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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츠 바스켓 16
타카야 나츠키 지음, 정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리뷰를 쓰다보면 내 취향이 어떤지가 극명히 드러난다. 기록의 힘이란 굉장하다. 책을 그저 끌리는 대로 고르다보니 소설쪽에서는 추리소설, 환상소설, 성장소설이 선두를 달리고 만화쪽에서는 추리만화, 코믹만화, 잔잔한 만화가 선두를 달린다. 이제서야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독서 기록장을 왜 그렇게 열심히 쓰게했는지 알 것 같다. 책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외에도 내 취향을 알게 해주는 기능이 있어서 꼬마 독서가들에게는 중요한 관문이 될 테니까. 물론 이제와 깨달아봐도 독서 기록장 쓰기 싫어서 몸부림쳤던 나날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오늘은 읽은 만화책 중에서 잔잔함 카테고리의 <후르츠 바스켓>을 리뷰해 보려고 한다.


후르바(내가 멋대로 줄인 제목...후르츠 바스켓이라고 말하다보면 배가 고파져서...가 아니라 길어서.)는 나름 판타지틱한 설정이 포함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라는 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은 '띠'로 만났을 12간지를 바탕으로, 소마가라는 한 가문에 12간지의 동물의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 태어난다는 독특한 소재를 가진 후르바는 거기에 그 사람들이 이성과 접촉시 동물로 변한다는 매우 판타지적이고 매력적인 소재까지 갖춰 놓았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

 

후르바를 처음 읽을 때는 오, 신기하다, 라고 생각한 소재지만 생각만큼 재밌는 소재는 아니다. 만화의 내용이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겪고 있는 등장인물에게. 이성에게 안기면 동물로 변하기 때문에 제대로된 일상에서 살아갈 수 없고 폐쇄된 환경에서 '인연'에 묶여 다른 사람과 선을 긋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후르츠 바스켓'은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1권을 접한 건 오-래전이지만 완결을 본 건 최근의 일이다. 내용이 좋지 않았다거나 그림체가 형편없었다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지켜볼 수가 없어서. 몇 년이 지나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건 아니지만, 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야 다시 펼쳐볼 생각을 하다니 참 어린 것 치고는 진지했구나 싶다. 그것도 매우.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힘이 있다.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힘이.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링도 비슷한 이유로 주인공인 토오루를 밀어낸다. 상냥한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는 걸 보고싶지 않아서,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밀쳐내고 도망가고.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이 만화책을 묵혀둔 건 링과 '정확히' 같은 이유가 아니다. 비슷하다고 말하는 건 토오루가 착하기 때문에 밀어냈다는 의미다. 나는 '착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불행에 휘말려 가여워지는 게 싫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 아니고 그걸로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할 만큼 착하지도 않으니까. 링은 착한 사람이 괴로워하는 게 싫다, 고 말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착한 사람'이 아닐까. 착한 게 뭐 별건가? 내가 괴로워 남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사람도 많고, 남의 괴로움을 못 본척 지나가는 사람도 많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괴로운데도 남의 괴로움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착한 사람이 아닐까.

 

 

12간지가 중심인 만큼 기본적으로 등장인물이 많다. 12간지와 대응하는 12명의 사람들과 12간지에 들어갈 수 없었던 고양이 영혼을 지닌 사람, 신의 역할을 맡아야만 했던 사람, 그리고 그 중심에 주인공인 토오루.

 

내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토오루는 그야말로 '착하고 선량한 사람'의 표본이다. 상냥하고 남을 배려하는 게 배어있는 사람. 모두에게 친절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던져줄 수 있는 사람. 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착한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도대체 왜, 하고 묻고 결국엔 눈을 돌리고 만다. 링이 착한 사람을 위해 가슴아파 화를 냈다면 난 반대로 그 사람이 답답해 화를 낸다. 왜 좀 더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거야? 하고. 하지만, 그래,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후르바의 토오루가 했던 것처럼.

 

후르바에 나오는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평범하게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다. 힘겨운 현실을 마주하고 부딪히고 희망을 그러모아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남들에겐 평범해서 지루한 현실조차 그 사람들에겐 마냥 부러운 '꿈같은' 일일 정도로. 타고난 환경 때문에 계속해서 남과 다름을 깨달아야 하는 사람도, 현실을 부정하며 남을 미워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서 헤매는 사람도 토오루는 토오루답게 곁에 있어준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들 한다. 그 사회 속에서 상처받고 울어도 타인의 사랑을 원하는 외로운 존재라고. 힘들고 외로워 무너진 사람에게 자신을 사랑하라, 고 말해도 타인의 관심과 사랑없이는 힘든 일일 수도 있다는 걸 후르바를 통해 깨달았다. 사람마다 타입이 다를 수는 있지만, 타인의 사랑 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자아는 분명히 있다.

