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고백하자면, 난 이미 원작을 읽은 영화는 보지 않는 편이다. 아무래도 내가 읽으며 상상했던 목소리와 모습이 맞지 않으면 원작을 영상으로 본다는 기쁨보다는 실망감이 더 큰 편이기 때문이다. 영화 퇴마록이 그랬고 다빈치 코드 역시 일년이 지나서야 DVD를 빌려봤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원작을 찾아보는 편인데...애니나 영화에는 시간 제약이 있어서 다 표현하지 못했던 디테일을 원작에서 확인하며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원작인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내 예상에서 약간 빗나간 작품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내가 현재 책을 읽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곳은 우리 학교 도서관으로, 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 책도 어느 착하신 분이 신청해서 들어온 걸 게시판에서 보고 집어왔던 경우다. 물론 전에 봤던 애니메이션이 생각나 신나게 집어오긴 했지만 스토리도 어렴풋한데 이름이 기억날리가 없었다. (이게 바로 리뷰가 늦어진 이유...)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책이 예쁜 삽화와 표지로 새로 나온 모양이지만 난 아무래도 화려한 만화 그림체보다는 일러스트같은 삽화가 맘에 든다. 소재 자체가 타임 리프 같은 복잡한 이론을 다루고 있어서 원작 소설이 조금 더 길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 한 권의 책에 단편소설이 3편이나 들어있었다. 하나같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같이 조금은 가벼운 SF 이야기로 주인공이 다 여자아이라 더더욱 소재가 어렵다기 보다는 읽기 편한 감이 있다.

우선, 표제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의 이모 되시는 가즈코의 학창시절의 이야기로 애니메이션의 기초가 된 듯 설정 자체는 비슷한 편이다. 여주인공인 가즈코는 친구인 가즈오, 고로와 함께 과학실 청소를 한 뒤 문단속을 하다 실험실에서 인기척을 듣고 들어갔다 난데없는 라벤더 향에 정신을 잃는다. 양호실에서 깨어난 가즈코는 자신에게 이상한 힘이 생겼다는 걸 깨닫고 당황하기 시작한다. 비슷한 설정(3명의 친한 친구, 과학실, 타임리프 등)에서 시작했지만 소소한 설정은 확실히 시대(이모와 조카)가 다른만큼 약간씩 다르다.

역시 가장 큰 차이점은 캐릭터성으로 남자 주인공인 가즈오의 나이는 정말 반전 중의 반전이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봤기에 더더욱 충격적이었던 것 같지만. 타임 리프 힘을 얻었다고 신나게 썼던 조카와 달리 이모는 갑자기 생긴 힘에 당황해 하고 현실적으로 반응하는 편이다. 단편이기에 전개가 빨라 애니메이션같은 오밀조밀한 재미는 없지만 워낙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소설인만큼 갑자기 타임리프를 얻은 평범한 여자아이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

두번째 작품인 <악몽>은 세 단편 중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으로, 아무래도 이야기를 슬쩍 알고있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참신하지만 너무 짧은 보다는 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악몽이 개인적으로 훨씬 재미있었다. 마사코는 친구인 분이치의 집에 수학숙제를 하러 갔다가 전통 가면을 보고 까무라칠 듯이 놀라고 만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해낸 마사코는 스스로 그 이유를 자문하기 시작하고, 결국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줄거리 추리기에는 약해서 재미가 반도 못 살았지만, 주인공 아가씨가 매우 박력있게 놀라기는 하지만 어찌나 논리적으로 생각을 하는지 당장에 심리학자의 길을 권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야기 자체도 귀엽지만 가장 귀여웠던 건 마사코의 동생인 겁쟁이 요시오였다. 엄마, 아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렇게나 영향을 받다니 심약한 게 너무 귀엽지 않은가! 비록 요시오 자신한테는 하나 하나가 큰 일이었겠지만...

