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목요조곡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온다 리쿠는 늘 이야기의 초입에 서서 독자가 준비할 겨를도 없이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어간다. 말하자면 천부적인 이야기꾼인 셈이다. 저 멀리, 깊숙한 곳에 이 세상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귓가에 속살거리는 듯한 문체다. 덕분에 나는 늘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속절없이 끌려들어가, 한 번 타면 내려올 수 없는 놀이기구를 탄 듯 정신없이 내달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이야기는 끝이 나있다. 단숨에 읽어내려 머리가 멍하고 이야기의 잔상이 눈 앞에 들러붙어 있는 몽롱한 느낌.

 

「목요조곡」도 그렇다. 책을 펼친 순간, 난 이미 그 집 앞에 서 있었고, 훅 하고 풍기는 잔잔하고 불온한 공기에 불안해할 새도 없이 주인공들을 따라 집 안에 들어가 주인공들을 관찰했다.

 

그건 그렇고, 온다 리쿠의 주인공 중에는 '여자'나 '여자아이'가 많다. 내가 온다 리쿠의 '모든' 작품을 읽어본 건 아니지만, 읽어본 책들을 주륵 열거해 보아도 대개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아무래도 작가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일까? '여자'가 가진 비밀스러움, 수다 속에 감춰진 의뭉스러움, 상냥하고 섬세한 손길 속의 무심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자들의 수다 속에서 미스터리가 새어나온다는 걸, 온다 리쿠는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 '타인의 가십'이라는 먹이만큼 여자의 본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타인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요리하는 것이 특기인 여자들만 모여 있지 않은가! (52)

 

게다가 이번 주인공들은 모두 '글쟁이'에 가깝다. 가깝다는 건, 주인공들 중 정식 직업이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말일 뿐, 객관적으로는 모두 '글 쓰는'일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데다 분석하고 재조립하는 데 능한 여자들이다. 오싹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걸리면 뼛속까지 낱낱이 밝혀져 도마 위에 오를 것 같다 - 라고 해도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글 쓰는 직업과는 상관없이 그런 능력이 자체 내장되어 있겠지만.

 

-망상, 좋지! 우린 그것으로 벌어먹고 사니까. 누구나 자기의 망상 속에서 살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생판 모르는 남을 자기의 망상 속으로 끌어들일까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잖아. 자의식 과잉이네, 남의 흠을 들춰내는 나쁜 놈이네,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어. (120)

 

목요일을 좋아했던 한 여류 소설가의 죽음 이후, 그 장소에 있었던 다섯 사람은 매년 3일간은 고인을 기리며 고인의 집에 머문다. 천재라고 여겨졌던 여류 소설가는 죽은 후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유령이 되어 배회하는 듯 하다. 다섯 사람 모두 글쓰는 일에 관련이 있고, 그 중 셋은 친척인지라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져가고 이리저리 튀어나간다. 올해로 4년째 이어져온 이 '모임'에 불온한 공기가 감돌고 급기야는 감춰두었던 사실이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한다.

 

-천재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과혹한 존재야. 천재는 범인(凡人)을 몰아내버리지. 노력하는 사람을, 그런지도 모르고 짓밟아버리는 경향이 있어. (122)

 

책의 마지막을 읽어가며 든 생각은, 온다 리쿠는 어떤 생각으로 이 '작가'들을 써내려 갔을까- 하는 거였다. 소설가로서 다른 소설가, 그것도 각자 성격이 생판 다른 소설가를 그려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사실 그렇다. 글을 쓴다는 건 소설 속 에리코의 말처럼, 내 알몸을 생판 남에게 보여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라는 자아 없이는 나올 수 없으니까. 나는 늘 예술가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물론 내게 없는 재능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예술이라는 건 결국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의 연속이니까. 제 살을 깎아 보여주는 일같이 느껴졌다. 게다가 노력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부적이고 절대적인 재능 앞에 가장 무력함을 느끼는 건 오히려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아닌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봐도 명백하다. 결국 예술가들은 안쪽으로 자신을 깍아내려가면서 바깥쪽에서는 세상과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 다섯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술을 좋아하고 잘 떠들고 좌절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예술가적인 불씨가 가슴 속에서 타고 있어서 확고한 자의식으로 그걸 지키고 있는듯 했다. 글을 쓰고 싶다 - 나를 보여주고 싶다 - 는 열망이 평범함 속에 녹아들어 있는 사람들. 문득 이 여자들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소설이란 밀실에서의 개인 작업으로 태어나고, 완성품만이 사람들 눈앞에 드러나는 상품이다. 누구나 소설가의 내막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틀림없이 뒤에는 은밀한 뭔가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하다고 독자는 믿고 있다. (263)

 

