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 거짓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캐서린 케첨 지음, 정준형 옮김 / 도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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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어렸을때 있었던 일들, 혹은 살면서 인상깊었던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전학을 가는 기억, 보이스카웃 등과 같은 단체에서의 추억, 친구들과의 놀이터 생활, 연인와의 달콤한 데이트..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이런 기억들은 때론 아주 선명해서 최근에 경험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억해보면 그런 날의 해가 지는 풍경이 떠오를 때도 있고, 상대방이 입었던 옷, 혹은 그날 했던 대화까지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거짓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억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기억일까요? 데이트때 그녀가 입은 옷이 핫팬츠인지 청바지인지, 생일날 먹은 음식이 참치회인지 삼겹살인지 물어본다면 우리의 기억은 진실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억은 사소한 암시에도 변화하기 쉬우며, 상상과 왜곡, 전위, 압축, 상징화, 작화 등의 작용을 통해 기억은 재구성됩니다. 저자 자신도 실생활에서 흔하게 그런 기억의 변화를 체험하는데, 자신의 기억(어머니가 수영장에서 빠져죽은 진실)에 대해 훗날 친척의 사소한 암시로도 그녀가 가지고 있던 기억이 흔들리고 그 왜곡된 기억이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물론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변화하던지 간에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트때 먹었던 음식을 잘못 기억하거나, 어렸을때 같이 놀러갔던 친구를 잘못 기억하더라도 그런 기억과 진실간의 괴리는 크게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진실과 다른 기억이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다거나, 심지어 성추행, 근친상간, 혹은 살인사건에 대한 기억이고 그런 기억을 토대로 누군가를 법적으로 고소하거나, 그 기억으로 인해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면 어떨까요

1967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외야수이자 당대 최고의 강타자 중 하나였던 23세의 토니 코니글리아로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투수 잭 해밀턴을 상대로 타석에 들어섰다. 해밀턴이 초구로 던진 강속구는 코니글리아로의 왼쪽 얼굴을 강타했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코니글리아로는 1975년 은퇴했고 1990년에 사망했다. 해밀턴 역시 예전처럼 살수 없었다. "사는 동안 거기서 자유로울수 없었죠. 수도 없이 그 일을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51세의 해밀턴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야구 중계를 보다가 투수가 몸에 맞는 공을 던질때면 언제나 그 일이 떠올랐죠." 그는 그때가 6회였고 2대 1로 이기고 있었으며 코니글리아로는 8번 타자이며 낮 경기였다고 회고했다. 해밀턴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이 중대한 경험에 대해 오랜 세월 수없이 생각했다지만, 그의 기억은 진실과 거리가 있었다. 그 사건은 4회에 일어났고, 당시 스코어는 0대 0이었으며 코니글리아로는 6번 타자였고 당시 경기는 밤 경기였다. - pp. 141~142 

책에서 심리치료를 받는 여러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대개 불행했던 과거, 혹은 현재를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부부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우울증, 섭식장애 등의 정신적 치료를 받기 위해 치료를 시작합니다. 린 프라이스 곤돌프는 여섯살때 삼촌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그 기억은 그녀를 계속 괴롭혔고, 과체중과 섭식장애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그녀는 심리치료 클리닉에 가게 됩니다. 하지만 두세번의 상담이 끝날 무렵 치료사는 린의 부모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부모님에 대한 꾸준한 의심 제기와 집단치료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시도했고, 결국 부모도 성추행했다 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부모의 사실이 아니라는 말은 부인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린이 기억하지 못했던 것은 억압 이라는 개념으로 해석됩니다. 다음해 린은 다섯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7종류의 약을 복용했고, 치료사는 정신분열장애, 양극성장애, 주요우울장애, 신경증적 우울장애, 만성적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임상적 우울증, 해리성장애, 기분부전장애,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후 보험비와 치료비용을 더이상 지불할수 없게 되자 치료는 중단되었고 몇 달 뒤 린은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부모에게 성추행당하는 모든 기억이 약에 절은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이었으며 실제 삶의 조각들 위에 자신의 두려움, 꿈, 욕망이 더해져 상상의 기억이 만들어졌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량의 약물 복용, 성추행에 대한 집착, 치료사가 부추긴 편집증, 집단 히스테리가 함께 작용해 허구인 세계를 만든 것입니다. 결국 3년만에 부모님과 재회를 하게 되고 가족과 재결합을 이룹니다.

