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모으는 소녀 기담문학 고딕총서 4
믹 잭슨 지음, 문은실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일은 보석을 발굴하는 것과 같다. 가끔은 맞지 않는 책을 찾아낼 때도 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책이 한순간에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기도 한다.

뼈 모으는 소녀는 오랜만에 잡아본 '흥미로운' 책이었다. 책이 얼마 없는 학교 도서관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은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작가의 이름과, 범상치 않은 책표지 그림 덕택인지 독서욕구를 자극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단언컨데.... 난 이제부터 이 작가의 팬이다..!!

내가 영어만 좔좔좔 했어도 당장 홈페이지(www.mickjackson.com)에 접속할텐데, 불행히도 영어를 보면 내 섬약한 신경이 더이상의 스트레스를 견뎌낼 것 같지 않아 당분간 미뤄두기로 했다. 작가의 다른 책들이나 찾아봐야지.

 

이 책의 원제는 Ten Sorry Tales로, 난 사실 우리나라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임팩트도 강하고. 물론 열개의 미안한 이야기들, 이라는 원제가 동화를 뜻하는 Fairy tales와 겹쳐서 말장난스러운 것도 마음에 들지만서도.

10개의 이야기가 한 책안에 들어가 있다보니 다들 단편이 되었는데, 하나 하나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정말로 하나같이 '미안한' 이야기들인데도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강렬해서 읽고나면 어쩐지 후련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두려운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하다.

 

지하실의 보트라는 단편으로 시작하는 열개의 이야기들은 각자 음울한 듯 잔잔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보이는 현실과 어두운 면이 교묘하게 얽힌 판타지다. 판타지라 말하기엔 조금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현실 세상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을 일을 판타지라 부른다고 정의하자면, 확실히 판타지이긴 하다. 어느 누가 돈을 주고 은둔자를 고용하고(물론, 나는 돈이 넘쳐나는 부자들의 사고방식을 잘 모르겠지만) 핀으로 고정된 나비들을 살릴 수 있겠냔 말이다.

 

정말 고르기 힘들지만, 가장 기억나는 단편을 고르자면 역시 제일 처음 읽은 지하실의 보트가 되겠다. 믹 잭슨의 세상을 처음으로 접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평소 내가 궁금했던 '지하실의 보트 꺼내기'가 소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혹시 아실까 모르지만, NCIS에서 깁스는 항상 집 지하실에서 보트를 만드는데 아무리 봐도 쪼꼬만 문으로는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보트가 시즌 3 혹은 4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걸 볼 수 있다. 그 어떤 살인 미스테리보다 날 괴롭히던 문제였기에, 믹 잭슨이 이 단편에서 제시한 해결책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모리스 씨는 전쟁에서 왼쪽 다리를 잃은 꼼꼼한 성격의 할아버지이다. 오랫동안 일했던 철물점을 퇴직한 후, 무언가 할 일을 찾아 고민하던 모리스 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탔던 것 같은 보트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차근차근 보트를 만들어 나간다. 모리스 씨가 문제점을 깨달은 건 보트를 다 만들고 난 뒤였다. 모리스 씨의 작은 지하실 문으론, 보트가 지나갈 도리가 없었다! 상심한 모리스 씨가 몇 날 몇일이고 보트를 바라보며 소일하던 어느 날, 마을에 홍수가 나 모든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할 때, 모리스 씨는 지하실에서 불어난 물에 보트를 띄우고 즐거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물이 빠져나가 처참해진 지하실을 보수하고 넓혀가며 다음 홍수를 기대하고 있던 모리스 씨에게 군인들이 홍수를 대비해 막아놓은 모래 주머니는 큰 골치덩이였다. 비가 오기 시작해 모리스 씨가 분한 맘에 모래 주머니를 한쪽 발로 쿡쿡 찌를 무렵,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 모래 주머니를 일사분란하게 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홍수가 마을을 덮쳤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터널에서 신나게 보스를 타던 모리스 씨는...

 

까지만 하도록 하자. 마지막 부분이 제일 즐거웠으니까, 다른 사람도 즐겨야 할 여지는 남겨둬야지...

 

보트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같은 경우에는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기억에 남는다. 뭐랄까, 요즘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고 장래에 대한 걱정을 하느라 늘어난 생각 덕에 공감을 한 이야도 있지만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해피 엔딩을 생각하고 있다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야기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는 과장이고 생각이 더 많아졌달까. 핀은 엄마와 말다툼을 한 뒤 가출을 해 숲에서 지내고 그 동안 핀의 사려깊음과 자기 주장은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마치 숲 속에 사는 동물처럼. 인간으로서의 기억도 사라진 핀이 어쩌다 우연히 기억을 하나씩 되찾고 집에 다가갔을 때. 나는 핀이 엄마에게 달려가 안길 줄 알았다. 그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런데 제일 슬픈 건, 핀의 생각에 내가 공감한다는 거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 였으면 좋을텐데, 라고 문득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삽화도 그렇지만 분위기에서 팀 버튼이 생각난 게 혹시 나만의 생각일지는 모르겠다. 삽화의 덕이 크지만, 비슷한 '판타지'고 우울하고 어두운 면을 다루지만 재미있고 나름 경쾌하다는 면이 닮은 것 같다. 아니면 말구..

 

혹시 도서관 가실 일이 있는 분께 꼭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생애 처음으로 그는 늙은이가 된 심정을 느꼈다. 쓸모없고 닮아빠진 부품이 된 것 같았다. (20)

-우연이란 세상이 때때로 당신의 관심을 끌려 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또 다른 나비는 어찌나 검고 촉촉하게 윤이 나는지, 마치 방금 전까지도 잉크병에 빠져 있었던 것 처럼 보였다. (32)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일이란 누구에게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는 견고한 진실이 당신 앞에 버티고 서는 일은 거의 없다. (39)

-이것은 이른바 '죽은 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표현하려는 것은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경의이다. (108)

-그러나 어떤 생각은 견디기 어려운 가려움증 같아서, 그냥 내뱉어 버리는 수밖에 없다.

 

 

+팀 버튼의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

+심심하신 분

+단편을 좋아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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