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 20세기 미국 범죄소설사
레너드 카수토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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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레너드 카수토가 보여주는 장르소설사는 그 답변이 그렇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문화와 소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발전했으며, 그것은 장르소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화약과 피, 연쇄살인범과 그를 추적하는 탐정, 어두운 도시와 시골풍경이 등장하는 장르소설들은 20세기 '하드보일드'로 총칭되어 미국 문화를 자극해 왔습니다. 카수토는 연쇄살인범과 가정적인 터프가이 탐정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소설과 미국의 감상주의가 결합해 미국 문화의 근본적인 토대를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레너드 카수토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태동기부터 현대까지 100년간의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분석되는 소설들은《몰타의 매》부터《양들의 침묵》까지 매우 다양한데, 그 방대한 분량 때문에 미국 장르소설의 마니아가 아니라면 분석의 묘미를 전부 즐기기 어렵긴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장르소설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카수토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논의를 충분히 이해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장르소설들은 당대의 시대 흐름을 바탕으로 시장 논리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내팽겨친 가족의 가치에 이끌리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중산층 가족이라는 이상화된 이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장르소설들은 사회에 만연해가는 공감의 부재, 동료 의식의 결핍, 가정과 직장 혹은 가족과 시장 사이의 균열의 공포를 노래합니다. 이런 현상들 속에서 악에 대항하는 하드보일드적인 주인공들은 건장하고 가부장적이면서도 가족적인, 남성입니다. 그리고 백인입니다. 감상주의와 하드보일드 소설들은 폭력을 포함한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가정을 지켜 내는 남성 원형을 탄생시킵니다. 이 헌신적이고 신사적인 남성들은 전통의 수호자이자 가정의 수호자이며, 사회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보안관이 됩니다.

뉴딜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세졌고, 전후 반공 정서의 많은 부분이 루스벨트의 국내 정책을 해체하려는 신흥 공화당원들의 욕망과 동일한 흐름을 형성했다. 과도하게 설정된 여성 악당들, 그리고 그들에 맞서 싸우는 감상주의적 액션 영웅들은 모두 갈수록 불안해지는 국내 정국을 반영한 가정적 테마들과, 정체를 숨기고 곳곳에 숨어 있을 불순분자들로 인해 사회질서가 교란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통합되면서 배출된 산물이다. - p.200

이런 보안관들을 위협하는 악당들, 가정과 사회, 도덕을 위협하는 악은 연쇄살인범들이며, 요부들입니다. 도덕적인 사람들의 생명을 연달아 앗아가는 연쇄살인범들, 자신의 쾌락을 쫓아 도덕적인 남성을 버리는 요부들은 하드보일드 소설 속에서 제거되어야 할, 갱생되어야 할 대상으로 존재합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연쇄살인범들은 실제 연쇄살인범들과는 다릅니다. 소설의 살인범들은 인간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임을 주장하기 위해 식인습관, 고문, 시간증 같은 성도착을 가지고 있으며, 이 가상의 연쇄살인범들은 거의 예외 없이 중산층 가족의 구성원을 위협합니다. 이 만들어진 악은 백인이 중심이 된 도덕적이고 평화로운 중산층이란 모든 것이 멀고 먼 이상향을 위협하는 상징적인 존재들입니다.