이러한 왜곡 기억에 대한 피해가 린처럼 다행스러운 결말로 끝나는 경우만 있지는 않습니다. 1989년 조지 프랭클린은 20년전 수전 네이슨이 살해당한 사건의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그 유일한 증거는 자기 딸의 기억이였습니다. 수전 네이슨은 조지 프랭클린의 딸인 에일린의 친구였는데, 에일린은 살인사건을 목격했지만 20년동안 그 기억을 억압해왔으며 불연듯 그 사건이 생생히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에일린의 진술은 당시의 색깔, 소리, 질감, 감정, 주고받은 말까지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회복된 기억이 진짜 과거의 정확한 재현인지, 허구가 뒤섞인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조지 프랭클린은 일급 살인죄 판정을 받습니다. 다른 사례인 더그 네이글 재판의 경우는 무죄가 입증되었지만 모든것을 잃어버린 케이스입니다. 더그 네이글의 23살 딸 크리스틴은 아버지에게 성추행당한 기억을 회복했으며, 10개월의 심리치료 후 15살의 딸 제니퍼까지 성추행한 기억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은 3주만에 무너져내렸고 그는 치열한 법정 공방을 거칩니다. 결국 모든 혐의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의 가정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두 딸과 다시는 만날수 없었습니다.

 만일 제 딸이 누군가에게 성폭행이나 강간을 당한다면, 저는 그 가해자를 법이 허용하는 모든 죄목으로 고발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치료사가 내관적인 치료 기술을 이용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기억을 제 딸의 머리속에 만들어낸다면, 그 치료사도 성폭행 가해자와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셈이며 법이 허용하는 모든 죄목으로 고발되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지금 미국 전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거짓 고발 사건에는 3중의 비극이 존재합니다. 첫째, 진짜로 성추행을 당한 아이들에게 쓰여야 할 시간과 노력과 돈이 허비되고 있습니다. 둘째, 자신이 성추행당했다고 믿도록 유도된 사람들은 실제로 그런 일이 없었는데도 그런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무 죄없이 파괴되는 가정이 많아지는 만큼, 잘못 고발된 부모와 가족들이 상처를 입게 됩니다. - pp. 342~343

한 통계에 따르면 이러한 어린시절 성추행 기억을 회복한 사례는 1988년 이후 1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성추행 기억을 되찾은 유명인들의 충격고백이 매스컴을 타고, 기억 회복과 치유에 대한 책들이 불티나게 팔립니다. 이런 현상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은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으며, 현재 겪는 문제는 이러한 기억의 상처들 때문이며 그 기억을 기억해내기만 하면 치유될 수 있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이 뇌에 영구불변하게 새겨져 있으며 기억해내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대로 출력할수 있다는 생각, 자신의 과거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욕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다양한 심리학 실험으로 기억은 얼마든지 변화되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인위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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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칼 포퍼 지음, 허형은 옮김 / 부글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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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 칼 포퍼의 수필 및 강연원고 모음집으로 그의 또다른 저서 '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의 속편입니다. 세계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발표한 세미나와 강연이라 칼 포퍼의 철학과 사상이 함축적이면서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에 오히려 그의 대표저서인 '열린사회의 그 적들' 이나 '역사주의의 빈곤' 등보다 그를 빠르게 접하기엔 더 용이한 책이 아닌가 합니다. 그는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민주주의의 핵심은 피를 흘리지 않고 현 정부를 교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으며 그것을 뭐라고 부를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국민에 의한 통치라는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는 실질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으며, 혹여 있었다 해도 실상은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독재정권에 불과했다. 정부는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으며 또 그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국민에 의한 통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헌법에 따라 통치하는 정부형태를 지지한다. 국민에 의한 통치와는 전혀 다르다. 나는 또한 책임지는 정부를 지지한다. 먼저 뽑아준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겠지만, 나아가 인류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 역사와 정치에 대해

그는 자신을 합리주의자이자 계몽주의자로 표현합니다. 그에게 합리주의란 데카르트의 철학도 아니요, 인간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존재라는 주장도 아닌 자신의 실수와 오류에 대한 타인의 비판, 혹은 자기비판을 통해 학습할수 있다는 의미이며 계몽주의란 칸트와 페스탈로치의 지식을 통한 자기해방 관념을 의미합니다.

