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의 비밀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백설자 옮김 / 현암사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펄펄 살아있는 인형들이야." 18p

사실 읽은 지 꽤 되는 책이라 메모와 내 기억력만 가지고 리뷰를 쓰려니 굉장히 두렵다. 가뜩이나 온갖 비밀스런 의미들이 넘쳐나는 이 책이 올바르게 소개되지 않을까봐.

소피의 세계에서 나를 반쯤 기절시켰던(중학생? 고등학생? 아무튼 그 시절의 나에겐 너무나도 졸려운 책이었다) 요슈타인 가아더가 쓴 이 책은, 소피의 세계를 읽기 전부터 날 매료시켰던 책들 중 하나였다. 불행히도 내 안타까운 기억력 덕에 한동안 제목도 작가도 모른 채 끙끙 앓았지만, 책을 찾을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그 때에도 책의 내용들은 내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아빠와 함께 아테네, 혹은 그리스 어딘가에 있을 엄마를 찾아 떠나는 소년, 한스 토마스가 여행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독특한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서인지 나름 침착하고 생각이 많은 한스 토마스를 찬찬히 따라간다. 책에서 한스 토마스의 아빠는 종종 "한스 토마스야,"라고 풀네임을 불르는데 어쩐지 그 느낌이 좋아서 입에 착 달라붙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아빠가 내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부르면 좀 무섭겠지만...(뭔가 찔리고 있음)

소피의 세계, 마법의 도서관에서도 날 미소짓게 했던 요슈타인 가아더 작품의 세심함은 여전하다. "카드의 비밀" 제목 답게 책에서는 카드가 실컷 나온다. 특히 조커가 제일 중요한 카드로 비춰지는데, 처음에는 머리가 좀 아프지만 읽다보면 조커에 어쩐지 정이 가는게 또 묘하다.

이 책의 소제목은 글귀가 아니라 각 카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이아몬드 에이스, 다이아몬드 2 등등... 그 순서 또한 나름 의미가 있으니 책을 읽으며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엄마를 찾으러 아빠와 둘이 떠나는 여행이라 책의 반이상은 아빠와 한스 토마스의 대화나 마찬가지다. 한스 토마스 생각에 의하면 국가에서 연구비를 받아도 될만큼 철학자같은 아버지와, 여행 중 겪는 신비한 일을 통해 점점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한스 토마스의 대화는 이게 과연 정상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인가 싶을 정도로 철학적이다. 읽으며 잠깐, 이래서 엄마가 떠난 건가, 하고 실없는 생각도 해봤다.

한스 토마스의 아빠는, 소위 사생아라고 하는 '아버지 없는' 아이였다. 적군과 사랑에 빠진 할머니는 그 군인이 떠난 후에 한스 토마스의 아빠를 낳아 길렀다. 아빠에게는 카드의 조커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데 한스 토마스는 이런 과거 덕에 아빠는 스스로를 '조커'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를 찾기 위해 집을 나간 엄마를, 되찾아 오기 위해 아버지와 길을 떠나는 한스 토마스는 주유소에서 만난 난쟁이가 준 돋보기로, 어느 한적한 산골마을의 빵집 할아버지가 빵에 넣어 건네준 꼬마책을 읽으며 점점 이상한 일을 겪는다. 책속의 책, 액자식 구성으로 펼쳐진 꼬마책은, 동화스럽다못해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바다를 표류하던 남자가 내리게 된 섬에서 그는 '카드'들을 만나게 된다.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를 해대는 카드들의 틈바구니 속에 홀로 살아가던 한 할아버지와 만나게된 그는 그 할아버지가 실은 자신의 아버지라는 걸 알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카드'들이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자신의 상상력이 낳은 산물이라는 것을 털어놓는다. 상상물의 산물인 카드들은 그 사실을 아는 것을 무의식중에 거부하고 있었지만, 오직 조커만이 그것을 눈치채고 카드들에게 폭로할 마음을 먹는다. 카드들의 축제에서 각자 준비한 글귀로 이야기를 만드는 '의식'에서 모든 진실이 꿰맞치고, 카드들은 자신들이 피조물이라는 걸 알고 동요한다. 그 와중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그는 조커와 함께 섬을 급히 빠져나왔다. 꼬마책을 읽고 있던 한스 토마스는 꼬마책의 내용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과 맞물리는 '실제'이야기라는 걸 알고 꼬마책을 넘겨줬던 할아버지가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테네에서 엄마와 만난 아빠와 한스 토마스는 사이좋게 가족으로 돌아와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역시나 요약에는 자신이 없는 나; 무슨 이야기인지 영 모를 정도로 써놓았지만, 실제로 읽으면 그 구성이 치밀하고 흥미진진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난 무엇보다 작가의 상상력에 새삼 감탄했다. 꼬마책에 나오는 카드 달력은 정말로 기발했다! 정신없이 읽던 내게는 좀 복잡해 세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너무 기발해서 나도 한 번 써먹어 봐야겠다, 싶을 정도였다. 거기다 꼬마책과 한스 토마스의 세계를 능숙하게 넘나들며 여러 가지 힌트들을 뿌려놓아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에서 조커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슨 저주라도 받은 것 처럼;; 한스 토마스의 집안은 대대로 '조커'였다. 어느 곳 한 곳에 가족과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그리고 버려져야만, 아니 남겨져야만 했던. 따지고 보면 어느 누구 하나 잘못한 게 없는데도. 조커는 어디까지나 자유롭다. 카드에는 4가지 소속이 있지만 조커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덕분에 자유를 얻었지만 소속감이 없다. 조커가 자유를 느끼기 위해선 고독이 필요한 것이다. 한스 토마스는 집안의 가장 어린 조커였지만, 모든 조커의 대를 마무리 지었다. 직접 엄마를 찾으러 나가 되찾아왔고, 아빠마저 믿지 않았던 꼬마책을 온전히 믿음으로써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아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조커가 있을 것이다. 자유와 고독, 양면의 동전같은 존재가.

