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모면 굴욕예방 영어상식 99 시즌 2
이상빈.글렌 스와포드 지음 / 잉크(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작년에 나왔던(아마도) 창피모면 굴욕예방 영어상식 99의 후속작입니다.

저는 시즌1도 가지고 있는데 제 생각엔 시즌2가 1보다 훨씬 알찬 것 같아요.

시즌 1도 괜찮았지만 예시도 쏙쏙 들어오고, 전보다 더 '사소하지만 잘 모르는' 영어를 콕콕 집어줘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몇-년 씩이나 영어공부를 (표면상으로는) 하고도 전혀 실력이 늘지 않은;

제 입장에서는 뭐 뭐라 내세울 말이 없지만;

솔직히 아무리 영어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공용어가 돼 공부한들...

모국어인 한국말만 하냐고요...

 

외국 ESL 굴러먹은 짬밥(꼭 한 번 써보고 싶었던 단어)로 보자면,

한국분들은 정말, 정말, 같은 한국 사람인데도 감탄할만큼 문법에 강합니다...

다른 분들 보면 제가 고딩때 뭐했나- 하고 안 하던 (...) 후회까지 할 정도예요.

근데 문법하고 말하는 거하곤 조금 다르죠, 아무래도.

외국에서 만난 많은 한국분들이 자주 언급하시는 '영어회화의 단계'가 있는데요.

 

1단계 - 몸짓+손짓+눈치

2단계 - 단어

3단계 - 막 말

4단계 - 침묵+후회

5단계 - 문법

6단계 - 발전

 

뭐 이렇게 상세하게까진 나누지 않지만; 영어 회화 공부하시다 보면 어느정도 공감하실 말일걸요;

한국 사람들은 하도 영어 공부를 문법 위주로 받다보니 문법이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같은게 있나봐요; 저 포함해서;

처음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급하니까 (외국에서도 살아야 하니까;) 막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경우가 많죠. 단어단어 말하기도 하고 손짓발짓 섞어 말하기도 하고. (근데 희한하게 영어 알아듣는 건 쉽다는 ㅋㅋ) 근데 어느 정도 영어로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 부담감이 없어져 갈 때쯤... 찾아오는 겁니다...!

 

부끄러움!!

문법이 왜 이래!! 여태 내가 한 말이 다 이상한 거였어...!

-라는. 아- 이거 충격 커요... 너무 부끄러워서 우물쭈물 말도 (다시) 못 하게 되거든요.

거기다 사소한 표현 하나만 달라져도, 아 다르고 어 다르듯, 뜻이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그런거까지 신경쓰게 되고.

근데 또 누가 알려주진 않거든요, 그런 사소한 건...

 

그-런- 막막함을 날려주는 책이랄까...

거진 2년동안 갔다온 어학연수에도 불구하고 '우왓! 이게 이렇단 말야?' 하고 부끄럽게 놀라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ㅎ

다 기억하기엔 아직 무리지만; 이제 천천히 다시 읽으며 써먹어 봐야겠어요 ㅎㅎ

예문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삽화도 귀엽고.

(거기다 뒤에 부록으로 딸린 다른 분들의 실수......아 재밌게 봤습니다..... 3편에 내꺼 실리는 건 아니겠지.........)

 

++영어 회화에 관심있으신 분께 추천! (문법은 아니니까요;)

++평소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갸웃갸웃 거리셨던 분들께 추천!

++외국에 어학연수 나가시는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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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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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 반전.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저 말 밖에 없다.

 

보통 내가 책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책의 내용과 두께에 따라 달라지지만 서도) 1~2시간이다.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리뷰쓸 메모까지 하느라 한없이 시간을 잡아 먹고 있지만. (노트북이 절실하다....)

이 책을 읽을 때도 샤프와 공책을 한쪽에 두고 읽어내려 가고 있었는데 (물론 적는게 지긋지긋하기도 했음) 어느 순간! 나는 이야기가 내가 전혀! 결코!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는 메모고 뭐고 푹 빠져서 단숨에 읽어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어찌 이렇게 잘 쓰시는지...

