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는 누구? - 황금 코안경을 낀 시체를 둘러싼 기묘한 수수께끼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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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더니 1층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도무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다고 한다. 여느 때처럼 신문을 보는 사람들 옆에서 어정어정 엘리베이터가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걸어다녔다. 어느 장소건 빨리 집에 가려고 최단시간을 목표로 잡는 나지만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답시고 계단을 막아놔서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혹시 올라기는 길이 없어 책을 빌리지 못하는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도서관 안을 구경하는 척(누가 도서관을 구경하고 다니는지는 제쳐두고) 어정어정. 구석의 계단을 발견하고서 기쁜 맘에 올라갔더니 이건 또... 어째 2층도 내 기억과는 조금 다르다. 음- 10년이 지나지 않아도 강산은 변하는군...

 

-하고 도서관에서 혼자 감상에 빠진 게 벌써 3주 전. 그 때 빌린 책들 중 3권은 연체하고(;;;) 2권은 아직 내 수중에 있는데 도통 손이 안 가서 힘들었다. 슬럼프인가 싶기도 하지만 단순한 취미에 슬럼프라 말하기도 뭐하고... 날씨가 우중충하니 그냥 멍하니 컴퓨터를 하거나 침대에서 꾸물거리게 된다. 방학이라 더 그런 거겠지만.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일단 그나마 손이 가는 책을 골라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목의 '누구?'에 TV에서 종종 등장하는 '뉴규'(정확한 발음이 뭐지?)가 떠올라 피시식 웃으며 골라들은 거였지만...

 

나는 추리소설을 꽤 좋아하고 드라마에서도 수사물이라면 우선 볼 정도로 좋아하는 편이지만 의외로 추리소설 작가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다. 읽은 작가라고는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아가사 크리스티 뿐이니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그 밖에도 다른 작가의 작품도 읽긴 했지만 딱히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음) 애초에 고른 작가들이 다작하는 타입(?)이라 여태까지 파고들어도 무난히 지내올 수 있었던 것도 한 몫했지만 슬슬 아가사 크리스티의 전집도 다 모아가고 새로운 작가를 개척할 때가 아닐까...

 

뒷표지를 보아하니 '20세기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손꼽히는' 이라고 적혀있길래 이번만큼은 겸허히 남들의 평가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조금 설레는 기분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뭐랄까 20세기 초의 영국 귀족이라니 확실히 새로운 타입이다. 가장 새로웠던 건 이 '피터 윔지 경'이 너무 인간적이라는 거지만.

내가 여태껏 읽었던 탐정들(셜록 홈즈, 마플부인, 포와로, 뤼팽-은 탐정이 아니지만)은 각기 개성이 무척 강하고 활동 지역도 달랐지만, 단 하나 범죄를 파헤치고 추리해 범인을 밝혀내는 데에 있어서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완벽한 탐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호기심 많은 귀족 탐정 아저씨는 탐정이라는 면에서는 현저히 약한 면을 보인다. 실력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추리해 나가면 자기가 스트레스 받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이 피터 윔지 경의 매력이라면 매력인 셈이다. 물론, 그 끊임없고 정신없는 수다도. (...)

 

귀족 탐정 아저씨의 캐릭터도 신선했지만, 시체 역시 뭔가 남달랐다. 전라에 황금 코안경이라니...죽은 사람에겐 미안한 말이지만...시각적 상상력에는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충격적인 시체 사건과 실종 사건이라는 겉으로 보기엔 전혀 관계없는 두 사건이 기묘하게 얽혀들어가는 내용에 매력있는 탐정을 새로이 알아가는 책이라 다소 예측 가능한 사건이라도 재미는 있다. 무엇보다 이게 피터 윔지 경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작품 곳곳에 탐정을 소개하는데 주력한 듯한 흔적이 보여 사건보다는 탐정에 주목하게 되는 것도 새로운 재미라고 본다.