+철학적인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
+소피의 세계를 재미있게 읽으신 분
+요슈타인 가아더가 좋으신 분
+세상을 독특하게 바라보고 싶으신 분

http://niarain.tistory.com2009-05-28T15:20:24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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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도서관 - 소설로 읽는 책의 역사
요슈타인 가아더.클라우스 하게루프 지음, 이용숙 옮김 / 현암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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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피의 세계」의 저자로도 유명한 요슈타인 가아더의 다른 작품. 이 책은 매우 특이한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프로젝트(?)가 한 번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맘에 들었다. 저자는 요슈타인 가아더 말고도 클라우스 하게루프라는 작가가 한 명 더 있다. 가아더와 하게루프는 각각 전화, 팩스 상으로 주고받으며 집필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두 명 나오는데 각자 한 명 씩 역할을 맡아 써내려 갔다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릴레이 정도가 될까. 소설 커뮤니티나 비툴 커뮤니티 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이지만 이렇게까지 흥미있는 건, 역시 작가들의 역량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표지는 크빈트 부흐홀츠라는 몽환적이면서 상상력이 넘치는, 그러면서도 잔잔한 그림풍을 지닌 화가의 작품으로 「마법의 도서관」에 꼭 맡는 표지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화가의 작품집이 한국에서도 출간되었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검색해 보시길~ (그냥 네이버 검색만 해도 쏟아져 나옵니다...)

'소설로 읽는 책의 역사 마법의 도서관'이 이 책의 긴 제목인 만큼, 책을 읽다보면 '책'에 관한 역사, 정보를 얻게 된다. 그것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작가 두 분이 다 오슬로에 살고 있던 관계로 노르웨이의 지명이 자주 등장하는데, 지리에 약한 나로선 그게 무슨 판타지에 나오는 이름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지명 이름이 (어찌보면)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으니 유심히 살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참고로 오슬로는 노르웨이의 수도로, 노벨 평화상이 수상되는 곳이기도 하다. 밑의 사진이 오슬로의 풍경. (출처 : http://www.fjord-tours.com/oslo/)



다른 한 곳은 책에 따르면 피엘란, 현재의 표기법으로는 피어랜드라고 하는 곳으로 그렇게 도시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평화로워 보인다. (출처 : http://www.fjaerland.org/)