계몽주의자와 예언자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언어다. 계몽주의 사상가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상대를 확신시키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야기 하는 내내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설득을 하느니 반론을, 가능하면 합리적이고 잘 다듬어진 형태의 비판을 유도하여 상대방의 자주적 의견을 형성할 것을 요구한다. - 1958년 알프바취 포럼, Die Philosophie und die Wissenschaften

그는 책의 2부에서 과학에 대해 강연한 부분을 할애했고 걸출한 세 과학자인 갈릴레오, 뉴턴 뿐 아니라 가장 위대한 이로 요하네스 케플러를 소개하며 케플러의 연구과정과 자신의 실수를 정면으로 바라볼수 있었던 겸손함을 칭찬합니다. 그 외에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의 논쟁 등을 거론하며 진정한 과학에의 길은 비판적 접근 뿐임을 강조합니다. 그의 책은 철학가 치고는 매우 쉬운 언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아직 에리히 프롬, 한나 아렌트, 아도르노, 칸트 정도밖에 비교할 대상이 없지만 제가 읽어본 것 중에선 가장 이해하기 편한 서적이였습니다. 포퍼에 대해 접하고 싶다면 아무 부담 없이 이 책을 추천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마르크시즘이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과 같은 과학이라는 주장이 참인가 거짓인가? 나를 과학철학자로 만든 것은 바로 이 '문제' 였다. 나는 철학 공부를 택하지 않았는데 내가 나의 것으로 간주한 '문제들'이 철학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할 수밖에 없도록 나를 이끌었다. 그러니 모든 것은 내가 품어 애정을 쏟은 '문제들' 덕이다. 진지하게 학문에 임하는 모든 학도들, 과학 생도들에게 자신이 진정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멋진 문제 하나를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쉽게 오류를 범하는 우리의 불완전성을 지속적으로 자각하고,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고, 결정적으로 중심 논제 및 그것에서 파생된 문제들에 무한한 애착을 가질 것. 이것이 내가 진심으로 권하는 연구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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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죽이는 아이들 - 십대들의 살인과 범죄심리
후쿠시마 아키라 지음, 김은주 옮김 / 산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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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발생한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4대 강력범죄 피의자 중 청소년은 모두 3천428명. 청소년 피의자는 총 9만4천862명으로 2년 전보다 23% 정도 감소세를 보였지만, 강간범이 2008년 464명에서 2010년 2천29명으로 2년새 337%나 크게 늘었고, 같은 기간 살인범도 19명에서 23명으로 21% 늘었습니다. 전체 발생 건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범죄의 질은 점점 더 잔혹하게 바뀌고 있는 청소년 범죄. 왜 아이들은 아이들을 죽이는 것일까요? 정신분석학, 병적학, 범죄심리학 등을 전공한 저자 후쿠시마 아키라는 이 책을 통해 일본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준, 아이가 아이를 죽이는 세가지 사건을 연구, 분석함으로서 성과 폭력성이란 관점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고베에 사는 14살 소년A는 11살의 초등학교 남학생을 산으로 유인, 운동화 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합니다. 그 후, 죽은 아이의 머리를 절단하고 시신 일부를 중학교 교문 앞에 버립니다. 시체에 성명문을 작성했으며 자기 자신을 사카키바라라고 부릅니다. 그는 11살의 남학생 말고도 한건의 살인과 한건의 살인미수, 두건의 폭행을 저지른 사실을 인정했는데, 시간순으로 보면 길거리에서 12세 여학생의 머리를 망치로 구타한 사건부터 시작해 점점 강도높은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소년은 일기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고 썼으며, 그 범행 과정을 일기로 기록해갑니다. 소년A의 경우 태어날때부터 청색증이 있었고, 소년A의 어머니의 경우 먼지떨이로 백대를 때릴 정도로 체벌이 심했습니다. 아버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소년A가 환각을 볼 정도로 폭력을 가하며 키우게 됩니다. 이런 양육스타일은 두 부모의 고향인 섬의 전통문화의 잔재로 추측되며 이런 체벌의 영향으로 소년A는 할머니의 애정에 의존하게 되는데, 할머니가 죽고 난 후 죽음에 대한 상실감과 공허감은 소년에게 시체성애 증상을 가져오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사회적 충격을 안겨준 흉악 살인사건은 성장과정이나 자질, 환경 등 다양한 원인이 중복되면서 비로소 일어나므로 포커게임의 카드 한두 장을 바꾸어 버리면 전혀 다른 카드패가 되듯이, 개인이 지닌 한두 개의 요인을 바꿀 수만 있다면 살인이라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생물학적인 이상요소나 자질을 바꾸는 작업은 사실 현대의 과학으로는 어려우므로 사회심리적인 면을 조작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개인의 자질이 어떠했든 어릴 때부터 당해온 폭력이 아이들의 심리적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마음의 상처로 남으며 결국 폭력행동의 이미지나 패턴으로 각인되어 버리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p.92 