 

참고로, 하인과 귀족-이라는 새로운 탐정과 조수 콤비가 굉장히 흥미롭다. 심지어 번터(하인)는 가끔보면 피터 경보다 재치가 넘치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저 내가 번터를 좋아하는 것 뿐...)

 

-내게 이게 취미잖나. 사물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다 보면 너무 재밌으니까 이 일을 하는 거지. 게다가 더 안 좋은 건 내가 이 일을 즐긴다는 거야. 어느 정도까지는. 이게 이론뿐이라면 속속들이 즐길 수 있겠지. 처음은 좋아. 여기 관련된 사람들을 모를 때는 그저 흥미롭고 재미있기만 하네. 하지만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까지 파고 들어가 그 사람을 교수대로 보내야 하거나 못해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면 내가 이런 일에 끼어들 핑계가 없어지거든. 이 일은 내 생업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일을 재미있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하지만 재미있는 걸 어쩌나.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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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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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었다. 단지...역시 내 청개구리 기질 때문에 읽을 마음이 별로 없었달까. <모방범>은 좀 흥미가 갔지만 도서관에 가보면 항상 3권 중 한 권이 사라져 있어서 다음을 기약하곤 했다. <쓸쓸한 사냥꾼>을 빌린 건, 실은 내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랄까. 요즘 텐션이 현저히 낮아져(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너무 감정적이 되었다는 거. 뭐 안 좋은 소식도 많았고.)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구경하는 건 좋았지만 막상 책을 뽑아들고 집에 돌아오면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아 반납할 때까지 멀뚱멀뚱 표지만 바라보는 일이 다반사다.

 

그리고, 그럴 때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추리소설이 최고다-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미드를 고르는 기준의 첫번째도 수사물인지 아닌지,로 판단할 정도로 나는 수사물, 추리물이라면 사죽을 못 썼다. 딱히 추리에 소질이 있거나 눈치가 빨라 범인을 알아채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신경줄이 약해 스릴러도 잘 못보는 내게 수사물은 내가 체험할 수 있는 스릴의 최대치인 셈이다.

 

역시나 모방범 세트가 없길래 되는대로 책을 뽑아들고 대출해왔다. 그리고 또 방바닥에 팽개쳐두길 일주일. 주말에 뒹굴거리다 보니 손에 닿아 읽기 시작했는데, 어...이 책, 재밌다. 오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는 다르구나, 약간 반성섞인 감탄으로 일단 작가를 칭찬해본다.

 

책 표지는 펼쳐진 책 위에 피 묻은 흉기가 놓여있는, 어찌보면 자극적인 그림이지만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듯한 터치 때문인지 너무 수사물에 무뎌진 내 감각 때문인지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책 속에 그려진 서점이 책 속의 '다나베 서점'인지 궁금하다. (그림 속의 간판은 한자에 뭉개져 있어 잘 모르겠다)저런 책방이 동네에 있으면 좋을텐데.

 

실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던 건, '다나베 서점'과 이와 할아버지가 우리 동네에 있었음 좋겠다-였다. 책을 좋아하지만 엉덩이가 무거워 요새는 서점에서 책을 사기 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려본 좋은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곤 하는 내게 헌책방이라는 건 어쩐지 아련하고 색다른,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다. 거기에 '이와 씨'처럼 현명한 할아버지가 주인이라면, 덧붙여 손자와의 만담도 볼 수 있다면 안 가는 게 손해가 되겠지. 어쩌면 이와 씨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으으.. 정말이라면 좋을텐데.

 

<쓸쓸한 사냥꾼>속 단편은 총 6편으로 이어진 듯 따로 전개되는 옴니버스 식이다. 주 무대는 '다나베 서점', 주인공은 현명하고 관찰력 좋은 이와 씨와 그런 이와 씨를 잘 따르는 손자, 미노루다. 서점이라는, 어찌보면 소음과도 거리가 멀 듯한 장소와 관련해 어쩜 그렇게 사건들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말하자면 서점이 아니라 '이와 씨'가 사건에 말려드는 거지만.