가장 무서운 것은, 결국 모든 걸 다 털어놓고 모든 진실, 하나의 확고한 진실이 밝혀졌다고 생각해 안심을 해도 결국 각자의 마음 속에는 감춰진 진실, 아무도 모를 진심이 숨어있다는 점이다. 내가 옛날부터 보아온 추리소설은, 마지막에는 모든 진실이 밝혀져 범인이 밝혀지고 동기가 샅샅이 파헤쳐 지는 것이었다. 덕분에 책을 덮으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모든 세계가 책장 속에서 종결되고, 나를 옭아매지 않는다-는 그런 종류의 상쾌함이었다. 단순하리만큼 명쾌하고 심지어는 호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온다 리쿠의 소설은 하나의 사건이 '모두' 완벽하게 종결되는 건 있을 수 없다며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슬쩍 엿보이며 끝을 맺는다. 너무나도 '현실'다워서 까딱하면 우울해질 뻔 했다. 그렇다. 누군가가 죽어도 그 죽음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종결짓지는 않는 법이고, 책을 덮어도 이야기의 파편은 내 어딘가에 묻어 나오는 법이다.

 

-목요일이 좋아. 어른의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까. 정성 들여 만든 과자 향기가 나니까. 따뜻한 색상의 스톨을 두르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면서 말없이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듯한 안도감이 느껴지니까. 목요일이 좋아. 주말에 대한 기대에 찬 예감을 마음 깊이 숨겨두고 있으니까. 그때까지 일어났던 일도, 앞으로 일어날 일도, 죄다 알고 있는 것만 같으니까 좋아....... (143)

`타인의 가십`이라는 먹이만큼 여자의 본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타인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요리하는 것이 특기인 여자들만 모여 있지 않은가! (52)

망상, 좋지! 우린 그것으로 벌어먹고 사니까. 누구나 자기의 망상 속에서 살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생판 모르는 남을 자기의 망상 속으로 끌어들일까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잖아. 자의식 과잉이네, 남의 흠을 들춰내는 나쁜 놈이네,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어. (120)

천재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과혹한 존재야. 천재는 범인(凡人)을 몰아내버리지. 노력하는 사람을, 그런지도 모르고 짓밟아버리는 경향이 있어. (122)

소설이란 밀실에서의 개인 작업으로 태어나고, 완성품만이 사람들 눈앞에 드러나는 상품이다. 누구나 소설가의 내막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틀림없이 뒤에는 은밀한 뭔가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하다고 독자는 믿고 있다. (263)

목요일이 좋아. 어른의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까. 정성 들여 만든 과자 향기가 나니까. 따뜻한 색상의 스톨을 두르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면서 말없이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듯한 안도감이 느껴지니까. 목요일이 좋아. 주말에 대한 기대에 찬 예감을 마음 깊이 숨겨두고 있으니까. 그때까지 일어났던 일도, 앞으로 일어날 일도, 죄다 알고 있는 것만 같으니까 좋아....... (1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크로폴리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6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읽는 온다 리쿠의 소설이다. 사실 내가 온다 리쿠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온다 리쿠가 주로 쓰는 미스터리/추리소설계 소설들이 아니라 <초콜릿 코스모스>다. 연극이라는 소재에 눈이 번쩍 뜨일만큼 재능있는 아이가 거듭 오디션을 보는 자체가 너무 좋은데다 온다 리쿠만의 흡인력 있는 문체덕에 내가 오디션을 구경하는 것마냥 신이 나서 읽었다. 게다가 미스터리계 소설에 비해 접하기 쉬운 소재기도 하고.

 

온다 리쿠의 미스터리 소설은 인간 세계과 저 너머의 세계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느낌이 든다. 이렇다 할 정의는 못 내리겠지만 굳이 이름붙인다면 인간이 닿지 못하는 신의 세계랄까. 그래서 책을 다 읽고나면 극심히 피곤해지거나 허탈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무 몰입해서 봐서 지친 눈을 가만히 눌러줘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 『네크로폴리스』도 마찬가지로, 다 읽고 책을 덮고나니 탈력감이 밀려들었다. 이번 같은 경우는 허탈감이 함께 들었다.

 

 

