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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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책은 마치 기쁨처럼 나누면 나눌수록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내가 좋아하는 작가 혹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 구절이 저렇게 해석되는구나 하고 감탄할수록 그 책에 대한 애정도 커진다. 그리고 내 경험상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항상 무언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책으로 인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책을 만나는, 책의 순환 고리가 내가 독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지 싶다.

조금 독특한 제목의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내가 좋아하는, 책의 '인간성'이 가장 잘 표현된 책이다. 30대 여성작가 줄리엣을 중심으로 주고받은 편지글을 통해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각각의 캐릭터의 개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재미가 있다.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섬세한 줄리엣, 줄리엣을 무척 아끼는 시드니와 소피 남매, 조금은 산만하지만 순수한 이솔라, 사려 깊은 아멜리아... 줄리엣이 건지 섬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읽는 동안 나 역시 그 순수한 사람들이 너무 좋아졌으니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약간은 지루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줄리엣은 어느 날, 건지 섬에서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옛날 줄리엣이 가지고 있던 '찰스 램'의 수필선집을 우연히 소유하게 된 한 남자가 보낸 정중하고 책에 대한 애정이 보이는 편지를 받고난 후, 건지 섬의 주민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점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감자껍질파이 클럽'이라는 북클럽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전쟁 중 우연히 만들어진 '감자껍질파이 클럽'의 이야기를 다음 소재로 삼고 싶었던 줄리엣은 결국 건지 섬으로 찾아가게 되고, 그 정 많은 작은 섬에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찾게 된다.

이 책의 중심축은 '책과 사람들' 그리고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고통을 주었다면, 책은 새로운 자아와 희망을 주었다. 평생을 독서와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책을 접하지만 서서히 빠져 들어가 평생 책만 읽어온 사람보다 순수한 열정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을 흐뭇하게 만들 것이다. 실상, 사람은 책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책이 있어 사람은 꿈을 꾸고 희망을 받고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이 건지 섬의 사람들처럼, 책이 있어 풍요로워진 세계를 한 번 접한 사람은 저도 모르게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전쟁'의 모습은, 모순적인만큼 인간적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건지 섬의 사람들이 하는 전쟁 이야기는 독일군을 무작정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건지 섬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는 선량한 독일 군인과 사랑에 빠졌고, 이야기 속의 몇몇 독일 군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인간적인 도리를 다했다. 피해자지만 가해자를 무작정 비난하지 않는 포용력과 공정함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승패와 상관없이 전쟁은 모두를 상처 입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인간다움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인 전쟁을 겪고도 순박하고 정이 많은, 배고픔과 불안함을 독서와 온정으로 이겨나갔던 건지 섬의 사람들처럼, 다정한 사람들과 즐길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무엇이 부러우랴.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의 대부분을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앞으로 내가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 있다는 건 오히려 그만큼 기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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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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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일까?

리뷰 첫머리에 왜 뜬금없는 질문인가 싶지만, 숨가쁘게(!) 책을 읽어내려간 후의 허탈함 뒤에 저 질문이 느닷없이 나를 찔러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온갖 매체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에 대해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세상의 모든 (이성간의) 사랑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감정은 '부러움'이다. 거기에 더하자면 의구심 정도일까. 이 무슨 세살바기 어린아이 같은 유치함인가 싶지만 이런 내 성격 탓에 난 로맨스 소설들을 볼 때면 온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고, TV에서 열렬하고도 헌신적인 사랑이 펼쳐질 때면 조용히 채널을 돌렸다. 굳이 (불쌍해 보이는) 날 변호하자면, 내 눈에는 그 모든 애정표현들이 현실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말 그렇게 닭살돋는 말들을 속삭인단 말야?

그런 의문을 뒤로하고 오늘도 (피곤함과 상관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찾아 집어든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확실히 재미는 있었다. 문제는... 너무 감정이입이 된다는 점. 단 한글자 차이로 인해 잘못 전해진 이메일 한 통에서 시작된 이메일 펜팔은 어설픈 유머와 신랄한 비판, 상냥한 유쾌함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든든한 남편과 두 아이를 둔 에마는 이메일 대화 속에서 다시 한 번 결혼 전의 '에미'가 되어 가족이라는 '내부 세계'에서 벗어나고, 언어심리학 조교수인 레오는 자신의 세계의 이별에서 벗어난다. 이들의 첫 만남이 그야말로 우연이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였기에 오히려 그 이상으로 주고받는 이메일에 당황한 건 오히려 나였다. 하지만 오로지 이메일의 형식으로만 이루어진 대화라 실제로 두 사람의 감정이 여과없이 보여졌기 때문에 내가 책에 끌려들어간 건 순식간이었다.