나가사키의 12세 소년B는 4살의 유치원생을 유괴살인합니다. 이 소년은 부모가 잠시 쇼핑하는 사이 맡겨둔 피해자를 말로 유인해 빌딩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그후 소년B는 유아의 성기에 가위로 상처를 냈고, 아이가 소리치며 울기 시작합니다. 옥상에 방범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음을 알아챈 소년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아이를 뒤에서 껴안은 채 들어올려 옥상 아래로 던집니다. 이런 소년B는 성도착 범죄자의 유형을 지녔는데, 범행의도는 '남자아이의 성기가 없어지면 여떻게 되는지(여자가 되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는 것이였습니다. 그는 옛날에 전혀 모르는 형이 자신의 성기를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당한 뒤부터 그런 장난을 치게 되었다고 진술합니다.

나가사키의 11세 소녀C는 같은 반 여학생이자 가해자인 소녀C와도 친한 사이였던 소녀R을 살해합니다. 이들은 서로 놀다가 R이 소녀C를 업다가 장난으로 '무거워' 라고 호들갑을 떨며 소녀C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으로 시작합니다. 소녀C는 곧바로 그 '폭언'에 사과하라고 요구하지만 무시당합니다. 또한 R은 소녀C가 인터넷에 쓴 글을 인정해주지 않고 무시하게 됩니다. 소녀C는 R을 자습실로 불러내 왼손으로 상대방의 눈을 가리고 문구용 칼로 목을 찌릅니다. 이런 소녀C도 처음엔 정상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녀C는 지역 미니 배구부에 들어갔고 그에 재미를 느껴 정규 멤버로까지 선발됩니다. 하지만 부모는 딸아이를 사립중학교에 진학시키려 했으며, 운동으로 인해 공부를 소홀히 할 것을 우려해 배구부를 억지로 탈퇴시킵니다. 배구부원중에 소녀C만 배구 전용화가 없었고, 부원들 모두 같은 운동복을 구입했지만 소녀C의 부모는 운동복도 사주지 않았습니다. 멤버가 부족했던 배구부는 탈퇴한 소녀C에게 급히 시합에 참가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녀는 대회에 출전해 팀은 우승을 거둡니다. 하지만 딸이 방송국 인터뷰까지 했음에도 부모의 뜻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집중할 수 있는 일, 자부심을 느끼는 대상을 잃어버린 소녀C는 급격히 변해갑니다. 이러한 부모로부터의 애정을 받지 못한 C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R에게 인정받고자 노력했지만, R에게 C는 단순히 친구의 하나일 뿐이였습니다. R은 1,2등을 다투는 우등생이였고 C에게 R은 동경의 대상이자 동등해지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습니다. 이러한 사춘기의 동성애적 감정이 거부당했고 살인이라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감정적으로 구타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교육상 때리는 것은 괜찮다'거나 '애정을 가지고 때린다면 결국 그 애정은 아이에게 전해지며, 아이의 마음까지 다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폭력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주장을 증명할 만한 과학적인 데이터는 현재로서는 찾아볼 수 없다. - p.93 

