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 처방전은 약치기 그림
양경수 지음 / 오우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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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굉장히 핫하다고 해서 골라왔다. 짤로도 많이 돌아다니고, 그 짤마다 신선해서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짤로 다 본 기분이 든다... 영화 결말을 다 알고 본 듯한 그런 기분...


'회사' 생활을 한 적은 없지만, 사회 생활은 이런 저런 특이점 빼면 다 똑같은 것 같다. 그래서 대체로 공감하면서 봤다. 신박한 표현도 많고 보면서 웃기도 했고. 사실 상황은 무거운데 나오는 인물의 얼굴에 정말 괴로운 표정이 없다는 게 어떻게 보면 너무 슬프다. 그게 아이러니고 작가님이 노린 풍자적 기능이겠구나, 싶지만. 괴로워도 엄지를 치켜들어야 하고, 짜증나도 웃어야 하는 현실인 것 같아서.


만화이고, sns에서 돌아다니기 쉽다는 특성상 가볍게 널리 퍼지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게, 그래서 가슴이 쿵, 하고 느껴지게 쓰는 것이 굉장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즐겁고(?) 가볍게 소비하면서 야금야금 퍼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가 나무를 가져다 심는 거면, 후자는 씨를 뿌리는 느낌!


일단 회사 생활에서 부당한 점을 부당하다고 희화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모든 변화는 옳을 수록 고통스러운 것 같다. 주로 부당하게 갈취하던 쪽이. 그 고통을 아래로 다시 전가시킨다는 점이 가장 슬프고 열받는 일이지만, 변화가 끝나면 다 같이 윈윈하는 관계가 될 수 있겠지......?? 


덧) 시리즈로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 책 안의 하루는 일반 사무직의 경우라서, 여러 직업이 나오면 다채로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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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스캔들 - 조선을 뒤흔든 왕실의 23가지 비극
신명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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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에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읽고 있는데
솔직히 기본 지식이 빈약하니 좀 힘드네요....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도 사두고 반쯤 읽다 말았습니다.

워낙 취약한 분야라서 이젠 진짜 머리에 좀 집어넣자, 같은 강박이 생겨서 더 그런가...싶기도 하고ㅠㅠ
그래서 흥미를 불살라보고자 선택한 책인데, 제목에서 어쩐지 역사를 카테고리로 묶은 가벼운 분위기의 책을 연상했는데 아니었네요.
카테고리로 묶은 것은 맞지만 사건이 사건인지라...

제가 알고 있던 사관과 다소 이질적인 해석도 있었지만 작가분의 역사가로서의 사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약간 불편한 표현이 있어 별 하나는 빼고 ㅠㅠㅠ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다짐한 것은 바로!! (부끄럽지만) 조선왕조 순서부터 외우자, 입니다ㅎㅎ 이름치라 이 사람이 저 사람같고 막 ㅋㅋㅋㅋㅋ 큰일이네요 ㅋㅋㅋㅋ 열일해라, 내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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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1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공부하면 가끔 중요한 내용은 외워야 할 때가 있어요.. ㅎㅎㅎ
 
왜 우리는 생각에 속을까 - 자신도 속는 판단, 결정, 행동의 비밀
크리스 페일리 지음, 엄성수 옮김 / 인사이트앤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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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학에 꽤 관심이 많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러니까 주로 나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에.

사교성이 있는 사람은, 그리고 사람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사람과 어울리며 터득하는 걸 택하겠지만, 나는 어라, 모르겠다? 싶으면 도서관을 검색하는 타입이다. 그러니까 실전보다 이론부터 파야지, 하다가 실전에서는 써먹지 못하는 바보라는 뜻이다.

