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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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초콜릿 코스모스>가 무척 맘에 들어서 냉큼 온다 리쿠의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을 때 다른 작품들이 어쩐지 무서운 이야기들 같아서, <밤의 피크닉>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당연히 좀 오싹한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다. 무서운 건 싫어하지만, 영상물만 아니라면 그나마 참을 수 있는데다...무서워하면서도 보고 싶어하는 어린애 기질이 발동해 마음을 다잡고 읽기 시작했다. -중간을 생략하고 말하자면... 이야기의 내용과 상관없이, 난 혼자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잖아... 혼자 기대하고 실망하는 거야 익숙한 일이지만,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래도, 책은 재미있었다. 발랄하고 화려한 재미는 아니지만, 성장소설답게 조금 답답하고 미묘한 공기를 잘 잡아낸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밤의 피크닉>은 수학여행 대신 일년에 한 번, 전교생이 밤을 새워 함께 걷는 이벤트의 이야기이다. 아침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말 그대로 하룻동안의 이야기인데도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다. 학교의 이벤트는 간단해 보이는 것조차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게다가 '학교'라는 장소는 다들 한번씩은 거치는 장소니만큼 공감하기도 쉬운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나 혼자만의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지금보면 다른 친구들에게도 있는 고민이었다든가- 하는 아련함까지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기도 하고. 성장소설 치고는 상당히 시간적으로 짧지만(하룻밤이니까) 그 하룻밤 안에도 아이들은 어른에 한 발짝 다가선다.

주인공인 도오루는 남모르는 비밀이 있다. 아버지가 바람펴서 생긴 배다른 남매, 다카코가 같은 학교, 심지어는 같은 반에 다니고 있다. 도오루와 다카코는 서로를 무시하며 의식하고 있다. 그 둘은 서로를 완벽히 밀쳐내지도, 완벽히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친구들의 도움과, 일상과 조금은 이질적인 밤의 마력으로 그 둘은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겠지만, 다카코의 태도는 상당히 호감이 갔다. 다카코의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성격일까. 재빠르지는 않지만 관대한 성격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딘가 다 조금은 불안하다. 다카코의 엄마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고등학생이기 때문일까 그 어른이 되기 직전의 아슬아슬함이 귀여워 보였다.

시노부의 말대로, 고등학교까지는 청춘의 잡음을 즐겨야 할 때다. 그걸 나도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조금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야겠지. 성장소설은 읽으면서 나도 한 뼘씩 자라는 것 같다. 혹시 내가 정말로 다 자란 어른이라면 성장소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흡족해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아직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한참은 멀었나보다. 한 뼘 한 뼘 자라나는 수밖에.

-당연한 일이지만, 길은 어디까지고 이어져 있어 언제나 끊어지는 법 없이 어딘가의 장소로 나온다. 지도에는 공백도 끝도 있지만 현실 세계는 빈틈없이 이어져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매년 이 보행제를 경험할 때마다 실감한다. 철이 들었을 때부터 언제나 간략화된 지도와 노선도, 도로지도로밖에 세상을 파악하지 않아서, 이런 식으로 어디에나 빠짐없이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20)

-수면이라는 것은 고양이 같은 것이다. 시험 전날처럼 부르지 않을 때는 잘도 찾아와서, 잠에서 깨어나면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으면 죽어도 오지 않아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하게 한다. (29)

-내 신발이 없을 때의 불안함, 슬픔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치 자기의 시간과 행동을 통째로 빼앗긴 듯한 느낌이었다. (31)

-몸을 움직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걷는 것은 좋아했다. 이런 식으로 차가 없고 경치가 멋진 곳을 한가로이 걷는 것은 기분 좋다. 머릿속이 텅 비어지고, 여러 가지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붙들어두지 않고 방치하고 있었더니 마음이 해방되어 끝없이 확산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59)

-장시간 연속하여 사고를 계속할 기회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에 의문을 느끼게 되며, 일단 의문을 느끼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촘촘히 구분하여 다양한 의식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 의식은 언제나 자주 바뀌어가며 쓸데없는 사고가 들어갈 여지가 없어진다. (60)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커다란 누군가가 손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람은 손만 있어서 하늘 위에서 이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서 그것을 누군가가 꼬옥 껴안고 있다. 수평선을 보면 언제나 그런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 수평선은, 높은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무서웠다. 그것은 꼭 소리굽쇠를 두드릴 때처럼 웅웅거리는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이제 틀렸다, 너희들은 이제 끝이다,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그 소리를 들었을 때가 이 세계의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83)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네게는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이 잡음이 들리는 건 지금뿐이니까 나중에 테이프를 되감아 들으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들리지 않아. 너, 언젠가 분명히 그때 들어두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해. (156)

-좋아한다는 감정에는 답이 없다. 무엇이 해결책인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으며, 스스로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훗날의 행복을 위해 가슴속에 간직하고 허둥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어떻게 매듭을 지으면 좋을까. 어떤 상태가 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고백한들, 데이트한들, 임신을 한들,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괜히 행동을 일으켜 후회하기보다 마음속에만 소중히 간직하는 편이 훨씬 낫다. (223)

-여름방학 때의 그 불쾌한 느낌. 바로 저기까지 끝이 다가와 있다. 하루하루 확실하게 다가온다. 지금 시작하면 아직 해낼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면, 시작한 만큼 어떻게든 된다. 그렇게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 도저히 손을 대지 못하는 악순환. 일단 책상에는 앉아보지만 다른 일을 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시작하여 핵심 과제의 주위만 어물쩍거리다, 중요한 것을 조금도 시작하지 못한다. 하루하루 미루는 동안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후회막급의 심정으로 해야 할 일의 양에 기겁하게 되는 여름의 끝...(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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