이러한 세 사건을 바라보며 이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세 아이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유아시절부터 자신과 가장 친밀해야 할 부모나 양육자들의 폭력과 무관심에 빈번하게 노출당한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청소년기의 사춘기에 접어들며 사춘기에 급증하는 성충동과 공격성의 결합이 발생합니다. 이는 사디즘적인 성도착 증세가 나타날 수 있으며 자신에게 각인되었던 폭력과 성행동이 결합되어서 결국 사디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에 구타당하는 고통과 비참함을 경험하고, 그 감정을 잘 아는 사람이 부모가 되면 절대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이런 추측과 현실은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경향은 군대나 회사, 학교 운동부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런 폭력의 세대 간 전파는 이런 살인사건이 탄생하는데 큰 영향을 끼칩니다.

청소년들의 성경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음은 확실하다. 이는 18세 미만의 소년소녀들, 즉 중,고등학생을 성인보다는 아동으로 간주하는(혹은 간주하고 싶은) 어른들의 상식이나 법률, 조례 등의 규정이 현실과 점점 괴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인용 비디오 등의 모든 성 표현물들이 청소년의 심리적 발달이나 성장에 전적으로 유해하다고 간단히 단죄하는 것 또한 타당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따라해보고 싶다는 비행청소년의 기사나, 범죄를 학습 모방하는 사례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경찰통계 등을 참고하여 거시적으로 관찰하면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 즉 카타르시스 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시대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성범죄 건수가 젊은 층의 (범죄가 아닌)성경험이나 성 정보의 양과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성 정보나 표현으로부터 청소년들을 격리시키는 것이 그들의 건전한 성장에 유익하다고 주장하는 일부 관료나 정치가들의 신념은 통계로 볼 때 근거가 희박하다. - p.119 