 

처음 토오루에게 화가 났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토오루를 한 번 만나고 싶어졌다. 머뭇머뭇 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눈을 휘고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때로는 힘내라든가 이렇게 하면 좋다든가 하는 말이 아니라 단순한 괜찮다는 말에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광 섞인 생각이 들어서.

 

 

현실은 당연히 힘들다. 어느 누구에게도 항상 행복한 인생은 없고,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불행이 있다고 하니까. 그럴 때는 나를 긍정해주고 위해주는 사람들을 찾아가보자, 우리. 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도록.

 

그럴 짬이 없다면, 쉬는 셈치고 후르츠 바스켓을 펼쳐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를 향한 상냥함은 아니라도 토오루를 만난다면 분명 마음이 조금 부드러워질테니까.

내 아픔을 전부 받아준 게 아냐. 거리도 전부 메꿔진 게 아냐. 하지만 중요한 건, 제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같이 있어주었다.
작은 일로 기뻐하고 좋아하고 행복한 듯 웃어주었다. 왜지? 좀더 자기 생각만 하면 좋은데 어째서야? 그런 건 자기만 손해잖아? 바보 같잖아.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
생각하는 건 헛수고야. 나그네는 그런 거 생각 안 해. 다른 사람에게 바보 같은 짓이어도 나한텐 그렇지 않은 것 뿐. (11권)

<이 세상>같은 건 잘 모른다. <나>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세상>같은 건 인식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텅 비었고 <나>의 존재도 텅 비었고 아무것도 없다. 왠지 나는 부품이 빠진 인형 같다. 인간이 되지 못하는 망가진 인형. 결함제품. 타인들은 언제나 지나쳐간다. 나도 지나쳐간다. 타인들이 투명한가? 내가 투명한가? 이 세상에 가담하지 않는 건 나? 난 필요한가요? 난 필요한 존재인가요? 난 이 세상에 필요한가요? (15권)

무언가를 얻거나 알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상처 입혀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무언가를 상처입히는 그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적어도 다정히 해주고 싶다. 보답해주고 싶다. 보답받고 싶다. 내게 보여준 미소보다 더 많이. (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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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01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서평을 정성 있게 쓰시는 분을 처음 봤습니다. 제가 만화를 안 봐서 nia님의 생각을 공감하기가 어렵지만, 장르 불문하고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nia님의 자세가 좋습니다. ^^

nia 2016-05-01 22:43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장르를 떠나서 제가 좋아하는 성장물이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드문드문 기록을 남기는지라 칭찬을 받으니 부끄럽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그 남자! 그 여자! 1
츠다 마사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 동생이 만화책을 읽다가 뜬금없이 말했다.

 

"얘, 언니 닮았어."

 

으잉? 도대체 누군데? 하고 돌아보니 <그 남자! 그 여자!>의 유카링이었다. 동생에 대한 불신 + 내가 산 만화책의 90%가 유쾌하다는 사실 +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호빵맨에 버금가는 얼큰이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카링! 정말 닮았다면 어깨가 으쓱할만한 일이었다. 노력파에 머리도 좋지, 특히 돈에 대해서라면 탁월한 감각을 지녔으니까! (그렇다, 난 이 부분에서 동생이 말한 '닮았다'의 정체를 깨달았어야 했다...) 물론 집 안팎의 괴리는 살짝 웃기긴 하지만. 난 오랜만에 동생이 참 날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흐믓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와 내 동생의 관계는 그런 흐뭇한 관계가 아니었다...

 

"얘 내숭떠는 게."

 

그럼 그렇지. 난 내숭 떠는 게 아니라 낯을 가리는 거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동생은 들은 척도 않은체 다시 만화책에 코를 박았다. 일상적인 우리 자매의 (나만 슬픈) 대화였다.

 

<그 남자! 그 여자!>는 중고등학생분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만화책이다. 재미있고 '학교'를 다시 생각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유쾌하다. '학창시절'의 정체성이 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듯 하다.

