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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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답하면 거의 대다수가 공무원과 같이 한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희비를 가를만한 공부를 하고 있을거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저 공부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고 학자는 결코 아니다. 정말 이것저것 배우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공부를 하는 것도 결국 공생을 위한 하나의 방편일뿐이라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부할 권리]의 저자 정여울 작가도 유사한 심경을 책에서 내비쳤다.


'나는 왜 직장을 향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매일 일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안정된 직장을 동경하는 걸까.' 248쪽


나도 매일 일하고 있다. 심지어 주말이나 별도의 휴일이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물론 평일날 맘껏 쉬어도 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저자처럼 나역시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스케쥴만 잘 조절하면 다녀올 수 있는 처지라 일의 양이 많다고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말그대로 불안정함, 직업은 있지만 '직장'은 없는 불안함이다. 저자는 이런 고민에 빠져있을 때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만났다고 했다. 사실 스토너는 내게 있어 참 애물단지다. 저자 뿐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원서를 찾아읽게끔 할 만큼 엄청난 소설이라고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지루하고 고루한 이 책이, 스토너란 사람이 도무지 정이 가질 않았다. 마치 모모를 읽었을 때처럼 그랬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장에 꽂힌 스토너를 거의 매일 같이 바라본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저 책이 재미있게 읽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꽤 오랜시간 문학을 읽지 않았던 내가 소설가 김연수 덕분에 다시 문학이 좋아졌으니 언젠가는 문학만이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게 되는 때도 오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소비를 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게 되어 버린 현대화된 가난이야 말로 또 하나의 더 큰 결핍,'꿈꿀 수 없는 젊음'을 낳는 주범입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진정한 꿈을 꾸는 데 인색해져 버렸습니다. 208쪽


꿈을 논하지 않고 집필이 어렵기라도 한 것처럼 근래 출간된 책에서는 모두들 꿈에 대해 이야기 한다. 꿈을 가져라, 꿈이 있으면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라던가 혹은 꿈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눈앞에 놓여진 것에 최선을 다하라며 꿈 자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꿈이란 것은 확실히 있을 때 좀 더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눈앞에 놓인 것을 부지런히 쫓는 것도 좋지만 이루고 난 뒤에 허망함,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 방향성을 상실했을 때 지표가 되어주는 것이 다름아닌 그 꿈이란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것처럼 현대화된 가난은 '진정한 꿈'을 꾸는 것을 방해한다. 보기에 좋은 꿈, 성공한 누군가의 꿈을 따라가려다보니 진정한 내꿈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조언으로 저자가 꺼내든 책은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다. 이반 일리치의 책은 고교 입문 전 예비학교 숙제로 접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문체와 내용 덕분에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이반 일리치라는 작가는 내게 작가로서의 신용을 가진 사람이다. 그 사람의 책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내용은 이렇다. 이반 일리치가 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현대화된 가난이란 것이 다른게 아니라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 소비를 해야하고 이런 생활이 결국 인간에게 삶의 주체가 바뀌게 되는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생존하기 위해 노동하고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정여울 작가의 [해세로 가는 길]을 읽고 난 후 부러운 작가가 한명 더 늘었다. [축복받은 집]을 집필한 줌파 라히리가 처음이었고, 그 두번째가 바로 정여울 작가다. 책을 통해 그 사람을 전부 알 수가 없지만 만약 내가 출간할 수 있는 책을 정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 두 작가의 작품들이 가장 탐나기 때문이다. 두 작가모두 소위말해서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여성이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작가'의 이미지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이다. 살면서 거져 얻어지는 연륜말고 이토록 젊은 나이에 삶을 통찰한 듯한 두 작가가 그토록 매혹적이고 멋있었다. 질투가 났다. 이 책 [공부할 권리]를 읽고서는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수십년간 노력해서 얻어낸 지식과 지혜들을 몇 권의 책으로 어설프게나마 배워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그 인사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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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엔은 남자를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다 - 프랑스 여자들의 사랑, 패션, 그리고 나쁜 습관까지
캐롤린 드 메그레 외 지음, 허봉금 옮김 / 민음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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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엔하면 떠오르는 단어 쉬크. 내게 쉬크라는 단어는 가수이자 배우인 '샤롤르뜨 갱스부르'를 알면서 부터였다. 쉬크를 떠오릴 때 그녀는 물론 그녀의 엄마인 제인버킨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쉬크한 제인버킨을 봐도 무언가 파리지엔은 단순하게 옷을 잘입는 것 이상의 애티튜드를 가지고 있을거라 짐작된다. 책 [파리지엔은 남자를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다]를 읽어보면 그 짐작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이나 취향, 지갑 사정에 따라 종류는 달라지겠지만 ,그녀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상징하는 아이템이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그래, 이건 내가 나에게 선물한 거야. 나는 열심히 일하잖아.... 선물을 받으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43쪽

