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의 Paris Talk - 자클린 오늘은 잠들어라
정재형 지음 / 브이북(바이널)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파리라... 어렸을 적 나에게 '파리'라는 장소는 도시라기보단 밤낮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가로등에 화려한 옷을 입은 예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그런 꿈의 장소였다. 그 이미지는 고등학생이 되어도 변하지 않아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파리에 대한 반짝이는 환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꿈이 깨진 건 고등학교 때의 친구가 돈을 모아 홀로 파리여행을 하고 난 뒤였다. 고등학교 때의 교복과는 확연히 틀린 살랑거리는 치마를 입고 찾아온 친구는 그 대도시가 무려 '더럽다'고 했다. 물론 무척이나 멋진 곳이만 환상을 가지면 실망할 곳이라고. 그렇게 경험자다운 충고를 하며 자랑스럽게 보여준 앨범 안의 파리는 '더럽다'는 말에 꿈이 깨진 환상속의 이미지보다 훨씬 멋진 곳이었다. 차가운 파랑빛이 비치던 외국의 건물들. 이국적인 카페와 벽돌길. 나는 정말 한없이 친구가 부러웠다.

 

정재형의 Paris Talk는 마치 일기장같은 책이다. 딱히 유머스럽다기보다는 정겨운 세련됨이 흐르는 그런 일기장. 책 속의 사진들과 일러스트들은 파리의 모습을 그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듯 하다. 솔직히 말해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정재형'이라는 사람보다 '파리'라는 도시였다. 반짝거림보다 이국적인 음울함이 사랑스러운. 하지만 책을 덮고나면 파리라는 도시와 한 발 가까워짐을 느낌과 동시에 정재형이라는 사람에게도 다가섰다는 걸 느낀다.

 

위의 표지는 상당히 밝게 나와있지만 실제론 조금 더 커핏빛으로 띠지 속 샌드위치와 잘 어울려 아주 분위기가 있는 책이다. 제목의 폰트도 무척 마음에 들어서 받고나서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속안의 사진들과 일러스트들은 전부 컬러라 알록달록 가라앉은 화려함을 뽐내 맘에 들었다.

 

내가 책을 읽고 동질감을 느꼈다면 너무 오만한걸까. 하지만 외국에 나가서 생활하는 입장은 여기서 거기, 결국은 통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어학연수로 미국에 나가있던 그 나날들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맞아맞아, 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정재형이라는 사람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 표현의 방법이 전혀 달랐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매우 감각적이고 아슬아슬하다. 난 물고기 이야기에서 조금 놀라 멍해지기도 하고, 연예계라면 거의 3살난 아이 수준과 다름 없는 내가 아는 몇몇 연예인들의 이름이 나와 어리둥절 몰입해 보기도 했다. 읽으면서 느껴지는 건, 화려한 낭만과 패션의 도시가 아니라 생활지로서의 파리, 그리하여 더 친근한 도시였다.

 

언젠가 이 책의 일러스트와 함께 있는 지도를 참고해 파리로 가 나만의 파리여행을 마음껏 즐겨보고 싶다.

 

+프랑스 파리가 너무 좋으신 분

+정재형씨를 좋아하시는 분

+파리로 가는 여행에서 가볍게 읽을 걸 원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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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니 비치 - 앞서가는 그녀들의 발칙한 라이프스타일!
로리 프리드먼.킴 바누인 지음, 최수희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완벽한 S라인의 소유자가 되는 것, 모든 여자들의 꿈이 아닐까 싶다.

단 한 순간도 '날씬해' 본 역사가 없는 나로서는 인터파크 북피니언 이벤트에서 당첨된

Skinny Bitch는 내가 전혀 모르던 세계의 입구 같았다.

 

내가 처음 책을 받아봤을 때, 나는 참 민구하게도 막 음식점에서 시킨 돈까스를 먹고 있었다. 바삭하게 튀겨진 돈까스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책 표지를 보니 이번엔 '참 나도♡'라고 무난히 넘길 수 없는, 가슴의 쓰라림이 밀려들어왔다. 물론 돈까스는 다 먹었지만서도.

일단 맛나게 돈까스를 먹고 손을 씻은 뒤 정식으로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하면서, 내 안색은 급속도로 어두워져 갔다.