『네크로폴리스』는 초반부에는 영 적응하기 힘든 소설이다. '어나더 힐'이 어딘지, 무엇인지, 그 기묘한 분위기는 무엇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도 없거니와 일본어와 영어의 오컬트계 단어가 자꾸 튀어나와 안 그래도 어지러운 머리에 새로운 물음표를 추가한다. 밑에 주석이 달려있거나 읽는 도중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서도 책을 술술 읽어내려가는데에는 역시 방해다. 덕분에 한동안 스토리보다 배경을 이해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준이야 어안이 벙벙해도 기본적인 기초지식은 있을테지만, 막 책을 펼친 나는 그 기초지식도 간절했다. 보통 판타지소설을 보면 중간에 그 배경세계를 설명하는 길고 긴 설명글이 들어가있다. 읽는게 귀찮아서 늘 대충대충 넘겼던 부분인데 『네크로폴리스』를 읽을 때는 그 길고 지루해보이는 설명글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네크로폴리스』는 죽은 자가 '손님'으로 찾아오는 어나더 힐의 이야기다. 이번에 어나더 힐을 처음으로 찾아간 준과 '손님'들, 그리고 살인사건과 변화된 어나더 힐의 퍼즐조각이 조각조각 맞물려있다. 충격적인 '살인사건' 혹은 '살인범'의 흔적을 곳곳에 던져놓았지만 그 흔적을 죽 따라가다보면 뭔가 속고있는 느낌이 든다. 아- 그렇다고 안 따라갈 수도 없고. 뭐니뭐니해도 그 살인범이 '피투성이 잭'이라고 불리는데다 (무려 Jack the Ripper의 재림) 어나더 힐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니까 작은 힌트라도 나오면 어나더 힐 사람들처럼 달려들어 여러모로 궁리를 해본다. 그 와중에 우리의 준은 '손님'과 만나고 환상을 보고 신기한 체험을 하는 등 개인이 줄 수 있는 모든 힌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읽는 나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지만 그동안 준은 신경쇠약에 안 걸린 게 이상할 정도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이 정도로 몸을 던져 힌트를 날려주는 주인공도 흔치 않다. 물론 그 힌트들이 전부 조각나 맞춰볼 수는 없지만서도.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소설의 키워드는 죽음과 전통의 소멸이 아닐까 싶다. 죽은 사람이 태연히 걸어다니는 세계, 어나더 힐에서 준은 약간의 지식만 앞설 뿐, 읽고있는 나와 마찬가지로 그 이질적인 세계에 하나하나 놀라고 동요한다. 불쌍하게도 아무런 설명없이 이상한 세계에 입산하게 되어서는. 연구자라고 바깥의 상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재려해도 통용되지 않고. 그 필사적인 '객관적 사고'는 그보다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 입장에서는 가여울 정도다. 하지만 그 개관성, 제 3자의 치우치지 않은 감각 덕분에 '지금'의 어나더 힐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준이 없었다면 그저 아, 이상한 세계다- 했을텐데 여러가지 일이 뒤죽박죽 일어나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할 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황해 하는 준이 우리보다 앞서 있었기에 준의 시각을 빌려서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물론, 마지막에 기막힌 (머리 속) 정보력을 모든 것을 이해한 듯 보이는 준과 달리 나는 책을 덮고도 수많은 외국의 신화 속 단어와 정체들에 머리가 아팠다. 자기 전에 읽은 책으로는 상당히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밤새도록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꿈을 꿨으니까. 리뷰를 쓰는 지금도 어나더 힐에 대해서 의혹이 사라진 것은 아니나, 나름의 평화를 되찾은 엔딩을 생각하며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이렇게 묻어두면 나도 언젠가 준처럼 갑자기 광명이 찾아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난 그쪽이 이상하더라. 눈에 안 보이는 건 안 믿는다는 사람도 말은 믿잖아. 말도 눈에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게 나한테는 오히려 기적 같던데. (39)

 

-사회가 다수파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그는 실감했다. 선악과 도덕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다수파 대중이다. 그는 자신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했다. (59)

 
-죽음이 잔혹한 것은 불시에 찾아와 작별인사를 할 기회도 없이 모든 것이 단절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마지막으로 한두 마디 주고받을 수 있었다면, 제대로 인사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유족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그러니 이렇게 제대로 인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자기는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면.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나갈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2 - 111)


> 내가 읽는 동안 궁금했던 단어들... 스토리와 전혀 상관없는 단어도 많습니다.

*히간(彼岸)

일본에서 1년에 두 번 있는 행사를 말하며 각각 춘분과 추분의 전후 3일씩 약 일주일을 말한다고 합니다. 정중하게 お를 붙여서 오히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성묘를 하러가는 기간이라고 해요.

히간은 불교 용어로 죽은 자가 건너는 강 저쪽을 의미하고 생사의 바다를 건너 도달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뜻한다고도 하네요. 한자로 읽으면 피안으로 저 피, 언덕 안으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한자로 잘라놓으니 책 속의 배경인 어나더 힐(another hill)과 의미가 통하네요.

 

*헌잔(獻殘)구이

정확한 일본단어나 풍습은 못 찾았지만 비슷한(즉 용도가 비슷한) 풍습은 몇 개 보이네요. 헌잔이라는 한자는 바치고 남은 것이란 뜻인 듯 합니다. (한자는 바칠 헌에 잔인한 잔인데 왜 그런 뜻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일본어 어렵네요!)

일본에서는 신에게 바친 음식과 술을 제사(혹은 행사) 이후 나눠먹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각각 다른 풍습에서 약간씩 세부적인 의미는 다르지만, 신에게 바친 음식/술을 먹고 마셔서 더럽고 부정한 것을 제거하고 신의 신비한 힘을 얻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공통적입니다.

