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6
카를로 콜로디 지음, 김양미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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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내가 인터파크에서 이 책의 서평단에 신청했을 때 가장 끌린 건 피노키오에 대한 기억보다는 책 표지서부터 보이는 "예쁜" 그림체였다. 부드러운 색감에 아기자기한 그림체...예쁜 걸 사랑하는 내가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삽화에 빠진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깜박 잊고 배송지를 자취방이 아니라 집으로 해놔서 엄마에게 전화로 웬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얼른 책을 보고 싶어서 주말이 기다려졌다. 총 2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찾았다. 버스 안에서 늘어져 자서 머리는 부스스했고 눈은 살짝 부어있었다. 이것저것 쑤셔넣은 짐가방이 발밑에 떨어져 있었다. 엄마는 TV를 보다가 일어나 나와서 내 모습이 웃긴지 으하하 웃으며 저기 있다고 손짓으로 내 책상을 가리켰다.

 

아...쓰레기장같은 내 책상 위에 저렇게 예쁜 책이 놓여 있었다니.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앞으로도 2주간은 청소할 계획이 없다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어쨌거나 엄마는 내 물건은 무조건 내 책상에, 라는 공식 하에 가져다 놓은 듯 하다.

 

처음 본 '피노키오'는 생각보다 작아서 큰 책장보다는 책상 앞 작은 책장에 꽂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펴보면 좋을 사이즈였다. 대충 비교하자면 다이어리의 평균적인 크기...라고나 할까. 양장본이라 표지도 반들반들하고 그림은 너무 예쁘고... 이렇게 생긴 다이어리가 나와도 좋을 것 같다. (그럼 난 또 사느라 돈을 허비하겠지)

 

피노키오라... 난 동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어지간한 동화는 알고있다고 (몰래) 자부하고 있다. 피노키오, 인어공주, 신데렐라, 엄지공주... 삽화도 좋고 해피엔딩도 좋고 무엇보다 그 아기자기함이 좋다. 그래서 피노키오도 나름 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럴수가.

 

피노키오...... 때려주고 싶다.....어쩜 이렇게 꼬맹이인지. 어린시절 봤던 피노키오는 어리숙하지만 유쾌했는데 그럭저럭 어른 대열에 끼게 된 후 보니 이건 그야말로 매를 부르는 꼬꼬마가 아닌가...! 몇 번씩 타일러도 지 멋대로 하기 일쑤고, 고집은 센데 아는 게 없다. 덕분에 옆에서 살짝 꼬시기만 해도 팔랑팔랑 팔랑귀가 되어 나쁜 길로 룰루랄라 노래까지 부르며 달려나간다.

 

한참을 으으...때려주고 싶다...를 연발하며 책장을 넘기느라 그 예쁜 삽화에 위안도 못 받고 있을 무렵...옆에서 끙끙 거리는 내가 이상하고 성가셨는지 컴퓨터를 하던 엄마가 뭔데 강아지마냥 끙끙대? 하고 물었다. 나는 열변을 토하며 꼬꼬마 피노키오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하자 엄마는 또 으하하하 웃더니 "너랑 뭐가 다르냐"하고는 또 막 웃었다.

 

과연. 같은 종(?)을 은연중 싫어하는 내가 유난히 과민반응을 보인 이유가 있었다. 지금이야 쿨하게 인정하겠지만 어렸을 적의 나는 내가 고집이 세다는 것도, 여러 가지 충고를 해주시는 주위 어른분들이 (당연히) 나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꼬꼬마였다. 특별히 나쁜 짓은 안 했다쳐도 고집만큼은 피노키오 못지 않았다. 내가 멍하니 있는 사이에도 웃고있는 엄마를 보니 그냥 조용히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노키오에게 더 화내봐야 내 얼굴에 침뱉기니까.

 

묵묵히 엄마를 의식하며 책을 다시 읽으려니 이제껏 무시했던 삽화가 보였다. 화려하기 보다는 부드럽고 고운 색채에 팔다리가 짧아서 더 아기자기해 보이는 그림체가 잘 어울리는 페이지가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주는 듯 했다. 삽화 속 피노키오는 하는 짓(?)과 다르게 눈도 똥그랗고 작은 팔다리를 활기차게 놀리는 아이라 제페토 할아버지의 마음이 조금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저렇게 작은 애가 앞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면 어느 부모가 예뻐하지 않을까.

 

피노키오를 개과천선 시킨 건 자신의 깨달음도 있겠지만, 끈기있게 옆에서 돌봐주고 바른 길로 이끌어준 존재들 덕분이다. 더없이 너그러운 아빠, 제페토 할아버지와 항상 자애롭게 돌봐주는 엄마, 요정님, 간간히 등장하는 말하는 귀뚜라미 같은 동물들 덕분에 피노키오는 (번번히 놓치지만) 다시 한 번 바른 길로 들어설 기회를 갖는다. 그런 피노키오가 부러웠던 건, 내게 이제는 그런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 내가 어렸을 적 본 피노키오는 이렇게 자세한 버전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만화로 보면 내용보다는 재미에 치중해 코가 늘어나는 피노키오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나나 동생에게는 좀 늦었지만, 내 사촌동생에게는 아직 늦지 않았겠지. 다음 번, 사촌동생을 만나면 큰 맘먹고 내 예쁜 피노키오 책을 빌려줘야겠다. 그림 예쁘지 하고 어깨도 으쓱거려보고, 그러니까 너도 엄마랑 아빠 말 잘 들어 하고 오랜만에 어른인 체도 해봐야지. 아마 내 고집쟁이 사촌동생은 콧방귀를 흥 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 더 시간이 지나면 그 누나가 왜 그렇게 잘난 척했나, 하고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생각할 날이 올지 모른다.

뭐, 그런 게 그림책의 미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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