뭐야...난 인생을 참으로도 비뚤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지만 첫 장을 넘기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미친 듯 먹어댔던 초콜릿과 사탕의 기억에서 벗어나자 새로운 각오와 호기심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나는 조금 바빴다.

"엄마! 우유 안에 극소량의 모르핀이 들어있대요!"

"엄마! 우유가 몸에 나쁘대요!"

새롭게 알아낸 사실을 엄마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어서. 혹은 우유를 죽어라 먹지 않던 날 칭찬해 달라고.

 

본격적인 리뷰를 하자면, 우선 책 표지부터. 늘씬한 그림자 여인이 멋지게 머리를 휘날리는 표지와 섹시한 보라색에 '빅토리아 베컴, 제시카 알바'라고 쓰인 띠지는 확실히 눈에 확 들어온다. 거기다 Skinny Bitch라는 제목은 좀 강렬하면서도 호기심이 일어난다. (Bitch는 속어라 보통 '나쁜 년'이라는 뜻으로 통하니까;)

 

스키니 비치는 확실히 말해 '다이어트 방법' 책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책이다. 잘못 알려진 다이어트 상식을 바로 고쳐주고 여러가지 살 뺄 수 있는 팁을 제시해 주긴 하지만 그건 정형화된 방법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조언에 가깝다. 문체는 소설이 아니기에 묘사적이라기보다는 설명적이지만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도록 쓰여졌다. 하나를 제시할 때에는 그에 대한 반론도 확실히 잡아 제시해 좀 더 내용이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제일 흥미롭게 봤던 건 <우유>에 관한 부분으로, 야채나 과일 좋은거야 다들 알고 있으니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은 것에 신은 났지만 유제품에 관한 새로운 정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당장 티비만 틀어도 우유가 몸, 특히 뼈에 좋다는 광고가 흘러나오고 어렸을 적부터 들어 이제는 진리나 다름없는 그 상식이 사실이 아니었다니! 쿠궁,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야. 그럼 이제껏 내가 몸에 좋으라고 꾸역꾸역 학교서 나눠주는 우유를 마셨던 건 뭐가 되는거야.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기쁨보다 여태껏 내게 우유마시기를 강요했던 학교에 대한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그리고 앞으론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학교를 졸업한 내게 더이상 불가피한 일이란 없겠지만!) 우유를 마시지 않겠다 엄마 앞에서 당당히 선언했다.

 

조금 어긋난 방향이지만 (왜냐면 아직 육류보다 채소!란 마음가짐은 아니니까) 스키니 비치가 내게 미친 영향은 크다. 바로 채식주의자가 될 순 없겠지만, 채소를 죽어라 먹지 않는 내가 적어도 샐러드 정도는 먹어야 겠다고 생각한 건 내 평생 처음이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각자 취향에 맞는, 그러면서도 안전한 '날씬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어트를 하실 계획이 있는 분

+혹은 다이어트 하시는 분

+다이어트는 잘 모르지만 건강과 몸매를 둘 다 잡고 싶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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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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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쩐지 표지가 다르다 했더니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건(위의 표지) 2004년판이었다... 큰 줄기는 바뀌지 않았을거라 생각하지만서도. )

 

내가 학창시절 제일 싫어한 과목은 수학도 과학도 아닌 사회였다. 그 중, 국사가 제일 싫었다. 매년 되풀이 해 배우지만 억지로 배우려니 머리에 남는 건 하나도 없었다. 워낙 주입식 교육을 싫어하기도 했지만, 내가 사회를, 특히 국사를 제일 싫어한 이유는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학은 제법 실용적인 일을 예제로 쓰고 있었고, 과학은 뭐 찾아볼 것 없이 실용적이었다. 국어는 워낙 책을 좋아했으니 당연히 좋아했었고. 그 가운데 사회는 내 생활과는 아예 동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고 하지만 저렇게 지리멸렬한 과거라면 보기 싫다고 철없게 생각했었던 같다. 하지만 막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무도 내게 역사 배울 것을 요구하지 않자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역사가 궁금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 뒤의 이야기가. 이 책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중 발견한, 재밌는 역사책이라고 볼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도세자다. 나를 기준으로 남들을 평가하는 취미는 없기에 남들이 사도세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얄팍한 내 지식보다는 나을거라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 여러가지 고서들이 만화책으로 나온적이 있었다. 나는 그걸로 금오신화니 구운몽, 심지어 한중록까지 읽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중록은 만화조차 재미없었다. 한중록의 화자인 혜경궁 홍씨는 늘상 자신의 지아비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한탄만 해댔고 '지아비'인 세자, 즉 사도세자는 정말 꼴사나운 짓만 하고 다녔었다. 영조가 아들을 그렇게 죽인걸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그런데, 콰광. 그 한중록이 거짓이라고 한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던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지아비가 죽어도 살아남은 혜경궁 홍씨가 작성한 한중록 역시 그 왜곡된 역사서 중 하나였던 것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혹은 끝난? 우리 나라 드라마는 잘 안 봐서;) 이산 덕분에 사도세자의 진실이 밝혀지려고 하는 모양이다. 애매한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이 바뀐 정보를 받아 들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니 양해를.

