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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 처방전은 약치기 그림
양경수 지음 / 오우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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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굉장히 핫하다고 해서 골라왔다. 짤로도 많이 돌아다니고, 그 짤마다 신선해서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짤로 다 본 기분이 든다... 영화 결말을 다 알고 본 듯한 그런 기분...


'회사' 생활을 한 적은 없지만, 사회 생활은 이런 저런 특이점 빼면 다 똑같은 것 같다. 그래서 대체로 공감하면서 봤다. 신박한 표현도 많고 보면서 웃기도 했고. 사실 상황은 무거운데 나오는 인물의 얼굴에 정말 괴로운 표정이 없다는 게 어떻게 보면 너무 슬프다. 그게 아이러니고 작가님이 노린 풍자적 기능이겠구나, 싶지만. 괴로워도 엄지를 치켜들어야 하고, 짜증나도 웃어야 하는 현실인 것 같아서.


만화이고, sns에서 돌아다니기 쉽다는 특성상 가볍게 널리 퍼지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게, 그래서 가슴이 쿵, 하고 느껴지게 쓰는 것이 굉장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즐겁고(?) 가볍게 소비하면서 야금야금 퍼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가 나무를 가져다 심는 거면, 후자는 씨를 뿌리는 느낌!


일단 회사 생활에서 부당한 점을 부당하다고 희화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모든 변화는 옳을 수록 고통스러운 것 같다. 주로 부당하게 갈취하던 쪽이. 그 고통을 아래로 다시 전가시킨다는 점이 가장 슬프고 열받는 일이지만, 변화가 끝나면 다 같이 윈윈하는 관계가 될 수 있겠지......?? 


덧) 시리즈로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 책 안의 하루는 일반 사무직의 경우라서, 여러 직업이 나오면 다채로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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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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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스크랩>을 리뷰하면서 말한 적 있지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소설보다 수필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맨 처음 접한 작품은 (당연하게도) 소설이었고, 그 뒤로 오래도록 그의 소설을 종종 골라 읽곤 했지만 언젠가 수필집 <무라카미 라디오>를 접한 이후, 어라? 하고 놀랐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늘 느꼈던 이미지는 흐릿한 안개에 싸인 세상을 등장인물이 각자의 목적을 찾으러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이었다. 픽션(소설)이라는 점에서 이미 판타지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늘 현실의 모호함을 기반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기묘한 감각도 아무리 이상한 체험도 결국엔 현실의 어딘가에 있을 법하다는, 두리뭉실한 현실감이랄까.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은 성격이 퍽 다르다. 수필의 성격상 현실감은 당연한 옵션이겠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분위기가 확 변한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드는데 수필을 읽다보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인지가 보인다. 무라카미 라디오, 라는 수필집은 그야말로 가볍게 읽고 웃을 수 있는 수필집이었고 그 밖의 다른 수필들도 가벼운 어조가 줄을 이어서 이 <잡문집>을 집어드는데도 그리 큰 고민이 없었다. 나는 내 생활에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추리소설이나 가벼운 읽을거리에 손이 가는 사람이라 (그런데도 그 글이 내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참 나 자신이지만 까탈스럽다.) 사전같은 두께에도 아랑곳없이 집어들었다. 게다가 표지도 너무 귀엽고! 

 

그런데 이 <잡문집>은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물론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무라카미 하루키식의 경쾌한 문체가 곳곳에 있고 더없이 짧은 글(?)도 몇 편이나 있지만, 생각보다 심층적인 글도 많았다. 그동안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이 양파껍질의 가장 겉표면이었다면, 몇몇 글은 양파의 껍질을 까고 또 까서 안쪽의 껍질이 짜잔하고 고개를 내민 느낌이었다. <언더그라운드>에 관련된 글들이나 다른 책들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그 사건/책을 자신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풀어나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더 진지하게 다가온다. (소설만 봐도 진지한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이라는 게 명백하지만서도) 

 