침착하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언제나 감정을 드러내고마는 에미와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술에만 취하면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레오. 편지보다 빠르고 전화보다는 먼 이메일 안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기에 오히려 더 자유로울 수 있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린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사랑에 대해선 한없이 무지한 내게는 이렇게 순수하게 감정만 부딪히는 경우가 오히려 알기 쉬웠다. 그래서 그런지 등장인물이 30대임에도 불구하고 귀여워 보이고 (불륜이지만) 서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평소 결혼의 책임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는 그렇게 두 사람의 '감정'에 끌려갔다는 게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런게 사랑이려나. 엔딩까지 날 강하게 끌었던 팽팽한 대화가 더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너무 슬프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겠지. 부디 두 사람이 행복해 지기를.

-우리 주위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요. 우린 그 어디에도 살고 있지 않아요. 나이도 없고, 얼굴도 없어요. 우리에겐 밤낮의 구별도 없어요. 우린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아요. (33)

-당신에게 너무 매여 있게 돼요. 나를 만날 때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 나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 나한테서 메일만 원하는 남자, 실제로 만나는 여자들과는 (짐작건대) 쓰라림을 맛보다가 끝내 고통의 문안으로 들어서고 말기 때문에 내가 쓴 말들을 상상 속의 여자를 창조해내는 데 이용하는 남자, 그런 남자의 메일을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요. (111)

-여느 누구가 아닌 그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입니다. 물론 저에게도 당신은 여느 누구가 아닙니다. 당신은 제 안에 있으면서 저와 늘 동행하는 제 2의 목소리 같은 존재입니다. 당신은 저의 독백을 대화로 바꿔놓았습니다. 당신은 제 내면을 풍부하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132)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순간 당신의 환상 속 에미는 영원히 죽는다는 사실. (164)

-'가정의 평화'는 형용모순이에요.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짝을 이룬 것이라고요. (252)

-우린 골라인에서 출발하는 셈이에요. 따라서 나아갈 방향은 하나밖에 없죠. 되돌아가는 것. 우린 미몽에서 깨어나는 지난한 과정을 밟아야 해요. 우리가 쓰는 글이 우리의 실제 모습, 실제 삶일 수는 없어요.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며 그렸던 많은 이미지들을 우리의 실제 모습이 대신할 수는 없어요. (278)

-유령을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라이케씨, 당신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만질 수 없고, 따라서 실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은 제 아내의 환상이 만들어낸 존재일 뿐이지요. 한없는 행복감, 세상과의 절연 상태에서 기인하는 몽롱함, 글로 지은 사랑의 유토피아......이런 것들이 만들어낸 환상 말입니다. (311)

-우리의 만남이 두려워요. 만나고 나서 당신을 잃게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363)

-'잃는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잃는 거예요.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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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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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초콜릿 코스모스>가 무척 맘에 들어서 냉큼 온다 리쿠의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을 때 다른 작품들이 어쩐지 무서운 이야기들 같아서, <밤의 피크닉>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당연히 좀 오싹한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무서운 건 싫어하지만, 영상물만 아니라면 그나마 참을 수 있는데다...무서워하면서도 보고 싶어하는 어린애 기질이 발동해 마음을 다잡고 읽기 시작했다. -중간을 생략하고 말하자면... 이야기의 내용과 상관없이, 난 혼자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잖아...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는 거야 익숙한 일이지만,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래도, 책은 재미있었다. 발랄하고 화려한 재미는 아니지만, 성장소설답게 조금 답답하고 미묘한 공기를 잘 잡아낸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밤의 피크닉>은 수학여행 대신 일년에 한 번, 전교생이 밤을 새워 함께 걷는 이벤트의 이야기이다. 아침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말 그대로 하룻동안의 이야기인데도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다. 학교의 이벤트는 간단해 보이는 것조차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게다가 '학교'라는 장소는 다들 한번씩은 거치는 장소니만큼 공감하기도 쉬운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나 혼자만의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지금보면 다른 친구들에게도 있는 고민이었다든가- 하는 아련함까지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기도 하고. 성장소설 치고는 상당히 시간적으로 짧지만(하룻밤이니까) 그 하룻밤 안에도 아이들은 어른에 한 발짝 다가선다.