하드보일드 소설들은《양들의 침묵》에서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처럼 사회의 누구와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나 당시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풍자함으로서, 미국인들의 행동양식과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 문화의 근본적인 토대에 씻을 수 없는 자취를 남겼습니다. 이 말초적인 장르소설들은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감상적 이미지를 통해 가족을 이해시키고 있으며, 사형제도, 복지제도, 세금제도와 같은 대중의 논의를 반영하고 참여합니다. 레너드 카수토는 한 사회를 이해함에 있어서 장르소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이해해야 하는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통용되는 이야기일 수 있으며,《눈물을 마시는 새》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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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비시 - 영어는 어떻게 세계 언어가 되었는가
로버트 매크럼 지음, 이수경 옮김 / 좋은책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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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IBM 부사장이자 언어학자인 장 폴 네리에르는 극동 아시아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기업 간부들이 그들의 경쟁자인 영국인이나 미국인 기업가들보다 한국인이나 일본인 고객과 영어로 훨씬 원활하게 의사소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문법도 제대로 맞지 않는 굉장히 단순화된 형태의 영어인 그것은 영어이자 영어가 아니었고, 언어지만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네리에르는 그것을 '글로비시'라고 불렀습니다. 형태는 영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영어문화권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는 그 언어권의 문화와 가치를 전하는 방법인 반면, 글로비시는 제한된 목적을 위해서만 쓰이는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글로비시에서 영어는 플랫폼입니다. 영어가 이런 형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영어가 가진 불완전함 덕분이었습니다. 언어는 가변성을 가지고 있지만, 영어의 역사는 그런 성향을 더욱 증대했습니다. 로마의 브리튼 정복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영어는 물처럼 다른 언어들을 흡수해 왔습니다. 라틴어, 프랑스어, 아메리카 원주민의 어휘들, 아프리카 어휘, 흑인 어휘 등 수많은 어휘들이 유입되면서 영어는 전염성과 적응력이 강하며 대중적이고 전복적인 특성을 가진 언어가 됩니다. 세계인이 사용해야 하는 언어로서의 세계영어는, 여러 한계점과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불완전성 때문에 영어가 역사의 격변기 속에서도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영어의 세계화에는 산업화와 제국의 확장 같은 역사적 요인들이 큰 영향을 미쳤지만, 영어라는 언어 자체가 가진 특성은 사실상 영어의 세계화에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영어는 한 가지 중요한 구조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불합리한 철자법 관습이 그것이다. 이것은 중세 때부터 존재했던 문제다. - p.98

오늘날 글로벌 영어의 발전엔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식 영어인 콩글리시는 물론이고, 싱글리시, 타글리시 등 다양한 나라의 영어들은 모두 글로벌 영어에 긍정적 변화들을 가져옵니다. 한국인의 영어 발음이 부끄럽다고 말하거나 콩글리시가 잘못된 영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어의 언어학의 범위를 넘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층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제임스 트위첼이《럭셔리 신드롬》에서 고급 브랜드 제품들을 일평생 사용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줄줄 외우는 현상들을 언급한 것처럼, 영어의 이상향이 백인, 남성, 상류층, 미국과 영국이라는 조건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실제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의 영어회화에서 이루어집니다.

하와이대학의 래리 스미스는 영어를 제1언어, 제2언어로 쓰는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뒤 아시아인들은 서로의 영어 발음을 비 아시아인의 영어 발음보다 더 잘 알아듣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연구는 말을 알아듣도록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는 원어민 영어라는 가정에 의심을 품게 했다. -《아시안 잉글리시》p.57

글로비시는 세계적인 의사소통 수단, 공용어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제기된 것으로, 글로비시는 비영어권 뿐만 아니라 영어권의 미국인, 영국인들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글로비시는 언어가 아니라 디지털 환경이 0과 1로 구성된 것처럼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영어권 사람들도 지구촌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려면, 새로운 영어인 글로비시를 익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이 세계언어는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수준만 되도 충분히 익힐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문화 역시 이 언어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우리나라에서 등장한 'Jaebeol'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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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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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신론자에게 암이 생겼습니다. 인생의 전성기에 느닷없이 찾아온 이 불청객은 식도암 4기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인이 병에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에게 화젯거리였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단순한 감탄사에도 신을 언급하는 문화권에서 활동하는 유명인이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관심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종교는 생명을 죽인다고 말하고, 콜카타의 복녀 테레사 수녀를 교황청의 장사꾼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악마의 대변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위급하면 신을 찾는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히친스는 이 종교적인 주장이 틀렸음을 직접 보여줍니다. 악명높은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로 인한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히친스는 신을 찾거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장례식에서 어김없이 종교관계자가 등장하는 문화권이다보니 히친스에게도 죽기 전에 종교에 귀의할 것을 종용하는 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에선 히친스가 죽기전에 종교인이 될 것인지를 놓고 도박판이 벌어졌고, 미국의 유명 종교계 인사들도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심지어는 2010년 9월 20일을 '모두 히친스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반응들을 바라보며 히친스는 말합니다. 무엇을 위한 기도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기도의 공허함은 거의 가장 하찮은 문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런 사소한 허망함 외에도, 신도들을 속여먹기 좋은 장난감쯤으로 취급하는 종교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광경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인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믿으라며 이용하는 광경. - p.48​ 