사회적으로 보면 성적으로 억압된 사회일수록 성도착의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12∼13세에 초경과 몽정, 자위를 경험하는 아이들은 이미 성적인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사회가 그것을 외면한 채 금욕만을 강요하며, 아이들을 성적 욕망이 없는 순진무구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문제해결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고학력화로 인해 청년기의 모라토리엄이 연장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소년소녀들이 종종 흉악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이 시대에 그들의 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를 어른들의 사회가 외면한 채 통과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조언합니다. 부모도 학교도 제대로 된 성교육은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의 성은 무조건 은폐하고 못 본 척하거나 자연스러운 욕망에 기초한 성행동을 억압하는 전통적인 시스템을 강화하려고만 한다면 그 사회는 앞으로도 종종 광의의 아이들의 성에 기인한 충격적인 사건에 휩쓸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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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발견 - 사랑의 비밀을 밝혀 낸 최초의 과학자 해리 할로
데버러 블룸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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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발견. 짤막한 이 제목은 심리학자 해리 할로의 위대한 업적을 간결하면서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을 이 사랑이라는 개념을 해리 할로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줬습니다. 이러한 해리 할로의 실험 결과물은 인터넷은 물론이고 짤막한 소개글을 통해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실험의 동기와 배경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한 책을 통해야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서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과거 고아원에 대한 끔찍하고 절망적인 이야기는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고아원은 아기를 죽이는 곳입니다. 18세기엔 기아 보호시설에 들어온 아이 중 66%이상이 첫돌이 되기 전에 사망했고, 19세기 미국의 보호 기관의 자료를 보면 50%가 넘는 아이들이 보호시설에 도착후 1년이 되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콜레라, 장티푸스, 설사병이 고아원을 덮쳤고, 수많은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심지어 한살 이전에 들어온 아이들의 사망률이 완벽하게 100%인 시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감염 물질에 대항하기 위해 당시 사용했던 방식은 격리였습니다. 당시 소아 감염의 원인은 타인과의 접촉이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생각은 일반 가정에까지 퍼져갑니다. 최선의 육아방식은 최상의 위생상태, 깨끗한 손, 신선한 공기 뿐만 아니라 최대한 아이와 거리를 두는 것이였습니다. 당시의 심리학의 결과에 따르면 엄마의 사랑은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 이라는 것이 주류였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1931년의 보고에 따르면 소아 병동의 사망률이 거의 100%에서 30%로 크게 낮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위생 상태가 철저한 방에서 자란 아이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여전히 죽어갔습니다. 전염병이 원인이 아니라면, 과연 이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죽어가는 것인가?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 아이들이 고독감을 느낄 경우, 인간관계의 비정상적인 결핍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의견이 제시됩니다. 이 이론은 프로이트적인 관점에서 해석되어, 아이가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대상은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가슴이며, 아이는 젖에 애착을 갖게 되고 그런 다음 젖을 주는 사람에 대한 애착으로 발전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소수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해리 할로는 그의 심리학 실험을 시작합니다. 그는 당시 대부분의 심리학 실험을 쥐로 하던 관행을 깨고 원숭이를 선택하게 됩니다. 먼저 원숭이가 학습능력이 있음을 검증했고, 아무리 우수한 잠재력을 지녔대도 교육을 받지 못한 뇌는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런 주장은 당시 기성사회의 가치관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주장이였고 이때부터 해리 할로는 많은 공격을 받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는 원숭이는 학습능력이 있을 뿐더러 호기심도 가지고 있음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고, 그의 대표적 실험인 대리모 실험을 시작합니다. 해리 할로는 우유병을 든 철사 대리모와 아무것도 없는 헝겊 대리모를 아기원숭이들에게 제시합니다. 당시 사회적 주류의 주장에 따르면 어머니와 아기의 관계는 먹을 것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아기 원숭이들은 당연히 철사 대리모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실험결과는 압도적인 헝겊 대리모의 우세였습니다.

이 자료가 말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접촉으로부터 얻는 위안은 애착 반응의 발달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변수인 반면, 수유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변수입니다. - p.266 

그런데 실험을 통해 자란 아기원숭이들에게서 이상한 징조가 발생합니다. 최악의 상태는 철사 대리모에게서 자란 원숭이들이였지만 헝겊 대리모에게서 자란 원숭이들 역시 예상 밖의 행동장애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 결과를 통해 단순히 포근한 무엇인가를 제공하는것만으로는 어머니의 사랑을 다 만족시킬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원숭이들은 엄마를 포옹했지만, 엄마의 포옹을 되돌려 받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해리 할로는 두가지 실험을 통해 추가로 필요한 것을 알아냈는데, 하나는 체온보다 좀 더 따뜻한 온도를 선호한다는 것과, 움직이는 대리모를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도조절에 약한 아이의 특성과 연관이 있고,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 설령 그것이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라도 전혀 상호작용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결론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개와 같이 키운 아기원숭이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호기심이 강했고, 사회적 적응도가 뛰어났습니다.

해리의 연구실은 사랑의 역설적인 본질을 증명하게 되었다. 단 하나의 관계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하나의 관계, 최초의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들을 휩쓸어 침수시켜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중요한 관계이다. 최초의 애착이든, 상호 작용 관계든, 사회에 대한 연결점이든, 뭐라고 부르던 간에 이 최초의 관계가 그토록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머니보다는 아이 쪽에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 - p.335 

만약 어머니가 아이를 거부한다면 어떨까요? 해리 할로는 그에 대한 실험도 실시합니다. 헝겊 대리모 인형에 너무나 격렬히 움직이거나, 장착된 압축 공기 분사 장치가 아기원숭이를 공격하거나, 뼈대가 튀어나와 아기원숭이를 떨쳐버리거나, 뭉툭한 굵은 못이 박혀있는 인형들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괴물 엄마라고 부르는 인형들이 아기원숭이들을 계속 던지고 떨쳐내도 아기원숭이들은 몇번이고 되풀이 되어도 헝겊 대리모 곁으로 돌아옵니다. 해리의 표현에 따르면 '모든 것을 용서한 듯 믿음과 사랑을 보이면서' 계속 다가옵니다. 이 실험을 통해 아기들은 어머니가 안전을 제공하지 않더라도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시도하며, 이것에 너무 기력을 많이 쓰기 때문에 어머니 외의 관계는 하기 힘든 상황이 됩니다.