이런 풍습으로는 일본식 떡국인 오조니(お雜煮), 설날에 마시는 술인 도소주(屠蘇酒)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보니 비슷한 풍습이 있네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굿이 끝나면 신에게 바쳤던 음식과 술을 나눠먹는 음복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속담이 나왔나봐요? ㅎㅎ

 

*도리이(鳥居)

일본 신사 입구에서 자주 보이는 전통 문의 일종으로 불경한 곳과 신성한 곳(신사)을 구분짓는 경계라고 합니다. <네크로폴리스>에서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죠~ 인터넷을 뒤져보니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새를 신의 사신이라고 믿어서 새가 쉬어갈 장소를 신사 앞에 마련해 놓은 거라고도 한다네요. 좀 더 많은 정보는 이쪽 -> http://ko.wikipedia.org/wiki/%EB%8F%84%EB%A6%AC%EC%9D%B4

 

*이나리(稲荷,오이나리) 사당

이나리는 일본의 비옥과 쌀, 농업, 여우, 공업과 세계적인 성공의 신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대장장이와 사무라이를 비호하는 신이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오곡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크로폴리스>에서 이나리 사당에 유부를 바친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건 오곡신의 사자인 여우가 유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마모노마에/타마모노마에(玉藻前)

일본 신화의 전설적인 인물로 고노에 천황 시대의 게이샤로 가장 아름답고 지적인 여자로 언급된다고 합니다. 그 정체는 꼬리가 9개 달린 황금빛의 여우로(쉽게 말하면 구미호겠죠...) 천황을 유혹하고 건강을 해쳐 나라를 어지럽히려고 했지만 음양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죽은 후 돌이 되어 독기를 내뿜는 살생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 실제로 살생석을 봉한 사당이 있다고 하네요.

 

*구가타치(探湯)

일본 고대 재판 판정 방법 중 한가지라고 합니다. 시비/정사를 가리기 어려운 때에 신에게 맹세하고 끓는 물에 손을 넣게 하면 죄 없는 이는 손을 데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하네요. 서양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는데,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팩과 오드리 헵번이 장난치던 '진실의 입'이 유명하죠. 거짓말한 사람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고 합니다. <네크로폴리스>의 갓치는 서양의 진실의 입에 좀 더 가깝네요... 잔인하다는 점에서.

 

*헨리 제임스

이 인명은 마음에 걸렸다기 보다... 재미삼아서 찾아봤는데 있네요... 전 아직 멀었나봐요, 실존하는 작가일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반성합니다...

<네크로폴리스>에서 어나더 힐에 대한 수기인 '언덕의 품에'의 작가는 해리 E. 제임스지만 마리코는 그건 가명이고 헨리 제임스가 쓴거라고 추측하죠. 헨리 제임스는 미국의 소설가 겸 비평가로(나중에 영국으로 귀화했지만 태생은 미국인이니까요), 대표작으로는 <나사의 회전>, <데이지 밀러>, <어느 부인의 초상> 등이 있습니다.

 

*바구니 코, 바구니 코(가고메 가고메)

일본의 전통 놀이로 술래를 뽑아 술래 주위를 돌며 노래를 부른 후 노래가 멈추었을 때 술래가 바로 뒤에 있는 사람을 맞추는 놀이라고 합니다. 이 노래 자체가 해석이 분분해서 그런지 민속학/일본 신화/일본 전통 설화 등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네요~ 실제로 해보지 못하고 그런 작품들로 접한 덕분에 이 놀이 자체가 무서워 보여요...

 

*헌드레드 테일스/햐쿠모노가타리(百物語)

이건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괴담이네요. 전 옛날에 만화책으로 접했던 이야기인데 이런 류의 이야기는 어린애들 사이에 빠르게 번져나가서 아마 아시는 분들이 꽤 많을 듯 합니다.

촛불을 100개 켜놓고 괴담 하나를 마치고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면 100번째 괴담이 끝난 후(즉 100번째 촛불이 꺼진 후) 청행등이라는 요괴가 나타난 괴이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요. 일설에 따르면 요괴가 아니라 그 후에 일어나는 괴이한 일을 총칭해 청행등이라고 한다고 하네요. 아무튼 괴담을 100가지나 말하는 것 자체가 으시시 합니다...

 

*자시키와라시(座敷童子)

일본판 정령입니다. 다다미 방 혹은 창고에 사는 신으로 그 집 사람들에게 행복/돈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보통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장난을 좋아하고 어린아이에게는 보이지만 어른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하네요. 본 사람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말도 있습니다. 서양의 브라우니 요정이 생각나는 신이네요.

 

*삼족오(三足烏)

<네크로폴리스>에서는 한없이 불길하게 나오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원래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에 산다고 여겨졌던 전설의 새로, 3개의 다리가 달려있는 까마귀입니다. 태양의 사신이며 3이 양수(陽數)이기 때문에 발이 3개라고 합니다. 책을 다 보신 분들에게는 어라? 할만한 정보로는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아폴론의 까마귀는 원래 흰 색이었지만 아폴론의 노여움을 사서 까맣게 되었다고 합니다.