 

나만의 시그니처 아이템을 찾아서 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나의 몸과 맘에 딱 들어맞는 아이템을 말한다. 이런 시그니처 아이템을 갖는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차별되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고, 누군가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유행을 따라하는 이들에게 시그니처 아이템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다기 보다는 그저 잘어울리고 예뻐 보인다는 소릴 듣는 옷일 확률이 높다. 이런 맥락에서만 보더라도 파리지엔 남자에게 잘 보이기위해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이 아니라 당당함을 내보이기 위해 입는 것이다. 잘보인다는 것은 어쩌면 의지하려는 태도와 유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녀평등에서는 다소 멀어질 수도 있다. 옷을 입을 때도 내 몸에 맞게, 내 기분을 잘 살려줄 수 있는 아이템을 갖는 것부터가 남녀평등을 제대로 인식하는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옷을 입는 것부터 시작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성친구와 교제할 때 참고해야 될 내용도 들어있고 파리하면 떠오르는 음식! 빼놓을 수 없는 4가지 프랑스 요리와 테이블 세팅 법칙도 담겨 있다. 이외에도 프랑스식 표현과 파리지엔이 반드시 알아야 할 단어 15개, TPO에 맞춘 파리안내서 까지 갖추고 있다. “이 책 한 권이면 당신은 파리지엔이 되기 위해 프랑스에 갈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한 칼 라커펠트의 평이 전혀 과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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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할머니와 함께 요리를 - 토스카나에서 시칠리아까지, 슬로푸드 레시피와 인생 이야기
제시카 서루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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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지독하게 외로울 때도 부엌 안의 요리사는 수세대에 걸친 요리사들의 조언과 메뉴,

요리책의 지혜로 둘러싸여 있다. "


로리 콜윈 Laurie Colwin



얼마전 읽었던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편을 보면 엄마와 함께했던 추억을 꺼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데 이 책 역시 글 서문에 첫 줄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여성과 음식, 경청에 관한 이야기다. 훌륭한 솜씨는 세심한 주의와 정성을 기울이는 데서 출발한다.' 라고 누군가와 함께한 여정이며 그 여정속에 음식이 있었고, 그 누군가가 이탈리아 할머니였을 뿐이다. 아주 특별한 이탈리안 푸드 레시피를 배운다고 눈에 힘을 주고 노트를 준비하며 책을 읽기보다는 나 역시 할머니들과 함께한 저자가 되어보듯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야지 하고 긴장을 풀었다.


 

 

첫 번째로 찾아간 '마마 마리아'할머니 댁은 여행의 출발지이자 저자가 처음 만나는 할머니였다. 마마 마리아와 저자는 이미 알고 있던 사이로 어린 저자를 할머니가 안고 있는 사진도 책에 실려있었다. 마리아 할머니는 솜씨좋은 엄마를 보고 요리를 배웠고, 저자에게도 그저 옆에서 보조만 맞춰가면 된다고 말한다. 처음에야 실수를 하겠지만 두 번째 부터는 잘해낼 거라고 말하면서 마리아 할머니가 어린 시절 자신의 엄마가 식사준비를 하는 모습을 그저 거들고 보았을 뿐인데도 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마리아 할머니의 배려가 저자가 원하는 거였고, 이 책의 진행되는 방식이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편안하고 여유로운 할머니집 풍경도 물론 있지만 '레시피'도 당연 포함되어 있다.  롬바디아를 먹던 시절과 전쟁 이후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소박한 스타일로 변화면서 오히려 건강해지셨다는 등 개인의 식탁변화만 보아도 역사를 미루어 볼 수 있어 좋았다. 메인요리인 인볼티니도 먹음직스럽게 보였지만 앞에 실려있던 딸기사진에 너무 강력하게 끌렸는지 디저트였던 프라골레 알 비노가 정말 먹어보고 싶었다. 저자가 꿈꾸는 삶이 늦봄에 자그마한 산딸기를 소쿠리 가득 따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거라는 코멘트에 아, 역시 딸기는 정말 낭만적인 음식이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실제로 딸기가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데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근거없는 감상은 아닐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지혜로워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점점 커져가는거라고 생각한다. 지혜롭다는 것은 '음식', 한 끼의 밥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이로운 역할을 해주는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도 포함된다고 느낀 내게 요리는 이전과는 달리 정말 진지한 탐구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해서 미식가가 되겠다거나 값비싸고 고급진 음식만을 찾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저 매끼마다 정성을 다해, 마음을 다해 요리하고 먹겠다는 그야말로 누가들으면 별거 아닌 그런 것이다. 그런 내게 요리를 정말 잘하는 사람은 유명쉐프 혹은 전설적인 쉐프가 아닌 엄마, 그리고 할머니다. 이번에는 저 먼 곳, 이탈리아 할머니로 부터 레시피를 배워온 제시카 서루에게 도움을 받았다. 바로 [이탈리아 할머니와 함께 요리를]란 이 책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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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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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는 지글런 교수가 이 짧은 책에서 말했던 몇 가지 사례와 그것을 둘러싼 구조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 우석훈 교수의 해제 중에서-