이 무렵 해리 할로는 미국 전역에서 인기있는 강연자가 되었으며 미국 과학 메달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한번의 이혼과 재혼, 재혼한 부인의 암 선고를 받았고, 이는 해리에게 우울증을 가져옵니다. 해리는 우울증을 치료하다 새로운 연구 방향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의 가장 어두운 측면, 사랑이 뺏어가는 것들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또한 원숭이 실험을 통해 우울증 모델을 창조하고자 했고, 그것은 우울증 환자들과 자신을 위한 것이였습니다. 실험 방법은 원숭이를 홀로 격리시켜 고독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것이였습니다. 1년간 격리된 원숭이는 주위를 탐색하지도 않고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다른 원숭이들과 어떤 관계도 맺지 못했습니다. 이런 원숭이를 강제로 교미시켜 원숭이를 낳아본 결과 자기 아기 원숭이에게도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이런 강제 임신의 결과, 자기 원숭이에게 무관심할 뿐더러, 자기가 낳은 아기 원숭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으깨 버리거나 머리를 으깨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끔찍한 상상도 이 살아 있는 원숭이 어미보다 더 사악한 대리모를 창조해 내지 못할 것이다. 어떤 형태의 사랑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어미 원숭이들은 제 새끼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러한 감정의 결핍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 p.356 

이런 격리의 효과는 태어날때부터 고독을 경험한 원숭이 뿐만 아니라, 행복하게 자라던 원숭이를 격리시킬 때도 자신을 방어할 수 없음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것은 아무리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살아왔더라 할지라도 고독, 우울증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할 수 없다는 결과를 말해줍니다. 이런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실험도 실시됩니다. 비슷한 또래의 원숭이들과 살아가는 경우 어머니가 없거나 부족한 어머니일지라도 일반 원숭이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꼭 자기를 낳은 어머니가 없더라도 주변환경에 따라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랑의 중요성을 배우기 위해 어린 동물을 실험해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슬프고 딱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그토록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군가가 사랑의 중요성을 새로이 상기시켜 주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더더욱 슬프고 딱한 현실입니다. - p.498 

