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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애를 말하다 -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그리고 사랑이 없는 무성애, 다시 쓰는 성의 심리학
앤서니 보개트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여자는 남자를 사랑한다. 또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한다. 이것이 전부일까? 오늘날 벌어지는 많은 논쟁과 투쟁 덕분에 우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자는 여자를 사랑한다. 또한 남자는 남자를 사랑한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의 조합론을 배운 사람이라면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여자는 남자와 여자 모두를 사랑한다. 또한 남자는 남자와 여자 모두를 사랑한다. 그리고 여자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또한 남자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사랑이 성욕에 기초한 것이라면 말이다.
무성애, 그리고 무성애자. 그들은 분명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냉정히 이야기해서 무성애자에 관한 논의는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 성애 논쟁의 최첨단, 최전선은 단연 동성애다. 일부 종교인들이나 이성애자들은 동성애를 자신들의 극단이자 선악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동성애가 아니고 무성애가 아닐까?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심지어 무성애적인 모습은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사랑의 ABC라는 말은 은연중에 사랑의 최종 목적이 잠자리를 가지는 것을 암시한다. 온 세상에 이성애자만 존재했다면 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매력적인 이성을 앞에 두고 성적인 매혹을 느끼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이 두가지는 동시에 이루어지기에 하나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무성애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와 섹스를 해야만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무성애의 중요한 점이다. 무성애자들도 자위를, 연애를, 섹스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성에 관심이 없다. 무성애가 말해주는 것은 인간의 사랑이 매혹과 행위는 구별된다는 점이다.
평생 우정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남녀가 있을까? 우정 관계라는 것이 남녀가 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행위 없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이라면, 답은 YES다. 대부분의 남녀는 하기 힘들겠지만, 그런 가능성은 분명 있다. 이성을 성욕 없이 좋아하거나, 동성을 성적 끌림이 없이 순수히 마음만으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 무성애자들이 있기에 우린 저 답을 알 수 있다. 만약 우정 관계가 가끔 성적인 관계를 맺더라도 서로 마음주는 일 없이 친하게 지내는 관계라면, 역시 YES다. 매혹과 행위는 다르다. 그들은 상대에게 성적으로 매혹되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다.
남녀가 사랑을 토대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자손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런 진화론적 관점에서 서로의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동성애를 비난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무성애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비록 행위는 할 수 있지만 매혹되지 않기에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도 불량품으로 비춰질 수 있다. 동성애자들, 무성애자들은 과연 비정상이며 괴물들일까? 괴물들은 자연의 실수가 아니다. 그들의 조직에는 엄격하게 결정된 법칙과 규칙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는 동물계를 규정짓는 규칙, 법칙과 동일하다. 한마디로 괴물 역시 정상적인 존재다. 세상에 괴물이란 없다.
동성애와 무성애 성향이 정말로 진화론적 관점에서 자연도태적이라면, 도태되었어야 맞다. 하지만 그들은 도태되지 않았다. 오히려 잘 적응한 케이스라고 봐야 한다. 진화론의 선택 개념은 의견이 분분하나 분명한 것은 인간과 다른 동물들에게서 동성애와 무성애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성애만이 자연스러운 질서는 아니다. 동성애와 무성애는 비정상이 아니라 비정형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 성,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에 맞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