글을 쓴다는 것은 좋든 싫든, 글의 내용이 좋든 나쁘든 글 쓰는 사람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픽션인 소설보다는 수필에서 더 많이 드러난다. 수필집을 좋아한다는 말은 결국 내가 이 작가의 인간적인 어떤 부분에 공감하고 감명받았다는 이야기겠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잡문집> 안에서 말했듯이, 글을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책과 독자, 나아가 작가와 독자간에 콩떡같이 말해 찰떡같이(? 순서가 반대던가? 난 찰떡이 좋아서 늘 찰떡을 뒤쪽에 말하는데 늘상 헷갈린다) 알아듣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기본으로 깔린 생각이 다를테니까.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 사이에는 나이 차이도, 국적 차이도, 경험 차이도 있겠지만 그 차이를 잊고 그냥 이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 본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보았다. 그게 바로 수필의 목적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자기 수필집으로 남이 생각을 바꾼다거나 아하! 하고 깨달을 걸 원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걸 이렇게 짐작하는 것만으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충실한 독자가 아닐까 싶다. 

 

뭐, 리뷰라고 하지만, 결국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이 좋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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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 - 스케치북과 카메라로 기록한 드로잉 여행 1
김혜원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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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라는 단어만큼 두근거림을 가져다 주는 단어가 또 있을까. 물론 난 천성이 실내파라 두근거림에 귀찮음이 한 숟갈 더 추가되지만 그런 것쯤은 여행길을 떠나는 순간 잊혀지기 마련이다. '여행'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어디로 갈까, 얼마만큼 머무를까, 무엇을 타고 가야 하나... 고민하고 결정할 일이 산더미지만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게 들뜬다.

 

현재 내가 제일 가고 싶은 여행 목적지는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이다. 왜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이거다! 하고 으스대며 얘기할 이유는 없지만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일본 만화책, 소설책의 배경들, 혹은 일본에 다녀왔다며 자랑에 사진까지 늘어놓는 친구들 덕분에 그냥 이유없이 일본을 여행해 보고 싶다. 더군다나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가깝기도 하고.

 

예전에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가 새벽에 출발해 하룻동안 관광하고 돌아오는 '밤도깨비' 일본 여행을 권한 적이 있었다. 불행히도 학교 일정과 약간(이라고 생각하자) 모자라는 여행경비 때문에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인터넷을 뒤져 관광정보를 보고 티켓값을 확인하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은 그 때를 떠올리게 한다. 알듯말듯한 이웃나라에 간다는 기대감, 말이 안 통할텐데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뒤섞인 그 기분을.

 

난 여행책자는 무조건 사진이 많은 걸 좋아한다. 아무래도 여행은 좋아하지만 여건상 갈 수 없어 '대리여행'용으로 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새는 여행에세이도 많이 나와있어서 볼거리가 풍성해져 여행을 못 가도 마음이 따뜻하다. 이 책은 사진보다 작가가 직접 그린 만화가 더 많지만 스토리 만화라기 보다 사진처럼 그 지역의 특성을 잡아 그린 일러스트라 독특한 매력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진을 싣는게 작가 입장에서는 훨씬 쉬웠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작가분께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큼 읽는 재미도 있고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에피소드를 글로 읽는 것보다 시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쭉 읽어내려가면 여행을 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해진다. 처음에는 아, 이 곳 멋지다, 여기 가보고 싶다, 이거 먹고 싶다 등등 신이 나서 메모를 해나갔지만 곧 이 책의 모든 장소, 모든 음식을 가고 싶고 먹고 싶다는 걸 깨닫고 적기를 포기하고 책장을 여유롭게 넘기기 시작했다.

 