 

남에게 칭찬을 받으면 희열을 느끼는 유키노는 고등학교에 올라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인생 최대의 라이벌을 만나게 된다. 바로 품행방정 성적우수 병원집 아들 아리마 소이치로! 성적도, 외모도, 심지어는 학교 내의 지위에서도 2위로 밀려나자 유키노는 아리마를 이기는데 총력을 기울이지만 곧 속까지도 우아한 아리마에 비해 자신은 겉만, 그것도 꽤나 심하게 노력해야 우아하다는 걸 자각하고 만다. 이런 자각은 아리마가 유키노에게 고백하고, 유키노의 본 모습을 깨닫고 나서도 이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사귀게 되었지만, 겉과 속이 (꽤) 다를 뿐 단순한 유키노에 비해 어두운 그늘이 (뿜어내는 우수의 향기가) 있는 아리마. 그리고 자꾸 자꾸 넓어지는 학교내의 세상.

 

-어쩐지 뒷내용은 급히 마무리 지은 듯 하지만 21권의 스토리를 하나하나 읊자니 앞으로 읽으실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 남자! 그 여자!>는 만화책도 재밌지만 애니판도 상당히 깔끔하고 그야말로 '시청하는' 재미가 있다. 만화책을 곧장 애니로 옮긴 듯한 효과를 보여주지만 확실히 '읽는' 것과는 다른 생생함이 있달까. 다만 만화책 완결 전에 24화로 완결이 난 탓에 21권의 전 내용을 담지는 못했다. 그래도 유키노와 아리마의 아기자기함이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난다.

 

내가 <그 남자! 그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게 '이상적인' 관계를 산뜻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남들과 벽을 쌓고 살아가던 유키노가 과거로 인해 자신을 걸어잠궈야 했던 아리마를 만나, 유키노는 자신의 허영벽을 부수고 '진짜 나'를 드러낼 수 있었고 '진짜' 친구를 만났다. 아리마는 자신의 과거를 포용하고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제는 서로 만나서 서로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 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남자! 그 여자!>의 모든 커플들은 훌륭한 롤모델이다. 자신만의 세계가 누군가를 만나 자신의 세계 너머로 펼쳐지고 미래가 되는 그림. 소위 'highschool sweetheart'(고등학교 시절의 연인) 커플이 그토록 많이 나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작품이지만, 다른 어떤 점보다 '학교'가 단순히 '공부하는 곳', '대학교를 위한 관문'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곳', '세계가 넓어지는 곳'으로 비춰진 것이 대단하다고 본다.

 

유키노와 아리마를 비롯, 다른 친구들도 다들 재능이 있기 때문에 보면서 뭐 하나 뛰어난 재능이 없는 나는 2차원의 캐릭터를 절실히 부러워하며 읽었다. 내 학창시절은 좋은 말로 하면 평온하고 바꿔 말하면 밋밋했기 때문에 집안 문제, 가치관 문제, 재능 문제 등으로 복잡하게 어우러져 결국은 아름답게 피어나는 <그 남자! 그 여자!>의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부러워할 에너지를 공부로 돌렸으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 들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남자! 그 여자!>는 복잡하고도 섬세한 고등학교 아이들의 성장기, 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재미있고 자신의 학교생활을 떠올리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 3 학생분들께 만화책을 권하면야 안 되겠지만^^ 공부에 대한 걱정을 잠시 떨치고 느긋하게 <그 남자! 그 여자!>를 읽으며 학창시절의 여유로움을 만끽해보면 어떨까.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날, 동생이 만화책을 읽다가 뜬금없이 말했다.

 

"얘, 언니 닮았어."

 

으잉? 도대체 누군데? 하고 돌아보니 <그 남자! 그 여자!>의 유카링이었다. 동생에 대한 불신 + 내가 산 만화책의 90%가 유쾌하다는 사실 +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호빵맨에 버금가는 얼큰이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카링! 정말 닮았다면 어깨가 으쓱할만한 일이었다. 노력파에 머리도 좋지, 특히 돈에 대해서라면 탁월한 감각을 지녔으니까! (그렇다, 난 이 부분에서 동생이 말한 '닮았다'의 정체를 깨달았어야 했다...) 물론 집 안팎의 괴리는 살짝 웃기긴 하지만. 난 오랜만에 동생이 참 날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흐믓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와 내 동생의 관계는 그런 흐뭇한 관계가 아니었다...

 

"얘 내숭떠는 게."