The other world는 타임리프, 타임머신 등 시/공간을 뛰어넘는 츠츠이 야스타카의 이론이 집약된 작품인 것 같다. 내 성격이 워낙 대강대강인지라 읽으면서 시/공간 뛰어넘기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내 머리 안에서의 시/공간 뛰어넘기는 씨실과 날실같은 구조로 연상될 것 같다. 세 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짧지만 내겐 임팩트가 무척 커서 책을 덮고나서 생각난 건 였다. 뭐랄까... 처음에는 굉장히 부러웠지만, 뒷쪽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호러틱한 무서움보다는, 그런 식으로 내가 이기적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지 않은가! 거기다 한 순간의 생각에 따라 휙휙 바뀌는 세계라니. 어린 시절 현실감없이 생각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무서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뒷골이 오싹한 단편이었다.

전체적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다 나이대가 중고등학생이다보니 그 나이대의 풋풋함이 전반적으로 배어있는 것 같다. 실제 이 작품이 나온 시기가 60년대라고 하던데 그 시절에 SF적인 소재를 맛깔나게 살린 작가의 역량이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역시 애니로 나온 <파프리카>도 츠츠이 야스타카의 작품이라고 하니 다른 작품들도 차근차근 찾아 읽어봐야겠다.

-보통 사람이 이런 희한한.....다시 말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과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면 당황해서 잘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고 잊어버리려는 경향이 있지. 본능적으로 이런 현상을 싫어하는 거야. 고로 군도 그런 게 아닐까? (72)

-과학이라는 것은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으로 하는, 그 과정의 학문이야. 따라서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전 단계로서,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가사의한 현상이 없으면 안 되지. (72)

-미래에서 기다릴게, 꼭 기다릴게.....(135)

-'언젠가, 누군가 멋진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사람은 나를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알고 있을 거고.....' 어떤 사람일지, 언제 나타날지,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멋진 사람과.....언젠가.....어디선가....(140)

- 우리 작은아버지가 심리학자인데 무서운 게 왜 무서운지를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고 예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어. (159)

-무서움을 꾹 참고 아득히 먼 아래의 지면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왠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난간 너머로 뛰어내리는 건 아닐까, 혹은 갑자기 죽고 싶어져서 그대로 뛰어내리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가 가슴속에 가득 퍼져서 왁! 하고 소리 치고 싶을 정도로 무서워진다. (166)

-무섭다고 느끼는 것은 '죄의식'이 있어서래. (174)

-인간의 마음이란 어쩜 이리 복잡할까. 정말 이상하고도 재미있어....(185)

-노부코는 분명 시로에게 싸우지 말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당하면서까지 잠자코 있으라고는 하지 않았다. 시로가 그 원수 같은 불량학생들을 혼내주었으면 하고 내심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노부코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너무 이기적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시로가 비겁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33)

-다원우주, 그리고 동시존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연속된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역사를 가진 세계를 한 가닥의 날실로 본다면, 시간이라는 것은 그 날실을 무수히 가로지르는 수없이 많은 씨실이라 할 수 있다. (239)

-노부코는 이렇게 잔혹하고 인정사정없는 시로를 원한 것이 아니었는데. 적어도 그녀 스스로는.....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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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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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책은 마치 기쁨처럼 나누면 나눌수록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내가 좋아하는 작가 혹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 구절이 저렇게 해석되는구나 하고 감탄할수록 그 책에 대한 애정도 커진다. 그리고 내 경험상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항상 무언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책으로 인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책을 만나는, 책의 순환 고리가 내가 독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지 싶다.

조금 독특한 제목의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내가 좋아하는, 책의 '인간성'이 가장 잘 표현된 책이다. 30대 여성작가 줄리엣을 중심으로 주고받은 편지글을 통해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각각의 캐릭터의 개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재미가 있다.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섬세한 줄리엣, 줄리엣을 무척 아끼는 시드니와 소피 남매, 조금은 산만하지만 순수한 이솔라, 사려 깊은 아멜리아... 줄리엣이 건지 섬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읽는 동안 나 역시 그 순수한 사람들이 너무 좋아졌으니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약간은 지루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줄리엣은 어느 날, 건지 섬에서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옛날 줄리엣이 가지고 있던 '찰스 램'의 수필선집을 우연히 소유하게 된 한 남자가 보낸 정중하고 책에 대한 애정이 보이는 편지를 받고난 후, 건지 섬의 주민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점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감자껍질파이 클럽'이라는 북클럽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전쟁 중 우연히 만들어진 '감자껍질파이 클럽'의 이야기를 다음 소재로 삼고 싶었던 줄리엣은 결국 건지 섬으로 찾아가게 되고, 그 정 많은 작은 섬에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찾게 된다.