엄청난 고통과 불안감 속에서도 히친스가 지닌 종교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녹슬지 않았습니다. 무신론자 히친스가 죽은뒤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리라고 외치는 종교인 앞에서 히친스는 고뇌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죽음 이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히친스는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삶을 불태웁니다. 자신이 죽어가는것을 슬퍼할 줄 알고, 새롭게 등장하는 암 치료법에 열광하고, 끊임없이 글을 씁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환상에 기대지 않고 신의 도움 없이 살수 있는 그날까지 살다가 죽은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모습은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원했을 때 히친스는 편집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이 늦어져서 미안하네. 곧 집으로 도착할거야." 그는 마지막까지 열정과 에너지가 솟을 때 글을 썼고, 최신 학문에 호기심을 느꼈고, 새로운 미술 전시회에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히친스는 없습니다. 천국에서 천사들과 유토피아적 생활을 즐기고 있을 히친스도 없고,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히친스도 없습니다. 그러나 히친스는 있습니다. 평생을 목소리와 글로 살아간 히친스가 남기고 간 뛰어난 저작들은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엔 구상시회권같은 구도라서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이제 없는 히친스의 자유로움과 뛰어남을 느낄 수 있는 최후의 저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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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은 위대하지 않다 +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전2권 -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표작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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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신론자에게 암이 생겼습니다. 인생의 전성기에 느닷없이 찾아온 이 불청객은 식도암 4기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인이 병에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에게 화젯거리였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단순한 감탄사에도 신을 언급하는 문화권에서 활동하는 유명인이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관심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종교는 생명을 죽인다고 말하고, 콜카타의 복녀 테레사 수녀를 교황청의 장사꾼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악마의 대변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사람은 위급하면 신을 찾는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히친스는 이 종교적인 주장이 틀렸음을 직접 보여줍니다. 악명높은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로 인한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히친스는 신을 찾거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장례식에서 어김없이 종교관계자가 등장하는 문화권이다보니 히친스에게도 죽기 전에 종교에 귀의할 것을 종용하는 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에선 히친스가 죽기전에 종교인이 될 것인지를 놓고 도박판이 벌어졌고, 미국의 유명 종교계 인사들도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심지어는 2010년 9월 20일을 '모두 히친스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반응들을 바라보며 히친스는 말합니다. 무엇을 위한 기도입니까?

이런 상황에서 기도의 공허함은 거의 가장 하찮은 문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런 사소한 허망함 외에도, 신도들을 속여먹기 좋은 장난감쯤으로 취급하는 종교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광경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인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믿으라며 이용하는 광경. - p.48​ 