좋게 말하자면 작가의 역량이 엄청난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날 속였어!!!!!!!!!!!!!!! 정도?

책을 덮는 그 순간에 느끼는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굳게 믿었던 게 한 번에 무너져버린 느낌이랄까. 덕분에 내 리스트엔 또 다른 작가님이 올라가게 되셨다...! (요샌 리스트가 너무 빠방해 졌어....)

 

어찌 된건지; 요즘 눈에 띄는 책들이 죄다 보통의 소설 형식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편지책으로 구성된 <마법의 도서관>에, 포스트잇 편지로 구성된 <포스트잇 라이프>에 이어 각종 일기, 편지, 진정서, 대자보, 이메일 등으로 구성된 <개를 돌봐줘>까지.

다른 두권의 책들과 이 책이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두 주인공 (막스와 으젠)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편지, 대자보, 이메일 등도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남의 일기보다는 약하지 않나 싶다.

사실 남의 일기 훔쳐보는 재미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 아닌가! (라고 주장한다) 나는 어렸을 적 내 동생의 일기장을 너무나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틈만나면 훔쳐볼 정도였다. 하나의 일을 나와 정반대로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 어린애 다운 똘끼, 엉망진창인 그림, 내 동생 답게 짧고 굵은 내용들... 분명 나 말고도 남의 일기 훔쳐본 사람이 많을거라 (위로하고 있다) 생각한다.

형식에 대해 얘기하자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끝이 되기 전까진 누군지 절대 알 수 없는, 심지어 난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철썩같이 믿은, 화자의 글을 빼놓을 수 없다. 각종 일기와 편지들을 넘나들며 하나하나 주석을 달듯 친절하게 풀어놓으니 착각할 만도 하다. 이것마저 작가의 "독자 속이기" 장치의 일종이니 조심할 것!

 

프랑스 소설이라 이름치인 난 끝까지 갈피를 못 잡은 이름도 몇 개 있었다. 라자르 몽타냑 씨를 포함해서. 물론 글을 읽는 데 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워낙 개성들이 강해서; 정말 그렇게 개성강한 사람들이 모이기도 힘들텐데.

 

이 책의 처음은 너무너무 유쾌하게 시작된다. 같은 날 맞은 편 아파트로 이사온 막스 코른느루와 으젠 플뤼슈는 각각 상대방이 자신을 염탐, 감시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장나서 창 밖이 훤히 보이는 창 너머로 그들은 서로를 의식하며 경계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서로가 여러가지 방해공작을 해가며. 그런데 이웃들도 평범치 않다. 카메라 하나 없으면서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하는 자모라(막스의 아파트), 성질 괴팍하고 아파트 관리에 죽을 힘을 다하는 (정말로) 욜랑드 라두 부인(막스), 악마의 자식일 거라 추정되는 브뤼노(막스)에 자칭 예술가라 표현하는 으젠의 아파트엔 에로 소설가인 라자르 몽타냑씨와 쥐들을 사랑하는 뒤모제씨가 당당히 버티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면서 등장인물들의 재능과 성격 탓에 일은 최악으로 번지고 만다. 개를 무척 사랑하던 브리숑 부인이 얼마전 실종된 (실은 막스의 종이상자에 운명을 달리한) 엑토르의 가죽을 손에 쥔 채 번지점프하는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이고 갑자기 등장해 사람들을 악박하고 다니는 형사 덕에 숨조차 쉴 수 없게 된다. 으젠은 막스가 그런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다 누군가 흘린 모든 자료 (두 사람의 일기와 모든 편지 등)을 보고 진범은 따로 있다는 걸 깨닫는다. 불운하게도. 결국 그도 죽은 채 발견이 되고 마는데.....

 

보시다 시피 앞에는 한없이 유쾌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 유머가 악랄하게 느껴질 정도의 전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유쾌한 유머를 잊지 않다니 이 작가, 심히 감탄스럽다. 그리고 존경스럽다.