이 책의 중심축은 '책과 사람들' 그리고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고통을 주었다면, 책은 새로운 자아와 희망을 주었다. 평생을 독서와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책을 접하지만 서서히 빠져 들어가 평생 책만 읽어온 사람보다 순수한 열정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을 흐뭇하게 만들 것이다. 실상, 사람은 책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책이 있어 사람은 꿈을 꾸고 희망을 받고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이 건지 섬의 사람들처럼, 책이 있어 풍요로워진 세계를 한 번 접한 사람은 저도 모르게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전쟁'의 모습은, 모순적인만큼 인간적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건지 섬의 사람들이 하는 전쟁 이야기는 독일군을 무작정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건지 섬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는 선량한 독일 군인과 사랑에 빠졌고, 이야기 속의 몇몇 독일 군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인간적인 도리를 다했다. 피해자지만 가해자를 무작정 비난하지 않는 포용력과 공정함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승패와 상관없이 전쟁은 모두를 상처 입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인간다움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인 전쟁을 겪고도 순박하고 정이 많은, 배고픔과 불안함을 독서와 온정으로 이겨나갔던 건지 섬의 사람들처럼, 다정한 사람들과 즐길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무엇이 부러우랴.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의 대부분을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앞으로 내가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 있다는 건 오히려 그만큼 기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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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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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일까?

리뷰 첫머리에 왜 뜬금없는 질문인가 싶지만, 숨가쁘게(!) 책을 읽어내려간 후의 허탈함 뒤에 저 질문이 느닷없이 나를 찔러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온갖 매체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에 대해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세상의 모든 (이성간의) 사랑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감정은 '부러움'이다. 거기에 더하자면 의구심 정도일까. 이 무슨 세살바기 어린아이 같은 유치함인가 싶지만 이런 내 성격 탓에 난 로맨스 소설들을 볼 때면 온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고, TV에서 열렬하고도 헌신적인 사랑이 펼쳐질 때면 조용히 채널을 돌렸다. 굳이 (불쌍해 보이는) 날 변호하자면, 내 눈에는 그 모든 애정표현들이 현실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말 그렇게 닭살돋는 말들을 속삭인단 말야?

그런 의문을 뒤로하고 오늘도 (피곤함과 상관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찾아 집어든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확실히 재미는 있었다. 문제는... 너무 감정이입이 된다는 점. 단 한글자 차이로 인해 잘못 전해진 이메일 한 통에서 시작된 이메일 펜팔은 어설픈 유머와 신랄한 비판, 상냥한 유쾌함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든든한 남편과 두 아이를 둔 에마는 이메일 대화 속에서 다시 한 번 결혼 전의 '에미'가 되어 가족이라는 '내부 세계'에서 벗어나고, 언어심리학 조교수인 레오는 자신의 세계의 이별에서 벗어난다. 이들의 첫 만남이 그야말로 우연이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였기에 오히려 그 이상으로 주고받는 이메일에 당황한 건 오히려 나였다. 하지만 오로지 이메일의 형식으로만 이루어진 대화라 실제로 두 사람의 감정이 여과없이 보여졌기 때문에 내가 책에 끌려들어간 건 순식간이었다.

침착하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언제나 감정을 드러내고마는 에미와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술에만 취하면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레오. 편지보다 빠르고 전화보다는 먼 이메일 안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기에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 있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린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사랑에 대해선 한없이 무지한 내게는 이렇게 순수하게 감정만 부딪히는 경우가 오히려 알기 쉬웠다. 그래서 그런지 등장인물이 30대임에도 불구하고 귀여워 보이고 (불륜이지만) 서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평소 결혼의 책임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는 그렇게 두 사람의 '감정'에 끌려갔다는 게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런게 사랑이려나. 엔딩까지 날 강하게 끌었던 팽팽한 대화가 더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너무 슬프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겠지. 부디 두 사람이 행복해 지기를.