아까도 말했다싶이 이 책은 작가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설정해 주고받은 원고를 모아 만든 책이다. 가아더는 둘 중 1살 많은 야무진 사촌누나인 '베이체'를, 하게루프는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무모한 '닐스' 를 맡았다. 책 안에서도 서로 떨어진 지방에 사는 두 사촌은 방학을 함께 보내고 난 뒤 '편지책'을 쓰기로 결정한다. 편지를 편지지에 쓰는게 아니라 노트에 써서 보내고 다시 돌려받는 형식으로, 말하자면 교환일기쯤 되겠다. 물론 보통의 교환일기보다 스케일이 (일단 우표 값이!) 크지만서도. 각자의 글 앞에는 닐스와 베리체의 아이콘이 있어 누가 썼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정말로 우체국을 통해 주고받은 '편지책'이고 2부는 닐스가 베리체가 사는 피엘란에 간 관계로 직접 주고 받은 듯 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웃음이 나는 게, 사촌지간이 주고받은 편지라 그런지 격의없으면서도 귀여운 표현이 자주 나온다. 서로를 정답게 비꼬는 표현이 나오는 건 당연한거고 "짱"이라든가 하는 표현이 나와서 풋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내용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사이좋은 두 사촌은 각자의 일상을 전하기 위해 편지책을 쓰기로 결정했지만 자꾸 주변에서, '이상한 여자', 비비 보켄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오슬로에서 봤던 그 여자는 베이체가 사는 피엘란에도 나타나고, 순식간에 어린이 탐정단으로 변모한 둘은 각자의 방법으로 그 여자의 비밀, "비밀의 도서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비비 보켄과 떨어진 곳에 사는 닐스에게는 그 여자와 관련된 듯한 사람이 자꾸 나타나 일상의 평화로움을 비틀지만 치기어린 닐스는 소심하게 겁을 먹으면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비록 덜덜 떨지라도.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선생님 부부와 자꾸 닐스의 곁을 맴도는 '스마일리' 때문에 닐스는 책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력이 넘치는 추리(...)를 거듭하고 베이체는 그런 닐스를 '사실'에 근거한 추리를 하자며 타이르면서도 역시 상상력이 펼쳐지는 걸 막을 수 없다. 결국 밝혀진 비밀은 비비 보켄은 '책의 해'를 맡아 노르웨이 중학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로 한 책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베이체와 닐스가 방학 때 쓴 시를 읽고 이 아이들에게 맡기자, 라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영감', 즉 여러가지 의심가는 상황을 만들어 줘 상상력과 박진감이 넘치는 '편지책'을 쓸 수 있게 한 거였다. 의심가는 선생님 부부는 비비와 대학 동창이었고, '스마일리'야 말로 비비와 아이들을 방해하는, 출판업계에 도전하는 '비디오' 업계의 관계자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몰랐던 책에 관한 지식들이 흥미진진하게 튀어나온다. 서지학자(bibliographer)의 기원이 그리스어로 책을 뜻하는 biblion에서 왔다는 것도, 고판본(incunabula)가 라틴어로 아기의 요람 또는 첫 출발기를 뜻하는 incunabula에서 왔다는 것도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현재도 도서관에서 쓰이고 있는 분류방식이 듀이의 십진분류표(DDC)라는 사실에 도서관을 떠올려보며 눈을 빛냈고, 37P의 곰돌이 푸 이야기는 선연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기 돼지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바지 멜빵을 태어나서 단 한 번 밖에 보지 못했지. 그런데 그 멜빵이 어찌나 새파란 색이었던지 한 번 보고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던 거야. 아기 돼지는 그 바지 멜빵을 다시 본다는 상상만 해도 엄청나게 흥분하곤 했지. 그러면서 끔찍하게 신경이 날카로워졌지. 만일 그 바지 멜빵이 진짜로 그렇게 눈에 시리도록 새파란 색이 아니라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걱정이었어. 만일 그 멜빵이 아기 돼지가 이제까지 수없이 보아온 보통의 별볼일없느 파란 색이라면? 하지만 크리스토퍼 로빈이 재킷을 벗었을 때, 아기 돼지는 기뻐서 기절할 지경이 돼. 그 바지 멜빵이 정말 자기 기억 속에 있는 그대로 시리도록 새파란 색이었거든. 그래서 아기 돼지는 그날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이야기는 그저 별것 아닌 멜빵 이야기 같지만, 사실 거기엔 그 이상의 뜻이 담겨 있어. 이 이야기를 읽으면 난 어떤 돛단배 그림이 떠올라. 언젠가 우리가 여행을 갔을 때 묵었던 어느 시골집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이야. 그건 분명 아주 평범한 배에 지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나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로 보였지. 매일 저녁 엄마는 나한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난 그 돛단배를 타고 지구를 돌며 낯선 나라들로 배를 저어갔던 거야. ~(중략) ~ 그리고 그때와 똑같은 기분이 크리스토퍼 로빈의 바지 멜빵 이야기를 읽었을 때 느껴졌지. 그래서 난 책 읽는 걸 그처럼 좋아해. 책을 읽을 때면 어느 정도는 나 자신도 작가가 될 수 있거든. (38p)

