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후르츠 바스켓 16
타카야 나츠키 지음, 정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리뷰를 쓰다보면 내 취향이 어떤지가 극명히 드러난다. 기록의 힘이란 굉장하다. 책을 그저 끌리는 대로 고르다보니 소설쪽에서는 추리소설, 환상소설, 성장소설이 선두를 달리고 만화쪽에서는 추리만화, 코믹만화, 잔잔한 만화가 선두를 달린다. 이제서야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독서 기록장을 왜 그렇게 열심히 쓰게했는지 알 것 같다. 책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외에도 내 취향을 알게 해주는 기능이 있어서 꼬마 독서가들에게는 중요한 관문이 될 테니까. 물론 이제와 깨달아봐도 독서 기록장 쓰기 싫어서 몸부림쳤던 나날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오늘은 읽은 만화책 중에서 잔잔함 카테고리의 <후르츠 바스켓>을 리뷰해 보려고 한다.
후르바(내가 멋대로 줄인 제목...후르츠 바스켓이라고 말하다보면 배가 고파져서...가 아니라 길어서.)는 나름 판타지틱한 설정이 포함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라는 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은 '띠'로 만났을 12간지를 바탕으로, 소마가라는 한 가문에 12간지의 동물의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 태어난다는 독특한 소재를 가진 후르바는 거기에 그 사람들이 이성과 접촉시 동물로 변한다는 매우 판타지적이고 매력적인 소재까지 갖춰 놓았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
후르바를 처음 읽을 때는 오, 신기하다, 라고 생각한 소재지만 생각만큼 재밌는 소재는 아니다. 만화의 내용이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겪고 있는 등장인물에게. 이성에게 안기면 동물로 변하기 때문에 제대로된 일상에서 살아갈 수 없고 폐쇄된 환경에서 '인연'에 묶여 다른 사람과 선을 긋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후르츠 바스켓'은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1권을 접한 건 오-래전이지만 완결을 본 건 최근의 일이다. 내용이 좋지 않았다거나 그림체가 형편없었다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지켜볼 수가 없어서. 몇 년이 지나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건 아니지만, 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야 다시 펼쳐볼 생각을 하다니 참 어린 것 치고는 진지했구나 싶다. 그것도 매우.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힘이 있다.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힘이.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링도 비슷한 이유로 주인공인 토오루를 밀어낸다. 상냥한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는 걸 보고싶지 않아서,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밀쳐내고 도망가고.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이 만화책을 묵혀둔 건 링과 '정확히' 같은 이유가 아니다. 비슷하다고 말하는 건 토오루가 착하기 때문에 밀어냈다는 의미다. 나는 '착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불행에 휘말려 가여워지는 게 싫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 아니고 그걸로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할 만큼 착하지도 않으니까. 링은 착한 사람이 괴로워하는 게 싫다, 고 말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착한 사람'이 아닐까. 착한 게 뭐 별건가? 내가 괴로워 남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사람도 많고, 남의 괴로움을 못 본척 지나가는 사람도 많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괴로운데도 남의 괴로움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착한 사람이 아닐까.
12간지가 중심인 만큼 기본적으로 등장인물이 많다. 12간지와 대응하는 12명의 사람들과 12간지에 들어갈 수 없었던 고양이 영혼을 지닌 사람, 신의 역할을 맡아야만 했던 사람, 그리고 그 중심에 주인공인 토오루.
내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토오루는 그야말로 '착하고 선량한 사람'의 표본이다. 상냥하고 남을 배려하는 게 배어있는 사람. 모두에게 친절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던져줄 수 있는 사람. 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착한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도대체 왜, 하고 묻고 결국엔 눈을 돌리고 만다. 링이 착한 사람을 위해 가슴아파 화를 냈다면 난 반대로 그 사람이 답답해 화를 낸다. 왜 좀 더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거야? 하고. 하지만, 그래,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후르바의 토오루가 했던 것처럼.
후르바에 나오는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평범하게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다. 힘겨운 현실을 마주하고 부딪히고 희망을 그러모아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남들에겐 평범해서 지루한 현실조차 그 사람들에겐 마냥 부러운 '꿈같은' 일일 정도로. 타고난 환경 때문에 계속해서 남과 다름을 깨달아야 하는 사람도, 현실을 부정하며 남을 미워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서 헤매는 사람도 토오루는 토오루답게 곁에 있어준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들 한다. 그 사회 속에서 상처받고 울어도 타인의 사랑을 원하는 외로운 존재라고. 힘들고 외로워 무너진 사람에게 자신을 사랑하라, 고 말해도 타인의 관심과 사랑없이는 힘든 일일 수도 있다는 걸 후르바를 통해 깨달았다. 사람마다 타입이 다를 수는 있지만, 타인의 사랑 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자아는 분명히 있다.
처음 토오루에게 화가 났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토오루를 한 번 만나고 싶어졌다. 머뭇머뭇 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눈을 휘고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때로는 힘내라든가 이렇게 하면 좋다든가 하는 말이 아니라 단순한 괜찮다는 말에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광 섞인 생각이 들어서.
현실은 당연히 힘들다. 어느 누구에게도 항상 행복한 인생은 없고,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불행이 있다고 하니까. 그럴 때는 나를 긍정해주고 위해주는 사람들을 찾아가보자, 우리. 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도록.
그럴 짬이 없다면, 쉬는 셈치고 후르츠 바스켓을 펼쳐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를 향한 상냥함은 아니라도 토오루를 만난다면 분명 마음이 조금 부드러워질테니까.
내 아픔을 전부 받아준 게 아냐. 거리도 전부 메꿔진 게 아냐. 하지만 중요한 건, 제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같이 있어주었다. 작은 일로 기뻐하고 좋아하고 행복한 듯 웃어주었다. 왜지? 좀더 자기 생각만 하면 좋은데 어째서야? 그런 건 자기만 손해잖아? 바보 같잖아.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 생각하는 건 헛수고야. 나그네는 그런 거 생각 안 해. 다른 사람에게 바보 같은 짓이어도 나한텐 그렇지 않은 것 뿐. (11권)
<이 세상>같은 건 잘 모른다. <나>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세상>같은 건 인식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텅 비었고 <나>의 존재도 텅 비었고 아무것도 없다. 왠지 나는 부품이 빠진 인형 같다. 인간이 되지 못하는 망가진 인형. 결함제품. 타인들은 언제나 지나쳐간다. 나도 지나쳐간다. 타인들이 투명한가? 내가 투명한가? 이 세상에 가담하지 않는 건 나? 난 필요한가요? 난 필요한 존재인가요? 난 이 세상에 필요한가요? (15권)
무언가를 얻거나 알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상처 입혀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무언가를 상처입히는 그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적어도 다정히 해주고 싶다. 보답해주고 싶다. 보답받고 싶다. 내게 보여준 미소보다 더 많이. (19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