 

저자 이덕일 씨에 의하면 '피눈물의 기록', 읍혈록이라고도 불리는 한중록의 원제는 '한가한 날의 기록'이란 뜻의 한중록(한자가 다름) 이었다고 한다.

거기다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작성한 것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 즉시가 아니라 한참이 지난 후, 자신의 집안을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혜경궁 홍씨는 홍씨 집안이 사도세자를 궁지를 몰아넣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그걸 이유로 홍씨 집안을 처단한 뒤 그걸 숨기기 위해, 거짓 역사서를 제작한 것이다. 지아비를 배신하고도 가족을 위해서.

 

영조가 탕평책을 시도하긴 했지만 권력적 유착에 의해 영조는 노론의 임금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왕이 될 수 없었던 영조가 왕이 된 뒷 배경에 노론이 버티고 서 있었으니까. 그래서 노론은 영조의 약점이었다. 거기에 경종의 독살설까지. 그런 영조를 통해 조정을 휘둘러온 노론은 세자가 소론의 편이라는 걸 알고 초조해졌다. 앞 날을 위해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도세자의 가장 큰 불행은 주위의 모든 사람이 노론이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부터 할머니, 심지어는 아내까지. 아버지로부터도 목숨의 위협을 느낀 사도세자는 살기위한, 소위 역모를 꾸미지만 그게 덜미가 되어 자신의 목을 졸랐다.

이 책은 영조실록과 다른 고서들을 비교해가며 그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가깝게 재연했다. 특히 한중록의 왜곡된 구절을 하나하나 집어가며 반박한 게 인상깊다.

 

나는 딱히 여기서 복잡한 역사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아직 잘 모르니까.

내가 이 책을 본 이유는 단지 어릴 적부터 사도세자가 참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왕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 뒤주 속에서 처참하게 죽다니. 아들이 울부짖는데도 위로 해 줄 수 없다니. 어찌 불쌍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읽는 동안 더 화가 치밀었다. 노론이니 소론이니 당을 나눠서 자기네들 권력 따먹기에 여념이 없는 바보같은 정신머리에 너무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권력이란 게 참 무서웠다. 아들도 죽이고 다른 이들도 죽이고. 그 시절, 아니 어쩌면 지금도, 권력 앞에선 남의 목숨은 하찮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해해 버렸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보이는 거라고. 다시는 저렇게 권력 앞에서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고.

 

+사도세자와 정조에 관심이 있으신 분

+이산을 보고 사도세자가 궁금해 지신 분

+한중록의 진실을 알고 싶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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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모면 굴욕예방 영어상식 99 시즌 2
이상빈.글렌 스와포드 지음 / 잉크(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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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에 나왔던(아마도) 창피모면 굴욕예방 영어상식 99의 후속작입니다.

저는 시즌1도 가지고 있는데 제 생각엔 시즌2가 1보다 훨씬 알찬 것 같아요.

시즌 1도 괜찮았지만 예시도 쏙쏙 들어오고, 전보다 더 '사소하지만 잘 모르는' 영어를 콕콕 집어줘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몇-년 씩이나 영어공부를 (표면상으로는) 하고도 전혀 실력이 늘지 않은;

제 입장에서는 뭐 뭐라 내세울 말이 없지만;

솔직히 아무리 영어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공용어가 돼 공부한들...

모국어인 한국말만 하냐고요...

 

외국 ESL 굴러먹은 짬밥(꼭 한 번 써보고 싶었던 단어)로 보자면,

한국분들은 정말, 정말, 같은 한국 사람인데도 감탄할만큼 문법에 강합니다...