 

*크레타인의 패러독스

고대 크레타에서 에피메니데스라는 사람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에피메니데스 역시 크레타인이었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에피메니데스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럼 저 발언 역시 거짓말이 되고... 라는 식으로 매우 머리가 아파지는 일화입니다. 패러독스는 역설을 뜻하며 <네크로폴리스>안에서는 간단히 말해서 '거짓말'과 '진실'은 각자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뜻 같아요. 거짓말 탐지기와 같은 원리일까요. (거짓말 탐지기는 '거짓말'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거짓을 말할 때 일어나는 생체 반응을 잡아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두 푸딩 살인사건 한나 스웬슨 시리즈 12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리즈는 리뷰하기가 어려워서 되도록이면 안 하려고 했는데, 이 시리즈는 어차피 한 권당 한 사건인데다 진전도 거의(!) 없는 편이라 뭉뚱그려 리뷰하기도 편할 것 같고...나름 즐겨읽는 책이라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김에 리뷰를 해보기로 했다.

조앤 플루크의 살인사건 시리즈는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와 추리를 적절하게 섞어놓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한나는 (자칭) 보기싫은 붉은 머리에 통통하며 늘상 (자신보다 외부 압력에 의한)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소박한 베이커리 주인이다. 명실상부 미네소타주 최고의 베이커리 '쿠키단지'의 주인인 한나는 한 권, 한 권 읽기만해도 먹고싶어지는 다양한 빵/푸딩/케이크/과자를 구워댄다. 아, 저절로 씁쓸해지는 말투여... 이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유혹에 약한 나는 동네 빵집으로 달려가 빵을 입에 물고 돌아오곤 한다. 한나는 자기 다이어트는 물론 내 다이어트마저도 위협하고 있다...

입맛도는 한나의 레시피는 책의 중간중간에 실려있으나 라면물도 잘 못 맞추는 나는 레시피가 나오면 책장을 넘기기 바쁘다. 덕분에 한나의 레시피들이 실제로 무슨 맛인지는 상상에만 맡기고 있다.

이 베이커리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레시피도 살인사건도 아닌 '시리즈'라는 특징에 맡게 한나 주위의 사람들이 점점 등장하고 친근해진다는 점이다. 첫 권만해도 한나와 여동생 안드레아만 눈에 들어왔는데 <자두 푸딩 살인사건>에 이르러서는 고정적인 캐릭터만 해도 주인공 한나 외 9명에다가 그간의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이웃주민도 여러명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원작으로 미드 하나 나와도 재밌을 것 같다... 문제는 그 때마다 빵(혹은 과자 혹은 케이크 혹은 푸딩 등등)이 먹고 싶을 가능성이 98%라는 거.

사실 베이커리 살인사건 시리즈는 추리소설이라기엔 너무 전개가 뻔하고(한나는 매번 마지막에 죽을 위기를 맞고 늘 파트타임 남자친구가 구해준다) 로맨스라기엔 너무 진도가 느리다. 어느 한 쪽이다, 라고 말하기엔 어렵지만 두 분야에서 각각의 재미를 주니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슈크림 살인사건과 자두 푸딩 살인사건을 연달아 읽고나니 '연애'와 '추리' 사이에서 '연애'부분 진도가 너무, 진짜로 너무 느리다!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나는 그 머리카락색과 체형에도 상관없이 인성으로 두 남자를 매료시킨 잘나가는 여자()다. 한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기 때문에 진짜 다른 사람들이 한나를 어떻게 보는지 객관적으로 알 길은 없지만, 한나는 연거푸 자신의 머리카락(붉은색)과 체형에 대해 불만족감을 나타낸다. 어느 여자고 컴플렉스는 있는 법이고 당연한 일이라도..., 남들이 봐도 잘나가는 남자를, 그 작은 마을에서, 둘이나 반하게 해놓고 무슨 불평이야! 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이게 바로 잘 안 나가는(?) 여자의 화풀이일까...