 

그럼 그렇지. 난 내숭 떠는 게 아니라 낯을 가리는 거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동생은 들은 척도 않은체 다시 만화책에 코를 박았다. 일상적인 우리 자매의 (나만 슬픈) 대화였다.

 

<그 남자! 그 여자!>는 중고등학생분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만화책이다. 재미있고 '학교'를 다시 생각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유쾌하다. '학창시절'의 정체성이 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듯 하다.

 

남에게 칭찬을 받으면 희열을 느끼는 유키노는 고등학교에 올라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인생 최대의 라이벌을 만나게 된다. 바로 품행방정 성적우수 병원집 아들 아리마 소이치로! 성적도, 외모도, 심지어는 학교 내의 지위에서도 2위로 밀려나자 유키노는 아리마를 이기는데 총력을 기울이지만 곧 속까지도 우아한 아리마에 비해 자신은 겉만, 그것도 꽤나 심하게 노력해야 우아하다는 걸 자각하고 만다. 이런 자각은 아리마가 유키노에게 고백하고, 유키노의 본 모습을 깨닫고 나서도 이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사귀게 되었지만, 겉과 속이 (꽤) 다를 뿐 단순한 유키노에 비해 어두운 그늘이 (뿜어내는 우수의 향기가) 있는 아리마. 그리고 자꾸 자꾸 넓어지는 학교내의 세상.

 

-어쩐지 뒷내용은 급히 마무리 지은 듯 하지만 21권의 스토리를 하나하나 읊자니 앞으로 읽으실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 남자! 그 여자!>는 만화책도 재밌지만 애니판도 상당히 깔끔하고 그야말로 '시청하는' 재미가 있다. 만화책을 곧장 애니로 옮긴 듯한 효과를 보여주지만 확실히 '읽는' 것과는 다른 생생함이 있달까. 다만 만화책 완결 전에 24화로 완결이 난 탓에 21권의 전 내용을 담지는 못했다. 그래도 유키노와 아리마의 아기자기함이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난다.

 

내가 <그 남자! 그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게 '이상적인' 관계를 산뜻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남들과 벽을 쌓고 살아가던 유키노가 과거로 인해 자신을 걸어잠궈야 했던 아리마를 만나, 유키노는 자신의 허영벽을 부수고 '진짜 나'를 드러낼 수 있었고 '진짜' 친구를 만났다. 아리마는 자신의 과거를 포용하고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제는 서로 만나서 서로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 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남자! 그 여자!>의 모든 커플들은 훌륭한 롤모델이다. 자신만의 세계가 누군가를 만나 자신의 세계 너머로 펼쳐지고 미래가 되는 그림. 소위 'highschool sweetheart'(고등학교 시절의 연인) 커플이 그토록 많이 나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작품이지만, 다른 어떤 점보다 '학교'가 단순히 '공부하는 곳', '대학교를 위한 관문'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곳', '세계가 넓어지는 곳'으로 비춰진 것이 대단하다고 본다.

 

유키노와 아리마를 비롯, 다른 친구들도 다들 재능이 있기 때문에 보면서 뭐 하나 뛰어난 재능이 없는 나는 2차원의 캐릭터를 절실히 부러워하며 읽었다. 내 학창시절은 좋은 말로 하면 평온하고 바꿔 말하면 밋밋했기 때문에 집안 문제, 가치관 문제, 재능 문제 등으로 복잡하게 어우러져 결국은 아름답게 피어나는 <그 남자! 그 여자!>의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부러워할 에너지를 공부로 돌렸으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 들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남자! 그 여자!>는 복잡하고도 섬세한 고등학교 아이들의 성장기, 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재미있고 자신의 학교생활을 떠올리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 3 학생분들께 만화책을 권하면야 안 되겠지만^^ 공부에 대한 걱정을 잠시 떨치고 느긋하게 <그 남자! 그 여자!>를 읽으며 학창시절의 여유로움을 만끽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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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사 10 - 완결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최근 절판의 위험을 감지하고 만화책들을 다시 모아보려고 한다. 물론 신간도 끌리지만 쌓여만 가는 책들과 자리가 부족한 책장을 고려해 예전에 사두었던 책들의 뒷권만 사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충사/는 어쩐지 '아..지금 사두지 않으면...' 하는 느낌이 아슬아슬하게 드는 책이었다. 뭐, 언젠가 애장판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이번에 큰 맘 먹고 9권을 한꺼번에(한 권은 이미 집에 있었기 때문에) 질러버렸다. 신기하게도 소설책과 만화책은 택배를 받고나서의 마음이 사뭇 다르다. 어느 책이나 설레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무래도 만화책이 더 '보기 쉽기' 때문일까 두근두근 신이 난다. 굳이 분석하자면 불쑥 튀어나오는 조급증 덕에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에 기뻐진 거지만.