 

아직 못 읽은 분들을 위해 범인이 누구인지 힌트조차 꺼내지 않았으니 부디 읽어보시길!

정말 재밌고 멍뎅해지는 책입니다!

 

*유쾌한 글귀 (중간에 중단했음)

-내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낌새를 보이자, 그는 곧 영감에 휩싸인 시인의 표정을 지으며 구름을 바라보는 척했다ㅏ. (막스 -> 으젠) (9)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척하며 내 아파트 쪽을 염탐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고양이는 마치 햇볕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벌렁 드러누워 그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 작자가 마치 헐벗을 대로 헐벗은 정신 상태를 증명이라도 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아무리 애정을 구걸해도 고양이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정말이지 보기에도 딱하다. (으젠 -> 막스 ) (11)

-그러곤 더위, 피고, 술기운을 재료로 하는 비밀스런 연금술로 인해 그 멋진 사내들이 '네 어미 매춘부'라는 무궁무진한 주제를 놓고 즉흥시 경연을 벌였고, 이어 능숙한 앙트리샤 (공중에 떠서 양발을 서로 엇갈리게 하는 발레 동작)와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는 절묘한 묘기가 동원된 놀라운 포스트 모던 발레가 시작되었다. (13)

-내가 놀란 나머지 종이상자를 떨어뜨리고 말았으니까.

나는 몇 년간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빅토르 위고 전집으로 주변을 조용하게 만든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29)

-폭주하는 미치광이.

-질문 : 미치광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 : 그보다 더 미친 척 한다. (51)

-하지만 현실은 많은 경우 허구보다 더 황당무계하다. (161)

-증오, 그것도 관계들을 만들어낸다. (287)

 

+유쾌한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프랑스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손에서 뗄 수없는 그런 책을 찾고 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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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6
카를로 콜로디 지음, 김양미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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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내가 인터파크에서 이 책의 서평단에 신청했을 때 가장 끌린 건 피노키오에 대한 기억보다는 책 표지서부터 보이는 "예쁜" 그림체였다. 부드러운 색감에 아기자기한 그림체...예쁜 걸 사랑하는 내가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삽화에 빠진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깜박 잊고 배송지를 자취방이 아니라 집으로 해놔서 엄마에게 전화로 웬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얼른 책을 보고 싶어서 주말이 기다려졌다. 총 2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찾았다. 버스 안에서 늘어져 자서 머리는 부스스했고 눈은 살짝 부어있었다. 이것저것 쑤셔넣은 짐가방이 발밑에 떨어져 있었다. 엄마는 TV를 보다가 일어나 나와서 내 모습이 웃긴지 으하하 웃으며 저기 있다고 손짓으로 내 책상을 가리켰다.

 

아...쓰레기장같은 내 책상 위에 저렇게 예쁜 책이 놓여 있었다니.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앞으로도 2주간은 청소할 계획이 없다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어쨌거나 엄마는 내 물건은 무조건 내 책상에, 라는 공식 하에 가져다 놓은 듯 하다.

 

처음 본 '피노키오'는 생각보다 작아서 큰 책장보다는 책상 앞 작은 책장에 꽂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펴보면 좋을 사이즈였다. 대충 비교하자면 다이어리의 평균적인 크기...라고나 할까. 양장본이라 표지도 반들반들하고 그림은 너무 예쁘고... 이렇게 생긴 다이어리가 나와도 좋을 것 같다. (그럼 난 또 사느라 돈을 허비하겠지)

 

피노키오라... 난 동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어지간한 동화는 알고있다고 (몰래) 자부하고 있다. 피노키오, 인어공주, 신데렐라, 엄지공주... 삽화도 좋고 해피엔딩도 좋고 무엇보다 그 아기자기함이 좋다. 그래서 피노키오도 나름 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럴수가.