-우리 주위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요. 우린 그 어디에도 살고 있지 않아요. 나이도 없고, 얼굴도 없어요. 우리에겐 밤낮의 구별도 없어요. 우린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아요. (33)

-당신에게 너무 매여 있게 돼요. 나를 만날 때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 나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 나한테서 메일만 원하는 남자, 실제로 만나는 여자들과는 (짐작건대) 쓰라림을 맛보다가 끝내 고통의 문안으로 들어서고 말기 때문에 내가 쓴 말들을 상상 속의 여자를 창조해내는 데 이용하는 남자, 그런 남자의 메일을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요. (111)

-여느 누구가 아닌 그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입니다. 물론 저에게도 당신은 여느 누구가 아닙니다. 당신은 제 안에 있으면서 저와 늘 동행하는 제 2의 목소리 같은 존재입니다. 당신은 저의 독백을 대화로 바꿔놓았습니다. 당신은 제 내면을 풍부하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132)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순간 당신의 환상 속 에미는 영원히 죽는다는 사실. (164)

-'가정의 평화'는 형용모순이에요.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짝을 이룬 것이라고요. (252)

-우린 골라인에서 출발하는 셈이에요. 따라서 나아갈 방향은 하나밖에 없죠. 되돌아가는 것. 우린 미몽에서 깨어나는 지난한 과정을 밟아야 해요. 우리가 쓰는 글이 우리의 실제 모습, 실제 삶일 수는 없어요.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며 그렸던 많은 이미지들을 우리의 실제 모습이 대신할 수는 없어요. (278)

-유령을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라이케씨, 당신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만질 수 없고, 따라서 실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은 제 아내의 환상이 만들어낸 존재일 뿐이지요. 한없는 행복감, 세상과의 절연 상태에서 기인하는 몽롱함, 글로 지은 사랑의 유토피아......이런 것들이 만들어낸 환상 말입니다. (311)

-우리의 만남이 두려워요. 만나고 나서 당신을 잃게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363)

-'잃는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잃는 거예요.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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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코스모스, 밤의 피크닉으로 푹 빠져버렸다^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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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문, 그리고 하늘에 이르는 계단
제카리아 시친 지음, 이근영 옮김 / AK(이른아침)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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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전쟁, 인간들의 전쟁
제카리아 시친 지음, 이재황 옮김 / AK(이른아침)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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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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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추는 날- 수메르 점토판에 새겨진 지구와 인류의 마지막 운명
제카리아 시친 지음, 이재황 옮김 / AK(이른아침)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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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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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초콜릿 코스모스>가 무척 맘에 들어서 냉큼 온다 리쿠의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을 때 다른 작품들이 어쩐지 무서운 이야기들 같아서, <밤의 피크닉>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당연히 좀 오싹한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무서운 건 싫어하지만, 영상물만 아니라면 그나마 참을 수 있는데다...무서워하면서도 보고 싶어하는 어린애 기질이 발동해 마음을 다잡고 읽기 시작했다. -중간을 생략하고 말하자면... 이야기의 내용과 상관없이, 난 혼자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잖아...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는 거야 익숙한 일이지만,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래도, 책은 재미있었다. 발랄하고 화려한 재미는 아니지만, 성장소설답게 조금 답답하고 미묘한 공기를 잘 잡아낸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밤의 피크닉>은 수학여행 대신 일년에 한 번, 전교생이 밤을 새워 함께 걷는 이벤트의 이야기이다. 아침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말 그대로 하룻동안의 이야기인데도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다. 학교의 이벤트는 간단해 보이는 것조차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게다가 '학교'라는 장소는 다들 한번씩은 거치는 장소니만큼 공감하기도 쉬운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나 혼자만의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지금보면 다른 친구들에게도 있는 고민이었다든가- 하는 아련함까지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기도 하고. 성장소설 치고는 상당히 시간적으로 짧지만(하룻밤이니까) 그 하룻밤 안에도 아이들은 어른에 한 발짝 다가선다.

