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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평점 :
누군가 내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답하면 거의 대다수가 공무원과 같이 한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희비를 가를만한 공부를 하고 있을거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저 공부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고 학자는 결코 아니다. 정말 이것저것 배우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공부를 하는 것도 결국 공생을 위한 하나의 방편일뿐이라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부할 권리]의 저자 정여울 작가도 유사한 심경을 책에서 내비쳤다.
'나는 왜 직장을 향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매일 일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안정된 직장을 동경하는 걸까.' 248쪽
나도 매일 일하고 있다. 심지어 주말이나 별도의 휴일이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물론 평일날 맘껏 쉬어도 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저자처럼 나역시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스케쥴만 잘 조절하면 다녀올 수 있는 처지라 일의 양이 많다고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말그대로 불안정함, 직업은 있지만 '직장'은 없는 불안함이다. 저자는 이런 고민에 빠져있을 때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만났다고 했다. 사실 스토너는 내게 있어 참 애물단지다. 저자 뿐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원서를 찾아읽게끔 할 만큼 엄청난 소설이라고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지루하고 고루한 이 책이, 스토너란 사람이 도무지 정이 가질 않았다. 마치 모모를 읽었을 때처럼 그랬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장에 꽂힌 스토너를 거의 매일 같이 바라본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저 책이 재미있게 읽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꽤 오랜시간 문학을 읽지 않았던 내가 소설가 김연수 덕분에 다시 문학이 좋아졌으니 언젠가는 문학만이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게 되는 때도 오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소비를 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게 되어 버린 현대화된 가난이야 말로 또 하나의 더 큰 결핍,'꿈꿀 수 없는 젊음'을 낳는 주범입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진정한 꿈을 꾸는 데 인색해져 버렸습니다. 208쪽
꿈을 논하지 않고 집필이 어렵기라도 한 것처럼 근래 출간된 책에서는 모두들 꿈에 대해 이야기 한다. 꿈을 가져라, 꿈이 있으면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라던가 혹은 꿈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눈앞에 놓여진 것에 최선을 다하라며 꿈 자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꿈이란 것은 확실히 있을 때 좀 더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눈앞에 놓인 것을 부지런히 쫓는 것도 좋지만 이루고 난 뒤에 허망함,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 방향성을 상실했을 때 지표가 되어주는 것이 다름아닌 그 꿈이란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것처럼 현대화된 가난은 '진정한 꿈'을 꾸는 것을 방해한다. 보기에 좋은 꿈, 성공한 누군가의 꿈을 따라가려다보니 진정한 내꿈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조언으로 저자가 꺼내든 책은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다. 이반 일리치의 책은 고교 입문 전 예비학교 숙제로 접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문체와 내용 덕분에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이반 일리치라는 작가는 내게 작가로서의 신용을 가진 사람이다. 그 사람의 책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내용은 이렇다. 이반 일리치가 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현대화된 가난이란 것이 다른게 아니라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 소비를 해야하고 이런 생활이 결국 인간에게 삶의 주체가 바뀌게 되는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생존하기 위해 노동하고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정여울 작가의 [해세로 가는 길]을 읽고 난 후 부러운 작가가 한명 더 늘었다. [축복받은 집]을 집필한 줌파 라히리가 처음이었고, 그 두번째가 바로 정여울 작가다. 책을 통해 그 사람을 전부 알 수가 없지만 만약 내가 출간할 수 있는 책을 정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 두 작가의 작품들이 가장 탐나기 때문이다. 두 작가모두 소위말해서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여성이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작가'의 이미지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이다. 살면서 거져 얻어지는 연륜말고 이토록 젊은 나이에 삶을 통찰한 듯한 두 작가가 그토록 매혹적이고 멋있었다. 질투가 났다. 이 책 [공부할 권리]를 읽고서는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수십년간 노력해서 얻어낸 지식과 지혜들을 몇 권의 책으로 어설프게나마 배워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 그 인사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