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대 반전.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저 말 밖에 없다.

 

보통 내가 책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책의 내용과 두께에 따라 달라지지만 서도) 1~2시간이다.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리뷰쓸 메모까지 하느라 한없이 시간을 잡아 먹고 있지만. (노트북이 절실하다....)

이 책을 읽을 때도 샤프와 공책을 한쪽에 두고 읽어내려 가고 있었는데 (물론 적는게 지긋지긋하기도 했음) 어느 순간! 나는 이야기가 내가 전혀! 결코!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는 메모고 뭐고 푹 빠져서 단숨에 읽어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어찌 이렇게 잘 쓰시는지...

좋게 말하자면 작가의 역량이 엄청난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날 속였어!!!!!!!!!!!!!!! 정도?

책을 덮는 그 순간에 느끼는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굳게 믿었던 게 한 번에 무너져버린 느낌이랄까. 덕분에 내 리스트엔 또 다른 작가님이 올라가게 되셨다...! (요샌 리스트가 너무 빠방해 졌어....)

 

어찌 된건지; 요즘 눈에 띄는 책들이 죄다 보통의 소설 형식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편지책으로 구성된 <마법의 도서관>에, 포스트잇 편지로 구성된 <포스트잇 라이프>에 이어 각종 일기, 편지, 진정서, 대자보, 이메일 등으로 구성된 <개를 돌봐줘>까지.

다른 두권의 책들과 이 책이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두 주인공 (막스와 으젠)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편지, 대자보, 이메일 등도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남의 일기보다는 약하지 않나 싶다.

사실 남의 일기 훔쳐보는 재미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 아닌가! (라고 주장한다) 나는 어렸을 적 내 동생의 일기장을 너무나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틈만나면 훔쳐볼 정도였다. 하나의 일을 나와 정반대로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 어린애 다운 똘끼, 엉망진창인 그림, 내 동생 답게 짧고 굵은 내용들... 분명 나 말고도 남의 일기 훔쳐본 사람이 많을거라 (위로하고 있다) 생각한다.

형식에 대해 얘기하자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끝이 되기 전까진 누군지 절대 알 수 없는, 심지어 난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철썩같이 믿은, 화자의 글을 빼놓을 수 없다. 각종 일기와 편지들을 넘나들며 하나하나 주석을 달듯 친절하게 풀어놓으니 착각할 만도 하다. 이것마저 작가의 "독자 속이기" 장치의 일종이니 조심할 것!

 

프랑스 소설이라 이름치인 난 끝까지 갈피를 못 잡은 이름도 몇 개 있었다. 라자르 몽타냑 씨를 포함해서. 물론 글을 읽는 데 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워낙 개성들이 강해서; 정말 그렇게 개성강한 사람들이 모이기도 힘들텐데.

 

이 책의 처음은 너무너무 유쾌하게 시작된다. 같은 날 맞은 편 아파트로 이사온 막스 코른느루와 으젠 플뤼슈는 각각 상대방이 자신을 염탐, 감시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장나서 창 밖이 훤히 보이는 창 너머로 그들은 서로를 의식하며 경계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서로가 여러가지 방해공작을 해가며. 그런데 이웃들도 평범치 않다. 카메라 하나 없으면서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하는 자모라(막스의 아파트), 성질 괴팍하고 아파트 관리에 죽을 힘을 다하는 (정말로) 욜랑드 라두 부인(막스), 악마의 자식일 거라 추정되는 브뤼노(막스)에 자칭 예술가라 표현하는 으젠의 아파트엔 에로 소설가인 라자르 몽타냑씨와 쥐들을 사랑하는 뒤모제씨가 당당히 버티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면서 등장인물들의 재능과 성격 탓에 일은 최악으로 번지고 만다. 개를 무척 사랑하던 브리숑 부인이 얼마전 실종된 (실은 막스의 종이상자에 운명을 달리한) 엑토르의 가죽을 손에 쥔 채 번지점프하는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이고 갑자기 등장해 사람들을 악박하고 다니는 형사 덕에 숨조차 쉴 수 없게 된다. 으젠은 막스가 그런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다 누군가 흘린 모든 자료 (두 사람의 일기와 모든 편지 등)을 보고 진범은 따로 있다는 걸 깨닫는다. 불운하게도. 결국 그도 죽은 채 발견이 되고 마는데.....

 

보시다 시피 앞에는 한없이 유쾌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 유머가 악랄하게 느껴질 정도의 전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유쾌한 유머를 잊지 않다니 이 작가, 심히 감탄스럽다. 그리고 존경스럽다.

 

아직 못 읽은 분들을 위해 범인이 누구인지 힌트조차 꺼내지 않았으니 부디 읽어보시길!

정말 재밌고 멍뎅해지는 책입니다!

 

*유쾌한 글귀 (중간에 중단했음)

-내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낌새를 보이자, 그는 곧 영감에 휩싸인 시인의 표정을 지으며 구름을 바라보는 척했다ㅏ. (막스 -> 으젠) (9)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척하며 내 아파트 쪽을 염탐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고양이는 마치 햇볕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벌렁 드러누워 그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 작자가 마치 헐벗을 대로 헐벗은 정신 상태를 증명이라도 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아무리 애정을 구걸해도 고양이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정말이지 보기에도 딱하다. (으젠 -> 막스 ) (11)

-그러곤 더위, 피고, 술기운을 재료로 하는 비밀스런 연금술로 인해 그 멋진 사내들이 '네 어미 매춘부'라는 무궁무진한 주제를 놓고 즉흥시 경연을 벌였고, 이어 능숙한 앙트리샤 (공중에 떠서 양발을 서로 엇갈리게 하는 발레 동작)와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는 절묘한 묘기가 동원된 놀라운 포스트 모던 발레가 시작되었다. (13)

-내가 놀란 나머지 종이상자를 떨어뜨리고 말았으니까.

나는 몇 년간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빅토르 위고 전집으로 주변을 조용하게 만든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29)

-폭주하는 미치광이.

-질문 : 미치광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 : 그보다 더 미친 척 한다. (51)

-하지만 현실은 많은 경우 허구보다 더 황당무계하다. (161)

-증오, 그것도 관계들을 만들어낸다. (287)

 

+유쾌한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프랑스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손에서 뗄 수없는 그런 책을 찾고 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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