내 여행의 기억은 그리 방대하진 않다. 기억력도 그리 좋지 않고 지리에 특히 약하기 때문에 어느 곳을 다녀왔어도 가는 길을 까먹거나 풍경은 기억나도 지명이 기억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실망스런 딸의 반응에도 우리 부모님들은 워낙 여행을 좋아해 방학 때마다 짐을 한가득 실고 자동차로 국내 방방곡곡을 여행했다. 아빠가 자동차를 몰면 엄마는 조수석에서 과자를 뜯고 사탕을 나눠줬다. 나와 동생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다 눈을 깜박깜박 졸며 언제 도착하냐고 물었다. (그 어린 날의 교훈 한 가지. 어른들의 '5분만 더 가면 돼'는 믿어선 안된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여행' 하면 어쩐지 누군가와 함께 가야할 것만 같다. 왜 수학여행처럼 친구와 함께 가도 재미있을테고. 가족들과 함께 가면 든든할테고.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혼자서 이렇게 여행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심심할 때도 있겠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심심할 일이 많지도 않을테고. 거기다 밤에는 홀로 고독을 만끽할 수 있겠지. 여행지에서의 밤은 두근두근하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야경에 가슴이 울렁울렁하는데, 혼자서 보내는 그 밤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을 읽으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새로운 걸 잔뜩 알았다. 무엇보다 기차 여행! 기차는 타본 적이 거의 없어서 내 생활에서는 거의 없는 존재였는데 이 책에서는 기차가 잔-뜩 나와 '이국적'인 매력을 풍긴다. (물론 기차를 일상적으로 타시는 분들은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거기다 스탬프를 찍는 역도 있다니 관광 기념품으로 간직하기엔 최고일 것 같다. 수집하기에도 좋을 것 같고.

 

거기다 일본하면 온천, 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내게 다양한 지역의 그야말로 다양한 온천은 메모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정보였다.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 된다는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작가분인 김혜원씨는 어쩜 이렇게 꼼꼼히 알아보고 여행을 다니셨을까- 싶을 정도로 일본여행 하기에 알찬 정보가 많다. 좋은 호텔이라든지 기차, 맛있는 음식점, 박물관 등을 비롯해 일본 편의점의 먹거리 같은 소소한 정보까지. 당장 이 책만 들고 일본에 가도 문제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여행서를 읽을 때마다 나타나는 부작용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여행'이 끌리고 그립다. 언제가 있을 일본 여행에 대비해 한 권쯤은 책장에 소장해 놓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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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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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judge a book by its cover"(책을 표지로 판단하지 마라.) 라는 말이 있지만 난 은근 꼬임에 넘어가기 쉬운 성격이라 표지와 제목에 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로서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변명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도 표지가 책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 종종 있으니 그런 책 앞에서는 스스로도 못 믿을 변명인 셈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운좋게 좋은 책을 좋은 제목으로 건졌으니 이런 책고르는 습관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게 인간 관계로 넘어가면 절대 안 되는데-하는 걱정은 덮어두고라도.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사실 난 제목만 보고 런던의 고서점을 돌아다니며 순박하고 온후한 서점주인분들의 사진과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런던'이라는 내게는 한없이 이국적인 장소에 가장 많이 끌렸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만. 하지만, 책은 목차, 프롤로그부터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고서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바로 "Do not judge a book by its cover."와 관계된 이야기가.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 이 굉장히 독특한 이벤트는  '독특한', 즉 다른 사람과 약간 다르기 때문에 '편견'이 박혀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소통의 장으로 제목인 리빙 라이브러리, 즉 살아 있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은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차근차근 읽어가듯 사람을 '대출'해 그 사람의 인생을 읽어가자는 의미에서 나왔다.  색다른 이벤트를 좋아하는데다 기본적으로 '도서관' 개념을 좋아하는 나는 프롤로그 첫 문단을 읽으면서부터 이 '리빙 라이브러리'라는 이벤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나서는 더더욱, 이런 이벤트가 우리 나라에서도 열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성실한 독자다운 생각을 하게 됐다.

 

성실한 독자답게 인터넷에서 리빙 라이브러리를 검색해봤다. (주소는 http://living-library.org/index.html) 사이트에서 살펴보니 수많은 나라에서 개최되었고 심지어는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개최되었다고 한다. 내가 언어와 시간, 돈만 된다면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리빙 라이브러리를 돌아다니면 세계가 무척이나 넓어지겠지.