주인공인 도오루는 남모르는 비밀이 있다. 아버지가 바람펴서 생긴 배다른 남매, 다카코가 같은 학교, 심지어는 같은 반에 다니고 있다. 도오루와 다카코는 서로를 무시하며 의식하고 있다. 그 둘은 서로를 완벽히 밀쳐내지도, 완벽히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친구들의 도움과, 일상과 조금은 이질적인 밤의 마력으로 그 둘은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겠지만, 다카코의 태도는 상당히 호감이 갔다. 다카코의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성격일까. 재빠르지는 않지만 관대한 성격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딘가 다 조금은 불안하다. 다카코의 엄마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고등학생이기 때문일까 그 어른이 되기 직전의 아슬아슬함이 귀여워 보였다.

시노부의 말대로, 고등학교까지는 청춘의 잡음을 즐겨야 할 때다. 그걸 나도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조금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야겠지. 성장소설은 읽으면서 나도 한 뼘씩 자라는 것 같다. 혹시 내가 정말로 다 자란 어른이라면 성장소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흡족해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아직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한참은 멀었나보다. 한 뼘 한 뼘 자라나는 수밖에.

-당연한 일이지만, 길은 어디까지고 이어져 있어 언제나 끊어지는 법 없이 어딘가의 장소로 나온다. 지도에는 공백도 끝도 있지만 현실 세계는 빈틈없이 이어져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매년 이 보행제를 경험할 때마다 실감한다. 철이 들었을 때부터 언제나 간략화된 지도와 노선도, 도로지도로밖에 세상을 파악하지 않아서, 이런 식으로 어디에나 빠짐없이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20)

-수면이라는 것은 고양이 같은 것이다. 시험 전날처럼 부르지 않을 때는 잘도 찾아와서, 잠에서 깨어나면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으면 죽어도 오지 않아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게 한다. (29)

-내 신발이 없을 때의 불안함, 슬픔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치 자기의 시간과 행동을 통째로 빼앗긴 듯한 느낌이었다. (31)

-몸을 움직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걷는 것은 좋아했다. 이런 식으로 차가 없고 경치가 멋진 곳을 한가로이 걷는 것은 기분 좋다. 머릿속이 텅 비어지고, 여러 가지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붙들어두지 않고 방치하고 있었더니 마음이 해방되어 끝없이 확산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59)

-장시간 연속하여 사고를 계속할 기회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에 의문을 느끼게 되며, 일단 의문을 느끼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촘촘히 구분하여 다양한 의식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 의식은 언제나 자주 바뀌어가며 쓸데없는 사고가 들어갈 여지가 없어진다. (60)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커다란 누군가가 손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손만 있어서 하늘 위에서 이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서 그것을 누군가가 꼬옥 껴안고 있다. 수평선을 보면 언제나 그런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 수평선은, 높은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무서웠다. 그것은 꼭 소리굽쇠를 두드릴 때처럼 웅웅거리는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이제 틀렸다, 너희들은 이제 끝이다,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그 소리를 들었을 때가 이 세계의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83)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네게는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이 잡음이 들리는 건 지금뿐이니까 나중에 테이프를 되감아 들으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들리지 않아. 너, 언젠가 분명히 그때 들어두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해. (156)

-좋아한다는 감정에는 답이 없다. 무엇이 해결책인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으며, 스스로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훗날의 행복을 위해 가슴속에 간직하고 허둥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어떻게 매듭을 지으면 좋을까. 어떤 상태가 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고백한들, 데이트한들, 임신을 한들,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괜히 행동을 일으켜 후회하기보다 마음속에만 소중히 간직하는 편이 훨씬 낫다. (223)