 

피노키오...... 때려주고 싶다.....어쩜 이렇게 꼬맹이인지. 어린시절 봤던 피노키오는 어리숙하지만 유쾌했는데 그럭저럭 어른 대열에 끼게 된 후 보니 이건 그야말로 매를 부르는 꼬꼬마가 아닌가...! 몇 번씩 타일러도 지 멋대로 하기 일쑤고, 고집은 센데 아는 게 없다. 덕분에 옆에서 살짝 꼬시기만 해도 팔랑팔랑 팔랑귀가 되어 나쁜 길로 룰루랄라 노래까지 부르며 달려나간다.

 

한참을 으으...때려주고 싶다...를 연발하며 책장을 넘기느라 그 예쁜 삽화에 위안도 못 받고 있을 무렵...옆에서 끙끙 거리는 내가 이상하고 성가셨는지 컴퓨터를 하던 엄마가 뭔데 강아지마냥 끙끙대? 하고 물었다. 나는 열변을 토하며 꼬꼬마 피노키오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하자 엄마는 또 으하하하 웃더니 "너랑 뭐가 다르냐"하고는 또 막 웃었다.

 

과연. 같은 종(?)을 은연중 싫어하는 내가 유난히 과민반응을 보인 이유가 있었다. 지금이야 쿨하게 인정하겠지만 어렸을 적의 나는 내가 고집이 세다는 것도, 여러 가지 충고를 해주시는 주위 어른분들이 (당연히) 나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꼬꼬마였다. 특별히 나쁜 짓은 안 했다쳐도 고집만큼은 피노키오 못지 않았다.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에도 웃고있는 엄마를 보니 그냥 조용히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노키오에게 더 화내봐야 내 얼굴에 침뱉기니까.

 

묵묵히 엄마를 의식하며 책을 다시 읽으려니 이제껏 무시했던 삽화가 보였다. 화려하기 보다는 부드럽고 고운 색채에 팔다리가 짧아서 더 아기자기해 보이는 그림체가 잘 어울리는 페이지가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주는 듯 했다. 삽화 속 피노키오는 하는 짓(?)과 다르게 눈도 똥그랗고 작은 팔다리를 활기차게 놀리는 아이라 제페토 할아버지의 마음이 조금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저렇게 작은 애가 앞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면 어느 부모가 예뻐하지 않을까.

 

피노키오를 개과천선 시킨 건 자신의 깨달음도 있겠지만, 끈기있게 옆에서 돌봐주고 바른 길로 이끌어준 존재들 덕분이다. 더없이 너그러운 아빠, 제페토 할아버지와 항상 자애롭게 돌봐주는 엄마, 요정님, 간간히 등장하는 말하는 귀뚜라미 같은 동물들 덕분에 피노키오는 (번번히 놓치지만) 다시 한 번 바른 길로 들어설 기회를 갖는다. 그런 피노키오가 부러웠던 건, 내게 이제는 그런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 내가 어렸을 적 본 피노키오는 이렇게 자세한 버전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만화로 보면 내용보다는 재미에 치중해 코가 늘어나는 피노키오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나나 동생에게는 좀 늦었지만, 내 사촌동생에게는 아직 늦지 않았겠지. 다음 번, 사촌동생을 만나면 큰 맘먹고 내 예쁜 피노키오 책을 빌려줘야겠다. 그림 예쁘지 하고 어깨도 으쓱거려보고, 그러니까 너도 엄마랑 아빠 말 잘 들어 하고 오랜만에 어른인 체도 해봐야지. 아마 내 고집쟁이 사촌동생은 콧방귀를 흥 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 더 시간이 지나면 그 누나가 왜 그렇게 잘난 척했나, 하고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생각할 날이 올지 모른다.

뭐, 그런 게 그림책의 미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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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모으는 소녀 기담문학 고딕총서 4
믹 잭슨 지음, 문은실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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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일은 보석을 발굴하는 것과 같다. 가끔은 맞지 않는 책을 찾아낼 때도 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책이 한순간에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기도 한다.