엄청난 고통과 불안감 속에서도 히친스가 지닌 종교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녹슬지 않았습니다. 무신론자 히친스가 죽은뒤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리라고 외치는 종교인 앞에서 히친스는 고뇌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죽음 이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히친스는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삶을 불태웁니다. 자신이 죽어가는것을 슬퍼할 줄 알고, 새롭게 등장하는 암 치료법에 열광하고, 끊임없이 글을 씁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환상에 기대지 않고 신의 도움 없이 살수 있는 그날까지 살다가 죽은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모습은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원했을 때 히친스는 편집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이 늦어져서 미안하네. 곧 집으로 도착할거야." 그는 마지막까지 열정과 에너지가 솟을 때 글을 썼고, 최신 학문에 호기심을 느꼈고, 새로운 미술 전시회에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히친스는 없습니다. 천국에서 천사들과 유토피아적 생활을 즐기고 있을 히친스도 없고,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히친스도 없습니다. 그러나 히친스는 있습니다. 평생을 목소리와 글로 살아간 히친스가 남기고 간 뛰어난 저작들은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엔 구상시회권같은 구도라서 쓸쓸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이제 없는 히친스의 자유로움과 뛰어남을 느낄 수 있는 최후의 저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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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정의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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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를 대표하는 단어를 하나 고른다면, '창조경제'가 아닐까 합니다. 국정 핵심 키워드로 '창조경제'를 제창한 이래, 미디어나 사회 곳곳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창조경제'란 무엇입니까?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창조創造에 경제가 붙었으니 경제를 발명해야 한다는 뜻일까요? 이 단어가 등장한 이래 창조경제를 둘러싸고 각양각색의 해석과 적용 사례가 나오고 있어 과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학고를 설립할때도 창조경제, 스크린골프를 만들때도 창조경제, 층간소음 해결을 위해서도 창조경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세계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한국인 가수 싸이나 그가 지원군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넛잡'이 디즈니의 '겨울왕국'과 대결을 하는것도 창조경제라고 합니다. 창조경제의 정의定義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하는 언어는 사회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에리히 프롬은《소유냐 삶이냐》에서 사회의 변화를 언어의 변화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의 지배, 물질적 풍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개인적 자유의 보장이라는 위대한 약속으로 시작한 산업시대가 낳은 무한소비의 시대는 '존재양식' 과 '소유양식' 중 사람들에게 소유양식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언어 역시 변화함으로써 대응하고 있는데, 산업시대에 진입한 이래 사람들의 언어에서 명사의 사용은 증가하는 반면, 동사의 사용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다'는 단어를 과거엔 동사로 표현했지만, 현재는 명사로 표현합니다. 언어는 변화하고, 정의定義도 변화합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주목하고자 하는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언어를 어떻게 정의定義할 것인가? 한 사람의 언어를 정의定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정의定義하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아사히신문에 연재했던 이 에세이는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정의定義인 것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다양한 언어를 보여주고, 그것의 정의定義를 고민하게 합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도의적이란 표현을 영어moral로 대체하고 윤리적 상상력moral imagination으로 해석한다면 어떨까, 교육에 있어서 배운 것을 되돌리다unlearn과 다시 가르치다unteach란 무엇일까?

그의 정의定義에 관한 문답이 인상적인 것은 그것이 그의 정의正義에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1970년에《오키나와 노트》를 썼는데, 이 책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서 정부가 섬 주민들에게 강요한 집단 자결에 대한 논평이 들어 있습니다. 이 비극에 대해 일본사교과서는 집단자결이 '내몰리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문장에서 주어를 감추고 수동태 문장을 만들어 앞뒤를 맞춤으로써 문장의 의미, 그 사건의 책임에 대한 부분을 모호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교과서의 정의定義에 대해 오에 겐자부로는 반대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새역모 등의 단체들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져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정신, 사상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거다. 봉건적인 것, 광신적인 것, 배외주의는 모두 패배한다. 자연의, 인류의 법리는 반드시 이긴다. Vive l'humanite.' 저의 번역이라면, 마지막 말은 '인간다움 만세' - p.314 

핵무기의 '억지력'이 상대를 위협하여 물러가게 한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에서 그 폭력적인 어감이 어떻게 이성적이고 안정성이 느껴지는 언어로 치환하게 되었는가, 나라에 목숨을 바치라는 명령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깨끗한 죽음일 수 있는가,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언어의 정체는 무엇인가. 오에 겐자부로는 오키나와 문제 뿐만 아니라 반전활동, 탈핵운동 등 여러 사회활동을 하면서 사회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정의定義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일본사회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말한 '우리나라'라는 언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나라'의 '우리'는 누구인가?

언어는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언어를 만듭니다. 어떤 사회를 만드느냐는 곧 어떤 언어를 만드느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만듭니다. 그 의견중에 불의로운 것, 비인간적인 것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우리 사회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장애인을 차별하고, 동성애자들을 괴롭히고, 외국인을 멸시하고,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지 않을까? 이 시대, 이 사회의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오에 겐자부로는 정의定義로 시작해 언어로써 투쟁하라고 말합니다. 4년 전 우리사회에 열풍을 가져온 마이클 샌델의《정의正義란 무엇인가》에 이어 오에 겐자부로의《말의 정의定義》는 다시금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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