-여름방학 때의 그 불쾌한 느낌. 바로 저기까지 끝이 다가와 있다. 하루하루 확실하게 다가온다. 지금 시작하면 아직 해낼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면, 시작한 만큼 어떻게든 된다. 그렇게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 도저히 손을 대지 못하는 악순환. 일단 책상에는 앉아보지만 다른 일을 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시작하여 핵심 과제의 주위만 어물쩍거리다, 중요한 것을 조금도 시작하지 못한다. 하루하루 미루는 동안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후회막급의 심정으로 해야 할 일의 양에 기겁하게 되는 여름의 끝...(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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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코스모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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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탁 터놓고 말해서, 나는 '연극'이라는 문화생활에 뭔가 말을 보탤만큼 아는 편이 아니다. 워낙 집에 붙어 있는 걸 좋아 하기도 하지만, 연극이든 영화든 충동적으로 보러가는 스타일이라 반대로 첫눈에 끌리지 않으면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연극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재미있다. 만화책 <유리가면>이 그랬고 이 책, <초콜릿 코스모스>가 그렇다. 생생한 무대를 보는 것이 생각할 틈도 없이 끌려들어가는 블랙홀이라면 책을 읽는 것은 작은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매력이 있다. 뒷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으면서 한 편으로는 책의 내용을 평가하고 있는 내가 있다. 거기다 연극과는 달리 돈을 더 추가하지 않고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나는 너무 마음에 든다.

<초콜릿 코스모스>는 읽는 내내 <유리가면>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소재가 연극이다보니 배우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피해 갈 수 없다. 다만 유리가면과 다른 점은, 스토리 상으로는 연애감정이 나오질 않는다는 점과 여자 주인공 두 명의 사이가 좀 더 온건하다는 느낌-일 것이다.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인 아스카의 연극부 선배, 다쓰미가 아스카에게 가지는 감정을 넓게 보면야 연애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 감정은 흐릿하게 연애감정으로 피어나 저 멀리 있는 것에 대한 동경, 부러움, 초조함으로 자라난 듯 싶다.

연출상으로 다른 점이야, 책의 종류가 소설책과 만화책이니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다른 카테고리 상에서도 '연극 장면을 묘사한다'는 일은 모든 연출상의 차이점을 끌어안는다. 말하자면, <유리 가면>이나 <초콜릿 코스모스>나 주인공(들)을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시점이 있어서 주인공의 재능에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오싹해 지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난 그 순간이 너무 좋다. 재능이 빛나는 순간을 누군가가 빼놓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 심리학에 대해서는 연극보다 더 모르지만, 아무래도 난 누가 내 (있을지 모르는) 재능을 봐주길 바라는 것 같다. 감정이입하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얻는달까.

고백하자면, 난 <유리가면>을 정기적으로 읽는 편이다. 딱히 정해둔 건 아니지만 아주 문득 연극 장면들이 생각나서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물론 다른 책들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유리 가면>같은 경우에는, 내가 좋아하는 연극 리허설 부분, 오디션 부분만 골라 읽곤 한다. 그리곤 만족해서 책을 덮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주인공이 두 명이나 나오는데 두 명 모두 이성에 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게 이 책의 문제라면 문제일까. 자신을 이끄는 연극에 푹 빠져 헤어날 줄을 모르니 옆의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 새가 없어 보인다. 사실, 내가 부러움을 느낀 건 그 점이었다. 잠깐 길을 잃고 헤매도, 원하는 걸 찾아내는 그 열정과 재능. "바보라니까, 그런 인간들은. 남 가진 것만 탐내느라 결국 아무것도 손에 못 넣어. 같은 걸 손에 넣어봤자 그 무게에 짓눌려 버티지도 못할 거면서."라는 말은 결국 내게 향한 말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도 어린 아이 같을까, 싶을 정도로 찔렸다. 원하기만 하고 노력하지는 않는. <초콜릿 코스모스>의 강점은 그 열정인 듯 싶다. 모두 연극에 '미친' 사람들이라, 읽는 나도 덩달아 가슴이 들뜨고 열중하게 되는 매력이, 이 책에는 있다. 다음 날 쪽지시험 공부 중에 연거푸 2번이나 읽어내리게 한 저력이랄까. 거기다 어지간하면 묵혀두는 리뷰를 단숨에 써내려가게 하는 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돌진하는 아스카의 모습에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코 역시 본받아야 할 점이 잔뜩이다. 아니, 오히려 아스카보다 교코가 인간적으로 성숙하다. 재능면에 있어서는 아스카의 본능적인 '흉내내기', 혹은 '연극 연출'을 따를 수 없겠지만, 교코는 자신의 일이, 연기가 자신에게 있어서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일에 자신도 있고 재미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자신에게 열정이 있는지 자문하는 교코. 냉정하게 분석하면서도 자신다움을 잃지않는 교코. 난 아직 어리숙하고 길을 헤매는 중이라 그런 교코를 볼 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렸다.