심리학 책을 읽거나, 내 행동에 대해 후회하거나 반성하거나 생각해 볼 때마다 내 행동이나 지각이 나아진다는 생각은 든다. 한 개미 한 마리만큼? 이대로라면 죽을 때까지 '내가 원하는 나' 같은 건 될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골라든 이유를 말하자면 "내가 유혹에 약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이 굳이 나를 유혹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유혹의 계기를 제조해 혼자 넘어간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 유혹이 이 생각이 아닐까, 하는 얄팍한 생각에 책을 골랐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쉽다. 여타 다른 심리학 책처럼 어렵지 않아서 술술 읽힌다. (물론 요즘은 읽기 쉬운 책도 많이 나와 있긴 하다) 기본적으로 소제목만 훑어도 내용 파악이 된다. 소제목 밑의 내용은 소제목을 전적으로 뒷받침하는 실험이나 일화라서 흥미로운 걸 골라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솔직히 심리학 실험 이야기 읽는 것만큼 흥미로운 건 남의 일기장 읽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작가가 풀어가는 어투가 해학적이라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책의 1부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한 번도 의식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나온다. '부드러운 것을 만지면 너그러워 진다'든지 '도덕적 결정은 대개 감정적 결정'이며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활용하는 논리적 판단은 결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판단' 같이. 가장 뜨끔했던 건 '아주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경우, 상대가 피해자라 해도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돌린다'라는 내용이었다. 피해자임에도 내가 감정적 부채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임을 지워 미워해본 경험이 나도 있었기 때문에.

2부에 들어서면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데 '무의식'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는데 꽤 재미있는 사실을 많이 알려준다. ​2부의 설명을 딛고 3부~5부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행동/감정의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내가 팔랑귀여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참고로 내가 가장 쓸만하다고 느낀 건 "의지력은 고갈되는데 (물론 나중에 다시 채워진다) 달콤한 음료를 마시면 의지력이 보강된다"는 구절으로, 이제 나는 합리적인 이유를 대고 초코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운동을 하면 정신력이 강해진다는 구절은 살포시 넘어갔다.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할 정신력이 있다면 정신력을 높이기 위해서 운동을 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


책의 내용은 알겠는데 실제로 이해했는지는 아직 긴가민가하다. 의식과 무의식중 행동(인간의 모든 결과가 행동이라고 볼 때)을 결정하는 게 무의식에 가깝다고 하는데. 애초에 무의식은 의식할 수 없으니까 무의식인 거잖아... 그럼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없는 거고. 이렇게 '내가 원하는 나'에 가는 길은 여전히 험난한 채로 남게 되었다.

책에는 아주 새로운 정보보다, 이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정보가 많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적용된 이야기가 잔뜩이라 신나서 볼 수 있다. 덤으로 어, 그럼 나도 그런가? 하면 좋고. (책에서 말하길,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니까.) 

도덕은 합리적이지 않고, 기억은 진리가 아니며,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독립적이지도 않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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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조곡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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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는 늘 이야기의 초입에 서서 독자가 준비할 겨를도 없이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어간다. 말하자면 천부적인 이야기꾼인 셈이다. 저 멀리, 깊숙한 곳에 이 세상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귓가에 속살거리는 듯한 문체다. 덕분에 나는 늘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속절없이 끌려들어가, 한 번 타면 내려올 수 없는 놀이기구를 탄 듯 정신없이 내달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이야기는 끝이 나있다. 단숨에 읽어내려 머리가 멍하고 이야기의 잔상이 눈 앞에 들러붙어 있는 몽롱한 느낌.

 

「목요조곡」도 그렇다. 책을 펼친 순간, 난 이미 그 집 앞에 서 있었고, 훅 하고 풍기는 잔잔하고 불온한 공기에 불안해할 새도 없이 주인공들을 따라 집 안에 들어가 주인공들을 관찰했다.

 

그건 그렇고, 온다 리쿠의 주인공 중에는 '여자'나 '여자아이'가 많다. 내가 온다 리쿠의 '모든' 작품을 읽어본 건 아니지만, 읽어본 책들을 주륵 열거해 보아도 대개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아무래도 작가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일까? '여자'가 가진 비밀스러움, 수다 속에 감춰진 의뭉스러움, 상냥하고 섬세한 손길 속의 무심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자들의 수다 속에서 미스터리가 새어나온다는 걸, 온다 리쿠는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 '타인의 가십'이라는 먹이만큼 여자의 본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타인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요리하는 것이 특기인 여자들만 모여 있지 않은가! (52)

 

게다가 이번 주인공들은 모두 '글쟁이'에 가깝다. 가깝다는 건, 주인공들 중 정식 직업이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말일 뿐, 객관적으로는 모두 '글 쓰는'일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데다 분석하고 재조립하는 데 능한 여자들이다. 오싹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걸리면 뼛속까지 낱낱이 밝혀져 도마 위에 오를 것 같다 - 라고 해도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글 쓰는 직업과는 상관없이 그런 능력이 자체 내장되어 있겠지만.

