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책은 마치 기쁨처럼 나누면 나눌수록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내가 좋아하는 작가 혹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 구절이 저렇게 해석되는구나 하고 감탄할수록 그 책에 대한 애정도 커진다. 그리고 내 경험상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항상 무언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책으로 인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책을 만나는, 책의 순환 고리가 내가 독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지 싶다.

조금 독특한 제목의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내가 좋아하는, 책의 '인간성'이 가장 잘 표현된 책이다. 30대 여성작가 줄리엣을 중심으로 주고받은 편지글을 통해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각각의 캐릭터의 개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재미가 있다.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섬세한 줄리엣, 줄리엣을 무척 아끼는 시드니와 소피 남매, 조금은 산만하지만 순수한 이솔라, 사려 깊은 아멜리아... 줄리엣이 건지 섬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읽는 동안 나 역시 그 순수한 사람들이 너무 좋아졌으니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약간은 지루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줄리엣은 어느 날, 건지 섬에서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옛날 줄리엣이 가지고 있던 '찰스 램'의 수필선집을 우연히 소유하게 된 한 남자가 보낸 정중하고 책에 대한 애정이 보이는 편지를 받고난 후, 건지 섬의 주민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점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감자껍질파이 클럽'이라는 북클럽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전쟁 중 우연히 만들어진 '감자껍질파이 클럽'의 이야기를 다음 소재로 삼고 싶었던 줄리엣은 결국 건지 섬으로 찾아가게 되고, 그 정 많은 작은 섬에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찾게 된다.

이 책의 중심축은 '책과 사람들' 그리고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고통을 주었다면, 책은 새로운 자아와 희망을 주었다. 평생을 독서와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책을 접하지만 서서히 빠져 들어가 평생 책만 읽어온 사람보다 순수한 열정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을 흐뭇하게 만들 것이다. 실상, 사람은 책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책이 있어 사람은 꿈을 꾸고 희망을 받고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이 건지 섬의 사람들처럼, 책이 있어 풍요로워진 세계를 한 번 접한 사람은 저도 모르게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전쟁'의 모습은, 모순적인만큼 인간적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건지 섬의 사람들이 하는 전쟁 이야기는 독일군을 무작정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건지 섬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는 선량한 독일 군인과 사랑에 빠졌고, 이야기 속의 몇몇 독일 군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인간적인 도리를 다했다. 피해자지만 가해자를 무작정 비난하지 않는 포용력과 공정함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승패와 상관없이 전쟁은 모두를 상처 입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인간다움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인 전쟁을 겪고도 순박하고 정이 많은, 배고픔과 불안함을 독서와 온정으로 이겨나갔던 건지 섬의 사람들처럼, 다정한 사람들과 즐길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무엇이 부러우랴.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의 대부분을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앞으로 내가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 있다는 건 오히려 그만큼 기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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