그래도, 내가 제일 공감한 인물을 말하라고 하면, 다쓰미를 빼놓을 수 없다. 글을 쓰고 연극을 할 추진력은 없지만, 주인공인 아스카와 교코보다는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단 한 번도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 본일이 없는 내가 본능적으로 돌진하는 아스카나, 자신의 일에 나름의 관점을 지닌 교코와 공감하기는 애초에 무리였다. 아마 먼 훗날 내가 인생의 목표를 찾았을 때나 가능하려나. 그 때까지, 나는 <초콜릿 코스모스>를 읽으련다.

-어렸을 때 쓰기 연습을 하며 같은 숙어를 몇 번씩 반복해서 쓰다 보면, 나중에는 글자가 도무지 읽히지 않고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글씨가 써지지 않던 기억이 난다. (6)

-로터리라는 연못에서 소금쟁이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쓰기 연습 때와 마찬가지로 점점 사람이라는 존재가 조각조각 흩어져 의미를 알 수 없게 된다. 이 무질서한 운동. 그 하나하나가 뇌와 의사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게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무슨 생각인가를 하고 있다니 무서운 일 아닌가. (11)

-자신이 지금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가미야에게는 뜻밖이었고 기쁘기도 했다. (22)

-텅 빈 극장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예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뭔가 가슴 설레는 일이 여기서 시작되리라는 예감. 이 문 저편에 이 세상 것이 아닌 멋진 세계가 펼쳐 있으리라는 예감.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의 숨소리와 웅성거림이 들리는 것 같다. (35)

-미지의 영역. 그런 말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이 눈이 보는 것은 더 멀고, 더 크고, 더 무거운 것이 틀림없다. (57)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포즈 자체는 유치하고, 어린아이처럼 앳되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자유롭고, 비슷한 또래인 다쓰미가 보기에도 천진난만한 젊음이 넘쳐흘렀다. 줄곧 보고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날 저물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뛰어놀 때 나던 해님 냄새가 코끝에 되살아난다. (64)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정말 힘들 거야.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게 당연하거든. 그게 당연한 상태니까 하는 수 없지. 주위의 무능한 인간들한테는 시샘이나 사고. 바보라니까, 그런 인간들은. 남 가진 것만 탐내느라 결국 아무것도 손에 못 넣어. 같은 걸 손에 넣어봤자 그 무게에 짓눌려 버티지도 못할 거면서. (76)

-아주 가끔 이런 순간이 찾아들 때가 있다. 몸속 깊은 곳,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거센 충동이 뭉게뭉게 치솟는 순간. 뭔가가 그녀를 뒤흔들어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는 순간. (107)

-멋진 아이디어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하고 흥분해서 쓰기 시작하는데, 세계가 확장되지 않고 등장인물도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야기의 구성이나 내용은 둘째 치고, 인물에서 벽에 부닥쳤다. ~ 자신은 아직 진짜 등장인물을 창조해 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37)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가 할 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어떤 것을 한정시키고 틀에 끼워넣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만일 그 틀을 치워버리고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한다면, 그런 재료가 자기 안에 있을까. (155)

-세상 사람 누구나 상대에 따라 각기 다른 얼굴을 연기하고 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배우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 다른 특징이 있고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스카는 어쩐지 신기했다. (229)

-스타라는 존재는 무섭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된다. 그 오라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있기만 해도 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게다가 재능과 실력까지 있으면 그야말로 범에 날개 달린 격이다. (402)

-세계가 속도를 높이며 부쩍부쩍 넓어진다. 그녀뿐 아니라 그녀가 사는 세계까지 집어삼키려는 듯이. 그와 동시에 뭔가가 급속히 몸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느껴졌다. 부쩍부쩍, 거대한, 억누를 수 없는 뭔가. 아스카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흉포하고 눈부신 에너지를 지닌 뭔가가. (444)

-무대는 어디까지나 소우주. 그곳에는 영구한 시간이 흐르고, 귀족의 성도, 망망대해도 나타날 수 있다. 과거도 미래도 마음먹은 대로. 무대에는 늘 우리의 전부가 있다. (504)

-여자들은 뭐든 다 될 수 있다. 어머니도, 딸도, 연인도, 아내도, 성녀도, 창녀도, 무녀도, 마녀도.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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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홍신 엘리트 북스 64
에밀 졸라 지음 / 홍신문화사 / 1993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읽기는 내 오랜 취미다.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큼은 읽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읽어온 책들 중에서 '인생을 바꾼 책'을 꼽는 일은, 아마 내게는 무리인 듯 싶다. 분명 내 삶은 내가 읽은 것들에서도 영향을 받았을테지만 인생이 바뀌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책은 아직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책이 있었다. 에밀졸라의 <나나>.