한나의 파트타임 남자친구는 두 명, 한 명은 잘생기고 섹시한 경찰이고 한 명은 편안하고 배려심많은 치과의사다. 물론 시리즈 중간중간 한나에게 호감을 표하는 남자가 나왔다가 사라지곤 하지만 주가 되는 연애라인은 이 삼각관계다. 최근에는 한나를 둘러싼 두 남자가 친구가 되는 바람에 더욱 더 미묘한 관계가 되었다. (자두 푸딩 살인사건에서 보면 두 남자가 한나에게는 존댓말을 하면서 서로에게는 반말을 하는 게 보여서 둘이 참 친해졌구나- 싶었다.) 게다가 자두 푸딩 살인사건에서 시리즈 최초로 다음 권을 예고하는 듯한 엔딩으로 한나의 전 남자친구가 등장했다. 점점 추리보다 로맨스가 흥미진진해지는 듯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내가 이번에 시리즈 두 권을 연달아 보고 짜증이 난 점은... 그 두 남자의 캐릭터 차이다. 책 두 권을 후닥 읽어내려간 뒤 엄마에게 달려가 '이 남자는 이렇고 저 남자는 이런데, 이 여자는 저 남자를 선택하지 않고 둘 사이에서 방황해!! 이상해!!'라고 울부짖었다. 실생활 연애와는 거리가 멀어서 그런건지 낭만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인 성격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한나의 파트타임 남자친구(1)인 마이크는 알고지내기엔 좋지만 남자친구/남편하기엔 짜증나는 남자 스타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잘생기고 섹쉬(시가 아니라 쉬)한 마이크는 걸핏하면 (여자 입장에서 봤을 때) 머리 비고 몸매 좋고 성격나쁜 여자들과 염문이 돌고, 경찰인 탓인지 한나를 종종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곤 한다. 시리즈를 읽으면서 난 마이크가 미칠듯이 잘생기고 섹시하고 신들린듯한 키스 테크닉을 가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여자가 그렇게 붙어있을리가 없으니까.

내 울부짖음에 엄마는 심드렁하게 TV 드라마를 보며 말했다. "여자는 나쁜 남자한테 끌리게 되있어." 그렇다, 마이크는 나쁜 남자의 집합체(잘생기고 섹시하지만 여자보다는 자기에게 중점을 두는 남자)고 노먼은 착한 남자의 집합체(편안하고 여자를 항상 배려하는데다 사소한 일까지 신경써주는 남자)다.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는 개인 취향일테니, 어떤 독자는 마이크를, 어떤 독자는 노먼을 응원하겠지.

하지만  이 미묘한 관계에 변화가 좀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삼각관계로 간볼 시기도 이미 지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나의 전 남자친구이자 인생의 전환점인 남자가 등장했으니 무슨 일이 터져도 크게 터질 듯 하다. (혹시 다음 권엔 그 남자친구가 죽는걸까?!)

리뷰를 한다고 해놓고 어째 한 사람의 흉만 실컷 본 것같은 느낌이 든다 - 지만 올라가서 그 구절을 모조리 지울 생각은 들지 않는게... 내 취향은 너무 확고하다... .
로맨스도 추리도 적절히 즐길 수 있는데다 요리를 하시는 분들이면 레시피까지 겟할 수 있는 다양한 매력이 있는 베이커리 살인사건 시리즈. 여타 추리소설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나 로맨스와 추리소설 두 분야를 다 좋아하시는 분들은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레오파트라의 꿈 - 간바라 메구미의 두 번째 모험 간바라 메구미 (노블마인) 2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에 클레오파트라, 라고 들어가 있어서 뭔가 했다. 내가 아는 '그' 클레오파트라? 로마의 영웅 두 사람을 함락(?)시키고 독사로 자살한 '그' 악명(?)높은 클레오파트라? 하고.

하지만 정작 그 역사적 이름이 갖는 무게에 비해 이름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다만 누군가를 가감없이 끌어들어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데에는 같은 운명을 갖고 있었던 듯 싶지만.

 

간바라 메구미, 라는 주인공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약간 헷갈렸다. 남자? 여자? 메구미라고 하면 여자 이름처럼 보이지만 분명 지문에는 '그'라고 되어있고....그래서 남자인가 했더니 말투는 여자 말투고.... 하지만 확실히 그는 매력있었다. 친구삼고 싶고 마주 앉아서 수다 떨고 싶은 매력이.

근데 스스로 머리가 잘 돌아가고 기억력이 끝내준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여러가지 추리가 다 틀린다.... 그냥 기억력만 좋은가봐........하고 멍하니 생각해도 그 기억력만큼은 확실히 부럽다. 컴퓨터에서 사진을 불러와 확대해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일까... !

 

쌍둥이라는 존재는 어렸을 적부터 부러운 존재였지만, 커서 보니 쌍둥이라고 해도 가깝지 않으면 나이 차이나는 형제자매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부러워했던 것도 학교 가기 싫을 때나 뭔가 하기 싫을 때 쌍둥이가 나대신 해주지 않을까- 하는 얄팍함이 깔려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허무맹랑한 생각이다. 내가 하기 싫은 건 남도 하기 싫어할 것일뿐더러 나대신 쌍둥이가 학교에 가면 그 쌍둥이 대신 학교 갈 사람은 당연 내가 되는 거겠지...

 

온다 리쿠는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는가 보다. 어느 작품에나 조금씩은 '여행'의 설레임, 불안함이 배어있다. 메구미만 해도 동생이 사는 도시라고는 해도 처음 와보는 도시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생각에 잠기기 일쑤고. 온다 리쿠의 작품을 읽다보면 나도 한 걸음 한 걸음 모르는 동네를 하릴없이 걸어다니는 듯한, 공중에 붕 떠있는 여행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뭐랄까. 걷는 속도가 생생하다고나 할까. 걷는 시간에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걸 차분하게 풀어놓고 있는. 새로운 풍경에 설레기도 하고 익숙치 않아 불안하기도 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모험인 것 같은 여행의 마력이.