뼈 모으는 소녀는 오랜만에 잡아본 '흥미로운' 책이었다. 책이 얼마 없는 학교 도서관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은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작가의 이름과, 범상치 않은 책표지 그림 덕택인지 독서욕구를 자극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단언컨데.... 난 이제부터 이 작가의 팬이다..!!

내가 영어만 좔좔좔 했어도 당장 홈페이지(www.mickjackson.com)에 접속할텐데, 불행히도 영어를 보면 내 섬약한 신경이 더이상의 스트레스를 견뎌낼 것 같지 않아 당분간 미뤄두기로 했다. 작가의 다른 책들이나 찾아봐야지.

 

이 책의 원제는 Ten Sorry Tales로, 난 사실 우리나라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임팩트도 강하고. 물론 열개의 미안한 이야기들, 이라는 원제가 동화를 뜻하는 Fairy tales와 겹쳐서 말장난스러운 것도 마음에 들지만서도.

10개의 이야기가 한 책안에 들어가 있다보니 다들 단편이 되었는데, 하나 하나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정말로 하나같이 '미안한' 이야기들인데도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강렬해서 읽고나면 어쩐지 후련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두려운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하다.

 

지하실의 보트라는 단편으로 시작하는 열개의 이야기들은 각자 음울한 듯 잔잔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보이는 현실과 어두운 면이 교묘하게 얽힌 판타지다. 판타지라 말하기엔 조금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현실 세상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을 일을 판타지라 부른다고 정의하자면, 확실히 판타지이긴 하다. 어느 누가 돈을 주고 은둔자를 고용하고(물론, 나는 돈이 넘쳐나는 부자들의 사고방식을 잘 모르겠지만) 핀으로 고정된 나비들을 살릴 수 있겠냔 말이다.

 

정말 고르기 힘들지만, 가장 기억나는 단편을 고르자면 역시 제일 처음 읽은 지하실의 보트가 되겠다. 믹 잭슨의 세상을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평소 내가 궁금했던 '지하실의 보트 꺼내기'가 소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혹시 아실까 모르지만, NCIS에서 깁스는 항상 집 지하실에서 보트를 만드는데 아무리 봐도 쪼꼬만 문으로는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보트가 시즌 3 혹은 4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걸 볼 수 있다. 그 어떤 살인 미스테리보다 날 괴롭히던 문제였기에, 믹 잭슨이 이 단편에서 제시한 해결책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모리스 씨는 전쟁에서 왼쪽 다리를 잃은 꼼꼼한 성격의 할아버지이다. 오랫동안 일했던 철물점을 퇴직한 후, 무언가 할 일을 찾아 고민하던 모리스 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탔던 것 같은 보트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차근차근 보트를 만들어 나간다. 모리스 씨가 문제점을 깨달은 건 보트를 다 만들고 난 뒤였다. 모리스 씨의 작은 지하실 문으론, 보트가 지나갈 도리가 없었다! 상심한 모리스 씨가 몇 날 몇일이고 보트를 바라보며 소일하던 어느 날, 마을에 홍수가 나 모든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할 때, 모리스 씨는 지하실에서 불어난 물에 보트를 띄우고 즐거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물이 빠져나가 처참해진 지하실을 보수하고 넓혀가며 다음 홍수를 기대하고 있던 모리스 씨에게 군인들이 홍수를 대비해 막아놓은 모래 주머니는 큰 골치덩이였다. 비가 오기 시작해 모리스 씨가 분한 맘에 모래 주머니를 한쪽 발로 쿡쿡 찌를 무렵,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 모래 주머니를 일사분란하게 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홍수가 마을을 덮쳤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터널에서 신나게 보스를 타던 모리스 씨는...

 

까지만 하도록 하자. 마지막 부분이 제일 즐거웠으니까, 다른 사람도 즐겨야 할 여지는 남겨둬야지...