표지부터 내용, 읽고 난 후의 여운까지 완벽한 한 권의 책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오랜만의 강력한 책이다(실제로 이모에게 권했지만 사촌 남동생이 어려 거절당했음)! 
+흥미진진한 어린이책을 좋아하시는 분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책을 좋아하시는 분
+소피의 세계를 알고 계시는 분
http://niarain.tistory.com2009-05-28T15:22:01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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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펫 14 - 완결
오가와 야요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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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보신 분들은 이미 다 보셨을만한 책입니다만... 이번에 다시 보니 또 너무 좋아서,,,;
*주의! 요새 케이블에서 하고 있는(듯한) 프로그램과는 그리 관계가 없습니다. 랄까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솔직히 소재만 놓고 보자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내용이다. 잘나가는 여자( 나중에는 남자도)가 '펫'으로 남자 아이를 기르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냔 말이다. 혼전 동거도 떳떳하지 못한 사회에서 애인도 아니고 인간 취급도 아닌 '애완동물' 취급.

하지만, 그런 골치아픈 문제들은 일단 '연애 판타지'라는 명분으로 처리(?)하고 나면, 이 만화... 너무 사랑스러운거다. 여느 남자들보다 능력있고 키도 큰 완벽녀, 이 여자 스미레. 곱슬곱슬한 머리에 가진거라곤 애교밖에 없어보이는 이 애완동물, 모모. 근데 한 꺼풀 벗기고 보면 스미레라는 여자, 표현방법도 서투르고 도통 일을 요령있게 처리하지 못하는 여자고, 천상 귀여운 펫이라고 생각한 모모는 엄연히 (당연하지만) 다케시라는 이름을 가진 잘나가는 모던 댄서다.

그 둘의 묘한 조합이 만나서 판타지가 발생한다. 판타지의 '성'인 스미레의 집에서 스미레는 본모습으로 돌아가고 다케시는 모모가 된다. 반대로 밖에선 스미레는 똑부러지는 능력녀에 모모는 다케시로 돌아간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식으로 나눈 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겠지만, 세상 사람들 누구나 조금씩은 '본연의 모습'과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다른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만화는 그런 사람을 특히나 갭이 심한 '스미레'를 통해서 정신적으로 위로해주고 있다.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스미레는 '펫'인 모모에게만 마음을 연다.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일 바에는 죽는게 낫다고 여기는 여자인 스미레도 애완동물인 모모 앞에서는 마음껏 울 수 있다. 애초에 인간이 아닌 존재기 때문이다. 스미레가 붙여준 이름인 '모모'조차 옛 애완동물의 이름이고, 스미레가 모모를 대하는 모습은 강아지를 대하는 모습과 다름없다. (물론 조금 민망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강아지이기 때문에 강한 척 하지 않아도 되고, 쓸데없이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다. 애완동물은 절대적으로 주인을 사랑하고,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오는 어디까지나 주인만을 위한 존재니까. 물론 이 상태에서 머무른다면 그냥 조금 이상한 여자의 이야기에서 머물렀겠지만, 모모가 진짜 개가 아닌 이상 감정이 안 생길리가 있나. 기르는 강아지에게도 무한한 애정을 주는데.

만화는 맨처음 열등감에 바람을 피운 남자친구에서 시작해서 갑자기 난입한 모모의 등장, 뒤이어 옛날부터 좋아했던 하스미 선배를 걸쳐 스미레의 약한점을 사정없이 공략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강한척 작렬인 스미레는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 사이에서 갈팡질팡 흔들린다. 일에 완벽해 질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질시를 받고, 사귀는 사람 앞에서 완벽해 지려 할수록 스스로 지쳐간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 주는 건 오직 모모 뿐.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스미레가 부러워 지는 건, 절대 내게 그런 취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사랑받았던 작품이니 분명 나처럼 공감한 사람이 많다는 소리. 분명 '모모'가 스미레에게 퍼붓는 전폭적인 애정과 이해심이 필요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선가 애완동물을 제일 예뻐하는 사람은 집안의 가장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올려다보는 작은 존재가 사랑스럽다는 얘기다. 결국 말하자면 사람에게는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는 게 아닐까. 지치고 힘든 하루에 짜증을 내도 변함없이 주변을 맴도는 존재. 주인을 반기고 꼬리를 흔들고 없으면 불안해 하는, 나만을 필요로 해주는 존재.