 

/충사/가 도착하던 날은 아직 학기 중이었기 때문에 택배를 받아본 건 엄마였고 나는 저녁 무렵이 다 되서야 택배를 뜯어볼 수 있었다. 묵직한 택배 박스가 책으로 꽉 채워져 있다는 걸 느낄 때면 뜯기가 아까워진다. 선물을 풀러보기 전의 두근거림 같은게 사라질 것 같아서. 물론 난 내용물을 다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새 책이다! 싶은 마음에 상자를 열고 책들을 침대 위에 쏟아부었다. 어디서 봐도 재미는 덜하지 않겠지만 책은 자고로 편하게 봐야한다는 게 내 진리다. 추운 날은 침대 위에 작은 책상을 펴놓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읽는 게 딱 좋다. 거기에 아이스크림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게다가 '충사'는 어쩐지 침대가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충사/는 어딘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들려주던 전래동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할머니는 평범하게 혹부리 영감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조근조근 펼쳐지는 이야기, 라는 느낌이랄까. 아마 그건 중간중간 나오는 작가의 '할머니/할아버지가 겪은 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좀처럼 듣기 힘든 여우/도깨비에 홀렸다-하는 이야기들이 잔뜩 나와 보고있으면 어쩐지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불 속에서 턱을 괴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숨을 죽이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던 그 때의 기분에 취하려면 역시 진짜 이불 속이 좋겠지.

 

내가 만화를 고르는 기준은 대충 3가지로, 그림체와 스토리, 장르-정도로 나뉜다. 그림체, 라고 해도 딱 이거다! 싶은 그림체라기 보다 보기에 예쁘거나 귀엽거나 정감가는 스타일이 좋다. 스토리는 뭐랄까, 개연성이 너무 부족하다거나 너무 노골적인 '인터넷 소설' 류만 아니면 좋겠고... 장르는 탐정/추리 장르면 스토리와 그림체는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는 의미라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충사를 처음 고른 건 아무래도 '스토리' 쪽이었다. 당연히 탐정/추리 장르는 아니었고 (사실 제목만 보고는 세*코 이야기, 같은 장르인 줄 알았는데...) 그림체는 확실히 정감가는 스타일이었지만 그 당시 난 귀여운 스타일을 선호했기 때문에 볼까말까 상당히 망설였던 만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보게 된 건 사실 애니판 충사를 먼저 봤기 때문일까. 애니판 충사는 상당히 원작에 충실해서 재미삼아 보기 시작했는데 홀딱 반해 (아직 읽지 못한) 원작까지 사랑스러워지는 작품이었다.

 

/충사/는 옴니버스 식으로 이어져서 몇몇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이야기에서만 등장한다. 덕분에 몇 권을 집어들든 재미가 덜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주인공인 '깅코'는 늘 자유롭고 담담한 얼굴을 하고 떠돌아다니는 충사다. (이게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인 이유) 살가운 얼굴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 주제에 속정 많고 오지랖도 넓어서 가는 곳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만난다.

 

/충사/는 '판타지' 장르라고 생각한다. 굳이 겹쳐서 넣자면 '드라마' 쪽이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판타지가 아닐까. 엘프나 호빗같은 종족이 등장하지도 않고 마법이 사용되지도 않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충사/의 정확한 시대 배경은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일본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더 할 수도 있지만 작가도 딱히 시대에 연연하지는 않기 때문에 모른다고 해서 이야기의 재미가 덜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들 옛날 (일본) 옷을 입는데 깅코는 어째서인지 현대적인 옷을 걸치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아니 정말 왜일까...?)

 

 

어렸을 때, 눈을 감으면 눈 안에서 무언가 반짝 반짝 거렸다. 그 때는 그 작은 빛들이 꾸물꾸물 움직여서 아메바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낭만이 없는 아이였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엔 충분히 아메바 스러웠다.