주인공인 도오루는 남모르는 비밀이 있다. 아버지가 바람펴서 생긴 배다른 남매, 다카코가 같은 학교, 심지어는 같은 반에 다니고 있다. 도오루와 다카코는 서로를 무시하며 의식하고 있다. 그 둘은 서로를 완벽히 밀쳐내지도, 완벽히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친구들의 도움과, 일상과 조금은 이질적인 밤의 마력으로 그 둘은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겠지만, 다카코의 태도는 상당히 호감이 갔다. 다카코의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성격일까. 재빠르지는 않지만 관대한 성격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딘가 다 조금은 불안하다. 다카코의 엄마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고등학생이기 때문일까 그 어른이 되기 직전의 아슬아슬함이 귀여워 보였다.

시노부의 말대로, 고등학교까지는 청춘의 잡음을 즐겨야 할 때다. 그걸 나도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조금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야겠지. 성장소설은 읽으면서 나도 한 뼘씩 자라는 것 같다. 혹시 내가 정말로 다 자란 어른이라면 성장소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흡족해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아직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한참은 멀었나보다. 한 뼘 한 뼘 자라나는 수밖에.

-당연한 일이지만, 길은 어디까지고 이어져 있어 언제나 끊어지는 법 없이 어딘가의 장소로 나온다. 지도에는 공백도 끝도 있지만 현실 세계는 빈틈없이 이어져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매년 이 보행제를 경험할 때마다 실감한다. 철이 들었을 때부터 언제나 간략화된 지도와 노선도, 도로지도로밖에 세상을 파악하지 않아서, 이런 식으로 어디에나 빠짐없이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20)

-수면이라는 것은 고양이 같은 것이다. 시험 전날처럼 부르지 않을 때는 잘도 찾아와서, 잠에서 깨어나면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으면 죽어도 오지 않아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게 한다. (29)

-내 신발이 없을 때의 불안함, 슬픔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치 자기의 시간과 행동을 통째로 빼앗긴 듯한 느낌이었다. (31)

-몸을 움직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걷는 것은 좋아했다. 이런 식으로 차가 없고 경치가 멋진 곳을 한가로이 걷는 것은 기분 좋다. 머릿속이 텅 비어지고, 여러 가지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붙들어두지 않고 방치하고 있었더니 마음이 해방되어 끝없이 확산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59)

-장시간 연속하여 사고를 계속할 기회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에 의문을 느끼게 되며, 일단 의문을 느끼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촘촘히 구분하여 다양한 의식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 의식은 언제나 자주 바뀌어가며 쓸데없는 사고가 들어갈 여지가 없어진다. (60)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커다란 누군가가 손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손만 있어서 하늘 위에서 이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서 그것을 누군가가 꼬옥 껴안고 있다. 수평선을 보면 언제나 그런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 수평선은, 높은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무서웠다. 그것은 꼭 소리굽쇠를 두드릴 때처럼 웅웅거리는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이제 틀렸다, 너희들은 이제 끝이다,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그 소리를 들었을 때가 이 세계의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83)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네게는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이 잡음이 들리는 건 지금뿐이니까 나중에 테이프를 되감아 들으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들리지 않아. 너, 언젠가 분명히 그때 들어두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해. (156)

-좋아한다는 감정에는 답이 없다. 무엇이 해결책인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으며, 스스로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훗날의 행복을 위해 가슴속에 간직하고 허둥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어떻게 매듭을 지으면 좋을까. 어떤 상태가 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고백한들, 데이트한들, 임신을 한들,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괜히 행동을 일으켜 후회하기보다 마음속에만 소중히 간직하는 편이 훨씬 낫다. (223)

-여름방학 때의 그 불쾌한 느낌. 바로 저기까지 끝이 다가와 있다. 하루하루 확실하게 다가온다. 지금 시작하면 아직 해낼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면, 시작한 만큼 어떻게든 된다. 그렇게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 도저히 손을 대지 못하는 악순환. 일단 책상에는 앉아보지만 다른 일을 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시작하여 핵심 과제의 주위만 어물쩍거리다, 중요한 것을 조금도 시작하지 못한다. 하루하루 미루는 동안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후회막급의 심정으로 해야 할 일의 양에 기겁하게 되는 여름의 끝...(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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