몇 번을 읽어도 스미레가 부럽고, 모모가 존경스럽다. 나 역시도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고 필요로 해주었으면 하고, 내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끌어내서 이거다 싶은 나만의 길을 나아가기 싶다. 뭐, 계속 부럽다, 부럽다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한 편으로 밀어놓고 봐도 읽기에 재미있고 적당히 가벼운 만화책이다. 연애 판타지 답게 읽고나면 어쩐지 눈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있는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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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연극 2
다카오 시게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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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손을 대기 시작한 만화책은 그간 읽어왔던 소설보다 어느 면에선 매력적이었다. 아름다운 그림에 쉽게 읽히는 점까지. 처음 시작은 분명 얼토당치 않게 유행하던 순정 만화였던걸로 기억하지만 엄마 몰래 만화책을 빌리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계단을 내려가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학교 내에서도 여자애들 사이에 유행하던 만화책이 있어서 쉬는 시간이면 빌려온 아이 옆에 와글와글 북적거렸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홈즈와 루팡 시리즈를 읽으며 자랐던 나는 뻔한 순정만화에 이내 질려 추리만화로 눈을 돌렸고...만화 대여점의 단골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다 알고 계셨던 것 같지만 그 시절에는 빌리는 것도 보는 것도 어찌나 스릴있는 일이었는지.

난 지금도 만화책을 좋아한다. 순정만화도 좋긴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뻔한 스토리가 태반인 순정보다는 새로운 트릭이 잔뜩 나오는 추리만화라든가 스토리가 탄탄해서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만화들이다. 추리만화야...대부분 장편이지만 다른 하나는 대개 단편이라 적당히 아쉽고 여운이 남는 게 더 매력적이랄까.

'인형 연극'도 그런 만화책이다. 총 2권으로 끝나는 짧은 만화책. 그림은 화려하기보다는 동글동글 정감이 가는 그림체라 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림으로 책잡힐 책은 아니다. 애초에 이 만화책은 그림체가 아니라 스토리가 짠-하니까.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인형 연극'의 스토리를 간단히 말해보자면, 2700년대의 미래에는 1가정 1자녀 법이 시행되어 쓸쓸해진 가정을 위한 안드로이드, 통칭 '인형'이 유행하고 있다. 형제자매가 없는 어린아이들에게는 형제형의 인형을, 늙고 쓸쓸한 노인들에게는 말생대를 위한 인형을 만들어주는 변방의 쌍둥이 인형사. 삶을 주는 인형사의 피리소리에 인형은 눈을 뜨고 죽음을 내리는 인형사의 피리소리에 인형은 눈을 감는다고 한다. 에피소드마다 다 다르긴 하지만, 결국 인간의 희노애락과 지식을 배워나가는 인간과 흡사한 인형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꿈같은 이야기다. 기계가 인간과 같은 사고를 하기까지엔 갈 길이 아직 멀고, 그렇게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어디엔가 악용될테니까. 하지만 이런 인형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위해 태어난 섬세한 존재. 오직 인간을 사랑해 주기 위해서 태어난 인형. 이게 결국은 인간다운 이기심이라는 걸 알지만, 한 편으론 또 인간답게 변치않는 애정을 바란다.

이 만화에서 모든 '인형'은 각각 성격이 다 다르다. 인간과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진 '인형'은 외모도 성격도 닮은 구석이 없다. 공통점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주고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점일까. 마치 인간처럼. 아니 오히려 인간보다 더 약하다. 인형사들은 인형은 '물건'이라고 잘라 말한다. 사용되기 위해 태어난, 목적을 가진 존재라고. 사용해 주는 것이 더 기쁠거라고. 그리고 물건은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다고. 그 말은 결국 인간에게 모든 책임이 달렸다는 말이다.