 
온다 리쿠의 책이 으스스한 것은 어떤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진심'때문인 것 같다. 대부분 읽고 나서 오싹해지는 책이 많지만 되집어보면 사실상 그렇게 큰 사건이 있다든가 잔인하다든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무섭다.
이번 작품에서 살짝 무서웠던 건 죽은 박사의 인상이 말하는 사람에 따라 바뀌는 것, 이었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봐도 잘 모르는 판에 듣는 것 만으로는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알고는 있었지만 살짝 엿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과연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뇌리에 어떻게 남아있을까.

 

찾아보니 메구미가 등장하는 전작이 있다고 한다. 룰루랄라. 책이 다음책(이번 경우에는 전책(?)이지만)으로 이어지는 것만큼 가슴 설레는 일도 없다. 즐겁다.

 

클레오파트라의 꿈. 클레오파트라에 혹했지만 정작 비중은 꿈이라는 단어에 있었다. 모든이를 매혹시키는 꿈에.

 

++++

사담. 냉동귤.... 맛있을까?

 

-연인의 휴대전화나 수첩을 몰래 훔쳐봐야 하는 사랑. 그건 상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37)

 

-암처럼 신변 정리와 작별 준비를 할 수 있는 죽음은 사고나 돌연사보다는 좋은 죽음에 속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황망하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충격은 그 순간부터 점점 심해진다고 한다. (46)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세계는 극적으로 변화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확실한 뭔가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곳까지는 무수히 많은 점으로 이어져 있고, 그 점 하나하나가 조금씩 변해간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137)

 

-적막한 어둠. 이렇게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마다 실은 내 몸은 어둠 속에 이대로 누워 있었고, 지금까지 나는 인생이나 현실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들었다. 호접몽이다. (213)

 

-그 정도로 빈약하고 위험한 외줄타기에 인류의 운명이 맡겨져 있는 게 우리 현실이라는 거야. (260)

 

-이 세상에는 그와 비슷한 위험 상황이 엄청나게 많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행운으로 지금까지 어찌어찌 지탱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에는 매일매일 누군가가 외줄타기를 하고 있어. (260)

 

-꿈은 꿈으로 족한 겁니다. (2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온다 리쿠의 데뷔작이라고 하는 <여섯 번째 사요코>. 난 책을 직접 발굴해 읽는 걸 좋아하는데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너무)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이 작가 괜찮다!' 싶으면 데뷔작부터 최신작까지 찾아 읽는다. 그래서 만약 내가 독서일기를 꼬박꼬박 쓰는 성격이었다면 같은 작가의 책이 연달아 쓰여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다 리쿠는 다르다.

 

왜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흡인력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다. 작품 속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 미스테리한 스토리, 여운이 남는 필체. 읽자마자 이 작가는 내 취향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랄까. 온다 리쿠는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작가가 아니었다. 앞서 말했던 장점이 마음을 술렁이게 하니까. 흔들흔들 마음이 흔들려 이대로 계속 이 사람의 세계를 엿보다가는 내 감정이 감당할 수 없게 흘러넘칠 것 같았다.

 

이 <여섯 번째 사요코> 역시 온다 리쿠의 작품답게 마음이 흔들흔들거렸다. 다만 역시 데뷔작이라 그런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여러가지 의문들이

감정 뒷편에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점이 좀 아쉽다. 처음에는 데뷔작이라는 걸 모르고 읽어서 '왜 이 작품은...?'하고 생각했지만 데뷔작이라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보통 온다 리쿠의 작품은 본질적인 질문을 남긴 채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본질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스토리나 장치 자체에 대한 의문이 남아서 다른 작품들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도대체 '사요코' 게임이 정확히 어떤 게임인지 파악이 되지 않아 의아해 했던 분이 분명 나말고 또 있을거라 믿는다....

 

'학교'는 이상한 장소다. 성인이 되기 전의 사람들이 모여서 부딪히고 감정을 낳고 적응하려 발버둥치고. 작고 명료해서 무서운 사회다.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의 학교는 풋풋한 로맨스가 피어나고 젊음의 혈기를 발산하며 생을 밝히는 곳이 아니다. 분명 그 학교도 다른 여느 학교처럼 그런 면도 있겠지만, <여섯 번째 사요코>의 학교는 '학교'라는 틀 안에서 꿈틀대는 하나하나 다른 학생들의 고민과 불안감이 불안한 괴담의 형식을 빌어 '나타난다.' 덕분에 그런 밝은 면보다 미스테리한 면이 두드러진다. 학교라는 곳은 좁기 때문에 학교와 집 뿐인 학생들의 인생에는 큰 의미를 준다. 학교는 학생들의 유일무이한 '세계'인 것이다. 살아가야만 하는 세계. 그런 좁은 세계, 학교 안에서의 소문은 모호한 괴담을 낳는다.