출판사 갈라파고스에서 출간한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지글러가 어린 아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 절반에 해당하는 인구의 굶주림에 관한 질문에 답해주는 듯한 대화방식으로 쓰여졌다. 아들의 질문을 보면 다 큰 어른일지라도 굶주림의 원인과 구조활동에 불구하고 빈민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음에 대해 막연한 이유를 짐작만 했던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원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실제적으로는 후원까지 하는 순수하게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 역시 꼭 '아이'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후원까지 하면서도 그들의 굶주림의 원인이 거주하는 지역의 낙후와, 교육환경이 제대로 갖춰줘 있지 못하는 것만 떠올렸는지 지글러 교수가 학자로서, 그리고 직접 현장에 나가  활동가로서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을 통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지글러는 이 책의 주제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데 다음 두 가지의 내용이다. 첫 번째는 기아 현장에서 누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지, 두 번째는 그런 이득들이 어떻게 재생산되며 더 많은 어린이 기아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추적해 가는 과정이다.  우선 기아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원인이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경제적 기아인 경우와 해당 지역 내부에서 일어나는 관료들의 부패 등의 이유로 천천히 제대로된 원조를 가로막거나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기아가 있다. 경제적 기아인 경우는 긴급구조를 통해 원조를 받을 수 있는데 이를 결정하는 각 기관들의 정책을 통해 지원이 시작되기 때문에 정보가 다소 느리거나 다른 지원대상 국가에 비해 덜 긴급하다고 판단되면 제대로된 지원이 늦어지거나 협소해진다. 지원이 결정 된 이후라도 후원국이 제공하는 양식이 밀인데 지원대상국의 경우 쌀이 주식일 경우처럼 지원 물품의 간극때문에도 제대로된 지원에 차질이 생긴다. 지글러가 사례로 든 '소말리아'의 경우 미국이 원조를 나섰다가 소말리아 무장단체들로 부터 테러를 당한 경우가 발발했다. 이후 그들의 지원은 다소 위험하게 발전했는데 지원을 하기 전에 폭탄을 투하, 무장단체가 일방적으로 후원물품을 가로채지 못하게 방지한 다음 후원품을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할 경우 구조물품을 가지러 온 사람들이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무장단체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런 경우만 봐도 후원을 외부에서 해주려고 해도 내부에서 세력다툼이 발생하면 구조적 기아 상태로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지원대상국의 잘못된 관행과 체제로 기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유럽 대국 혹은 세계적인 기업의 수익유지를 위한 방해로 인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굶주림의 원인과 지속되는 까닭이 모두 '거대한 손'에 의해 발생하는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육류를 지향하는 식습관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은 굶는다?'란 타이틀로 소개된 내용은 우리가 매일 먹고 있는 소고기를 어린시절 드넓은 풀밭에서 뛰어노는 소에서 얻었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비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소를 정해진 기간내에 사육하고 도축하기 위해 소들에게 먹이는 것은 신선한 풀이 아니라 '옥수수'다. 이 옥수수의 양은 빈곤지역의 어린이 기아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지만 먹을 수 있는지가 아닌 '무엇을 먹을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 의해 소에게 먹여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다같이 채식주의를 선언한다고 해도 굶주림은 쉽게 사라지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안팎에서 벌어지는 부패도 문제고 또 하나 지구의 '사막화'도 무시할 수 없다. 지구에 물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텐데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공사를 구호단체와 기관에서 시작한 까닭도 바로 그때문이다. 하지만 물을 가지러 오는 과정 또한 위험천만해서 물을 얻으러 오는 길에 사망하는 사건도 여전히 발생한다.