해리 할로는 노년기에 들어 많은 비판에 직면합니다.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이 등장하며 해리 할로의 연구결과는 자칫 여성을 어머니의 역할에 한정하도록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해리 할로의 실험과정에서 동물보호론자들의 공격을 많이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 해리 할로에 대한 오해와 억울함이 있는데, 해리 할로는 어머니의 역할에서 여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 그 전부는 아니라는 입장을 평생토록 고수했으며 연구결과를 통해 어머니가 일하고 와서 진심으로 아이를 대해주기만 하면 큰 영향이 없음을 말합니다. 또한 당시 더 끔찍한 비윤리적 동물실험을 가한 과학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해리 할로의 경우 전체적으로 봐서 그당시로는 굉장히 윤리적인 편이였습니다. 그는 실험 과정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매우 중요한 진실에 도달했습니다. 사랑은 사람 곁에 당연스레 존재하던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숙제는 그가 발견하고 남겨놓은 진실을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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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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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0가지의 심리 실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심리학 실험중에서 선정된 이 10가지 실험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도덕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은 우리 인생의 주인인가?' 등과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대담한 방식으로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 실험으로 인해 큰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던 실험들입니다. 물론 그러한 실험들은 이 10가지 실험 외에도 많이 있지만, 이 10가지의 실험은 실험 자체로서의 스토리 뿐만 아니라 실험을 한 심리학자의 스토리도 인상깊은 것들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당시, 심리학은 철학에 가까운 분야였습니다. 프로이트와 윌리엄 제임스처럼 영혼의 성찰, 정신이란 그야말로 정신적인 어떤 무언가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파블로프는 고전적 조건화라는 개념을 통해 그의 유명한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공개합니다. 이것은 정신이 생리적인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당시 심리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스키너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살아있는 유기체를 통째로 조건화하는 것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키너는 스키너 상자라고 널리 알려진 장치를 만들어냈습니다. 파블로프가 종소리라는 선행자극에 집중했다면, 스키너는 음식 이라는 결과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실험을 하면서 최초로 행동의 예측과 통제라는 부분에서 통계학과 막대그래프라는 수학적 지식을 이용한 심리학자였습니다. 실험을 통해 보상에 따라 행동이 변화한다는 법칙, 보상이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질때 행동이 소멸되기 가장 어렵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왜 사람은 도박을 하는가? 왜 언제 올지 모르는 전화를 애인은 기다리는가? 그러한 그의 실험은 요양시설 등에서 보상의 변화를 통해 환자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법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더 발전시킨 체계적 둔감법과 자극 범람법 등은 공포증과 공황 장애 등의 치료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딸을 상자속에 넣고 키우는 등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기계와 같은 동물, 사랑할 줄도 모르고 추론할 줄도 모르는 동물이라는 개념은 분명 존 왓슨과 같은 초기 행동학자들의 가르침에 잘 들어맞는다. 그런데 이 개념은 하버드 출신의 연구자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스키너는 아마도 해리의 세대에서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키너는 동물에게는 감정이 없다는 매우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의 발견》p.167 

 1964년 3월 13일. 기이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캐서린 제노비스란 여성이 집으로 가던 도중 남자에게 칼로 찔립니다. 그녀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고, 동네 사람들 집에 불이 켜집니다. 범인은 도망쳤고, 그녀는 찔린 몸을 이끌고 가다 드러눕습니다. 그러자 불빛은 다시 꺼졌고, 범인은 자신의 범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녀를 찾았습니다. 그녀를 찾은 범인은 다시 그녀를 난도질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다시 불이 켜지고 범인은 도망갔지만, 범인이 도망가자 불은 다시 꺼집니다. 범인은 다시 나타나 그녀를 살해하고 범죄를 마무리짓습니다. 범죄를 창가에서 구경한 시민은 모두 38명. 하지만 누구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어떠한 것을 의미할까요? 당시 이 사건이 보도되자 미국은 도덕성 문제로 들썩였고, 수많은 이론이 제기됩니다. 충격으로 아무 행동도 못했을거란 의견, 텔레비전에 중독되어서 그렇다는 의견, 대중의 무관심에 대한 한탄. 하지만 심리학자 달리와 라타네는 실험을 통해 이런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그들은 간질환자를 연기하는 사람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가를 알아봅니다. 실험 결과,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도 있는 상황에선 70%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 자신만 도움을 줄수 있을 경우 85%가 즉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실험은 책임감 분산이라는 현상으로 불리웠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이 실험이 의미했던 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은 생존보다 사회적 예절을 더 중시하는 것이였습니다. 이 실험은 이러한 현상을 예방하는데에도 사용되었는데, 1979년 '성격과 사회 심리학 편람'이라는 논문에서 이 실험과 남을 돕는 행위를 보여줄 경우 두배 이상 남을 돕는 확률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남을 돕고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을 기를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실험들 외에도 사람은 왜 불합리한 권위 앞에 복종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던진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근접성의 힘을 입증한 해리 할로의 가짜 원숭이 실험, 약물 중독은 약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에 답한 알렉산더의 연구,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은 진짜 기억인가?라는 질문에 답한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일대기, 인간 정신의 합리화 메커니즘을 최초로 밝혀낸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 인간의 주관성에 대한 비판을 가한 데이비드 로젠한의 제정신으로 정신병원 들어가기 실험 등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심리학 실험에 대한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 실험이 현대에 있어서 어떠한 의의를 지니는가? 에 대한 질문 또한 날카롭게 던집니다. 심리학을 처음 접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훌륭한 선택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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