이제 막 '사회'에 입문하는 초등학교도, 어딘가 어중간한 중학교도 힘들지만 성인이 되기 직전의 고등학교는 특히 그 긴장감과 불안감이 더하다.

 

읽을 당시 감기에 헤롱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잘 연결이 되지 않았는데, 정리하자면 '사요코'라는 게임은 즉, 학교의 괴담전설 중 하나인 것 같다. 미술실의 초상화가 밤에 눈을 돌린다든가 하는 식의. 굳이 얘기하자면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지는, 학교의 '전설'이 아닐까. 아무도 뭐가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 정체도 모호하지만 학생들은 충실히 그 '전설'의 관객이, 주인공이 되길 마다하지 않는다.

 

이 '사요코'는 사회로 나가기 전 학생들이 겪는 '학교'라는 관문의 부스러기 같은 것이다. 사회로 나가기 전의 불안감. 불확실한 미래의 그림자. 뭔지도 모르면서 '올해도 무사히...'라고 안도하는.

 

온다 리쿠의 작품에서는 유난히 '완벽한 여자아이'가 자주 등장한다. 검고 긴 윤기나는 머리칼에 희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의 붉은 입술이 아름다운 모호한 분위기의 여자아이가. 그런 '쓰무라 사요코'는 완벽한 여자아이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외모를 지닌 덕에 그녀의 '불안감'은 외모에 휘말려 사라져 간다. 난 평생 겪어본 적 없지만 너무 예뻐서 생기는 문제도 분명 있는 것이다. 사요코. 전설 속에서 등장한 듯한 그림같은 미소녀가 뿜어내는 오묘한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런 '게임'이 있었다면 지루한 학교 생활에 뭔가 자극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굳이 얘기하자면 '마피아' 게임의 불길한 버전?

전교생이 모두 알고있지만 이야기 하지 않는 '비밀'이라니 체육대회보다 전교생을 더 잘 묶어주는 짜릿한 '비일상' 아닐까!

 

 

-학교란 얼마나 이상한 곳인가. 같은 또래의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모여들어 저 비좁은 사각 교실에 나란히 책상을 놓고 앉는다. 얼마나 신기하고 얼마나 유별난, 그리고 얼마나 굳게 닫힌 공간인가.
같은 학생이라도 대학생과는 사뭇 다른 게 고등학생이다. 그녀에게 대학생은 이미 어른이다. 그들은 이미 어엿한 사회의 일원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교생은 어정쩡한 경계 지점에서 자신들의 가장 허약한 부분으로 세상과 싸우고 있는 특수한 생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3년 동안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은 기묘한 느낌으로 허공에 붕 떠 있다. 그렇게 붕 떠 있는 불안을 비집고 뭔가가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23)

 

-전설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몇천 명, 아니 몇만 명의 학생이 스쳐간 이 낡은 학교에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 뭔가가......또는 이 공간 안에 겹겹이 배어 있는 에너지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스며 들어온다. (44)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모두가 그 생각을 하고 있다. 모두가 지금까지 감추고 입을 다물어왔던 뭔가가 폭로되려 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서 말하지 않는다. 터부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여기 천 명이 넘는 젊은이들, 곰팡내 나는 인습과는 인연이 없을 터인 그들이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근거는 대체 무엇일까. (149)

 

-고3이라는 특별한 시기에 고등학생으로서의 부속적인 요소를 모두 박탈당한 지금, 그들은 그저 '수험생'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가족들이 오죽이나 여러 모로 신경이 쓰이겠는가 싶은 마음도 있지만 본인들 입장에서 보면 입시 준비다, 공부다, 하며 부산을 떠는 동안 그 실감을 느끼지 못한 채로 겨울이 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갑자기 늘어난 여러 가지 모의고사들 사이에서 날짜를 헤아리고 일요일에는 모의고사를 보러 가는,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반복하는 동안 어느새 확고하게 '수험생' 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밀려 들어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면서도 계속 달리는 그들은 숨을 힘껏 들이마시고는 뱉어내지 못하는 상태로 매일을 소화하고 있었다. (190)

 

-학교라는 건 돌고 있는 팽이 같은 거야. 항상 똑같은 위치에서 똑바로 서서 빙글빙글 돌고 있지. 그리고 너희 학생들이 끈을 잡고 팽이를 열심히 탁, 탁, 내리쳐서 팽이가 속도를 잃고 쓰러지지 않도록 열심히 분발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 끝을 후배에게 전해주고 차례차례 다른 학생이 팽이를 돌리지. 팽이는 내내 똑같은 하나의 팽이지만 끈을 쥔 사람, 치는 사람이 자꾸 바뀌는 거야. (2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