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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 거짓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캐서린 케첨 지음, 정준형 옮김 / 도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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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어렸을때 있었던 일들, 혹은 살면서 인상깊었던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전학을 가는 기억, 보이스카웃 등과 같은 단체에서의 추억, 친구들과의 놀이터 생활, 연인와의 달콤한 데이트..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이런 기억들은 때론 아주 선명해서 최근에 경험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억해보면 그런 날의 해가 지는 풍경이 떠오를 때도 있고, 상대방이 입었던 옷, 혹은 그날 했던 대화까지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거짓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억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기억일까요? 데이트때 그녀가 입은 옷이 핫팬츠인지 청바지인지, 생일날 먹은 음식이 참치회인지 삼겹살인지 물어본다면 우리의 기억은 진실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억은 사소한 암시에도 변화하기 쉬우며, 상상과 왜곡, 전위, 압축, 상징화, 작화 등의 작용을 통해 기억은 재구성됩니다. 저자 자신도 실생활에서 흔하게 그런 기억의 변화를 체험하는데, 자신의 기억(어머니가 수영장에서 빠져죽은 진실)에 대해 훗날 친척의 사소한 암시로도 그녀가 가지고 있던 기억이 흔들리고 그 왜곡된 기억이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물론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변화하던지 간에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데이트때 먹었던 음식을 잘못 기억하거나, 어렸을때 같이 놀러갔던 친구를 잘못 기억하더라도 그런 기억과 진실간의 괴리는 크게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진실과 다른 기억이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다거나, 심지어 성추행, 근친상간, 혹은 살인사건에 대한 기억이고 그런 기억을 토대로 누군가를 법적으로 고소하거나, 그 기억으로 인해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면 어떨까요
1967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외야수이자 당대 최고의 강타자 중 하나였던 23세의 토니 코니글리아로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투수 잭 해밀턴을 상대로 타석에 들어섰다. 해밀턴이 초구로 던진 강속구는 코니글리아로의 왼쪽 얼굴을 강타했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코니글리아로는 1975년 은퇴했고 1990년에 사망했다. 해밀턴 역시 예전처럼 살수 없었다. "사는 동안 거기서 자유로울수 없었죠. 수도 없이 그 일을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51세의 해밀턴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야구 중계를 보다가 투수가 몸에 맞는 공을 던질때면 언제나 그 일이 떠올랐죠." 그는 그때가 6회였고 2대 1로 이기고 있었으며 코니글리아로는 8번 타자이며 낮 경기였다고 회고했다. 해밀턴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이 중대한 경험에 대해 오랜 세월 수없이 생각했다지만, 그의 기억은 진실과 거리가 있었다. 그 사건은 4회에 일어났고, 당시 스코어는 0대 0이었으며 코니글리아로는 6번 타자였고 당시 경기는 밤 경기였다. - pp. 141~142
책에서 심리치료를 받는 여러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대개 불행했던 과거, 혹은 현재를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부부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우울증, 섭식장애 등의 정신적 치료를 받기 위해 치료를 시작합니다. 린 프라이스 곤돌프는 여섯살때 삼촌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그 기억은 그녀를 계속 괴롭혔고, 과체중과 섭식장애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그녀는 심리치료 클리닉에 가게 됩니다. 하지만 두세번의 상담이 끝날 무렵 치료사는 린의 부모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부모님에 대한 꾸준한 의심 제기와 집단치료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시도했고, 결국 부모도 성추행했다 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부모의 사실이 아니라는 말은 부인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린이 기억하지 못했던 것은 억압 이라는 개념으로 해석됩니다. 다음해 린은 다섯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7종류의 약을 복용했고, 치료사는 정신분열장애, 양극성장애, 주요우울장애, 신경증적 우울장애, 만성적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임상적 우울증, 해리성장애, 기분부전장애,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후 보험비와 치료비용을 더이상 지불할수 없게 되자 치료는 중단되었고 몇 달 뒤 린은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부모에게 성추행당하는 모든 기억이 약에 절은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이었으며 실제 삶의 조각들 위에 자신의 두려움, 꿈, 욕망이 더해져 상상의 기억이 만들어졌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량의 약물 복용, 성추행에 대한 집착, 치료사가 부추긴 편집증, 집단 히스테리가 함께 작용해 허구인 세계를 만든 것입니다. 결국 3년만에 부모님과 재회를 하게 되고 가족과 재결합을 이룹니다.
이러한 왜곡 기억에 대한 피해가 린처럼 다행스러운 결말로 끝나는 경우만 있지는 않습니다. 1989년 조지 프랭클린은 20년전 수전 네이슨이 살해당한 사건의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그 유일한 증거는 자기 딸의 기억이였습니다. 수전 네이슨은 조지 프랭클린의 딸인 에일린의 친구였는데, 에일린은 살인사건을 목격했지만 20년동안 그 기억을 억압해왔으며 불연듯 그 사건이 생생히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에일린의 진술은 당시의 색깔, 소리, 질감, 감정, 주고받은 말까지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회복된 기억이 진짜 과거의 정확한 재현인지, 허구가 뒤섞인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조지 프랭클린은 일급 살인죄 판정을 받습니다. 다른 사례인 더그 네이글 재판의 경우는 무죄가 입증되었지만 모든것을 잃어버린 케이스입니다. 더그 네이글의 23살 딸 크리스틴은 아버지에게 성추행당한 기억을 회복했으며, 10개월의 심리치료 후 15살의 딸 제니퍼까지 성추행한 기억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은 3주만에 무너져내렸고 그는 치열한 법정 공방을 거칩니다. 결국 모든 혐의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의 가정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두 딸과 다시는 만날수 없었습니다.
만일 제 딸이 누군가에게 성폭행이나 강간을 당한다면, 저는 그 가해자를 법이 허용하는 모든 죄목으로 고발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치료사가 내관적인 치료 기술을 이용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기억을 제 딸의 머리속에 만들어낸다면, 그 치료사도 성폭행 가해자와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셈이며 법이 허용하는 모든 죄목으로 고발되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지금 미국 전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거짓 고발 사건에는 3중의 비극이 존재합니다. 첫째, 진짜로 성추행을 당한 아이들에게 쓰여야 할 시간과 노력과 돈이 허비되고 있습니다. 둘째, 자신이 성추행당했다고 믿도록 유도된 사람들은 실제로 그런 일이 없었는데도 그런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무 죄없이 파괴되는 가정이 많아지는 만큼, 잘못 고발된 부모와 가족들이 상처를 입게 됩니다. - pp. 342~343
한 통계에 따르면 이러한 어린시절 성추행 기억을 회복한 사례는 1988년 이후 1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성추행 기억을 되찾은 유명인들의 충격고백이 매스컴을 타고, 기억 회복과 치유에 대한 책들이 불티나게 팔립니다. 이런 현상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은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으며, 현재 겪는 문제는 이러한 기억의 상처들 때문이며 그 기억을 기억해내기만 하면 치유될 수 있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이 뇌에 영구불변하게 새겨져 있으며 기억해내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대로 출력할수 있다는 생각, 자신의 과거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욕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다양한 심리학 실험으로 기억은 얼마든지 변화되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인위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