 

단편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작가의 성향이 그런지 모든 단편들은 아주 무섭다거나 잔인하다기 보다는 평범한 일상을 그린 듯한 터치로 이어진다. 특히 할아버지와 손자, 라는 흔히 친하게 지내고 자주 다니기 힘든 조합이 작품들을 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서점에서의 일과, 손자와의 사이에 집중하다보니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도 가볍게 읽을 수 있을 법하다.

 

내가 가장 맘에 든 작품은 <말없이 죽다>다. 살인사건이 나오기는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일상을 소원했던 아들이 훔쳐본다, 라는 설정은 잔잔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 아버지가 귀여우시기도 했고. 가만보면, 미스테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힌 수백권의 책들처럼.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는 그런 미스테리를 솜씨좋게 건져내 글을 엮어간다.

 

글쎄, 다른 책들은 아직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확실히 <쓸쓸한 사냥꾼>은 내 취향이었다. 내 청개구리 기질을 잠시 치워두고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

 

 

-남이 땀 흘려 창작한 것에는 다들 경의를 표해야 마땅한 것이며, 책도 그 가운데 하나로 여길 뿐이다. (13)

 

-그런 생각이 들자 몸이 떨렸다. 미치야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따분한 인생을 보낸 사람에게도 그런 패기가 있었다-. (95)

 

-태어나면서부터 패배자로, 언제나 관중석에서 구경이나 할 인간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생기면 나도 달릴 수 있다-. (96)

 

-기껏해야 한 편의 소설이다. 꾸며낸 이야기다. 그런데도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가씨의 한마디가 유키코를 뒤흔들었다. 유키코가 갇혀 있던, 어떤 의미에서는 안이한 생각 속으로 번개처럼 헤집고 들어왔다. (209)

 

-우리는 모두 쓸쓸한 사냥꾼이다. 돌아갈 집도 없이, 거친 들판에 내던져진 외톨이다. 이따금 휘파람을 불어도 대답하는 것은 바람소리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그리워한다.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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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와 클로버 세트 1~10(완결)
우미노 치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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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은 완결난 작품만 리뷰 써야겠다-하고 생각해서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방청소하다 고이 모셔진 허니와 클로버를 보니 다른 만화책은 몰라도 이 책만은 꼭 써야해, 라는 묘한 의무감이 느껴져서 또 청소하다말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오늘도 내 방은 더럽다...)

 

고등학교 시절 논스톱이 (헛된) 대학생활의 환상을 심어주었다면 허니와 클로버(난 줄여서 허니클이라고 부른다.)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거쳐 "미대"란 곳에 대한 환상을 심었다. 물론 나도 미대 역시 다른 여느 대학처럼 힘든 곳이라는 걸 알지만, 허니클을 읽다보면 절로 이런 대학교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정확히는 이런 대학생활을 하고 싶다, 겠지만.

 

허니클의 주요 무대는 미대로 몇 년간의(딱 4년간이 아닌;) 대학생활을 거쳐 각자 나름대로 성장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예술가에 대한 뜬 구름잡는 식의 선입견 때문에 어쩐지 정말 미대는 이렇게 자유분방하겠구나~ 싶어서 얼마간은 부럽고 얼마간은 구경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양의 과제와 실습에 치여 죽을 맛이라고 내 친구 모씨가 부르짖었다...)

 

허니클 캐릭터들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 각각의 개성이 매우! 뚜렷한 사람들이라 오히려 더 정을 주기 쉬울지도... 그 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모리다.