내가 <나나>를 읽은 건, 아직 내가 어렸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해 졸업 전에 학교 도서관은 정복하자, 는 순진한 야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책을 빌려다 읽었던 그 시절, <나나>라는 제목은 보자마자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직 난 어렸던 소녀였고 책을 고르거나 분류하는 기준이라고는 홈즈와 뤼팽이 나오던 추리소설과 그 외의 것이 다였다. 분명 명작 코너에 있으니 읽어도 괜찮은 책일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학교 도서관이었으니 모든 책이 재미있고 즐거우며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게 꽤나 순진한 생각이며, <나나>는 어찌되었든 명작이라는 걸 알지만, 그 때는 그 <나나>가 읽고 싶어 마냥 들떴다. 어쩐지 이국적인 이름, 보송보송한 병아리가 생각나는 이름, <나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나>를 그 어렸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다시 펼친 적이 없다. 더이상 <나나>라는 제목에 가슴이 설레지도 않거니와, 어린시절의 감상을 다시 되살리고픈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뜻밖이었다. 십여년을 잊고 살았던 책이 문득 생각났다는 게.

나나의 줄거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물욕이란 얼마나 허망한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짚어보면, 나나는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해 외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여인이다. 세상의 도덕적 잣대는 스스로의 아름다움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팜므파탈. 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쓸슬히 세상을 뜬다. 이렇게 줄이고 보니 그저 그런 소설같지만, 아마 지금, 이렇게 다 커서도 <나나>를 읽으면 여전히 혼란스러울 것 같다.

책을 대출해 집에 돌아와 펼쳐들었다. 그리고 난 끝내 그 책을 놓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책장을 넘겼다. 내가 자야할 시간은 이미 넘은 시각이었다. 내가 누워있던 침대에서 고개를 들면 흰 나무문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는 동생이 잠에 빠져 뒤척이고 있었다. 문 너머의 안방에서 엄마가 TV를 보시는지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가가 시큰하고 숨이 막혔지만 내가 과연 울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숨을 토해내며 눈물이 흘렀다. 평소에 우는 걸 굉장히 싫어하던 나였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면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르니까. 굳이 말하자면 내가 느낀 것은 답답함이었다. 아름다운 나나. 사랑스러운 나나. 파멸의 나나. 그리고 결국 죽어버린 나나. 내가 나나에게 동정심을 느꼈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명치가 콱 막히는 감정이 그저 동정심이었을까. 물론 어린 나이에 나나의 '비도덕적'인 일상은 충격적이었다.

아마 <나나>는 내가 최초로 접한 순수문학이 아니었을가 싶다. 그 전 내 취향은 추리소설이었으니까. 잘못을 한 사람이 결국에는 벌을 받는, 정직한 이야기.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랑스러운 동화들까지. 그런 내가 <나나>를 읽은 건 어린 아이가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버린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나나>는 날 밤새 잠도 못자며 생각하게 한 최초의 책이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나는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은 성격이었던 것 같다. 동그란 눈을 굴리며 어른들을 올려다보는 영약하지만 천진한 어린아이랄까. 나나에게 '도덕'은 의미가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할 뿐. 모든 걸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다른 이들도 나나에겐 중요치 않다. 이기적이고 잔인한 어린아이. 그리고 그런 나나에게 남자들은 끝없이 매료된다. 사랑이란 이름아래 나나를 부르짖지만 과연 그게 사랑일까. 결국 그 사람들도 가지고 싶은 걸 위해서 모든 걸 던지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달착지근한 말과 사랑스런 외모 속에 숨어있는 어린아이들. 내가 이 책의 누군가에게 동정심을 느꼈다면, 그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욕심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 이렇게 <나나>를 떠올려 보아도, 다시 읽어볼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마 나는, 내 어린 시절과 같이 <나나>를, 그 겁없는 아이들을 추억으로만 남겨두고픈 모양이다. 어쩌면 그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고 조금 커버린 내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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