다른 분들 보면 제가 고딩때 뭐했나- 하고 안 하던 (...) 후회까지 할 정도예요.

근데 문법하고 말하는 거하곤 조금 다르죠, 아무래도.

외국에서 만난 많은 한국분들이 자주 언급하시는 '영어회화의 단계'가 있는데요.

 

1단계 - 몸짓+손짓+눈치

2단계 - 단어

3단계 - 막 말

4단계 - 침묵+후회

5단계 - 문법

6단계 - 발전

 

뭐 이렇게 상세하게까진 나누지 않지만; 영어 회화 공부하시다 보면 어느정도 공감하실 말일걸요;

한국 사람들은 하도 영어 공부를 문법 위주로 받다보니 문법이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같은게 있나봐요; 저 포함해서;

처음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급하니까 (외국에서도 살아야 하니까;) 막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경우가 많죠. 단어단어 말하기도 하고 손짓발짓 섞어 말하기도 하고. (근데 희한하게 영어 알아듣는 건 쉽다는 ㅋㅋ) 근데 어느 정도 영어로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 부담감이 없어져 갈 때쯤... 찾아오는 겁니다...!

 

부끄러움!!

문법이 왜 이래!! 여태 내가 한 말이 다 이상한 거였어...!

-라는. 아- 이거 충격 커요... 너무 부끄러워서 우물쭈물 말도 (다시) 못 하게 되거든요.

거기다 사소한 표현 하나만 달라져도, 아 다르고 어 다르듯, 뜻이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그런거까지 신경쓰게 되고.

근데 또 누가 알려주진 않거든요, 그런 사소한 건...

 

그-런- 막막함을 날려주는 책이랄까...

거진 2년동안 갔다온 어학연수에도 불구하고 '우왓! 이게 이렇단 말야?' 하고 부끄럽게 놀라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ㅎ

다 기억하기엔 아직 무리지만; 이제 천천히 다시 읽으며 써먹어 봐야겠어요 ㅎㅎ

예문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삽화도 귀엽고.

(거기다 뒤에 부록으로 딸린 다른 분들의 실수......아 재밌게 봤습니다..... 3편에 내꺼 실리는 건 아니겠지.........)

 

++영어 회화에 관심있으신 분께 추천! (문법은 아니니까요;)

++평소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갸웃갸웃 거리셨던 분들께 추천!

++외국에 어학연수 나가시는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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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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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 반전.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저 말 밖에 없다.

 

보통 내가 책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책의 내용과 두께에 따라 달라지지만 서도) 1~2시간이다.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리뷰쓸 메모까지 하느라 한없이 시간을 잡아 먹고 있지만. (노트북이 절실하다....)

이 책을 읽을 때도 샤프와 공책을 한쪽에 두고 읽어내려 가고 있었는데 (물론 적는게 지긋지긋하기도 했음) 어느 순간! 나는 이야기가 내가 전혀! 결코!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는 메모고 뭐고 푹 빠져서 단숨에 읽어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어찌 이렇게 잘 쓰시는지...

좋게 말하자면 작가의 역량이 엄청난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날 속였어!!!!!!!!!!!!!!! 정도?

책을 덮는 그 순간에 느끼는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굳게 믿었던 게 한 번에 무너져버린 느낌이랄까. 덕분에 내 리스트엔 또 다른 작가님이 올라가게 되셨다...! (요샌 리스트가 너무 빠방해 졌어....)

 

어찌 된건지; 요즘 눈에 띄는 책들이 죄다 보통의 소설 형식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편지책으로 구성된 <마법의 도서관>에, 포스트잇 편지로 구성된 <포스트잇 라이프>에 이어 각종 일기, 편지, 진정서, 대자보, 이메일 등으로 구성된 <개를 돌봐줘>까지.

다른 두권의 책들과 이 책이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두 주인공 (막스와 으젠)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편지, 대자보, 이메일 등도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남의 일기보다는 약하지 않나 싶다.

사실 남의 일기 훔쳐보는 재미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 아닌가! (라고 주장한다) 나는 어렸을 적 내 동생의 일기장을 너무나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틈만나면 훔쳐볼 정도였다. 하나의 일을 나와 정반대로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 어린애 다운 똘끼, 엉망진창인 그림, 내 동생 답게 짧고 굵은 내용들... 분명 나 말고도 남의 일기 훔쳐본 사람이 많을거라 (위로하고 있다) 생각한다.