 

김수정씨의 런던 리빙 라이브러리에서도 남들과 약간 다른 사람들이 '책'으로 참가했다. 싱글맘, 장학사, 레즈비언, 우울증 환자, 여자 소방관, 신체 기증인, 휴머니스트, 혼혈 등 '편견'이 있는 사람들. 평소 탁 터놓고 얘기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도 자유로이 나눌수 있고 질문도 자유로운 이 행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이해하고 시야가 넓어져 돌아갔을까. 우리 나라에서 개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나로서는 참가할 수 없는 행사지만, 다행히도 김수정씨의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이 책은 행사에 참가한 '책'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런던 곳곳의 풍경, 사람들의 사진, 영국의 풍습이나 생활을 전해주고 있어서 '사람'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영국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런던 소개책도 아닌데 어쩐지 영국으로 건너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옛날엔 그저 다 똑같은 외국이었는데 알면 알수록 영국이란 나라에 호감이 가고 동경이 생긴다. 특히 이국적인 사진에 홀딱 반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생활 풍경을 외국인에게 보여줘도 이국적이다, 고 말할테지만 내겐 친근할 뿐이라 외국의 일상 사진만 보아도 여행 가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책 곳곳에 사진이 있어서 보는 눈도 즐거웠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당연히도 '편견'을 깨트리는 이야기들이다. 내 스스로는 그런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다보니 은연중에 편견을 갖고 있던 자신을 깨닫는다. 내가 어느 직업, 어떤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조차 편견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공정하고 '자신'만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지 않을까. 그래서 날 좋아해주면 더더욱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내가 나라는 걸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임의로 분류하고 있는 남들과 약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각기 다른 성격이 있고 가치관이 있고 삶이 있다. 심지어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남들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장점이라고 하겠고 어떤 사람에게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그게 '개성'이라고 불리고 있겠지.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은 다들 다르다, 모든 사람에겐 자신만의 고민이 있다, 세상에는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게 없다, 라는 일반적이지만 의외로 깨닫기 힘든 깨달음을 이 책을 통해 재차 깨달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렇게 좋은 취지의 행사가 한 번쯤은 열리기를 바란다. 자라나는 어린아이에게도 고민하는 청소년에게도 삶에 지친 어른들에게도, 남들과 아주 약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민해왔던 '책이 될' 분들에게도 의미 깊은 행사가 될테니까.

 

 

-하지만 진을 용감하게 만들어 준 건 역설적으로 바로 그 '나이'였다. 노년으로 접어드는 길목처럼 느껴지는 나이 예순 살. 그 나이가 진에게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막 넘기는 나이. 이번만큼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불가능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50)

 

-선생님이 결코 가져서는 안 될 게 바로 선입관과 편견이에요. '저 아이는 아마 이 정도 수준일걸' '이런 가정 형편이니 여기까지만 기대해야지', 이런 선입관이 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해요. (77)

 

-어차피 내가 지니고 갈 짐은 나의 것이고, 내 인생도 나의 것이에요. 누구에게 잠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위로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 짐의 중량은 내가 안고 가야 합니다.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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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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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몇 년 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했었다. 반쯤은 생각보다 재미없는 대학생활을 벗어나고 싶어서 선택한 어학연수는 공부보다는 새로운 무언가가 그저 재밌는 나날이었다.  그래도 처음 어학원에 들어섰을 때는 엄청 긴장해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면서도 규칙에 얽매이는 나로서는 어학보다는 '학원'이라는 곳이, 심지어는 한국말도 통하지 않을 미국에 있는 기관이 어쩐지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 그 뒤로 거의 1년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게 놀기도 놀았지만... )

 

어찌어찌 들어간 반에서 제일 첫 날 가르쳐 준 것은, 간단한 인사법과 자기소개법,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질문이나 말 같은 미국에 적응하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인사법(Hello,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이나 자기소개법은 그렇다 쳐도 나는 해서는 안 될 질문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왜 나이를 물어보면 안 되는거래? 보통 만나서 나이로 언니/동생을 정하는 나라에서 자라난 나에게 그 항목은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어. 나는 이미 한국에서 16시간 떨어진 미국땅에 혼자였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 뒤로도 나는 습관적으로 나이를 물었다...)