 

보트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같은 경우에는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기억에 남는다. 뭐랄까, 요즘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고 장래에 대한 걱정을 하느라 늘어난 생각 덕에 공감을 한 이야도 있지만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해피 엔딩을 생각하고 있다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야기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는 과장이고 생각이 더 많아졌달까. 핀은 엄마와 말다툼을 한 뒤 가출을 해 숲에서 지내고 그 동안 핀의 사려깊음과 자기 주장은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마치 숲 속에 사는 동물처럼. 인간으로서의 기억도 사라진 핀이 어쩌다 우연히 기억을 하나씩 되찾고 집에 다가갔을 때. 나는 핀이 엄마에게 달려가 안길 줄 알았다. 그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런데 제일 슬픈 건, 핀의 생각에 내가 공감한다는 거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 였으면 좋을텐데, 라고 문득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삽화도 그렇지만 분위기에서 팀 버튼이 생각난 게 혹시 나만의 생각일지는 모르겠다. 삽화의 덕이 크지만, 비슷한 '판타지'고 우울하고 어두운 면을 다루지만 재미있고 나름 경쾌하다는 면이 닮은 것 같다. 아니면 말구..

 

혹시 도서관 가실 일이 있는 분께 꼭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생애 처음으로 그는 늙은이가 된 심정을 느꼈다. 쓸모없고 닮아빠진 부품이 된 것 같았다. (20)

-우연이란 세상이 때때로 당신의 관심을 끌려 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또 다른 나비는 어찌나 검고 촉촉하게 윤이 나는지, 마치 방금 전까지도 잉크병에 빠져 있었던 것 처럼 보였다. (32)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일이란 누구에게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는 견고한 진실이 당신 앞에 버티고 서는 일은 거의 없다. (39)

-이것은 이른바 '죽은 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표현하려는 것은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경의이다. (108)

-그러나 어떤 생각은 견디기 어려운 가려움증 같아서, 그냥 내뱉어 버리는 수밖에 없다.

 

 

+팀 버튼의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

+심심하신 분

+단편을 좋아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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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

 

표지만으로도 매혹적인 책 위의 띠지에 쓰여진 이 찬사에, 그리고 가고일이라는 제목에 그저 무심히 중세의 러브 스토리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가고일이라는 우리 나라에서는 생소한 단어에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어느 영화에서 본 음울한 하늘을 배경으로 한 돌석상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두 다 어둡고 쓸쓸한 것들이라, 중세라는 가만 두어도 우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그런 이야기겠거니. 유난히 졸렵던 토요일 오후, 책 두권의 무게를 손으로 가늠하며 그저 표지에 시선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책을 받아든 그 날, 시험기간을 공부보다는 스트레스로 지쳐 돌파한 나는 책을 읽으려고 했다기 보다는 자기 전의 무료한 시간을 죽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졸음을 이겨내며 책을 읽기엔 내가 아직 진정한 독서가가 아닌가보다,  스스로를 비죽여 가며. 하지만 좋은 책은 사람을 독서가로 만드는 법이었다! 심봉사가 번쩍 눈 뜨는 것마냥 핏발 선 눈을 뜨고, 침대를 구르듯 내려와 책장을 넘겼다.

 

말도 안 돼. 데뷔작이라니. 정말이지 좌절했다. 뭐든지 많이 하면 늘게 되어 있다.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보면 취향에 상관없이 잘쓴 책이 존재한다는 걸 차츰 깨닫게 되고, 어느 책이 그런 책인가 알 수 있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글도 쓰면 쓸수록 느는 법이고. 그런데 이게 데뷔작이란다. 이 톡톡 튀는 언어들 때문에 눈을 뗄 수가 없는 작품이 무려 첫번째 작품이란다. 물론 이 작품을 쓰기 전에 수많은 습작이 있었겠지만 그저 놀랍고 감탄하고 (비교되는 나로 인해) 우울했다.