형식에 대해 얘기하자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끝이 되기 전까진 누군지 절대 알 수 없는, 심지어 난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철썩같이 믿은, 화자의 글을 빼놓을 수 없다. 각종 일기와 편지들을 넘나들며 하나하나 주석을 달듯 친절하게 풀어놓으니 착각할 만도 하다. 이것마저 작가의 "독자 속이기" 장치의 일종이니 조심할 것!

 

프랑스 소설이라 이름치인 난 끝까지 갈피를 못 잡은 이름도 몇 개 있었다. 라자르 몽타냑 씨를 포함해서. 물론 글을 읽는 데 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워낙 개성들이 강해서; 정말 그렇게 개성강한 사람들이 모이기도 힘들텐데.

 

이 책의 처음은 너무너무 유쾌하게 시작된다. 같은 날 맞은 편 아파트로 이사온 막스 코른느루와 으젠 플뤼슈는 각각 상대방이 자신을 염탐, 감시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장나서 창 밖이 훤히 보이는 창 너머로 그들은 서로를 의식하며 경계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서로가 여러가지 방해공작을 해가며. 그런데 이웃들도 평범치 않다. 카메라 하나 없으면서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하는 자모라(막스의 아파트), 성질 괴팍하고 아파트 관리에 죽을 힘을 다하는 (정말로) 욜랑드 라두 부인(막스), 악마의 자식일 거라 추정되는 브뤼노(막스)에 자칭 예술가라 표현하는 으젠의 아파트엔 에로 소설가인 라자르 몽타냑씨와 쥐들을 사랑하는 뒤모제씨가 당당히 버티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면서 등장인물들의 재능과 성격 탓에 일은 최악으로 번지고 만다. 개를 무척 사랑하던 브리숑 부인이 얼마전 실종된 (실은 막스의 종이상자에 운명을 달리한) 엑토르의 가죽을 손에 쥔 채 번지점프하는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이고 갑자기 등장해 사람들을 악박하고 다니는 형사 덕에 숨조차 쉴 수 없게 된다. 으젠은 막스가 그런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다 누군가 흘린 모든 자료 (두 사람의 일기와 모든 편지 등)을 보고 진범은 따로 있다는 걸 깨닫는다. 불운하게도. 결국 그도 죽은 채 발견이 되고 마는데.....

 

보시다 시피 앞에는 한없이 유쾌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 유머가 악랄하게 느껴질 정도의 전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유쾌한 유머를 잊지 않다니 이 작가, 심히 감탄스럽다. 그리고 존경스럽다.

 

아직 못 읽은 분들을 위해 범인이 누구인지 힌트조차 꺼내지 않았으니 부디 읽어보시길!

정말 재밌고 멍뎅해지는 책입니다!

 

*유쾌한 글귀 (중간에 중단했음)

-내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낌새를 보이자, 그는 곧 영감에 휩싸인 시인의 표정을 지으며 구름을 바라보는 척했다ㅏ. (막스 -> 으젠) (9)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척하며 내 아파트 쪽을 염탐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고양이는 마치 햇볕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벌렁 드러누워 그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 작자가 마치 헐벗을 대로 헐벗은 정신 상태를 증명이라도 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아무리 애정을 구걸해도 고양이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정말이지 보기에도 딱하다. (으젠 -> 막스 ) (11)

-그러곤 더위, 피고, 술기운을 재료로 하는 비밀스런 연금술로 인해 그 멋진 사내들이 '네 어미 매춘부'라는 무궁무진한 주제를 놓고 즉흥시 경연을 벌였고, 이어 능숙한 앙트리샤 (공중에 떠서 양발을 서로 엇갈리게 하는 발레 동작)와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는 절묘한 묘기가 동원된 놀라운 포스트 모던 발레가 시작되었다. (13)

-내가 놀란 나머지 종이상자를 떨어뜨리고 말았으니까.

나는 몇 년간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빅토르 위고 전집으로 주변을 조용하게 만든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29)

-폭주하는 미치광이.

-질문 : 미치광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 : 그보다 더 미친 척 한다. (51)

-하지만 현실은 많은 경우 허구보다 더 황당무계하다. (161)

-증오, 그것도 관계들을 만들어낸다. (287)

 

+유쾌한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프랑스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손에서 뗄 수없는 그런 책을 찾고 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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