 

재능이 자유롭게 넘쳐 성격까지 침범해버린 것 같은 모리다는 간단히 말하자면 '재미있는' 사람이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물론 어디까지나 '보는' 입장에서. 실제 저런 사람이 있다면 하루하루가 독특하고 기억에 남을지는 몰라도 엄청 피곤할 테니까. (그 훌륭한 예시 : 모리다의 담당 교수님)

 

마음만 먹으면 남들이 깜짝 놀랄 작품을 만들고 관심이 갔다하면 사리사욕 가득한 (그러나 재미도 가득한) 홈페이지 만들어 매일 업데이트 하기도 마다하지 않는, 가끔은 후배들에게 '저주' 취급을 받는 사람. 재능, 만큼은 샘처럼 솟아오르는, 어딘가 어린애 같은 사람.

 

내가 모리다를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재능있고 자유롭기 때문이 아닐까. 그 재능과 자유로움으로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그 모습을 동경하기 때문일테고. 굳이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의 예를 들지 않아도 재능이 없어 괴로운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어느 면에고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어느 방면에는 천재인 사람도 다른 방면에는 어린애에 가까울 수 있다. 불행히도 보통에 보통인 나는 어느 면에고 뛰어나다기 보다는 평균가도를 달리지만, 모리다처럼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을 훌륭하게 꽃 피운 사람을 보며 즐거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미술 쪽에 재능이 없다는 걸 완벽하게 인정했기 때문이고 모리다라는 사람이 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분명, 다케모토는 모리다 옆에서 모짜르트 옆의 살리에르의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뭐, 다케모토 같은 경우에는 재능 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달콤쌉싸름한 요소도 들어갔지만서도. 따지고보면 허니클에서 가장 성장한 사람은 다케모토가 아닐까 한다. 재능이 넘치는 하구미나 모리다, 야마다에 비해 다케모토는 가장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재능 역시 특출난 편이 아니었다. 다만 사람에 대한 그 한없는 믿음과 포용력이 강점이라면 강점이랄까. 힘겨운 첫사랑을 졸업하고, (타칭) 자아찾기 여행에서 조금이나마 자신을 찾은 다케모토는 정신적으로 성숙해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허니클의 가장 큰 매력은 앙상블이 아닐까 싶다. 다재다능하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도 탈출할 모리다지만 다른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단순한 괴짜일 뿐이다.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재능이 너무 커 인생이 작아보이는 하구미는 사람들과 만나 자신의 약함을 마주보고 인생을 정했고, 그야말로 평범함의 결정체인 듯한 다케모토는 사랑과 자아를 찾는다.

 

이러니 내가 그 대학생활을 동경할 수 밖에. 모두들 너무 강하다. 넘어져도 엉엉 울면서 일어나는 그 강함에 읽을 때마다 반하게 된다. 더불어 언제나 방긋 웃게 해주는 순진함에도.

 

어쩐지 한 살 먹을 때마다 울음이 많아 지는 나지만, 만화책 보고 운 적은 쵸파사건(원피스) 이후로 처음이었다. 작가인 우미노씨가 가족이 사라진 허전한 느낌이었다, 라고 말했지만 나 역시 뭔가 잃어버린 듯 뻥 뚫린 기분에 울먹울먹 마지막 권을 덮었다.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들 누가 빌어주지 않아도 행복해 질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아직도 자아찾기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위해 아껴두자.

 

-어릴 때 어떤 책에서 읽었던 건데, 기회는 어떤 인간에게나 적어도 평생 3번은 꼭 찾아온대. 그래서 어른이 되어 생각한 건데, 막상 그 기회가 왔을 때, 거기에 "뛰어들 수 있나" "없나"는 단순히 돈이 "있냐","없냐"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 거야. (8권)

 

-어째서 이 세상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나뉘는 걸까. 어째서 "사랑받는 자"와 "사랑받지 못하는 자"가 존재하는 걸까. 누가 그것을 나누는 것일까. 어디가 갈림길이었을까. (9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도, 괜찮아. 이제 알았어. 그리고 싶어. 이것 외의 인생은 내겐 없어. (10권)

 