 

/충사/에서는 그걸 '벌레'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파리같은 벌레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과 가까운 그런 존재라고. 1권에서 깅코는 "곤충이나 파충류와는 전혀 다른 '벌레'. 대강 설명하면 이래. 이 손의 이쪽 네 가닥이 동물이고 엄지가 식물을 가리킨다고 하자. 그럼 사람은 여기... 심장에서 가장 먼 중지의 끄트머리에 있는 셈이야. 손의 안쪽으로 갈수록 하등한 생물이 되어가지. 계속 따라가다 보면 손목 부근에서 혈관이 하나로 이어져. 여기 있는 것이 균류나 미생물이야. 이 부근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식물과 동물을 구분 짓기가 어려워지지. 하지만...아직 그 앞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어. 팔을 따라 올라가 어깨도 지나간다...아마도...이 부근(심장)에 있는 것들을...'벌레'...혹은 '초록'이라고 부른다. 생명 그 자체에 가까운 것들이지."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충사"란 그런 벌레를 연구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을 말한다. 깅코는 선천적으로 '벌레'가 꼬이는 체질이어서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어 이곳저곳을 떠돌며 해를 끼치는 벌레를 쫓아내거나 벌레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충사를 읽다보면 확실히 옛날에는 '자연'이라는 게 좀 더 생생하고 무섭고 친근한 어떤 것이었다는 걸 느낀다. 충사의 이야기에는 종종 벌레지만 자연현상과 비슷한 것이 나온다. 무지개를 닮은 벌레, 비를 닮은 벌레, 구름을 닮은 벌레... 거스를 수 없는 것, 두려운 것, 풍요로운 것, 이해할 수 없지만 고마운 것. 지금 같이 일기예보도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는 기술도, 복구할 수 있는 기술도 변변치 않았던 옛날에는 자연재해가 어떤 의미였을까. 그제서야 깅코가 말한 '생명 그 자체에 가까운 것들이지',라는 말을 조금 이해한다. 그런 벌레들은 살아있는 자연에서 파생된 것이니까.

 

지금은 설령 '벌레'가 있다해도 알아채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과연 그게 행일까 불행일까.

 

 

이윽고 다리의 통증은..., 마음의 통증까지 수반하게 되었다.
미비하고 하등한 생명에 대한 교만.
이형의 것들에 대한 이유 없는 공포가 야기한 살생.
그런 것들이 적지 않게 감지된 것이다. -2권 /문장의 바다/

 

네 안에 뻥 뚫린 커다란 공동을 꽁꽁 틀어막아.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돼버리기 전에... -4권 /빈 누에고치 따기/

 

땅 밑바닥은 차가우냐-.
답답하냐.
무서우냐.
괴로우냐.
맑은 물과... 무수한 별들이...
사는 곳. -9권 /호중천의 별/

 

어릴 적 가슴을 설레게 했던 방울소리가
몹시 애절하게 들려왔다.
마치 살을 에는 것처럼 아름답고 슬픈 소리였다. -10권 /방울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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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와 클로버 세트 1~10(완결)
우미노 치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책은 완결난 작품만 리뷰 써야겠다-하고 생각해서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방청소하다 고이 모셔진 허니와 클로버를 보니 다른 만화책은 몰라도 이 책만은 꼭 써야해, 라는 묘한 의무감이 느껴져서 또 청소하다말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오늘도 내 방은 더럽다...)

 

고등학교 시절 논스톱이 (헛된) 대학생활의 환상을 심어주었다면 허니와 클로버(난 줄여서 허니클이라고 부른다.)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거쳐 "미대"란 곳에 대한 환상을 심었다. 물론 나도 미대 역시 다른 여느 대학처럼 힘든 곳이라는 걸 알지만, 허니클을 읽다보면 절로 이런 대학교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정확히는 이런 대학생활을 하고 싶다, 겠지만.

 

허니클의 주요 무대는 미대로 몇 년간의(딱 4년간이 아닌;) 대학생활을 거쳐 각자 나름대로 성장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예술가에 대한 뜬 구름잡는 식의 선입견 때문에 어쩐지 정말 미대는 이렇게 자유분방하겠구나~ 싶어서 얼마간은 부럽고 얼마간은 구경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양의 과제와 실습에 치여 죽을 맛이라고 내 친구 모씨가 부르짖었다...)

 

허니클 캐릭터들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 각각의 개성이 매우! 뚜렷한 사람들이라 오히려 더 정을 주기 쉬울지도... 그 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모리다.