 

그 첫 날, 작고 단단한 체격의 금발 선생님은 흑인들에게 'negro'란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말했다. 작은 단일민족의 나라에서 자라난 수도권 방콕소녀였던 나에게 인종차별이란 주제는 멀고도 먼 이야기였었다. 그런데 그 첫 날, 나는 아, 여기가 진짜 미국이구나-하는 단순한 감상과 함께 인종차별이 정말로 있는거구나, 하고 조금은 얼빠진 생각을 떠올렸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 때도, 지금도 가끔씩은 그렇게 오히려 강조를 해대는 것조차 차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다를 거 없다면 말도 거칠게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뭐, 뚱뚱한 사람에겐 돼지라고 부르면 안 되고 나같이 키가 작은 사람에게 난쟁이 똥자루라고 부르면 기분 나쁜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이해하고 말고가 아니라, 당장 백인들에겐 우리 나라 사람도 황인종으로 colored people에 속하니 당장 우리 이야기일런지도 모르겠지만.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라니 내가 좋아하는 '책 제목의 기준'에서 한참 벗어난 길이다. 거기다 악녀일기, 라는 묘하게 칙릿소설 같은 제목 덕에 사실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악녀는 좋아한다. 팜프파탈이라든지) 하지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 어느 날 오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시킨 건 없지만 택배 받는 걸(특히 책 택배) 좋아해서 좋아라 받아들고 두근두근대며 뜯어보았다. 그랬더니 두둥. 으음, 이것 참 내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책 선택인걸. 하면서도 괜히 신이 났다. 과연 선물의 의외성은 정말 놀랍군.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펴들고 정말 놀랐다. 생각했던 칙릿 소설도 아닐 뿐더러 글자 크기도 크고 소설이라기 보다는 동화...보다도 동시같았달까. 차근차근 <저자의 말>부터 읽어가니 어어... 인종차별 이야기란다. 인종차별이라고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에 미국 도로에서 차타고 지나가며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던 금발머리 놈밖에 모르는데... 조금 걱정하며 책장을 넘기니 정말, 읽기는 쉬웠다. 글자도 크고 주인공 '마리아'의 일기 형식이라 -분명 마리아는 여느 아이들처럼 일기 쓰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은 모양이다- 줄이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었다. 인종차별 이야기라길래 뭔가 다툼이라도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온 다툼은 노예와 바람핀 아빠와 엄마 사이에만 존재했다.

 

마리아는 부유한 집의 딸로 14살이 되어 자신의 개인 노예를 가지게 된다. 마리아는 엄마 친구댁 아들 루카스를 좋아하고, 가슴이 좀 더 나오길 바라는(!) 평범한 소녀다. 마리아가 선물로 받은 노예 꼬꼬는 말도 잘 듣고 일도 잘하지만 좀 따분하다. 어느 날 루카스네 아줌마가 노예를 사지 않겠냐고 한다. 꼬꼬도 일을 잘 하지만, 아줌마네 노예 울라는 화장품도 마사지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마리아는 노예시장에 나가 꼬꼬를 팔고 돌아온다. 마리아의 인생은 즐겁고 행복하다-.

 

작가의 의도대로, 읽고나니 좀 오싹했다. 저 시대에는 '노예' 라는 게 당연했다. 생각해 보면 옛날 내가 읽었던 책의 '인종과 상관없이' 상냥한 어린아이는 그 시대 개념으로는 좀 이상한 거 아닐까. 아마 마리아는 평생을 저렇게 노예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리며 살다 죽겠지. 향내나는 방 안에서 예쁜 옷을 입고 하하호호 수다를 떨면서도 누가 그 옷을 준비하고 차를 준비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도 않을테고.

 

조금 분개하며 책을 덮었지만, 뭐랄까. 옛날 공산주의에 대해 배울 때도 생각한 거지만, 인간이 누구나 평등해지는 시대는 오지 않는다. 이 시대조차 인종차별이 그리 심하지 않다뿐이지 아직 존재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산으로 사실상 계급이 나뉜다. (영국에는 귀족제도가 남아있지만 그거야 그쪽 나라 사정이고) 쪼끔 더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사람이 평등한 때는 죽고난 다음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것마저 아니라고 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애써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2백년 전의 악녀일기 덕분에 오늘도 이런저런 생각만 잔뜩 했다. 작가 아저씨는 내 이 반응을 보고 좋아하시겠지만서도, 나의 이 풀길 없는 답답함은 어쩌란 말이냐... 책 속으로 뛰어들어가 하하호호 신난 마리아 머리를 꽁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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