 

[가고일]은 내 예상을 시원하게 깨부수는 일부터 시작했다. 중세시대를 상상하고 있던 내게 난데없이 눈에 들어오는 마약에, 버번(술)에 차까지. 어? 하는 것도 잠깐 아직 이름도 모르는 주인공의 차가 굴러 떨어지기 시작한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 초장부터 마약이 등장하고 이어지는 화상 이야기에, 뒤따르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우울한 어린시절이 줄줄이 흘러나오는데도 독특한 표현력은 마약처럼 읽는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다사다난한 어린시절 덕분인지 천성이 그런 것인지, 주인공은 사람을 끄는 말솜씨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실제로 들으면 친구보다는 적을 더 많이 만들 말투지만 지면상에서는 블랙유머로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하긴, 화상을 입고 누워있는 사람이 사랑스럽게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겠지.

 

"개인적으로 하느님의 거대한 계획이 아이의 폐를 태워 없애는 거라는 사실을 일곱 살짜리 여자 애에게 말하는 건 몹쓸 생각이라고 믿는다." (52 page)

 

아, 나름 재치있다고 생각한 구절을 옮겨 써보았는데 이야기 밖의 구절은 책 안에서보다는 싱싱함을 잃는구나. 그 재치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라도 꼭 다른 분들께 권해 드려야겠는데?

 

이 작가의 역량이 어느 정도냐 묻는다면, 이 작품 곳곳에 단테의 신곡이 배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등학교 때 포기하고 또 포기한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고 대답하겠다. 거기다 공감되는 구절은 어찌나 많은지. 일본에 있었던 사람인 만큼, 일본에 대해서도 해박해서 그 친숙함에 순간 놀라고 웃어버렸다. 외국에 갔다와본 나로서는 일본인도 아닌 서양인(캐나다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아시아인의 사정이 어찌나 웃기던지.

 

"서양 나라에서 살면서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일본 여자로서도 작은 편인 사유리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종종 아동복 가게에서 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137page)

 

 

사실 이 책은 1,2 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다 각 권의 두께 또한 척 보기에는 만만치 않다. 긴 이야기를 꺼리는 사람이라면 잠시 얼굴을 찌푸릴만도 하다. 하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한다면, 아무리 그런 사람들이라도 책의 두께와 이야기의 길이가 책을 읽는데 전혀 문제가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거라 믿는다. 정말이지 손을 뗄 수가 없으니까.

 

주인공은 인간적으로 결코 완벽해 보이지 않는다. 어렸을 적이야 주인공의 잘못이 아니라 해도 커서는 에로영화계에서 이름을 떨쳤고 술에 마약에 방탕함까지. 거기다 어찌나 말을 얄밉게 하는지. 마음 씀씀이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처음 등장하는 주인공은 화상을 입은 몸뚱이 속에 한없이 가벼운 영혼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수백년간 기다리고 사랑해주고 기억해준 인연이 있다는 것 만으로 한없이 부러운 사람이기도 하다.

이야기 중간에 나오는 단편적인 사랑 이야기들 역시 잊을 수 없을만큼, 전체적인 이야기에 견줄만큼 사랑스럽다. 그렇다, 700년의 사랑이야기가 매혹적이고 흥미진진하다면 그 이야기들은 애틋한만큼 사랑스럽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바이킹 시귀르드르의 이야기였다. 아마도, 그만이 짝사랑과 가장 근접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름답다고 말해야 할까. 나는 이 이야기에서 감동을 느꼈다. 사랑스럽고 그만큼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름다웠는가? 사실 모르겠다. 바이킹 시귀르드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울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울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으니까 참아야만 했다. 날 울릴 뻔한 이야기가 포함된 이 스토리가 아름다웠는가?

나는 모른다. 모른다고 말하기는 정말이지 쑥스럽지만, 모르겠다. 나중에 사랑을 하면 알게 되려는가. 나는 그저 부러웠다. 700년을 우직하게 그야말로 심장을 내줄만큼 사랑한 누구가가 있는 마리안네가 부러웠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운에도 기다려주는 이가 있어서, 자신이 가슴에 품고 살아갈 이가 생긴 주인공이 부러웠다. 내가 아직 진정한 사랑을 알기엔 어려서 이러는가.

이 가슴 저리도록 부러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분명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일터다.

 

그래, [가고일]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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