-사는 의미를 무엇에 거는가...그 차이라고 생각해. 그게, <사랑>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고 싫고와 상관없이, 뭔가 <이루어내야만 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어.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모두들 그 순간은 그야말로, 본능에 판단을 맡길 수밖에 없을 거야. (10권)

 

-나는 내내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의미는 있을까 하고.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인가 하고...이제는 알겠다. 의미는 있다.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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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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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지부터 독특한 분위기가 풍기는 책을 읽는 내내 스토리와는 무관하게 프랑스 이름들이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굉장히 슬펐다. 이름치는 책도 제대로 못 읽는구나- 싶어서. 지금 다시 보니 그렇게 어려울 거 없는데 왜 읽다보면 헷갈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책은 이름치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야기다. 나는 영화로는 조금이라도 으스스하거나 놀라는 장면을 보지 못하지만 책을 볼 때는 어딘가 기괴한 구석도 즐기며 볼 수 있다. 시각에 청각이 더해지면 충격이 2배가 되기 때문일까... (단순한 겁쟁이라서일까...)

이 책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튀바슈 가문이 주인공이다. 우중충한 세계에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자 하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자살가게를 몇 대째 운영해 오고 있는 튀바슈 가족. 자살가게가 그들의 터전이고 생활이라 구석구석 죽음의 음침한 분위기가 배어있다. 가족 구성원들의 성격도 범상치 않다. 누나인 마릴린은 둥실한 몸매에 항상 자신이 쓸모없다고 여기는 여자아이고, 첫째인 뱅상은 자살에 관한한 매우 창조적인 예술가지만 항상 두통에 시달리는 뼛속까지 우울한 남자아이다.

이런 우울한 가족들 사이에서 막내인 알랑만이 유일하게 살아가는 걸 진심으로 즐거워 하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튀바슈 부부는 그런 막내가 (그것도 구멍난 콘돔을 실험해 보다 태어난 막내가!) 못마땅해 형, 누나와 같이 음침한 성격으로 키우려 애쓰지만 이 조그만 아이는 도무지 어둠에 물드는 구석이 없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항상 방실거리며 웃음을 보낸다.

<자살가게>에는 곳곳에 자살에 대한 기묘하고 재치있는 아이디어들과, 생소하고 (나름) 흥미로운 자살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가게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각각 다른 사연들이 있다. 가까운 사람이 죽어 그를 잊지 못해 죽고 싶다는 사람, 더이상 사람들을 참아내지 못하겠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위해 수많은 아이템이 채워져 있던 자살가게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가게의 신선고에서 동물이 빠졌다. 자살을 위해 독이 있는 동물을 사간 사람들이 그 동물에 정이 들어 다시금 살아갈 희망에 불탔기 때문이다. 간단하지만 이해가 가는 구절이다. 자신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아부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사람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튀바슈 가족에게 알랑이 그런 존재였다. 사람을 우울할 때 즐거운 것, 웃기는 것을 보고 마음에 위안을 삼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가 특히 그래서 우울할 때는 꼭 소장하고 있는 DVD 중 웃긴 것만 모아 연달아 보곤 한다. 뭐랄까, 항상 변하지 않고 즐거운 것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한 줄기 빛과도 같지 않을까.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알랑은 전염이 강하다. 웃음이 그런 것처럼. 몇 대째 이어져 오는 집안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꼬마는 형, 누나, 엄마까지 행복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죽음에 잠겨있을 때는 식욕이 없던 뱅상이 알랑에 의해 변해가고 식욕이 돌아온다. 자신이 쓸모없다 느꼈던 마릴린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있게 되어 기쁘다. 어린 시절 번번히 엄마를 기다리느라 버림받은 느낌을 느껴왔던 엄마도 그 마음의 상처를 잊어간다.

이런 가족들의 모습에 알랑을 모니코의 자살특공대 연수를 받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아빠 미시마는 그것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고 믿었지만, 오히려 막내 알랑이 없어지자 알랑이 보내온 엽서를 보며 각자 힘의 원천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튀바슈 가족에게 변화가 오고 있다.

