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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평점 :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스크랩>을 리뷰하면서 말한 적 있지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소설보다 수필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맨 처음 접한 작품은 (당연하게도) 소설이었고, 그 뒤로 오래도록 그의 소설을 종종 골라 읽곤 했지만 언젠가 수필집 <무라카미 라디오>를 접한 이후, 어라? 하고 놀랐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늘 느꼈던 이미지는 흐릿한 안개에 싸인 세상을 등장인물이 각자의 목적을 찾으러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이었다. 픽션(소설)이라는 점에서 이미 판타지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늘 현실의 모호함을 기반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기묘한 감각도 아무리 이상한 체험도 결국엔 현실의 어딘가에 있을 법하다는, 두리뭉실한 현실감이랄까.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은 성격이 퍽 다르다. 수필의 성격상 현실감은 당연한 옵션이겠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분위기가 확 변한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드는데 수필을 읽다보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인지가 보인다. 무라카미 라디오, 라는 수필집은 그야말로 가볍게 읽고 웃을 수 있는 수필집이었고 그 밖의 다른 수필들도 가벼운 어조가 줄을 이어서 이 <잡문집>을 집어드는데도 그리 큰 고민이 없었다. 나는 내 생활에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추리소설이나 가벼운 읽을거리에 손이 가는 사람이라 (그런데도 그 글이 내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참 나 자신이지만 까탈스럽다.) 사전같은 두께에도 아랑곳없이 집어들었다. 게다가 표지도 너무 귀엽고!
그런데 이 <잡문집>은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물론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무라카미 하루키식의 경쾌한 문체가 곳곳에 있고 더없이 짧은 글(?)도 몇 편이나 있지만, 생각보다 심층적인 글도 많았다. 그동안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이 양파껍질의 가장 겉표면이었다면, 몇몇 글은 양파의 껍질을 까고 또 까서 안쪽의 껍질이 짜잔하고 고개를 내민 느낌이었다. <언더그라운드>에 관련된 글들이나 다른 책들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그 사건/책을 자신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풀어나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더 진지하게 다가온다. (소설만 봐도 진지한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이라는 게 명백하지만서도)
글을 쓴다는 것은 좋든 싫든, 글의 내용이 좋든 나쁘든 글 쓰는 사람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픽션인 소설보다는 수필에서 더 많이 드러난다. 수필집을 좋아한다는 말은 결국 내가 이 작가의 인간적인 어떤 부분에 공감하고 감명받았다는 이야기겠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잡문집> 안에서 말했듯이, 글을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책과 독자, 나아가 작가와 독자간에 콩떡같이 말해 찰떡같이(? 순서가 반대던가? 난 찰떡이 좋아서 늘 찰떡을 뒤쪽에 말하는데 늘상 헷갈린다) 알아듣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기본으로 깔린 생각이 다를테니까.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 사이에는 나이 차이도, 국적 차이도, 경험 차이도 있겠지만 그 차이를 잊고 그냥 이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 본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보았다. 그게 바로 수필의 목적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자기 수필집으로 남이 생각을 바꾼다거나 아하! 하고 깨달을 걸 원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걸 이렇게 짐작하는 것만으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충실한 독자가 아닐까 싶다.
뭐, 리뷰라고 하지만, 결국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이 좋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