  늙어가는 증세인가...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 장일순 선생의 말씀을 듣고 내 행동에 반성을 한다.

 

원주에는 1군 사령부가 있다. 1군사령관은 별이 넷인 4성 장군이다.

새로 부임해 온 1군 사령관이 인사를 하러 장일순의 집에 들렸다.

늘 있는 일이었다.

각 기관의 장은 새 부임지에 가면 그 지방의 유지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것이 상례였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사령관이 장일순에게 나이를 물었다.

서로 나이를 주고받고 나서 장일순이 말했다.

"저보다 아래시군요. 제가 말을 놓아도 되겠습니까?"

소탈하면서도 서슴없는 제안에 장군은 거절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장일순은 이렇게 사람들이 단 계급장이나 쓰고 있는 모자 벗기기를 잘했다.

평신도이면서도 사석에서는 신부라도 나이가 아래면 그냥 아우님이라 불렀고, 위면 형님이었다.

지학순 주교도 사석에서는 형님이었다.

 

과연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어떤가 생각해보니 선생과 달리

사람들이 걸친 위의에 맞추어 사람들을 대하며 살고 있었다. 단 한 차례의 예외도 없이

과연 사적으로 만날 경우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있다손쳐도

나보다 나이어린 목사나 전도사에게 말을 놓을 껏 같지않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장일순에게 과연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집 주인은 내가 아니고 저 양반이야. 나야 건달이고 하숙생이지"

장일순에게  아내는 또한 선생님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이렇다.

"해월은 이렇게 말씀하셨지. '아이들 말이라도 옳으면 따라야 한다'고

남자는 원래 구녁이 많은데 그때마다 아내가 일침을 가하듯 딱딱 찔러준다네.

뭐냐하면 그런 점에서 아내는 선생님이시지."

목사 이현주가 처음  부인과 함께 선생을 찾아 뵈었을 때, 부인이 자리를 뜨자,

"저 사람이 보살일세. 잘 모시게"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기념절이다.

예수님이란 과연 누구이신가.

나는 선생의 말씀을 빌어 말하고 싶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등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보살로 모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그리고 장일순 선생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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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4-1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그 마음씀이 참 공부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랫만에 올리신 글을 잘 읽고 갑니다.

stella.K 2006-04-1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예수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2006-04-17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04-17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안녕하세요.
저도 따라 인사올립니다.
말씀하신대로 모든 사람과 사물 삼라만상을 차별없이 대하여야 할텐데
생각처럼 너무 안되네요.
마음공부길은 가도 가도 천리길처럼 멀게만 느껴집니다.
삼일만에 득도했다는 삼일암의 주인이야 전생에 숙생의 업을 다 닦은 분이시겠죠.
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쉼없이 나서야 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니르바나 2006-04-1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감사합니다.
스텔라님에게 부활절 인사를 받으니 가슴까지 희열이 벅차오르는 느낌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부활로 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스텔라님에게 영원하시길 빕니다.^^

니르바나 2006-04-1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암님, 감사합니다.
내내 빽없이 산 인생이지만 그 느낌은 잘 알 껏도 같습니다.^^

혜덕화 2006-04-17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가 부활절이었나봐요. 뒤늦게 알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요즘 성경 읽으면서 느끼는 건데, 성경의 가장 중요한 코드는 <사랑>인 것 같습니다. _()_

2006-04-17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04-18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사랑 에 절대 동감합니다.
저는 죄나 용서라는 말보다 사랑이 우선한다고 봅니다.
사랑이 있으면 죄나 용서라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니까요.
햇빛아래 어둠처럼이요.
사랑이야말로 온 인류의 정신사를 관통해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니르바나 2006-04-18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폼님, 저도 반값이라는 말씀에 어제 5권을 보관함에 담았다가
과연 이 책들이 불요불급한 것인가 자성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물키는 것을 막을 수 없어요.
너나 없이 이런 경우 흥분하는 것이 인간적이지 않나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라 오히려 정감이 갑니다.^^

2006-04-18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하 2006-04-1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외로운 마음 달래고 갑니다.

waits 2006-04-18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처음 뵈어요...^^ 푸하님 덕에 여기까지 왔네요.
요즘 여기저기서 장일순 선생님을 마주칩니다.
덕분에 주문한 선생님의 책들이 내일쯤 온다는데, 기대되네요.

니르바나 2006-04-1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이렇게 찾아 주셔서 인사를 건네 주시니 반갑습니다.
장일순 선생님의 큰마음에 기대면 속이 다 풀리지요. ^^
우선 오늘은 푸하님과 나어릴때님을 즐겨찾기 서재에 등록하고 님의 글을 찾아 읽고
차차 방문인사 드리겠습니다.
내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니르바나 2006-04-1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하늘은 황사에 비까지 내려 창밖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한데
어제는 두분이 저의 가난한 서재에 찾아주시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장일순 선생님을 만난 인연이 이렇게 귀한 만남도 주선해 주시는군요.
나어릴때님을 만나게 해주신 푸하님께도 감사드려야겠군요.
일간 찾아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나어릴때님^^

니르바나 2006-04-1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님, 제 눈에는 아주 귀여우세요.
약지도, 밉살스럽지도 않구요.
제가 볼 적에 어디에도 걸리지 않은 무애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라면 허겁지겁 쯩에 기대 한 건 했을텐데요. ㅎㅎ

2006-04-19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6-04-1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님, 사실은 귀여우세요 옆에 혹시 결례가 될까 싶어
괄호안에 말을 담았다가 용감하게 지웠거든요. ㅎㅎ
무애한 선사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시나요.(양주동선생의 호를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제가 살펴본 바로는 신통력처럼 특이한 功能보다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기자님이 어떻게 하시든 자연스러웠던 것 같이요. ^^

푸하 2006-04-1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 님! 많은 존재를 존중하시려는 모습에서 느끼는 바가 많아요. 그런데 이름 아래의 아인슈타인 그림은 그 인상과 사뭇 달라요...^^; 부조화의 조화인가요?^^;

waits 2006-04-20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정하고 따스한 인사에 감사를..^^
몸이라도 날릴 듯이 바람이 불어대네요. 앞으로 자주 뵈어요!

니르바나 2006-04-2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그리 생각해주시니 외람될 따름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사진의 포인트는 혀를 내밀고 찍은 장난기 아닐까요.
보시고 한번씩 웃어주세요.^^

니르바나 2006-04-2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오늘도 푸하님과 같이 오셨군요.
오늘 바람도 장난이 아니게 불어대는군요.
행복한 하루되시라고 니르바나가 인사드렸습니다.
저도 자주 뵙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