 

재능이 자유롭게 넘쳐 성격까지 침범해버린 것 같은 모리다는 간단히 말하자면 '재미있는' 사람이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물론 어디까지나 '보는' 입장에서. 실제 저런 사람이 있다면 하루하루가 독특하고 기억에 남을지는 몰라도 엄청 피곤할 테니까. (그 훌륭한 예시 : 모리다의 담당 교수님)

 

마음만 먹으면 남들이 깜짝 놀랄 작품을 만들고 관심이 갔다하면 사리사욕 가득한 (그러나 재미도 가득한) 홈페이지 만들어 매일 업데이트 하기도 마다하지 않는, 가끔은 후배들에게 '저주' 취급을 받는 사람. 재능, 만큼은 샘처럼 솟아오르는, 어딘가 어린애 같은 사람.

 

내가 모리다를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재능있고 자유롭기 때문이 아닐까. 그 재능과 자유로움으로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그 모습을 동경하기 때문일테고. 굳이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의 예를 들지 않아도 재능이 없어 괴로운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어느 면에고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어느 방면에는 천재인 사람도 다른 방면에는 어린애에 가까울 수 있다. 불행히도 보통에 보통인 나는 어느 면에고 뛰어나다기 보다는 평균가도를 달리지만, 모리다처럼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을 훌륭하게 꽃 피운 사람을 보며 즐거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미술 쪽에 재능이 없다는 걸 완벽하게 인정했기 때문이고 모리다라는 사람이 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분명, 다케모토는 모리다 옆에서 모짜르트 옆의 살리에르의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뭐, 다케모토 같은 경우에는 재능 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달콤쌉싸름한 요소도 들어갔지만서도. 따지고보면 허니클에서 가장 성장한 사람은 다케모토가 아닐까 한다. 재능이 넘치는 하구미나 모리다, 야마다에 비해 다케모토는 가장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재능 역시 특출난 편이 아니었다. 다만 사람에 대한 그 한없는 믿음과 포용력이 강점이라면 강점이랄까. 힘겨운 첫사랑을 졸업하고, (타칭) 자아찾기 여행에서 조금이나마 자신을 찾은 다케모토는 정신적으로 성숙해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허니클의 가장 큰 매력은 앙상블이 아닐까 싶다. 다재다능하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도 탈출할 모리다지만 다른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단순한 괴짜일 뿐이다.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재능이 너무 커 인생이 작아보이는 하구미는 사람들과 만나 자신의 약함을 마주보고 인생을 정했고, 그야말로 평범함의 결정체인 듯한 다케모토는 사랑과 자아를 찾는다.

 

이러니 내가 그 대학생활을 동경할 수 밖에. 모두들 너무 강하다. 넘어져도 엉엉 울면서 일어나는 그 강함에 읽을 때마다 반하게 된다. 더불어 언제나 방긋 웃게 해주는 순진함에도.

 

어쩐지 한 살 먹을 때마다 울음이 많아 지는 나지만, 만화책 보고 운 적은 쵸파사건(원피스) 이후로 처음이었다. 작가인 우미노씨가 가족이 사라진 허전한 느낌이었다, 라고 말했지만 나 역시 뭔가 잃어버린 듯 뻥 뚫린 기분에 울먹울먹 마지막 권을 덮었다.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들 누가 빌어주지 않아도 행복해 질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아직도 자아찾기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위해 아껴두자.

 

-어릴 때 어떤 책에서 읽었던 건데, 기회는 어떤 인간에게나 적어도 평생 3번은 꼭 찾아온대. 그래서 어른이 되어 생각한 건데, 막상 그 기회가 왔을 때, 거기에 "뛰어들 수 있나" "없나"는 단순히 돈이 "있냐","없냐"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 거야. (8권)

 

-어째서 이 세상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나뉘는 걸까. 어째서 "사랑받는 자"와 "사랑받지 못하는 자"가 존재하는 걸까. 누가 그것을 나누는 것일까. 어디가 갈림길이었을까. (9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도, 괜찮아. 이제 알았어. 그리고 싶어. 이것 외의 인생은 내겐 없어. (10권)

 

-사는 의미를 무엇에 거는가...그 차이라고 생각해. 그게, <사랑>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고 싫고와 상관없이, 뭔가 <이루어내야만 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어.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모두들 그 순간은 그야말로, 본능에 판단을 맡길 수밖에 없을 거야. (10권)

 

-나는 내내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의미는 있을까 하고.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인가 하고...이제는 알겠다. 의미는 있다.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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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펫 14 - 완결
오가와 야요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보신 분들은 이미 다 보셨을만한 책입니다만... 이번에 다시 보니 또 너무 좋아서,,,;
*주의! 요새 케이블에서 하고 있는(듯한) 프로그램과는 그리 관계가 없습니다. 랄까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솔직히 소재만 놓고 보자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내용이다. 잘나가는 여자( 나중에는 남자도)가 '펫'으로 남자 아이를 기르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냔 말이다. 혼전 동거도 떳떳하지 못한 사회에서 애인도 아니고 인간 취급도 아닌 '애완동물' 취급.

