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여러가지 신호를 받고 또 보내며 지내게 된다.
우선 눈에 띄게 보이는 계절의 신호, 눈이 머리 뒤에 달렸다는 성공의 신호, 미처 깨닫기 전에
찾아오는 노화의 신호, 병주고 약주는 질병의 신호, 나까지만 참아다오 푸른신호 등등등
그럼, 사랑의 신호는 어떤가?
요즘 되풀이 해서 보는 영화 <남아있는 나날>속 인물인 안소니 홉킨스가 맡은 역할인 스티븐스는
옆에서 보기에도 답답한 사람으로 매력적인 미스 켄튼이 보내는 사랑의 화살표를 읽지 못하고 산다.
켄튼양이 보다못해 벽으로 몰아세우고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어도
눈치코치 없는 이 양반은 계속해서 엉뚱한 소리만 해대고 있다.
주인에 대한 충성으로 자신의 직업에는 철저했으며, 자신에게까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산 스티븐스의
회복하기엔 너무 늦어 버린 옛사랑 찾기로 나선 길이 이 영화의 결말이다.
대저택 집사장의 이야기를 이토록 인상깊게 그릴 수 있나 싶게 집사들의 생활을 조목조목
묘사해 주는 내용도 좋고,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의 영국식 발음을 듣는 것도 참 좋았다.
비록 지나간 세월의 고리들은 그저 물결인가 싶게 동심원의 幻像으로 퍼져 나갔지만,
지금도 내게 오는 신호를 바로 읽지 못해 엉뚱한 곳에서 헤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며
아둔한 뒷머리만 긁적이며 영화속 배우들만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자연의 재해들을 보고 있자니
평상시 미물로 하찮게 여기는 동물들은 환난의 신호를 예지하고 피했다는데,
어찌하여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지진과 해일같은 재앙의 신호를
하나도 읽지 못하면서도 과학적으로 증명 운운하는 모습을 보고 참 가소롭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과연 신호란 운명의 손짓인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