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러는 그가 유대인인지를 물었다. 젊은이는 유대인이었다. 부모 양쪽이 유대인인가? 그러했다. 

조상 중에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있는가? 없었다. 

힘러는 발을 굴렀다. "그렇다면 내가 더 도와줄 수가 없다.

299쪽




히틀러,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끔찍한 짓을 벌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제거해야 할 목록에는 유대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아시아인종은 물론이거니와 집시와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까지도 그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유대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 사실이고 일부 그런 무자비한 처형의 곤란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 모든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 최소한의 양심적 고통마저 느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언젠가 나치와 관련된 전범재판 과정에서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항변하던 이가 떠오른다. 사람의 목숨과 자신의 양심보다 명령이 우선이었을까? 그저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이기심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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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만큼 파리를 좋아한다. 파리는 19세기 이래 예술의 중심지였다.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나의 야망이 미술분야에 있었기 때문에 운명이 나를 정치 쪽으로 밀어 넣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공부했을지도 모른다."  202쪽


프랑스를 공격한 후 항복을 받아낸 후 히틀러는 회담이후 파리관광에 나섰다. 한때 미술학도 였던 때를 추억하듯 몇몇 장소에서는 넋이 나간듯했지만 결국 그가 부하들에게 지시한 바는 한 가지였다. 독일의 건물들이 파리보다 더 아름답고 훌륭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공격지시 때 파리를 제외시킨 것도 미적 측면에서 자신의 계획이었다고도 말했다. 히틀러 뿐 아니라 예술가 혹은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 중 일부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 인간의 생명과 평화임을 잊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파리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아름다움을 논하는 히틀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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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서구를 공격한다는 결정이 널리 퍼져나갈 무렵 독일 내 여러 다양한 집단이 쿠데타와 암살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일부는 히틀러를 사형시키길 원하고 일부는 그를 감금하고 군사 정권이나 민주 정권을 세운다는 단순한 계획을 세웠다. 154쪽


영국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결국 전쟁을 준비하는 히틀러를 두고 독일에서의 의견이 나뉘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히틀러를 존경하고 숭배에 가깝게 추종하는 세력이 있는가 반면 반히틀러 쪽에서는 그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국군들의 목숨마저 가볍게 처리해버리는 그를 두고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군부대에 그를 암살하려는 계획이 있음을 그가 진짜 몰랐을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괴링이 그에게 경고를 해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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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더슨은 "최후통첩처럼 보인다"고 항의했다. "폴란드 정부에게 대책을 세우는 데 고작 24시간만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도자는 리벤트로프의 지원을 받아 강력하게 비난을 부인했다. 히틀러는 "시간이 짧다"면서 "새로운 도발이 생기면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113쪽


독일군인과 자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다른 민족과 국민들의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커녕 인권마저 빼앗으려는 히틀러의 악마적인 모습으로 가득한 내용들이 이어졌다. 폴란드에게 관대한 제안을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관대하다'라는 표현 자체가 맞긴 한건가 싶다. 제대로 알지 못했던 탄압의 시작과 과정을 이렇게 하나하나 쫓아가면서 답답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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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민의 분노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례적인 비난을 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그는 11월 15일 기자회견에서 준비한 성명서를 낭독했다.
그는 독일에서 온 소식들이 미국 국민의 여론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고말했다. "나 자신도 이런 일이 20세기 문명화된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독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국무장관에게 베를린 주재 미국 대사를 소환하도록 지시했다. 그의보고를 받고 상의할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비난은 말뿐이었고 미국은 제3제국과 무역 관계를 지속했다.

1938년 11월 부터 이듬해 3월까지 유대인을 향한 히틀러의 탄압은 극에 달했다. 모든 유리창들이 깨져나가는 것을 두고 '수정의 밤'이라 불렸던 이시기에 유대교 회당은 물론 유대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까지 모두 파괴되었다. 실상은 이보다 더했을 거라는데 마음이 쿵하고 떨렸다. 더 속상하고 안타까운 것은 20세기에 있던 저 말도 안되는 일들이 현재에도 일어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역사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히틀러를 독재자, 나치, 반유대주의 라는 몇 개의 단어로 단순화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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