 

-망상, 좋지! 우린 그것으로 벌어먹고 사니까. 누구나 자기의 망상 속에서 살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생판 모르는 남을 자기의 망상 속으로 끌어들일까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잖아. 자의식 과잉이네, 남의 흠을 들춰내는 나쁜 놈이네,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어. (120)

 

목요일을 좋아했던 한 여류 소설가의 죽음 이후, 그 장소에 있었던 다섯 사람은 매년 3일간은 고인을 기리며 고인의 집에 머문다. 천재라고 여겨졌던 여류 소설가는 죽은 후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유령이 되어 배회하는 듯 하다. 다섯 사람 모두 글쓰는 일에 관련이 있고, 그 중 셋은 친척인지라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져가고 이리저리 튀어나간다. 올해로 4년째 이어져온 이 '모임'에 불온한 공기가 감돌고 급기야는 감춰두었던 사실이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한다.

 

-천재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과혹한 존재야. 천재는 범인(凡人)을 몰아내버리지. 노력하는 사람을, 그런지도 모르고 짓밟아버리는 경향이 있어. (122)

 

책의 마지막을 읽어가며 든 생각은, 온다 리쿠는 어떤 생각으로 이 '작가'들을 써내려 갔을까- 하는 거였다. 소설가로서 다른 소설가, 그것도 각자 성격이 생판 다른 소설가를 그려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사실 그렇다. 글을 쓴다는 건 소설 속 에리코의 말처럼, 내 알몸을 생판 남에게 보여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라는 자아 없이는 나올 수 없으니까. 나는 늘 예술가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물론 내게 없는 재능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예술이라는 건 결국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의 연속이니까. 제 살을 깎아 보여주는 일같이 느껴졌다. 게다가 노력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부적이고 절대적인 재능 앞에 가장 무력함을 느끼는 건 오히려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아닌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봐도 명백하다. 결국 예술가들은 안쪽으로 자신을 깍아내려가면서 바깥쪽에서는 세상과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 다섯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술을 좋아하고 잘 떠들고 좌절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예술가적인 불씨가 가슴 속에서 타고 있어서 확고한 자의식으로 그걸 지키고 있는듯 했다. 글을 쓰고 싶다 - 나를 보여주고 싶다 - 는 열망이 평범함 속에 녹아들어 있는 사람들. 문득 이 여자들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소설이란 밀실에서의 개인 작업으로 태어나고, 완성품만이 사람들 눈앞에 드러나는 상품이다. 누구나 소설가의 내막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틀림없이 뒤에는 은밀한 뭔가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하다고 독자는 믿고 있다. (263)

 

가장 무서운 것은, 결국 모든 걸 다 털어놓고 모든 진실, 하나의 확고한 진실이 밝혀졌다고 생각해 안심을 해도 결국 각자의 마음 속에는 감춰진 진실, 아무도 모를 진심이 숨어있다는 점이다. 내가 옛날부터 보아온 추리소설은, 마지막에는 모든 진실이 밝혀져 범인이 밝혀지고 동기가 샅샅이 파헤쳐 지는 것이었다. 덕분에 책을 덮으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모든 세계가 책장 속에서 종결되고, 나를 옭아매지 않는다-는 그런 종류의 상쾌함이었다. 단순하리만큼 명쾌하고 심지어는 호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온다 리쿠의 소설은 하나의 사건이 '모두' 완벽하게 종결되는 건 있을 수 없다며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슬쩍 엿보이며 끝을 맺는다. 너무나도 '현실'다워서 까딱하면 우울해질 뻔 했다. 그렇다. 누군가가 죽어도 그 죽음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종결짓지는 않는 법이고, 책을 덮어도 이야기의 파편은 내 어딘가에 묻어 나오는 법이다.

 

-목요일이 좋아. 어른의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까. 정성 들여 만든 과자 향기가 나니까. 따뜻한 색상의 스톨을 두르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면서 말없이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듯한 안도감이 느껴지니까. 목요일이 좋아. 주말에 대한 기대에 찬 예감을 마음 깊이 숨겨두고 있으니까. 그때까지 일어났던 일도, 앞으로 일어날 일도, 죄다 알고 있는 것만 같으니까 좋아....... (143)

`타인의 가십`이라는 먹이만큼 여자의 본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타인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요리하는 것이 특기인 여자들만 모여 있지 않은가! (52)