'민트'라는 인형이 있다. 어영부영 회사에서 짤리고 자포자기인 어리숙한 남자에게 쉽사리 납치된 어린아이 모습의 '인형'. 인형은 희노애락이 풍부하다는 말과 달리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하다. 자기를 꼬드긴 한 패를 기다리던 남자는 대신 다리를 삐었다는 가정부 '인형'을 얼결에 맞이하게 되고 '민트'의 문제점이 심리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알고보니 '민트'의 실어증은 형제형으로 만들어진 민트가 아이를 잃은 어머니에게 정신적으로 지쳐갔기 때문. 어리숙한 납치범을 '민트'는 마음에 들어하고 결국은 둘이 함께 한다는 이야기. "사람에게 상처받은 안드로이드는 사람에게서 치유받고 싶어한다"고 가정부(로 분한 인형사)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읽는 내내 이 책 속의 '인형'이 말을 하고 감정이 풍부하다는 걸 빼면 애완동물과 비슷한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사랑스럽게 애정을 담은 눈, 주인이 자길 신경써주지 않으면 풀이 죽는. 사람에게 길이 든 작은 동물들 같았다. 이런저런 분위기 있는 말을 잔뜩 늘어놓은 듯 싶지만, 내 우울한(...) 감상과는 별개로 부담없이 읽기 좋은 만화책이다. 물론; 2권으로 완결인데다가 2000년에 출간된 거라 대여점에 아직 남아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시간이 난다면 동네 대여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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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 와이드판 15
아기 타다시 지음, 오키모토 슈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볼 예정도 아니었던 만화지만, 동생의 과제 (정말 교수님이 궁금하다)로 읽게 된 작품이다. 만화책을 좋아하지만 워낙 완결 나는 속도도 느리고 변수도 많은 만큼 완결 난 것만 리뷰하겠다고 마음 먹었건만.... 뒤를 읽을 것 같지 않으니 -_- 이 시점에서 리뷰하는 게 가장 적당할 듯 싶다.

만화책인만큼 표지는 매권 달라 화려하다. 그림체도 사실적이면서도 예뻐서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도 적당~ 하다고 본다. 물론 지금은 너무 유명해서 다들 알고있는 작품이지만서도.

줄거리를 말하자면, 와인계의 대부, 칸자키 유타카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아들들에게 공개한 유언 덕분에 칸자키 시즈쿠(친아들)와 토미네 잇세(일단은 호적상 양자)가 대결하게 된다. 칸자키 시즈쿠는 어렸을 적부터 이상한 일들만 시켜온 아버지에게 반발해 맥주 회사에 들어가 와인과는 담을 쌓고 살았지만 유언장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와인에 다가서게 되는... 굳이 말하자면 초짜였지만, 자신이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그 경험들로 인해 후각과 미각만큼은 확실하게 단련되어 있다. 칸자키 유타카의 뒤를 잇는 천재적인 와인 평론가 토미네 잇세는 어째서인지 시즈쿠에게 적의를 불태우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12사도와 최후의 1병을 찾아야 아버지의 유산(와인 콜렉션)을 물려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유산만이 아닌 무언가가 서서히 들어난다.

뭐 고정적으로 나오는 조연들 덕분에 만화책이 처지지도 않고 풍부하지만, 15권째인데 사도 4번째라니 너무 느리잖아...... 평소 미각치는 아니더라도 좀 둔한 미각을 자랑(...)하는 나로서는 늘상 요리만화에서 펼쳐지는 그 환상의 맛에 숨겨진 화려한 풍경과 별세계는 심히 부담스러웠지만, 이 작품, 신의 물방울에서의 '환상'은 그렇게 요란하지도 않고 읽는 재미가 있어서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와인의 '맛'을 자신의 감각과 경험에 비추어 전개되는 '환상'이다보니 각각 캐릭터들의 어린 시절,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어찌보면 캐릭터를 파악할 수 있는 한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게 자꾸 나오면 질리기도 했지만...

본격 와인 만화다 보니 와인에 관한 그야말로 본격적인 정보도 가득하고 용어도 가득해서 평소 만화책의 자잘한 글씨를 다 읽는 나에게는 좀 부담이 된 작품. 처음엔 다 필기하려고 종이와 펜을 붙들고 읽어내려갔더니 너무 많아서 다 포기해 버렸다는 거. 그야말로 '소장용' 작품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읽고 있으면 와인이 마시고 싶어진다는 거? 그날 밤 결국 아빠가 선물 받은 와인 한 병을 열었다. 물론 환상적인 맛은 아니었지만 (평소 술과 탄산을 싫어함) 와인 좋아하시거나 관심있으신 분들은 확실히 감회가 새로울 듯.

+와인 좋아하시는 분 +혹은 관심있으신 분
+'정보'를 주는 만화를 찾고 계시는 분
+그냥 만화가 좋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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