다른 사랑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본문 중에서-



지글러가 아들에게 전달해주는 대화내용이라 문체 자체가 그리 어렵지 않고 아들이 궁금해 하는 점은 평소에 내가 궁금해왔던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그런 기관 혹은 국가, 그리고 대기업에서 그런 부정한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황당하기도 하고 속도 상한다. 또한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나와 같은 일반인도 어느정도 일조를 하고 있다는 점, 쉽게 말해 자각하면서 기아 문제를 돕겠다고 후원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오늘 반찬으로 조금 더 저렴한 소고기를 찾고 있다는 현실에 다소 충격을 받기도 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책을 읽으면 그 굶주림의 원인이 결국 자연적으로 인구수를 조절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신의 뜻도 아닌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발생한 안타깝고 불편한 진실이라는 것을 대면하게 된다. 적극적인 후원과 부정부패를 알리는 등의 개인이 할 수 있는 개선을 위한 노력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알아야 한다는 것, 모르면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라도 꼭 읽어봐야 한다. 이를 피한다면 굶주림이 모두 빈민의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오해를 받아도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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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블라인드
라그나르 요나손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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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르 요나손의 다크아이슬란드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스노우블라인드.

 

어린시절 부모를 잃고 홀로 자란 하리 토리. 그에게 신이란 존재는 인간을 보살피고 선과악을 명백하게 구분짓는다기 보다는 어린 시절 자신을 철저하게 외롭게 만든 사건들 속에서 구해주지 않은 야속함 그 자체였다. 돈과 실리만을 추구했던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가기 위해 철학과를 지원했다가 결국 자신이 왜 이런 혼란에 빠져야 하는지, 해답을 얻기 위해 신학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신학역시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자신이 찾고자 하는 답을 얻지 못한다는 것만 깨닫게 될 뿐, 다른 신학도들 처럼 신앙이 깊은것이 아니라 결국 몸으로 부딪히는 경찰학교에 지원,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에게 유일한 희망과 평온은 여자친구 크리스틴이다. 의학공부를 하며 병원일까지 병행하는 그녀는 늘 교과서를 가지고 다닌다. 경찰직에 지원서를 여기저기 제출해봐도 모두 거절당하고 침울 해 있을 때 북부 지역 피요르드 해변가의 작은 마을 시클루 피요두르 경찰서에서 그에게 연락을 해온다. 당장 출근하겠단 확답을 주지 않으면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하리 토리는 동거중인 연인 크리스틴과의 상의없이 무작정 출근하겠다고 답한다. 레비야크에서 두 사람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던 크리스틴은 하리 토리의 일방적인 결정에 마음이 상하고 그가 시클루 피요두르로 떠난 뒤에도 둘의 냉전은 끝날 줄은 모른다. 둘 사이가 서먹해질 무렵, 그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거란 믿음으로 현관문도 걸어잠그지 않는 마을에서 유명한 문인의 실족사가 발생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외지에서 온 하리 토리를 제외하고는 마을사람 누구도 이 사건이 그들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이어 일어난 한 여인의 살인미수 사건이 벌어지면서 하리 토리의 경찰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글의 초반 내용은 위와 같고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은 그다지 대수로울게 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눈, SNOW BLIND 雪盲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크리스틴과의 관계가 불안한 상태에서 사건의 용의자일지도 모르는 여인과 묘한 관계에 놓인 하리 토리의 심리적 갈등도 그 결말이 궁금해지지만 엄연히 범죄 스릴러인만큼 과연 두 사건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초반에는 그것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라그나르 요나손이 왜 천재작가라 불리는지 짐작이 되었다. 왜냐면 지금까지의 추리소설은 범인인듯한 사람이 범인이 아니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범인으로 등장하며 독자의 허를 찌르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범인이었지만 알고보니 슬픈 사연이 있었다는 안타까운 반전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작품은 그 두가지는 물론 범인이 밝혀진 이후에도 여전히 갈증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먼저 읽고 리뷰를 쓴 다른 독자들이 왜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었다는 표현을 사용했는지 알 것 같았다. 첫 페이지를 읽는 그 순간 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까지 도저히 다른 생각을 가질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사건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하리 토리의 개인사는 물론 애정관계까지 궁금증이 연달아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갈증을 일으킨 뒤 해답을 뒤늦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독자의 답답함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왠만한 내용은 바로바로 누군가의 입을 통해, 하리 토리의 심증을 통해 대꾸해주니 바로바로 페이지가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처음 하리 토리가 등장했을 때 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머릿속에 떠오른 배우가 있었다. <포인트 브레이크>에서 하리 토리 처럼 방황끝에 FBI요원이 되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용의자 중 한명인 여자와의 만남으로 갈등을 겪는 부분까지 매우 흡사한 '조니 유타'역의 루크 브레이시. 혹 이 작품이 드라마에 이어 영화로까지 제작된다면 부디 루크 브레이시에게 하리 토리 역할이 주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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