망상, 좋지! 우린 그것으로 벌어먹고 사니까. 누구나 자기의 망상 속에서 살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생판 모르는 남을 자기의 망상 속으로 끌어들일까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잖아. 자의식 과잉이네, 남의 흠을 들춰내는 나쁜 놈이네,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어. (120)

천재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과혹한 존재야. 천재는 범인(凡人)을 몰아내버리지. 노력하는 사람을, 그런지도 모르고 짓밟아버리는 경향이 있어. (122)

소설이란 밀실에서의 개인 작업으로 태어나고, 완성품만이 사람들 눈앞에 드러나는 상품이다. 누구나 소설가의 내막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틀림없이 뒤에는 은밀한 뭔가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하다고 독자는 믿고 있다. (263)

목요일이 좋아. 어른의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까. 정성 들여 만든 과자 향기가 나니까. 따뜻한 색상의 스톨을 두르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면서 말없이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듯한 안도감이 느껴지니까. 목요일이 좋아. 주말에 대한 기대에 찬 예감을 마음 깊이 숨겨두고 있으니까. 그때까지 일어났던 일도, 앞으로 일어날 일도, 죄다 알고 있는 것만 같으니까 좋아.......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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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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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스크랩>을 리뷰하면서 말한 적 있지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소설보다 수필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맨 처음 접한 작품은 (당연하게도) 소설이었고, 그 뒤로 오래도록 그의 소설을 종종 골라 읽곤 했지만 언젠가 수필집 <무라카미 라디오>를 접한 이후, 어라? 하고 놀랐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늘 느꼈던 이미지는 흐릿한 안개에 싸인 세상을 등장인물이 각자의 목적을 찾으러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이었다. 픽션(소설)이라는 점에서 이미 판타지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늘 현실의 모호함을 기반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기묘한 감각도 아무리 이상한 체험도 결국엔 현실의 어딘가에 있을 법하다는, 두리뭉실한 현실감이랄까.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은 성격이 퍽 다르다. 수필의 성격상 현실감은 당연한 옵션이겠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분위기가 확 변한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드는데 수필을 읽다보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인지가 보인다. 무라카미 라디오, 라는 수필집은 그야말로 가볍게 읽고 웃을 수 있는 수필집이었고 그 밖의 다른 수필들도 가벼운 어조가 줄을 이어서 이 <잡문집>을 집어드는데도 그리 큰 고민이 없었다. 나는 내 생활에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추리소설이나 가벼운 읽을거리에 손이 가는 사람이라 (그런데도 그 글이 내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참 나 자신이지만 까탈스럽다.) 사전같은 두께에도 아랑곳없이 집어들었다. 게다가 표지도 너무 귀엽고! 

 

그런데 이 <잡문집>은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물론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무라카미 하루키식의 경쾌한 문체가 곳곳에 있고 더없이 짧은 글(?)도 몇 편이나 있지만, 생각보다 심층적인 글도 많았다. 그동안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이 양파껍질의 가장 겉표면이었다면, 몇몇 글은 양파의 껍질을 까고 또 까서 안쪽의 껍질이 짜잔하고 고개를 내민 느낌이었다. <언더그라운드>에 관련된 글들이나 다른 책들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그 사건/책을 자신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풀어나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더 진지하게 다가온다. (소설만 봐도 진지한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이라는 게 명백하지만서도) 

 

글을 쓴다는 것은 좋든 싫든, 글의 내용이 좋든 나쁘든 글 쓰는 사람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픽션인 소설보다는 수필에서 더 많이 드러난다. 수필집을 좋아한다는 말은 결국 내가 이 작가의 인간적인 어떤 부분에 공감하고 감명받았다는 이야기겠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잡문집> 안에서 말했듯이, 글을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책과 독자, 나아가 작가와 독자간에 콩떡같이 말해 찰떡같이(? 순서가 반대던가? 난 찰떡이 좋아서 늘 찰떡을 뒤쪽에 말하는데 늘상 헷갈린다) 알아듣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기본으로 깔린 생각이 다를테니까.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 사이에는 나이 차이도, 국적 차이도, 경험 차이도 있겠지만 그 차이를 잊고 그냥 이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 본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보았다. 그게 바로 수필의 목적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자기 수필집으로 남이 생각을 바꾼다거나 아하! 하고 깨달을 걸 원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걸 이렇게 짐작하는 것만으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충실한 독자가 아닐까 싶다. 

 

뭐, 리뷰라고 하지만, 결국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이 좋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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