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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이양호 지음, 박현태 그림 / 글숲산책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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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어렸을 적, 네 가족이 살기엔 복작복작 작았던 우리 집은 동화책 놓기에도 빠듯했다. 침대에서 내려오면 책상 의자가 맞닿는 그런 작은 방 어느 곳에서 자리할 곳 없었던 고운 색색 가득한 그런 동화책이 참 부러웠더랬다. 친구 집에 놀러가서 한 권 한 권 훔쳐 읽은 책들은 살결 고운 공주님들이 방실거리고 나와 어린 나를 설레게 했다. 신데렐라, 인어공주, 라푼젤, 백설공주. 훌쩍 커버린 지금도 떠오르는 그 삽화 속의 그녀들은 커다란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나고 선이 고운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제법 많은 동화를 담고 있었던 그 전집은 디즈니의 만화가 나오기 전의 것이었던 걸까, 모습이 사뭇 달랐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주인공은 바로 백설공주. 어딘가 동양적인 참한 분위기를 풍기는 백설공주를 기억하고 있던 내가 처음으로 디즈니의 백설공주를 봤을 때에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디즈니 백설공주의 머리 스타일은 아직까지도 탐탁치 않다.


하지만 시각적 영향력이란 얼마나 센 것인지. 모든 사람들이 디즈니 백설공주를 정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나 역시 노래 하나로 숲속 동물 친구들을 불러대는 그녀의 신비함에 홀딱 반해 버린지 오래였다.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들으면 소름이 삐죽 솟을 정도로 옛날틱한 목소리지만 그 당시에는 남몰래 흥얼흥얼 시도해 보았더랬다.

근데, 그런 백설공주가 공주가 아니란다. 그럼 도대체 누구란 말이지. 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는 처음 디즈니 백설공주를 보았을 때처럼 나름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다 커서 더이상 동화 속 그녀들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이 없지만, 내가 알고 있던 무언가가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린 시절에 알게 된 것일 수록 충격적이지 않은가.


그런 충격감과 기대감을 갖고 받아본 책은 표지부터 은은하게 펄이 들어가서 세련되어 보였다. 베이지색에 꽃이 핀 듯 붉게 퍼진 수채화 때문일까 그 위에 쓰여진 '새하얀 눈 아이와 일곱 난쟁이의 이야기를 통해 동화 읽기의 참뜻을 만나다.'란 문구 때문일까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여왔다. 성급하게 책을 펼치면, 어디까지나 원문에 충실하고자 하는 목적 때문인지 한글 번역판, 독일어 원판, 영문판이 함께 나와서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독일어라면 눈뜬 장님인 내가 독일어를 읽을 수 있을리는 만무했지만, 그나마 익숙한 영어는 동화라 그런지 겹치는 표현도 많고 단어도 쉬워 색다르게 읽을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새하얀 눈 아이, 라는 지칭은 어쩐지 간질간질한 어감이라 백설공주라는 이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하늘에서 막 내려온 눈송이의 보송보송함이 그대로 살아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백설공주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백설기를 떠올리며 허기져해야 했던 내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면 새하얀 눈 아이라는 이름은 동화에 딱 어울린다. 백설공주가 가지는 반짝반짝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순수함을 간직한 느낌이 물씬 나니 말이다. 이름을 바꾼 것 만으로 전체 이야기의 분위기가 달라지니 참 신기한 일이다.

 

새로 번역된 버전은 어떻게 보면 기존의 백설공주와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호칭들이 바뀐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랄까. 무심히 휙휙 책장을 넘기면, '어? 뭐가 다르다는 거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번역본 뒤에 그야말로 친전한 말투로 하나하나 집어주며 해석하는 이양호 선생님 뒤를 하나하나 집어가며 곰곰히 생각해가면 동화는 더이상 동화가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의미 하나하나가 깊은 지 모르겠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고 짧고 사랑스러웠던 동화 안에 세상이 담겨 있다니. 놀라고 또 놀랐다.

 

확실히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나온 곳의 문화를 한껏 빨아드린 꽃같다. 우리나라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아리송 한 것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예를 들자면 검은 흙. 우리 나라에서 흙, 이라 하면 황토, 짙어봐야 갈색을 떠올릴 거다. 검은 흙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도 분명 우리 나라의 상식 선에서 흙색은 황토색이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별나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소소한 차이가 눈에 보일 수록 어쩐지 웃음이 났다. 그런 차이점이 늘어날 수록 정말 다른 나라 이야기구나 싶기도 했고, 그걸 또 새롭게 알아가는 것 자체도 재미있었다. 이런게 어른을 위한 동화의 맛인가 싶기도 했고.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싶어 조금 불안해 지기도 했지만 어린 아이들만 본다고 치부되는 동화를 이런 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자체가 즐거운 것 아닌가 싶다.

 

잘 돌아왔어, 새하얀 눈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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