하지만, 그런 골치아픈 문제들은 일단 '연애 판타지'라는 명분으로 처리(?)하고 나면, 이 만화... 너무 사랑스러운거다. 여느 남자들보다 능력있고 키도 큰 완벽녀, 이 여자 스미레. 곱슬곱슬한 머리에 가진거라곤 애교밖에 없어보이는 이 애완동물, 모모. 근데 한 꺼풀 벗기고 보면 스미레라는 여자, 표현방법도 서투르고 도통 일을 요령있게 처리하지 못하는 여자고, 천상 귀여운 펫이라고 생각한 모모는 엄연히 (당연하지만) 다케시라는 이름을 가진 잘나가는 모던 댄서다.

그 둘의 묘한 조합이 만나서 판타지가 발생한다. 판타지의 '성'인 스미레의 집에서 스미레는 본모습으로 돌아가고 다케시는 모모가 된다. 반대로 밖에선 스미레는 똑부러지는 능력녀에 모모는 다케시로 돌아간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식으로 나눈 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겠지만, 세상 사람들 누구나 조금씩은 '본연의 모습'과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다른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만화는 그런 사람을 특히나 갭이 심한 '스미레'를 통해서 정신적으로 위로해주고 있다.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스미레는 '펫'인 모모에게만 마음을 연다.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일 바에는 죽는게 낫다고 여기는 여자인 스미레도 애완동물인 모모 앞에서는 마음껏 울 수 있다. 애초에 인간이 아닌 존재기 때문이다. 스미레가 붙여준 이름인 '모모'조차 옛 애완동물의 이름이고, 스미레가 모모를 대하는 모습은 강아지를 대하는 모습과 다름없다. (물론 조금 민망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강아지이기 때문에 강한 척 하지 않아도 되고, 쓸데없이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다. 애완동물은 절대적으로 주인을 사랑하고,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오는 어디까지나 주인만을 위한 존재니까. 물론 이 상태에서 머무른다면 그냥 조금 이상한 여자의 이야기에서 머물렀겠지만, 모모가 진짜 개가 아닌 이상 감정이 안 생길리가 있나. 기르는 강아지에게도 무한한 애정을 주는데.

만화는 맨처음 열등감에 바람을 피운 남자친구에서 시작해서 갑자기 난입한 모모의 등장, 뒤이어 옛날부터 좋아했던 하스미 선배를 걸쳐 스미레의 약한점을 사정없이 공략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강한척 작렬인 스미레는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 사이에서 갈팡질팡 흔들린다. 일에 완벽해 질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질시를 받고, 사귀는 사람 앞에서 완벽해 지려 할수록 스스로 지쳐간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 주는 건 오직 모모 뿐.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스미레가 부러워 지는 건, 절대 내게 그런 취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사랑받았던 작품이니 분명 나처럼 공감한 사람이 많다는 소리. 분명 '모모'가 스미레에게 퍼붓는 전폭적인 애정과 이해심이 필요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선가 애완동물을 제일 예뻐하는 사람은 집안의 가장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올려다보는 작은 존재가 사랑스럽다는 얘기다. 결국 말하자면 사람에게는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는 게 아닐까. 지치고 힘든 하루에 짜증을 내도 변함없이 주변을 맴도는 존재. 주인을 반기고 꼬리를 흔들고 없으면 불안해 하는, 나만을 필요로 해주는 존재.

몇 번을 읽어도 스미레가 부럽고, 모모가 존경스럽다. 나 역시도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고 필요로 해주었으면 하고, 내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끌어내서 이거다 싶은 나만의 길을 나아가기 싶다. 뭐, 계속 부럽다, 부럽다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한 편으로 밀어놓고 봐도 읽기에 재미있고 적당히 가벼운 만화책이다. 연애 판타지 답게 읽고나면 어쩐지 눈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있는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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