-우리 역시 절망할 때가 있답니다. 세상 하직하고픈 이유가 없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가 준비한 상품을 우리 스스로 맛볼 순 없지요. 만약 그랬다간 제일 마지막 사람이 가게문을 아예 닫아야만 할 테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손님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35)

-벌받고 있는 겁니다. 학교에서 자살자에 대한 질문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근데 쟤가 뭐란 줄 아십니까? 아 글쎄, '자, 살자!'고 하는 사람이라나 뭐라나,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39)

- 순간, 미시마는 왠지 가슴 한복판을 빛이 가르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가게에서나 이층 아파트에서는 종종 기운이 차고 넘쳐 괄괄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 이곳 지하실 구석에 앉아 막내로부터 온 사연 몇 줄을 읽는 동안에는 전혀 그런 태도가 아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
아, 이 못 말리는 낙천주의자, 요 철 모르는 요정 같은 녀석! (130)

-뤼크레스, 마릴린, 미시마, 뱅상.....그 모두에게 알랑의 존재가 아쉽다. 마치 삶의 의미가 아쉬운 것처럼......(138)

-인간의 고뇌를 달래는 가족치료사,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반짝인다. 그것은 잊혀진 보배가 숱하게 빛을 발하고 있을 경탄할 만한 속내를 감춘 눈빛이다. (166)

- 날이면 날마다 인간의 머리를 꿈으로 가득 채우는 이 어린 소년은 세상 만물을 기분 좋게 적시며 졸졸 흐르는 한 줄기 시냇물과도 같다. 그는 우리를 미증유의 신천지로 이끄는 저 아름다운 수평선과도 닮았다. 두 발은 이불 속에서조차 모험 충만한 경주를 하듯 뒤척이는데, 방에 가득한 이 향기는......아이들의 몸에서 나는 상큼한 향기다. 그의 잠은 기발한 발상이 톡톡 튀는 기적 같은 현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이 틀림없다. 오, 아이의 머릿속이야말로 온갖 신기한 동화가 움트는 요람이거늘! (182)

-결말네타 포함/ 책 다 읽으신 후 보는걸 추천해요~

뭐랄까. 굉장히 재밌고 비틀린 느낌을 주는 책인데... 정말 작가를 만나고 싶어지게 만든다. 결말이 뭐 그래?! 하고 따지고 싶다. 어떡할거야, 당신... 급 우울해져 버렸잖아! 하고 따져보고 싶다.

어 떻게 보면 알랑이 가장 죽음에 근접했던 것이다.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 나머지 인생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극단성이랄까. 여러가지 이유로 자살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그 이유 안에 '자기'가 있었다. 하지만 알랑에게 '자신'이 있었을까. 단순히 임무의 완수. 자살특공대 수업을 착실히 들었구나, 알랑.

열린 결말인 듯도 싶지만, 해피 엔딩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생각할 수록 짜증이 난다. 자살이 우울한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슬픔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시 튀바슈 가족은 자살가게를 운영할까...
아아...제일 잔인한 건 너야, 알랑...

- 알랑은 붕대를 단단히 틀어쥔 채, 지난 일들에 대한 그 어떠한 아쉬움이나 미움도 없는 덤덤한 마음으로 저 위 가족들 얼굴을 바라보면서 흔들흔들 오르고 있다. 지금 보이는 저들 모두의 행복과 미래에 대한 갑작스런 신념, 저 얼굴들에 빛나는 환한 웃음이야말로 알랑의 일생일대 걸작이나 마찬가지다. 2미터가 남자 누나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튀바슈 부인은 난데없이 어린 시절 유치원 마당에 들어서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듯 가까워지는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 알랑의 임무는 완수된 것. 순간......그는 손을 놓는다!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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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형제 사기단 - The Brothers Bloo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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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형제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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